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혈

카카오톡(카톡)과 우물가 이야기, 잡담은 왜 수행자에게 무익한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4. 9. 28. 20:09

 

 

카카오톡(카톡)과 우물가 이야기, 잡담은 왜 수행자에게 무익한가?

 

 

 

산행모임이 결성 되었는데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없을 것이다. 수행자에게 묵언정진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예 말문을 닫고 살수 는 없을 것이다. 필요한 말은 해야 하는 것임에도 묵언(默言)이라 하여 필담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이치에 어긋나는 행위라 본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매월 한 차례 열리는 정기산악모임이다. 벌써 3년 째 시행 되고 있는 이 모임에 처음으로 참가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많은 수가 나온 것이 아니다. 고작 4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산악모임으로 인하여 동창모임은 크게 활성화 되었다. 이 산악모임을 중심으로 각종 경조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산악모임에 참가하게 된 것은 최근 가입한 카톡에서 그룹채팅방이 개설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24명이 가입 되어 있는데 모두 그리운 얼굴들이다. 그 중에 일부는 매우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대부분 소위 눈팅만 할 뿐 의견이 없다. 이처럼 온라인에서는 그룹채팅방으로 소통 되고, 오프라인에서는 한달에 한번 정기산악모임을 갖음으로서 소통하고 있다.

 

영종도 백운산으로

 

이번 산행은 영종도 백운산이다.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백운산은 전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등산모임에서 산행장소는 수도권전철이 연결 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대상이 된다.

 

현재 수도권 전철은 광역화 되어 있어서 북쪽으로는 동두천, 동쪽으로는 춘천, 남쪽으로는 천안, 그리고 서쪽으로는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 이른다. 거미줄 처럼 연결 되어 있는 전철을 이용하여 산행장소가 결정되는 것이다.

 

영종도 백운산에 가기 위해서는 운서역에서 내려야 한다. 운서역에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인천국제공항역이다. 그래서일까 전철탑승객 대부분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아시안게임 산악자전거

 

운서역에서 내려서 산행이 시작 되었다. 목적지는 백운산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산이름이다. 그런 백운산은 해발 255미터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다. 마치 트레킹 하듯이 가볍게 운동삼아 올라 가기에 적합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고 한다. 종목은 산악자전거이다.

 

 

 

 

 

 

 

 

등산로에는 경기를 위하여 줄이 쳐져 있다. 또 위험한 곳은 빨간 페인트가 발라져 있고, 혹시 넘어져 다칠까봐 쿠션도 설치 되어 있다. 이곳에서 30일날 경기가 열린다고 한다.

 

 

 

 

 

 

동창들은 왜 부담이 없을까?

 

백운산에 올라 가는 길에 끊임 없이 말을 하였다. 이렇게 말이 통하는 것은 이해 관계가 없는 친구들끼리 만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마치 엇그제 만난 것처럼 부담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로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둔다. 만남이라는 것은 결국 시간을 의미하고, 시간은 돈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만나려 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만남은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해관계에 따른 만남이 그렇다.

 

이렇게 이해관계를 따지다 보면 저 사람을 만났을 때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또는 나에게 손해가 될 것인가 따져 보게 된다. 그래서 이익이 되면 만나고, 손해가 된다면 내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만남에 대하여 이해관계로만 접근 하다 보면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친구가 되기 힘들다. 그러나 동창모임은 이해관계를 떠나 인간관계로 만난다. 그러다보니 만남 자체가 부담이 없는 것이다.

 

오래 된 친구가 부담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공유기간이 길지는 않더라도 같은 때 그 자리에서 고락을 같이 하였다는 것 자체가 우리는 하나다라는 동질감을 갖게 해 주는 것이다.

 

약한 인간들이 엄청난 일을

 

이해관계가 없고 동질감을 느꼈을 때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 끊임 없이 떠들어 댄다. 두서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올라 가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다. 등산한지 불과 한시간 만에 해발 255미터 정상에 오른 것이다.

