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미쳐 날뛰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4. 8. 9. 11:01

 

 

미쳐 날뛰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마음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라 한다. 그러나 마음은 통제 되지 않는다. 통제되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내마음이라 볼 수 있을까? 법구경 35번 게송에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이 있다.

 

 

Dunniggahassa lahuno             둔닉가하싸 랄후노

yatthakāmanipātino,              얏타까마니빠띠노

Cittassa damatho sādhu,          따차 다마토 사두

citta danta sukhāvaha.      땅 단땅 수카와항.

(Cittavaggo, Dhp35)

 

 

원하는 곳에는 어디든 내려앉는

제어하기 어렵고 경망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훌륭하니

마음이 다스려지면, 안락을 가져 온다.

(Dhp35, 전재성님역)

 

 

마음은 붙잡기 어렵고 경솔하여

어디나 좋아하는 곳에 쉽게 머문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진정 훌륭하니

잘 다스린 마음이 행복을 가져온다.

(Dhp35, 거해스님역)

 

 

は、く、(かろがろ)

とざわめき、するがままにおもむく。

そのをおさめることはいことである。
をおさめたならば、をもたらす。
(Dhp35, 中村元)

 

 

붙잡기 어렵고 경솔하고

욕망을 따라 헤매는 마음을

억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억제된 마음이 평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Dhp35, 법정스님역)

 

 

輕躁難持 경조난지

惟欲是從.유욕시종

制意爲善 제의위선

自調則寧 자조즉영

(Dhp35, 한역)

 

 

Hard to hold down,

       nimble,

alighting wherever it likes:

       the mind.

Its taming is good.

The mind well-tamed

       brings ease.

(Dhp35, Thanissaro Bhikkhu)

 

 

 

미쳐 날뛰는 마음

 

게송에서 마음은 제어하기 어렵고 경망한 것이라 하였다. 이는 마음이 미쳐 날뛴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되면 내마음 같지만 사실상 나의 마음이 아니다. 마치 남의 나라 군대와 같다. 남의 나라 군대는 국왕의 통제 밖에 있기 때문에 국왕의 군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미쳐 날뛰는 마음 역시 통제되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이라 볼 수 없다.

 

마음이 제어되기 어렵고 경망하다는 것에 대하여 주석에 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1) 마음은 제어되기 어렵다(dunniggaha): 오직 어려움을 통해서만 제어된다.

2) 마음이 경망하다(lahu) : 쉽게 일어나고 쉽게 사라진다.

 

 

마음은 제어 되기 어렵다고 하였다. 제어 되기 어렵기 때문에 어려움을 통해서만 제어 된다고 하였다. 마음을 제어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마음은 통제되지 않음을 말한다. 그런 마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mind

 

 

마음의 특징 네 가지

 

배우지 못한 범부들에게 있어서 마음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의 특징은 1) 마음은 길들이기 어렵고, 2) 마음은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지고, 3) 마음은 제멋대로 이고, 4) 마음은 원래 선하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잠시라도 마음은 가만 있지 않는다. 이런 마음은 오로지 마음을 다스려야만 통제된다. 이에 대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훌륭하다.(Cittassa damatho sadhu)”라 하였다.

 

어떻게 다스리는가? 이에 대하여 주석에 따르면 제어되어 견고해지면 길과 경지가 성취되고 최상의 원리인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DhpA.I.295)”라 하였다. 마음은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서 통제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범부는 마음에 휘둘려 살지만, 반면 성자는 마음을 다스리며 산다고 볼 수 있다.

 

게송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마음이 다스려지면 안락을 가져온다.( citta danta sukhāvaha)”라 하였다. 여기서 안락이라는 말은 sukhā’를 의미한다. 다른 번역에서는 행복’, ‘평화’, ‘ease’ 등으로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

 

마음을 다스리려면 지금 현재를 알아차리는 수밖에 없다. 이는 위빠사나수행처에서 늘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행복한 숲)’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사실상 수행자의 의식의 연속체에 존재하는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은 오직 현재에만 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데는 알아차림이 아주 조금이라도 늦거나 빠르면 그것은 물질적 현상도 정신적 현상도 아니다. 물질적, 정신적 현상이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면 그것은 알아차림이 아니며 여기에 집중도 생기지 않는다. 이 때 그는 법을 보지 못한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행복한 숲), 76P)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은 마음을 오직 현재에만 두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다면 그것은 법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번개의 비유를 들고 있다.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두 개의 구름덩어리가 부딪쳐서 번개를 일으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번개는 구름이 부닺치는 순간에 일어났다가 그 순간 바로 사라진다. 그름이 부딪치기도 전에 번개를 찾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또한 구름이 부딪치고 나서 번개를 찾는 것도 의미가 없다.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행복한 숲), 76P)

 

 

번개가 번쩍 하면 이어서 천둥소리가 난다. 눈과 귀에 들리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다. 바로 실재하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오온 안에 있는 정신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은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는 찾을 수 없다. 그것들은 조건과 부합하여 일어난 뒤에 바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일어나고 난 뒤에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들은 오직 일어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현재 바로 그 순간을 알아차려아만 정신적 물질적 현상의 성품을 이해 할 수 있다.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행복한 숲), 76P)

 

 

현상은 오직 일어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 순간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하였다. 잡념, 망상이 들어 왔을 때 , 나에게 망상이 일어났구나!”라고 알아차려야 함을 말한다. 그런데 알아차림이 없다면 잡념이 잡념을 불러와 순식간에 거대한 사념의 구조물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를 빠알리어로 빠빤짜(papañca)’라 하며 우리말로 희론또는 망상이라 한다.

 

허리가 아픈 환자처럼

 

한 생각이 일어 났을 때 그 생각은 생각을 불러 일으켜서 망상으로 발전된다. 이는 현재 지금 이 순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지금 이순간을 관찰하라고 한다. 그래서 마음을 항상 현재에 두어야 하는데 다음과 같이 허리가 아픈 환자처럼 하라고 하였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일상적인 활동을 모두 할 수 있으나 허리의 통증 때문에

1) 아주 천천히 앉고,

2) 아주 천천히 일어서며,

3) 물건을 잡을 때도 천천히 잡는다.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행복한 숲), 76P)

 

 

허리가 아픈 사람은 허리가 아플 것을 염려 하여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도 허리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아픈 사람처럼 움직여서 현재의 움직임을 알아차려야 법을 볼 수 있음을 말한다.

 

 

 

2014-08-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