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기선수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동창 번개모임을 가졌는데
공휴일날 아침에
차분하고 평온한 아침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하늘은 높고 공기는 상큼하다. 평일과 달리 공휴일날 아침은 더욱 더 차분하고 평온하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다. 아침인가 싶으면 저녁이고, 월요일인가 싶으면 금요일이고, 봄인가 싶은데 가을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세월은 무지막지하게 흘러간다. 부자나 가난한 자, 귀한 자나 천한 자를 구별 없이 세월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흘러 가는 것 같다.
번개모임을 가졌는데
오랜 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같은 해에 입학하여 함께 배운 친구들이다. 매달 한 번씩 정기적인 산행이 있고, 연말에는 송년회가 있어서 매년 보는 얼굴들이지만 이번 모임은 ‘번개’이었다. 이런 번개 모임은 문자로 공지 된다. 그러나 요즘은 카톡이 대세이다. 카톡밴드에 공지를 하여 알리는 것이다.
번개모임은 동창 중에 한명이 제안하였다. 자신의 가족경사에 참가 해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초대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 다 참가 하지는 않았다. 카톡밴드 이십여명 중에 반이 채 안되었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서 선약 등에 따른 것이다. 번개는 경조사와 달리 참여 의무가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통크게 한턱 낸 친구
모인 곳은 부페식당이었다. 이렇게 부페에서 모임을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까지 고기집에서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정도이었으나 이렇게 고급식당 부페를 이용하게 된 것은 이날 초대자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비용일체를 부담하겠다고 하여 이에 따른 것이다.
초대자는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통크게 한턱 낸 것이다. 그 덕에 친구들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런 자리를 마련 해 준 친구에게 감사 드린다.
때로 허세 부리기도
친구들 모임에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평등한 관계라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평등한 관계이다. 같은 연령대 또는 같은 또래의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또 학창시절 추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모임에서든지 상하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성공한 자나 실패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 모임 앞에서는 철저하게 평등하다. 그래서 없어도 있는 것처럼 때로 허세 부리기도 하는 것이 동창모임의 특징이다.
동창모임에서 보이지 않는 친구들
동창모임에서 보이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특히 잘 나오다 자취를 감춘 경우 매우 걱정을 한다. 아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본다. 반면 너무 바빠서 못 나오는 경우도 있다. 대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졸업이래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종종 근황이 들려 오긴 하지만 얼굴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그 동안 세 번 강산이 변했으니 얼굴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까지 한 번도 참가 하지 않은 이들의 얼굴은 변함이 없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학창시절 그 얼굴이 떠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나오지 않는 친구는 학창시절 그 이미지에 항상 머물러 있다.
자주 보면 익숙해져
못 생긴 사람도 자주 보면 예쁜 구석이 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얼굴이 익숙해진다는 말이다. 자주 보면 볼수록 익숙해져서 정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생긴 사람도 자주 보면 장점이 드러난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자주 보고 자주 만나면 익숙해져 거리낄 것이 없다. 달리 말하면 ‘정’이 든 것이다.
고은 정이든 미운 정이든 정이 들면 떼기 힘들다. 강산이 세 번 변할 동안 만남을 유지해 온 경우 그 변화의 과정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언제 보아도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간격이 너무 컷을 때 이미지 매칭이 잘 되지 않는다.
모임에 자주 얼굴을 보인 친구들의 얼굴은 익숙하다.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 보았기 때문에 학창시절의 이미지는 먼 옛날 일이다. 세월의 변화와 함께 변해 가는 모습을 죽 지켜 보아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그럼에도 수 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모습에 많은 변화가 보인다.