 

 

 

 

 

 

 

 

정상에서 본 영종도는 매우 장쾌 하다. 그것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움 때문이다. 산위에서 내려다 보는 인천공항과 인천대교를 바라보면 이렇게 약한 인간들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끊임 없이 대화를 하며

 

등산을 시작 하면서 끝 마칠 때 까지 끊임 없이 대화를 한다.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대화이다. 한 사람이 불쑥 이야기를 꺼내면 그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게 되고, 누군가는 동의하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이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중구난방식 대화는 엄밀히 따졌을 때 잡담 또는 가십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쓸데 없는 말을 금하는 불교

 

불교에서는 쓸데 없는 말을 금한다. 이는 팔정도에서 나타난다. 상윳따니까야 분별의 경(Vibhagasutta, S45.8)’에 따르면 올바른 언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Katamā ca bhikkhave, sammāvācā: yā kho bhikkhave, musāvādā veramaī pisunāya vācāya veramaī pharusāya vācāya veramaī samphappalāpā veramaī aya vuccati bhikkhave, sammāvācā.

 

수행승들이여, 올바른 언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1) 거짓말을 하지 않고

2) 이간질을 하지 않고

3) 욕지거리를 하지 않고

4)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으면,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올바른 언어라고 한다.

 

(Vibhagasutta-분별의 경, 상윳따니까야 S45:8, 전재성님역)

 

 

경에서 올바른 언어에 대하여 네 가지로 말하고 있다. 이는 십선업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천수경 십악참회에 따르면 거짓말은 망어, 이간질은 양설, 욕지거리는 악구, 꾸며대는 말은 기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중죄를 짓는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서 참회해야 함을 말한다.

 

새가 재잘대듯이

 

그렇다면 친구들을 만났을 때 두서 없이 이것 저것 잡담하는 것은 어디에 해당될까? 이는 네 번째항의 꾸며대는 말(기어)’이라 볼 수 있다. 꾸며대는 말은 빠알리어로 samphappalāpā의 번역어이다.

 

Samphappalāpā‘talking nonsense’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허튼소리, 난센스, 바보같이말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무의미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초불연 번역에서는 Samphappalāpā에 대하여 잡담이라 번역하였다. 한자어로는 기어(綺語)’라 하는데 이는 교묘하게 잘 꾸며대는 말, 염정적인 문구, 아름답게 꾸민 문장이라는 뜻이다.

 

Samphappalāpā에 대하여 Sampha+palāpā로 분해할 수 있다. 빠알리사전에 따르면

Sampha‘frivolity(경솔, 천박); useless talk(쓸데 없는 말)’의 뜻이고, palāpā‘chaff (of corn)(쓸모 없는 것); prattle(재잘재잘 지껄이다)’의 뜻이다. Samphappalāpā에 대하여 빅쿠보디는 CDB에서 ‘idle chatter(게으른 재잘거림)’라 번역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합성어 Samphappalāpā잡담이라는 뜻이 된다. 그것도 새가 재잘되듯이 끊임 없이 떠들어 대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넷 용어중에 채팅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인가?

 

채팅방에서는 특별한 주제 없이 즉흥적으로 일어난 생각을 문자로 표현한다. 그러다보니 마치 참새가 재잘대듯이 글이 죽 이어진다. 그러나 알맹이가 없다. 자신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 소문, 험담, 뒷말 등 그야말로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한참 떠들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단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말을 하고 문자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개토론장에서 이교도들이

 

부처님은 쓸데 없이 이야기 하는 것을 금하였다. 이는 팔정도에서 ‘samphappalāpā veramaī라 하여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음(전재성님역)” 또는  잡담을 삼가는 것(초불연역)” 또는 “abstinence from idle chatter(한가하게 재잘거리는 것을 절재함)”라는 번역어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잡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디가니까야 뽓따빠다의 경(D9)’에는 잡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그 무렵 유행자 뽓따빠다는 많은 유행자의 무리와 함께 앉아서 시끄럽게 왁자지껄 큰 소리로 떠들면서 여러 가지 잡담, 예를 들어 왕에 대한 이야기, 도적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사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대에 대한 이야기, 꽃다발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수레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부락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도로에 대한 이야기, 목욕장에서의 이야기, 망령에 대한 이야기,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시비비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Poṭṭhapādasutta-뽓따빠다의 경, 디가니까야 D9, 전재성님역)

 

 

왕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시비비 거리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모두 25가지의 잡담이 소개 되어 있다. 경에 따르면 이런 잡담은 부처님 당시 공개토론장에서 이교도들이 말하던 것들이라 한다.

