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왜? 하필이면 광화문광장에서, 천주교 복자와 성인의 조건은?

담마다사 이병욱 2014. 8. 19. 14:17

 

? 하필이면 광화문광장에서, 천주교 복자와 성인의 조건은?

 

 

 

차단벽 안쪽과 바깥쪽 상황은?

 

천주교 시복식날 광화문광장에 있었다. 역사적인 교황방한을 맞이 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푸대접을 받았다. 그것은 나중에 안 것이지만 차단벽 바깥쪽 사람들은 감시의 대상이었을 뿐 불청객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서울광장에 이르기까지 세종로 거리는 교구별로 동원된 천주교인으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특히 인도와 가까운 부분이 그랬다. 이유는 인도까지 자리를 확보 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도로와 달리 세종로 거리는 인도가 꽤 넓은 편이다. 그런데 인도의 90%가량 점유하여 차단벽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건물에서 고작 1-2미터 밖에 공간이 확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비좁은 공간에서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이렇게 비좁다 보니 한사람 지나다니기도 옹색하였다.

 

덕수궁돌담길 통로를 보면

 

그렇다면 서 있는 곳만 비좁게 만들어 놓았을까? 어느 천주교인의 후기를 보니 덕수궁돌담길 역시 마찬가지이었다. 그 넓은 인도까지 대부분 다 내주고 일반사람들이 다니는 통로는 고작 1미터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 단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에 지나지 않을 뿐 서서 보기에 엄두가 나지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전구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차단벽 바깥쪽은 통행에 불편을 줄 정도로 협소함에도 방송과 신문에서는 10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덕수궁돌담길통로

 

 

 

참석인원은 175천명

 

교구별로 동원된 천주교인은 17만명이라 한다. 이는 인도까지 최대한 확보 된 공간에 들어 간 인원을 말한다. 그런데 100만명이라니!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계산이 나온 것일까?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참가한 인원은 17 5천명이라 하였다. 이는 경찰청에서 집계한 것이다. 인도까지 최대한 확보된 차단벽 안쪽의 신자들이 17만명이고,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로 공간이 거의 없는 차단벽 바깥쪽의 사람들이 5천명이라 한다. 그래서 17 5천명이라 한다.

 

그럼에도 방송과 언론에서는 100만명이 모였다고 하고, 심지어 교계신문에 기고한 스님도 지난 8 16일 광화문 시복식에 모인 신도와 시민들이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의 2(100여만 명)라고 한다.(불교닷컴 2014-08-18)”이라 하여 잘못된 통계를 여과 없이 인용하고 있다.

 

차단벽 안쪽과 바깥쪽은 상황이 너무나 달랐다. 인도까지 최대한 확보된 차단벽 안쪽은 널널하였지만 불과 1-2미터 폭의 차단벽 바깥쪽은 옹색하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경찰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마치 감시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욱 더 불편하였다. 그 때 당시에는 몰랐으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 되었다.

 

천주교의 동방공정(東方工程)

 

교황은 방한하여 무엇을 남겼을까? 천주교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영광이었을 것이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가톨릭의 위세를 마음껏 떨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절정이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이었다. 그러나 교황의 방한에 대하여 떨떠름하게 보는 곳도 있다. 아마 불교계가 그럴 것이다. 그래서 불편한 심기를 볼 수 있는데 이번 교황방한과 관련 하여 법응스님은 교계신문에 다음과 같이 기고 하였다.

 

 

냉철하게 분석하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바티칸과 한국 천주교계의 치밀한 전략이다. 한국에서의 천주교세 확장과 아시아를 겨냥한 동방공정(東方工程)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명동성당에서 교황이 주도하는 마지막 미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 현재 시각 실지 참석여부는 알 수 없으나 다종교국가의 지도자로써 긍정하기 어려운 행보다.

