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전법게를 문화재로 등재한다고? 움켜진 주먹을 펴지 않는 스승

담마다사 이병욱 2014. 9. 9. 11:21

 

전법게를 문화재로 등재한다고? 움켜진 주먹을 펴지 않는 스승

 

 

 

하고 치니 하고

 

하고 치니 하고 죽었다는 말이 있다. 민주화운동시절 고문치사사건을 말한다. 이와 같은 은 일반사람들이 모르는 말이다.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만 아는 말로서 마치 암호문처럼 보인다.

 

선종에서도 ”“과 유사한 말이 있다. 선사들끼리 하는 말 중에 ()’()’이라는 있는데, 할과 방이 마치 선사들끼리만 통하는 은어 또는 암호문 처럼 보인다. 어느 선사가 하고 고함 지르자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깨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어느 선사가 하고 방망이()로 때렸을 때 맞은 자가 그 순간 깨달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함소리를 뜻하는 할과 방망이질을 뜻하는 방은 선사들끼리의 고유언어이다. 깨달음을 말이나 문자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누군가 깨달음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보았을 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고함을 지르고 몽둥이질을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량분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깨달음은 언어나 문자로 표현 되는 순간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맛을 보았는데 이를 말이나 문자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 그럴 경우 차라리 !”라고 맛을 표현 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이처럼 선종에서는 진리나 깨달음은 문자나 말로 표현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리나 깨달음 말이나 문자로 표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종지로 삼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다

 

부처님이 한송이 꽃을 들었을 때 부처님의 전법제자 가섭이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이를 염화미소라 한다. 말하지 않고도 마음으로 통함을 말한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사이에 진리가 전승되는 것에 대하여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 한다. 선종에 따르면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이련하반곽시쌍부(泥連河畔槨示雙趺) 이렇게 세 가지가 잘 알려져 있다. 스승과 제자사이에 언설 없이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심전심으로 진리가 전승되어 왔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이심전심의 전통이 후대에 이르러 할과 방이 되었다.

 

 에 따른 이라는 의성어는 일반사람들이 알아 듣기 힘들다. 특별한 사람들의 모여 사는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언어이다. 그것도 매우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이다. 이와 같은 할과 방은 마치 주먹질 하는 것과 유사하다. 시비가 붙었을 때 말로서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야 하나 표현력이 부족할 때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과 같다. 말보다 주먹인 것이다.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다는 말이 있다. 조폭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다. 그래서 말로 하는 것 보다 주먹한방이 훨씬 더 효과적임을 말한다. 이런 조폭세계에서는 주먹이 곧 법이고 정의이고 진리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종에서나 통용되는 할과 방은 다름 아닌 주먹이라 볼 수 있다. 선사들이 내 뱉는 고함소리나 다짜고짜 몽둥이질을 하는 것은 곧 법이고 깨달음이고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매우 상근기의 수행자에게나 해당된다. 눈빛만 보아도 서로 뜻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나 통용 될 뿐 일반사람들에게는 마치 코미디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선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리라는 것은 언설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고, 진리를 언설로 표현한다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가르침에 비밀이 없다

 

초기경전을 접하면서 깨달음이나 진리도 언설로 표현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선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승되는 비밀스런 가르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디가니까야 완전한 열반의 큰경(D16)에 따르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kimpanānanda bhikkhusagho mayi paccāsisati: desito ānanda, mayā dhammo anantara abāhira karitvā 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i.

 

[세존]

“그런데 아난다여,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나는 안팍의 차별을 두지 않고 가르침을 다 설했다.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은 없다.

 

(Mahā Parinibbāna Sutta-완전한 열반의 큰 경, 디가니까야 D16.51, 전재성님역)

 

 

경에서 핵심구절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안팍의 차별을 두지 않고 가르침을 다 설했다라는 말이고 또하나는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은 없다라는 말이다.

 

비밀스런 가르침

 

먼저 안팍의 차별을 두지 않고 가르침을 설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anantara abāhira karitvā : Srp.II.203에 따르면, 나는 사실(:객관)이나 사람(:주관)과 관련해서 양자를 구별하여 나는 이러한 사실을 남에게 가르치지는 않겠다.’라고 생각하고 사실을 내면화한다든가, 나는 이러한 사실을 남게 가르치겠다.’라고 생각하여 사실을 외면화한다든가, 아니면나는 이와 같은 자에게 가르치겠다.’라고 생각하여 사람을 내면화(인정)한다거나 나는 이와 같은 자에게 가르치지 않겠다.’라고 생각하여 사람을 외면화(축출)하여, 스승께서는 이와 같이 구별하지 않고 가르쳤다.’라는 뜻이다. (Srp.II.203)

(디가니까야 D16, 1065번 각주)

 

 

주석의 내용을 보면 마치 스승이 제자를 가려서 전법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스승이 있는데 제자들 모두에게 가르침을 전수 하는 것이 아니라 전수받을 만한 사람을 선정하여 그에게만 비밀스런 가르침을 전수하는 형태와 유사하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밀이 있을 수 없다.

