머리부터 꺽이어 넘어지노라? 까마다의 경(S2.6)에서 번역비교를 해보니
전생의 요가수행자가
부처님이 사왓티에 계실 때 하늘아들 까마다가 부처님 면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하기가 어렵습니다.”라 하였다.
무엇이 하기 어렵다는 말일까? 주석에 따르면 “까마다는 일찍이 전생에서 최상의 삼매에 들려고 헛되이 고행의 노력만 했다.(Srp.I.105, 전재성님)”라 되어 있다. 초불연 각주에 따르면 까마다는 전생에 요가수행자이었다고 설명 되어 있다. 빅쿠보디의 각주에 따르면 까마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Spk: This young deva, it is said, had been a meditator in a previous life, but he had thick defilements and thus could suppress them only with much effort. Though he did the work of an ascetic, because his supporting conditions were weak he passed away and took rebirth in the deva world without having reached the plane of the noble ones. He came to the Blessed one's presence to proclaim the difficulty of the ascetic life.
(CDB 149번 각주, 빅쿠보디)
CDB각주에 대한 번역은 초불연 각주를 참조하면 된다. 초불연 282번 각주에 까마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이 신의 아들은 전생에 요가 수행을 하던 자였다. 그는 오염원이 두터워서 많은 노력으로 겨우 오염원들을 억압하면서 사문의 법을 행하였다. 그는 애를 썼지만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약했기 때문에 죽어서 성자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신의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세존의 곁에 가서 ‘행하기 어려움’을 말씀드려야겠다.’라고 하면서 와서 이렇게 말씀 드린 것이다.(SA.i.105)
(초불연 282번 각주, 각묵스님)
까마다는 전생에 요가수행으로 선정의 깊은 경지에 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행으로는 최고의 선정에 들 수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면전에 나타나 삼매수행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부처님이 답송하시기를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답송한다.
Dukkaraṃ cāpi karonti
(kāmadāti bhagavā) Sekhā sīlasamāhitā, Ṭhitattā
anagāriyupetassa
Tuṭṭhi hoti sukhāvahāti.
(Kāmadasutta, S2.6)
[세존]
“[까마다여, 세존은 말한다.]
하기 어려운 것을 참으로 한다고,
배움과 계율과 선정이 확립된,
집 떠난 님들에게
지복에 잠기는 만족이 있네.”
(까마다의 경, S2.6, 전재성님역)
이 게송에서 키워드는 ‘Sekhā sīlasamāhitā’이다. Sekhā가 a learner의 뜻으로 배우는 자의 뜻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학인(學人)’이라 한다. 또 ‘유학(有學)’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사전에 따르면 ‘學人, 有學, 學’의 뜻도 있어서 ‘배움’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그래서 전재성님은 Sekhā에 대하여 배움이라 번역하였을 것이다.
왜 이렇게 번역이 다른가?
다음으로 sīlasamāhitā이다. Sīlasamāhitā는 sīla+samāhitā형태이다. Sīla는 계를 말하고, samāhitā는 ‘settled; composed; collected of mind, 固定, 入定’의 뜻으로 ‘삼매’를 뜻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Sekhā sīlasamāhitā’의 뜻은 “배움과 계율과 선정”이라 번역된다. 그러나 각묵스님이 번역한 것을 보면 다르다. 초불연에서 번역한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유학은 계 갖추고 확고하여서
행하기 어려운 것 능히 행하니
지족은 출가를 감행한 자에게
크나 큰 행복을 실어 나르니라.”