 

([기고] 결국 우리 하기에 달렸다, 법응스님, 불교닷컴 2014-08-18)

 

 

법응스님 기고문에 따르면 이번 교황의 방문은 동방공정(東方工程)’ 전략중의 하나라 한다. 천주교의 교세확장을 위하여 한국을 교두보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이번 방한기간중에 아시아 전역에서 온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청년대회를 개최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법응스님은 기고문에서 대통령의 미사참석여부에 대하여 우려 하고 있다.

 

교황을 정점으로한 종교간 위계질서?

 

우려는 현실로 되었다. 대통령은 교황이 집전한 명당성당 미사에 참여 하였기 때문이다. TV를 보니 놀랍게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자승스님도 신도석에 서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명동성당미사(채널A)

 

 

동영상을 보면 한국의 칠대종단 대표들이 교황을 알현하기 위하여 서 있다. 그 중에는 갓을 쓴 모습도 있고 가사를 입고 삭발한 스님도 보인다. 마치 교황을 정점으로 하여 종교간 위계질서가 성립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한국가톨릭은 500만명의 신자로 이루어진 단일 교단이다. 오로지 하나의 교단만 있기 때문에 매우 조직화 되어 있다. 마치 상명하달식의 군대지휘체계처럼 추기경을 정점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사제들은 철저하게 중앙의 통제에 따른다.

 

가톨릭이 이렇게 조직화 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교황을 정점으로 하여 하나의 단일교단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을 가톨릭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일까 대통령이 공항으로 영접을 나가고,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교황에 목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세계최대종교인구는 어디?

 

일반적으로 세계최대종교는 가톨릭으로 알려져 있다. 통계에 따르면 가톨릭은 107천만명이고, 개신교는 34천만명이다. 러시아에 있는 정교회는 21천만이다. 불교는 4억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가톨릭은 세계최대종교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이는 최대치로 계산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교회가 텅텅 비어 있다시피 하도고 한다. 그럼에도 종교인구에서 최대치로 잡아 놓는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가톨릭이 우세한데 신자비율이 51-67%이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통계에서는 모두 종교인구로 통계가 잡히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불자인구 통계를 보는 것 같다. 일년에 한번 절에 가도 불자라 하는데 모두 통계 자료에 해당된다.  

 

이처럼 종교통계는 최대치로 잡는 경향이 있다. 이런 논리로 따진다면 불교가 세계 최대종교가 될 것이다. 그것은 중국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세계최대종교는 불교, 세계종교인구는 다시 쓰여 져야(201-01-11)’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올린 글에서 불교가 가톨릭 보다 더 많은 신자수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로서 중국변수를 들었다. 전세계적으로 불교인구가 4억명 가량 된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불교신자는 최소8%에서 최대80%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인구는 최대치로 잡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국불교인구를 80%로 본다면 무려 10억명이 넘는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불교인구는 151천만명이 되어 가톨릭13억명 보다 더 많게 된다. 그래서 세계최대종교는 불교라고 글을 올린 바 있다.

 

? 하필이면 광화문광장에서

 

시복식날 비좁은 통로에서 차단벽 안쪽의 천주교행사를 바라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였다. 가장 먼저 의문이 든 것은 왜 하필이면 광화문광장에서 행사를 가졌을까에 대한 것이다. 그것도 거리를 차단하여 교통을 통제하고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키는 등 시민들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까지 대형옥외 행사를 하필 광화문광장에서 가졌느냐는 것이다. 상암월드컵 경기장이나 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잠실운동장 등 좋은 장소가 많이 있음에도 왜 광화문에서 식을 거행하였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천주교한풀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조선후기에 천주교인들은 박해를 당하였다. 자발적으로 받아 들인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시복식날 복자로 선정된 123위 모두 200여년 전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하여 대한민국의 심장부이자 상징인 광화문광장에서 할 필요가 있었을까?