 

스승의 빈주먹

 

경에서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은 없다(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i)라 하였다. 이때 사권(師拳)에 해당되는 말이 ācariyamuṭṭhi이다.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ācariyamuṭṭhi: 한역에서는 사권(師拳)이라 한다. Srp.II.203에 따르면, ‘젊었을 때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최후의 시간에 죽음의 침상 위에 누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제자에게 말하는 외도의 스승들에게는 사권이 있지만, 이와 같이 여래에게는 늙어 최후의 시간에 내가 이것을 말할 것이다.’라고 주먹을 쥐고 비밀로 되어 정해진 어떠한 것도 없다고 그는 보여 준다.’

 

(디가니까야 D16, 1066번 각주)

 

 

 

fist

 

 

스승은 주먹을 쥐고 있다. 그런 모습이 마치 주먹속에 무언가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킬 것이다. 더구나 죽을 때 까지 주먹을 피지 않는다면 비밀스런 가르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외도의 방식이다.

 

스승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제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일 것이다. 무언가 비밀스런 가르침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죽을 때 까지 주먹을 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죽고 나면 주먹을 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주먹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마치 무언가 있을 듯 보이는 스승의 꽉 쥔 주먹은 사실상 빈주먹에 지나지 않는다.

 

전법게를 문화재로 등재한다고?

 

스승의 주먹, 즉 사권이야기를 보면 선사들의 전법이야기가 떠 오른다. 최근 교계뉴스에 따르면 매우 흥미로운 기사가 발표 되었다. 그것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종정스님인 진제선사의 전법게에 대한 것이다. 기사의 일부를 옮기먄 다음과 같다.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가 향곡선사로 부터 받아 보관해오던 전법게 4점과 전법 내력을 쓴 상속문 4점 등 전법게 8점이 부산시 문화재로 등재된다.

 

문화재로 등재될 전법게는 경허가 혜월에게 준 전법게, 혜월이 운봉, 운봉이 향곡, 향곡이 진제스님에게 준전법게와 전법게를 내릴 때 함께주는등등상속’ 4점이다.

 

이 전법게는 향곡스님에 1967년 하안거 해제법문 때  법거량을 통해 인가를 받은 진제스님에게 전법하면서 함께 준 것이다. 이 전법게를 접한 문화재청이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 문화재 등재를 권유해 이뤄졌다. 서류 절차가 끝나고 오는 가을 부산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다.

 

(진제 종정예하 '전법게' 문화재 등재 추진, 불교신문 2014-07-26)

 

 

전법게는 스승에서 제자로 법맥이 전수 되었음을 인증하는 일종의 문서와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진제선사는 마치 박사학위 증서와 같은 것이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이 간화선으로 견성성불했다고? 조사불교의 한계(2013-04-25)’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불자들은 기뻐해야 할까?

 

선사들의 전법게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마치 스승과 제자사이에 비밀스런 법의 전승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마음으로 전승된 법에 대하여 말로서 인가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문서로 작성하여 마치 공문처럼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런 전법게가 문화재로 등재 될 것이라 한다.

 

문화재 등재를 앞두고 있는 진제선사의 전법게에 대하여 불자들은 기뻐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스승과 제자사이에 이루어진 문서화 작업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후대에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인지 부처님은 안팍의 차별을 두지 않고 가르침을 다 설했다라 하였고 또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은 없다(D16)”라 하였다. 이는 비밀스런 가르침을 부정하고 스승의 빈주먹에 대하여 말씀 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선사들은 비밀리에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심전심 법이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부처님의 법맥이 유지 되어 왔다고 말한다.

 

구린내 나는 스승의 주먹

 

비밀스런 가르침이나 스승의 주먹은 외도들에게나 해당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외도들이 무언가 보여 줄 듯 하지만 끝내 보여 주지 않는 것은 빈주먹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스승의 빈주먹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하고 있다.

 

 

빈주먹에 금화나 황금이 있다고 말할 순 있지만 ‘와서 이것을 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슨 이유인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변이나 대변이라면 실제로 있다 하더라도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면서 마음을 흡족케 하기 위해서는 ‘와서 이것을 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풀이나 나뭇잎으로 가려야만할 것이다. 왜 그런가? 더럽기 때문이다.

 

(청정도론 7 82, 대림스님역)

 

 

스승의 꽉 쥔 주먹에는 무언가 있을 것 같다. 한번도 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주먹에 뭐가 들어 있을까? 청정으로 이끄는 가르침은 없다. “보시에는 공덕은 없다든가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다등의 악취나는 가르침일 뿐이다. 다만 꽉 쥐며 펴 보이지 않는 주먹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황금과 같은 재화이다. 그래서 주먹을 끝까지 펴 보이지 않는지 모른다.

 

스승의 주먹에는 청정으로 이끄는 가르침 대신 황금이 잔뜩 들어 있다. 그래서 와서 보라고 절대 초대할 수가 없다. 그런데 금이나 은 등 재화가를 가지고 있을 경우 청정한 삶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스승의 움켜진 주먹에 들어 있는 것은 구린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은 한번 움켜진 주먹을 결코 펴지 않는다.

 

 

 

2014-09-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