 

저속한 동물적 이야기

 

잡담에 대한 이야기는 상윳따니까야에서도 보인다. ‘여러가지 잡담의 경(S56.10)’에는 뽓따빠다의 경에서 보다 더 많은 종류의 잡담이 실려 있다. 모두 29가지 종류의 잡담이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Mā bhikkhave, anekavihita tiracchānakatha kathetha: seyyathīda: rājakatha corakatha mahāmattakatha senākatha bhayakatha yuddhakatha annakatha pānakatha vatthakatha sayanakatha mālākatha gandhakatha ñātikatha yānakatha gāmakatha nigamakatha nagarakatha janapadakatha itthikatha purisakatha sūrakatha visikhākatha kumbhaṭṭhānakatha pubbapetakatha nānattakatha lokakkhāyika samuddhakkhāyika itibhavābhavakatha iti vā.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여러 가지 잡담, 예를 들어 군주에 대한 이야기, 도적에 대한 이야기, 대신에 대한 이야기, 군사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만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족에 대한 이야기, 승차에 대한 이야기, 취락에 대한 이야기, 부락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성에 대한 이야기, 남성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술에 대한 이야기, 도로에 대한 이야기, 우물가에 대한 이야기, 망령에 대한 이야기, 만담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해양에  대한 이야기, 유무에 대한 이야기에 관하여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Tiracchāna kathāsutta-여러가지 잡담의 경, 상윳따니까야 S56.10,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29가지 잡담을 소개 하였다. 그런데 잡담을 뜻하는 빠알리어가 ‘tiracchānakatha라 되어 있다. Tiracchānakatha를 직역하면 축생의 이야기가 된다. 이 용어에 대한 각주를 보면 축생의 어원이 횡으로, 수평으로 가는 존재를 의미함으로 저속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Lba.V.131)”라고 설명 되어 있다. 천상이나 해탈의 길로 이끌지 않는 동물적 이야기이다(Srp.III.294)”라 설명되어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잡담이라는 것은 매우 저속한 것으로서 동물적 이야기나 다름 없고, 이런 잡담에 치중하는 한 선처에 나거나 해탈을 성취하는데 방해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우물가의 잡담

 

잡담 중에는 정치적인 이야기도 많다. 군주, 대신, 군사 이야기등은 정치이야기 범주로 볼 수 있다. 29가지 잡담 중에 각주로 설명된 것 몇 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물가에 대한 이야기
kumbhaṭṭhānakatha
우물에서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춤추고 노래하기도 하는데, 우물가에서 잡담을 말한다. (Srp.III.295) 일반인인들의 잡담
세상에 대한 이야기
lokakkhāyika
누구에 의해서 이 세상이 창조되었는가. 이러한 자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까마귀가 희다. 그 뼈가 희기 때문이다. 두루미가 붉다. 그 피가 붉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세속철학적인 궤변의 담론이다.’
(Srp.III.295)
세속철학적 담론
유무에 대한 이야기
itibhavābhavakatha
여기서 존재는 영원주의, 비존재는 허무주의를 말한다. 존재는 성장이고 비존재는 포기이다. 존재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향락이고 비존재는 자신에 대한 학대이다.’ (Srp.III.295) 육사외도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현대인들은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 고도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계를 지키지 않는 행위는 부처님당시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잡담도 마찬가지이다.

 

사오십년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은 농촌에서 살았다. 농촌에 살며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대화하는 장소는 우물가이었다. 우물가에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도 마찬가지이었다. 그래서 우물가에서 잡담을 한다고 하였다.

 

카카오톡(카톡)과 우물가 이야기

 

우물가에서의 잡담은 일반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물가잡담이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 채팅방일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카카오톡(카톡)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카톡에서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가는데 대부분 잡담이다. 마치 참새가 재잘대듯이 자신과 주변이야기들이 화제가 된다.