 

광화문광장에서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광장에서 떨어진 서소문에서 처형당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굳이 광화문광장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료에 따르면 옛날 광화문 거리는 형조터, 우포도청터, 의금부터 가 있던 곳이라 한다. 천주교 신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배어있는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에 선택 되었다고 한다.

 

광화문 광장은 승리의 광장

 

천주교인들은 혹독하게 탑압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53명이 죽었고, 1839년 기해박해에서 18명 등 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때 당시 얼마나 억울하였으면 이른바 황서영백서라 하여 외국군대로 하여금 조선왕실을 압박하려 하려 하였을까? 서양선교사를 통하여 중국황제에게 서신을 보내 천주교를 탄압하는 조선을 치자는 문서이다. 그러나 황서영의 백서는 도중에 발각되어 27세에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본다면 황서영도 이번 시복자 명단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시복자명단에서 빠졌다고 한다. 아마도 국민정서를 감안해서 일 것이다.

 

200년전 천주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수 많은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어 탄압을 하던 왕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2세기 전에 억울하게 죽었던 교인들은 대한민국수도 심장부에서 교황의 집전하에 당당히 복자가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천주교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날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셨고, 그분의 승리는 또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안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승리를 경축합니다.”

 

(교황 시복미사 강론 “가난한 사람들 울부짖음…”, 한겨레신문 2014-08-16)

 

 

이날 tv로 생중계 된 광화문광장 시복식에서 교황은 승리를 강조 하였다. 200년 전 교인들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결국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승리를 경축합니다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광화문 광장은 승리의 광장이 된다. 더구나 교황은 강론 말미에 사랑하는 이 나라에서부터 아시아 전역을 거쳐 마침내 땅끝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라 하였다. 이말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이 카톨릭의 전진기지 되어 달라는 말과 같다.

 

가톨릭의 혹독한 종교탄압

 

아시아에서 가톨릭을 믿는 나라는 필리핀과 우리나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과 필리핀은 동급이다. 그렇다면 필리핀은 어떻게 가톨릭국가가 되었을까?

 

필리핀은 스페인의 400여년간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결과 국민의 80%가 가톨릭을 신봉하는 아시아 유일의 가톨릭국가이다. 이렇게 필리핀이 가톨릭국가가 된 것은 서세동점의 시대에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전통문화가 약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스페인식민시절 이전에 필리핀에도 불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페인 침략 이전에 필리핀에는 불교가 이미 도입 되어 있었다. 이에 대하여 가톨릭에 불교의 흔적이, 마리안축제와 필리핀불교에서 발견한 놀라운 역사적 사실들(2010-03-1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스페인 침략하기 이전의 필리핀은 부족국가 시대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7세기에 이미 불교가 전래 되었고 10세기에는 송나라와 수교를 할 정도로 역사서에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그러나 16세기 스페인이 침략하면서 모든 것이 파괴 되었다. 그리고 혹독한 종교탄압이 시작 되었다. 이에 대하여 올린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1581년 스페인식 ‘종교재판(Inquisition)’이 교황 식스투스4(Sixtus IV)의 명령으로 시작 되어서, 스페인제국내의 가톨릭을 믿지 않는 비가톨릭교도를 추방하였고 심지어 이전의 신앙을 포기 하도록 ‘쥐어 짜기’도 하였다.

 

1571년 마닐라의 건설과 함께 필리핀사람들은 스페인법에 지배를 받아야 했고, 뉴 갈리시아(멕시코)의 대주교가 멕시코와 필리핀에서 신념에 충실한 대 종교재판관이 되었다.

 

1595년 새로 임명된 마닐라의 대주교는 스페인의 동쪽 영토인 필리핀, 구암, 마이크로네시아의 총재판관이 되었고, 1898년까지 스페인의 종교재판은 프로테스탄트, 불교도, 힌도교도 및 무슬림에대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탄압’ 하였다.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서 했던 것과 같이 강제개종은 비일비재 하였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도전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일어 나지 않았다.