(까마다 경, S2.6, 각묵스님역)
각묵스님역에 “유학은 계 갖추고”가 있다. 이는 ‘Sekhā sīlasamāhitā’의 번역이다. 그런데 전재성님의 “배움과 계율과 선정이”라고 번역한 것과 확연이 다르다.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이에 대하여 각묵스님은 각주에서 ‘sīlasamāhit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계를 갖춰’는 sīla-samāhitā를 옮긴 것인데 ‘계와 삼매에 들어’로도 옮길 수 있겠지만 주석서는 이것을 sīlena samāhitā로 분석한 뒤에 “계를 갖춘(samupetā)”(SA.i.105)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초불연 283번 각주, 각묵스님)
초불연 각주에 따르면 주석의 견해를 중시하였을 알 수 있다. Sīlasamāhitā가 원래 계와 삼매를 뜻하는 것이지만 주석가들은 “계를 갖춘(samupetā)”뜻으로 달리 해석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석의 견해를 존중하여 “계 갖추고”라고 번역하였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초불연 번역은 ‘주석적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빅쿠보디역을 보면
Sīlasamāhitā에 대하여 ‘계를 갖춘’다고 번역하면 Sekhā는 당연히 학인이 되어야 한다. 학인이 계를 갖춘 것이라 하여 “유학은 계 갖추고”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전재성님의 “배움과 계율과 선정이”라고 번역한 것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하여 빅쿠보디는 어떻게 번역하였을까? 빅쿠보디의 CDB를 보면 다음과 같다.
"They do even what is hard to do,
[0 Kamada," said the Blessed one,]
"The trainees endowed with virtue, steadfast.
For one who has entered the homeless life
Contentment brings along happiness."
(Kamada, S2.6, 빅쿠보디역)
문제의 ‘Sekhā sīlasamāhitā’에 대한 번역은 “The trainees endowed with virtue”이다. 직역하면 “미덕이 부여된 훈련자”의 뜻이다. 이를 의역하면 “계를 갖춘 학인”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각묵스님의 번역과 똑 같다. 빅쿠보디도 주석의 견해를 중시한 주석적 번역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매라는 말을 뺀 결과
까마다의 경을 보면 모두 네 개의 게송이 등장한다. 그런데 세 번째 게송을 보면 삼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아들 까마다가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삼매에 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Dussamādahaṃ bhagavā yadidaṃ cittanti.)”라 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Dussamādahaṃ가 있다, 이는 ‘du+samādaha’의 뜻이다. 삼매에 들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초불연 번역을 보면 “세존이시여, 마음이라는 것은 고요히 하기가 어렵습니다”라 하였다. 삼매에 대하여 ‘마음고요’로 번역한 것이다. 마음고요나 삼매나 모두 ‘samādaha’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선정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첫 번째 게송에서 Sīlasamāhitā라는 말은 ‘계율과 선정’이라고 번역해야 맞을 듯 하다. 그럼에도 초불연에서는 ‘계 갖추고’라 하였고, CDB에서는 ‘endowed with virtue’라 하여 삼매라는 말을 빼 버렸다.
네 개의 게송에 대하여 비교표
까마다의 경 네 개의 게송에 대하여 비교표 형식으로 만들어 보았다.
구분 |
까마다의 경 첫 번째 게송 |
키워드 |
빠알리원문 |
Dukkaraṃ cāpi karonti (kāmadāti bhagavā) Sekhā sīlasamāhitā, Ṭhitattā anagāriyupetassa |
sīlasamāhitā |
전재성님역 |
“하기 어려운 것을 참으로 한다고, 배움과 계율과 선정이 확립된, 집 떠난 님들에게 지복에 잠기는 만족이 있네.” |
계율과 선정이 |
각묵스님역 |
“유학은 계 갖추고 확고하여서 행하기 어려운 것 능히 행하니 지족은 출가를 감행한 자에게 크나 큰 행복을 실어 나르니라.” |
계 갖추고 |
빅쿠보디역 |
"They do even what is hard to do, "The trainees endowed with virtue, steadfast. For one who has entered the homeless life Contentment brings along happiness." |
endowed with virtue |
구분 |
까마다의 경 두 번째 게송 |
키워드 |
빠알리원문 |
Dullabhaṃ vāpi labhanti (kāmadāti bhagavā) Cittavūpasame ratā, |