 

주석에 따르면 누구에 의해서 이 세상이 창조되었는가라는 담론도 잡담으로 보았다. 이를 세속철학적인 궤변의 담론이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 창조론에 기반한 것은 사실상 잡담에 지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존재와 비존재를 주제로 하여 말하는 것 역시 잡담의 범주로 보았다. 육사외도의 허무주의와 바라문교의 영원주의가 이에 해당된다.

 

우물가에서 일반인들의 이야기나 세속적 철학의 담론은 모두 잡담에 속한다. 이와 같은 잡담을 포함하여 모두 29개에 달하는 잡담에 대하여 부처님은 금하였다.

 

왜 잡담을 하지 말라고 하였을까?

 

부처님은 왜 잡담을 하지 말라고 하였을까? 이어지는 부처님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다.

 

 

Ta kissa hetu: nesā bhikkhave, kathā atthasahitā. Nādibrahmacariyakā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vattati.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러한 논의는 이치에 맞지 않고, 청정한 삶을 시작하는데 맞지 않고, 싫어하여 떠남에 도움이 되지 않고, 사라짐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적멸에 도움이 되지 않고, 곧바른 앎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열반에 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Tiracchāna kathāsutta-여러가지 잡담의 경, 상윳따니까야 S56.10, 전재성님역)

 

 

잡담이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모두 8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잡담하는 것은 청정한 삶을 실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열반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한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Kathentā ca kho tumhe bhikkhave, "ida dukkhanti" katheyyātha. "Aya dukkhasamudayoti" katheyyātha, "aya dukkhanirodhoti" katheyyātha, "aya dukkhanirodhagāminī paipadāti" katheyyātha, ta kissa hetu: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논의할 때에

1)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논의하고

2)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논의하고

3)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논의하고

4)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논의해야 한다.”

 

(Tiracchāna kathāsutta-여러가지 잡담의 경, 상윳따니까야 S56.10,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잡담하는 것 대신에 사성제를 논의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지금 자신에 당면해 있는 괴로움을 먼저 해결하라는 것이다. 지금 독화살을 맞은 상태에서 누구에 의해서 이 세상이 창조되었는가?”등과 같은 세속적 철학의 담론 등과 같은 이야기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한다. 또 우물가에서 세상돌아 가는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는 것 보다 지금 처한 괴로움의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부처님의 명령이라 볼 수 있다.

 

암묵적으로 금하는 이야기는?

 

오랜 만에 모인 동창들과 등산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는 다름아닌 끊임 없는 대화이다. 만나서 헤어질 때 까지 쉼 없는 말을 한 것이다.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하지만 주제는 없다. 자신과 주변이야기, 세상 돌아 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금하는 것도 있다. 그것은 종교이야기, 정치이야기, 지역이야기로 대표 된다. 특히 정치이야기는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보수인지 진보인지 금방 드러난다. 이럴 때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이야기를 하다 보면 분위기가 어색해 질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발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월호사건과 관련하여 카톡방에서 부정적 견해가 담긴 내용이 대량유포 된 것도 정치적 견해가 달라서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카톡방이나 오프라인 모임에서 대화할 때 가급적 정치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니 대화내용이 시시껄렁한 자신과 주변이야기 등의 이야기 위주로 되기 쉽다. 그래서일까 채팅방을 보면 마치 참새들이 재잘대는 것처럼 속어와 축약된 말을 이용하여 의미 없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하루 종일 대화를 하지만 큰 의미 없이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뿐이다.

 

수행자에게 무익한 잡담

 

카톡방이나 오프라인 모임에서의 대화를 하지만 이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잡담은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팔정도에서 ‘samphappalāpā veramaī’라 하여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음또는  잡담을 삼가는 것또는 “abstinence from idle chatter(한가하게 재잘거리는 것을 절제함)”라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잡담하는 것은 수행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카톡방을 기웃거리고 오프라인 모임을 기대하는 것은 무언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스트레스 해소와 동질감에 대한 기대일지라도 수행자에게 있어서 무익한 것이라는 것만 알아도 큰 수확이라 본다.

 

 

 

2014-09-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