 

만일 그런 도전을 한다면 교황과 스페인국왕의 학정에 대한 반발일 수 도 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가톨릭에 불교의 흔적이, 마리안축제와 필리핀불교에서 발견한 놀라운 역사적 사실들(2010-03-14))

 

 

혹독한 종교탄압에 견딜 수 없었던 필리핀불교도들은 개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톨릭의 박해에서 살아 남으려면 수행이나 축제 또는 조형물등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결과 오늘날 필리핀에서는 혼합주의종교가 탄생 되었다. 대표적으로 마리안 축제를 들 수 있다.

 

왜 혼합주의가 되었는가?

 

마리안축제는 필리핀을 대표 하는 종교축제이다. 마리안 축제에는 동정녀마리아 상이 등장한다. 그런데 자료에 따르면 마리아상에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카톨릭의 혹독한 불교탄압에 못이겨 티벳불교의 타라보살이 마리아상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라 한다동정녀마리아상은 후광, 손모양, 무지개 빛 아치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거의 이상적인 타라보살의 조형물이라 한다.

 

이와 같이 지역종교와 습합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하여 전문용어로 혼합주의라 한다. 그래서 필리핀에서만 볼 수 있는 힌두교, 불교, 가톨릭과 토착의 민속종교가 혼합된 ‘혼합주의 종교’인데 이를 ‘사니쿠라스(saniculas, Saint Nicholas)비스킷’이라 한다. 

 

이런 혼합주의는 남미에서도 볼 수 있다. 지역의 여신이 성모마리아로 바뀌어 모시는 것이 대표적이다. 옛 잉카문화권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그것이 동정녀 깐델라리아(Candelaria)’이다. 또 인디오처럼 황갈색얼굴 모습을 한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모상역시 혼합주의 산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혼합주의가 발생한 요인은 기존 종교가 가톨릭의 가혹한 종교탄압으로 인하여 살아 남기 전략으로 채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가톨릭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한국천주교는 교황을 모시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심장부에서 시복식을 거행 하였다. 신앙을 지키다 처형당한 윤지충 등 123명에게 복자로서 대우를 한 것이다. 2백년전에 일어 났던 사건에 대하여 오늘날 복자로 인정하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 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 때 당시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들은 2백년 후 후손들에 의하여 명예회복이 된 것이나 다름 없다. 더구나 성인의 지위에 오르기 바로 이전 단계인 복자가 되었다는 것은 순교의 결실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가톨릭신자들은 세례명을 부르기도 한다. 세례를 받으면 성인들의 이름을 부여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스, 율리아나 등 외국성인의 이름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성인이 되었을까? 놀랍게도 매우 단순하다.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한가지 조건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해야 하고 또 한가지 조건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성인이 될 수 없다.

 

103명의 성인은 어떻게 탄생되었나?

 

그러나 단 한번 예외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일이다. 30년 전 무려 200여명의 성인이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휴심정의 조현 종교전문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고 하였다.

 

 

천주교는 진리를 위해 소중한 목숨마저 내놓고, 내세 천국을 확신하는 순교를 참신앙의 증거로 본다. 또한 신앙의 승리자로 존중한다. 따라서 순교 자체만으로 복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려면 기적심사를 거쳐야 한다. 복자로 지정된 이에게 간구한 신자의 불치병이 나았다는 증거 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03위는 신앙이 없는 땅에서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순교한 자체를 성인의 자격으로 인정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기적심사 면제로 시성이 가능했다.