Cittavūpasame |
전재성님역 |
“얻기 어려운 것도 얻는다고, 마음의 고요함을 즐기는 님의 정신은 낮이나 밤이나 수행을 즐거움으로 삼으리.” |
마음의 고요함 |
각묵스님역 |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기뻐하는 자들은 얻기가 어려운 것 능히 얻게 되나니 그들 마음 밤낮으로 수행을 기뻐하노라.” |
마음을 고요히 |
빅쿠보디역 |
"They gain even what is hard to gain, "Who delight in calming the mind, Whose minds, day and night, Take delight in development." |
calming the mind |
구분 |
까마다의 경 세 번째 게송 |
키워드 |
빠알리원문 |
Dussamādahaṃ vāpi samādahanti (kāmadāti bhagavā) Indriyūpasame ratā, |
samādahanti |
전재성님역 |
“들기 어려운 삼매에 든다고, 감관을 고요히 하면 즐거우니, 죽음의 그믈망을 끊고 까마다여, 거룩한 님은 유행하리.” |
삼매에 든다고 |
각묵스님역 |
“감각기능 고요히 하는 것 기뻐하는 성자들은 집중하기 어려운 마음 잘 집중하나니 죽음의 그믈을 잘라버리고 가노라.” |
집중하나니 |
빅쿠보디역 |
"They concentrate even what is hard to concentrate, "Who delight in calming the faculties. Having cut through the net of Death, The noble ones, 0 Kamada, go their way." |
concentrate, |
구분 |
까마다의 경 네 번째 게송 |
키워드 |
빠알리원문 |
Duggame visame vāpi |
visame |
전재성님역 |
“까마다여, 가기 어렵고 험난한 길을 성자는 걸어가니 거룩하지 않은 이들은 험난한 길에서 머리를 아래로 떨구지만, 거룩한 님에게 길은 평탄하니, 거룩한 님은 험난한 길을 평탄하게 걸어가리.” |
험난한 길 |
각묵스님역 |
“성자들은 가기가 정말 어렵고 평탄치 못한 길을 걸어가지만 천한 자들은 평탄치 못한 길에서 머리부터 꺽이어 넘어지노라. 성자들에게 이 길은 평탄하나니 성자들은 평탄치 못한 [중생들] 가운데서 평탄한 자들이기 때문이니라.” |
평탄치 못한 길 |
빅쿠보디역 |
"Though the path is impassable and uneven, The noble ones walk it, Kamada. The ignoble ones fall down head first, Right there on the uneven path, But the path of the noble ones is even, For the noble are even amidst the uneven." |
the uneven path |
첫 번째 게송에서 sīlasamāhitā는 ‘계율과 선정’이라는 뜻이다. 특히 선정과 관련하여 두 번째와 세 번째 게송에서 Cittavūpasame (마음의 고요함) 와 samādahanti(삼매에 든다)로 표현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sīlasamāhitā는는 초불연과 CDB에서 ‘계를 갖추고 (endowed with virtue)’ 의 뜻이 아니라 ‘계율과 선정’이라고 분명히 드러난다.
머리부터 꺽이어 넘어지노라?
네 번째 게송을 보면 빠알리 게송이 6구게로 이루어져 있다. 전재성님과 빅쿠보디는 6구게로 번역하였으나 각묵스님은 7구게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각묵스님의 번역에서 “머리부터 꺽이어 넘어지노라”가 있다. 이는 ‘Papatanti avaṃsirā’구문에 대한 번역이다. Papatanti는 ‘Pa(forward) +pata (a fall; a throw)’의 뜻이다. avaṃsirā는 ‘head downward(고개를 아래로 하여); headlong(앞을 다투어)’의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Papatanti avaṃsirā’의 뜻은 “고개를 아래로 하여 앞으로 가는”의 뜻이 된다.
울퉁불퉁하고 웅덩이가 있는 길을 걸을 갈 때 조심조심 걸어 갈 것이다. 그래서 전재성님은 “험난한 길에서 머리를 아래로 떨구지만”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각묵스님은 “평탄치 못한 길에서 머리부터 꺽이어 넘어지노라”라 하였다.
평탄치 못한 길을 걸어 갈 때 고개를 아래로 하여 걷는 것과 거꾸로 넘어지는 것은 다른 표현이다. 빠알리 원문에 ‘머리부터 꺽이어 넘어진다’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초불연에서는 왜 이와 같은 표현을 하였을까?
이 구문에 대하여 빅쿠보디는 ‘fall down head’라 하였다. ‘머리를 아래로 떨어 뜨리고’라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재성님과 빅쿠보디는 ‘Papatanti avaṃsirā’에 대하여 “머리를 아래로 떨구지만”과 “fall down head”라 하여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하였다. 그런데 각묵스님은 원문에도 없는 말인 “머리부터 꺽이어 넘어지노라”라고 번역하였을까?
2014-08-0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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