 

(시복식은 무슨 의미, 조현기자, 휴심정 2014-08-16)

 

 

조현기자에 따르면 성인이 되려면 순교와 기적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순교에 대하여 승리자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교 자체만으로도 복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복자로 인정된 사람들은 가톨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모두 승리자들이라 볼 수 있다. 교황이 광화문 광장에서 승리자라고 치켜 세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순교하면 누구나 후대사람들이 복자라는 칭호를 붙여 준다.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면 성인이 될 수 있다. 세례받으면 세례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광스런 지위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려면 기적증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을 치유하는 능력등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역대 가톨릭성인들은 순교하였고 또 기적을 보여 주었던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한국에서 순교한 성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순교한 성인들은 기적을 보여 주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발적으로받아들여 순교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이런 점을 높이 평가 하여 30년 전에 교황이 방한 하였을 때 무려 103명의 성인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성인으로 인정 받은 사람은 칠백여명이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성인은 무려 103명이나 된더. 이번 123위의 복자 탄생으로 인하여 앞으로 한국가톨릭에서 200명 이상의 성인이 탄생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면 전체성인중에서 한국성인이 차지 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 질 것이다. 이렇게 순교하는 것을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았을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

 

피에 피를 부르는 순교

 

가톨릭에서 복자나 성인이 되는 공통적인 조건은 순교이다. 피의 대가를 후손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피를 흘린 자에게 복자 또는 성인 대우를 해주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숭고한 종교적 열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섬뜩하기도 하다. 복자나 성인의 기준을 순교로 한정해 버리면 피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가톨릭 입장으로 보았을 때 하나는 순교함으로 인하여 흘리는 숭고한 피를 말하고, 또 하나는 반가톨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종교탄압으로 흘리는 피를 말한다. 후자는 서세동점시절 스페인의 식민정책에 따른 가혹한 종교탄압에 따른 흘린 피라 볼 수 있다.

 

승리자와 패배자

 

가톨릭에서 순교함으로 인하여 흘린 피는 성스런 피로 본다. 그래서 후대 승리자들이 조상의 순교에 대하여 복자 또는 성인으로 인정해 준다. 광화문 광장의 시복식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식민지 통치시절 가톨릭의 가혹한 종교탄압으로 인하여 타종교인들이 피를 흘렸다면 이 또한 숭고한 피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필리핀에서 불교도들이 가톨릭의 가혹한 종교정책으로 인하여 수 많은 피를 흘렸다면 이들 모두 복자가 되고 성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필리핀에서 가톨릭의 가혹한 종교정책으로 피를 흘린 자들에 대한 대우는아무것도 없다. 남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 많은 원주민들이 침략자들의 종교에 피를 흘렸지만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것은 패배자이기 때문이다. 반면 승리자들은 후대 사람들이 모두 기념해 준다. 광화문 광장에서 보는 시복식 역시 승리자들의 잔치나 다름 없다.

 

피의 선교와 종교제국주의

 

아무리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순교하였을지라도 후대에 종교가 남아 있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어 잊혀 진다. 그러나 순교를 하여 후대에 크게 번성한다면 승리자가 되어 복자도 되고 성인도 된다. 같은 피를 흘려도 한편은 성인이 되고 또 한편은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 마치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 하듯이, 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본다면 교황이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집전한 시복식은 가톨릭이라는 종교제국주의가 종교가 한국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 하는 승리의 날, 승자의 날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종교제국주의인가? 첫 번째 이유로 피를 부르는 선교정책이다. 이는 순교해야만 복자가 되고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서세동점시절 가톨릭의 가혹한 종교탄압으로 인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면 이또한 피를 부르는 선교정책탓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로 교황청을 들 수 있다. 교황청의 수장은 교황이다. 그런데 다른 종교전통과 달리 가톨릭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종교전통을 가지고 있다. 중세시절 십자군전쟁에서 보듯이 교황권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이교도를 정복하는 정책을 사용하였다. 오늘날에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초국가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국가이든지 가톨릭을 신봉하는 나라라면 교황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번 시복식에서도 천주교의 황제를 뜻하는 교황이 직접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강론 말미에 사랑하는 이 나라에서부터 아시아 전역을 거쳐 마침내 땅끝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기를 빕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땅끝까지 전도하라는 교황의 명령이다. 이런 이유로 종교제국주의로 보는 것이다.  

 

 

 

2014-08-1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