구 분 | 내 용 | 슬로건 | 실패요인 |
자애의 삶 (Metta) |
어머니가 외동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어떤 차별도 없이 중생을 사랑하는 보편적이며 무한한 사랑을 실천한다. |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Sn 1.8) | 애정 |
연민의 삶 (karuṇa) |
근심과 번뇌로 괴로워하는 모든 중생에 대한 연민의 태도를 갖는다. | 한때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 (S15.11) | 근심 |
기쁨의 삶 (mudita) |
다른 사람의 성공, 복지, 행복을 축하하고 그것에 공감한다. | 들뜸 | |
평정의 삶 (upekkha) |
인생의 모든 파란과 곡절에서 침착과 평정을 유지한다. | 업이 바로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다 .(A10.48) | 무관심 |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가장 먼저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한부류는 머리가 벗어지는 것이고, 또 한부류는 머리가 하얗게 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또래라 하더라도 머리가 벗겨진 경우가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더 가속화 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유전적 요인에 따른 것이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머리가 허옇게 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염색을 한다. 염색을 하고 나면 나이가 보통 다섯 살 정도는 젊게 보인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 염색 하였다고 보면 틀림 없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체에 변화가 생겨 나이 차이가 나 보인다. 마찬가지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생의 부침도 일어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도 나오고 실패한 사람도 나오게 마련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는 일 마다 되는 일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있다. 그것은 경제적 성공이다. 장사나 사업을 하여 크게 돈을 벌었을 때 이를 성공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나머지는 모두 ‘실패자’가 된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 성공은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돈벌기선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내던져지면 누구나 돈벌기선수가 되어야 한다. 잘난 자나 못난 자나, 많이 배웠거나 적게 배웠거나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돈벌기선수가 될 수 없다. 누군가는 돈버는 재주가 있지만 또 누군가는 돈버는 기술이 없다. 예를 들어 예술을 하는 이에게 돈벌기선수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과 학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해당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다. 이렇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성공했다”라고 말해 준다.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 하였을 때
그런데 “성공”이라는 말은 사실상 모든 분야에 적용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두수선공이 작은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것도 그 분야에서는 일가견을 이룬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구두수선공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 주변에는 수 많은 성공적인 삶을 볼 수 있다.
요즘 EBS에서 즐겨 보는 프로가 있다. 그것은 ‘극한직업’이다. 소위 더럽고, 힘들고, 어렵다는 3D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느 석공은 자신이 다듬은 대리석에 대하여 자부심이 매우 강하였다. 먼지를 뒤집어 쓰며 작업한 대리석이 건물 외벽에 장착 되었을 때 석공으로서 긍지를 느낀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허름해 보이는 석공일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 하였을 때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 한다면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
이번 모임에 초대해 준 친구는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럴 때는 기뻐해 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이는 불교적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불교에서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이 있다. 네 가지 한량 없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자애, 연민, 기뻐함, 평정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한다.
자애의 마음은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자애(사랑)’로 대하라는 것이다. 이는 “모든 중생이 진실로 행복하기를!”라고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으로 “한때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연민의 마음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아마 대부분 동정심이 들 것이다. 만일 지하도에서 걸인을 보았다면 동전이라도 하나 던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마음은 “한때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관조하는 것이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의 과정에서 나도 언젠가 저런 불행을 겪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이면서 행복한 사람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까? 시기하고 질투하며 “불법이나 탈법, 불로소득으로 이룩했겠지”라고 생각해야 할까? 이는 열등감이다. 그런데 열등감은 우월감과 동등감과 함께 자만이라 하였다. 열등한 마음도 자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조해야 할까? 그것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았을 때와 똑같이 “한때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관조 하는 것이다. 기나긴 윤회과정에 있어서 나도 어느 생에선가 재벌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뻐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의 성공과 번영에 대하여 축하해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정이 있다. 이는 인생을 살아 가는 과정에서 겪는 곡절에 대하여 침착과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무량심을 표로 요약하면
이와 같은 사무량심에 대하여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무량심(四無量心)
기쁨의 삶
표를 보면 기쁨의 삶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성공, 복지, 행복을 축하하고 그것에 공감한다.”라고 표현 된다. 그러나 실패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떠들썩할 때이다. 상대방의 성공에 대하여 기뻐한다고 하여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댈 때 ‘들뜸’현상이 일어나 실패 하게 된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네 번째 항을 보면 평정의 삶이 있다. 언제 어느 순간에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순탄치 않은 인생에서 항상 침착과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관조 해야 할까?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게 된다.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재수 없게 당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한껏 고무된 경우도 있고 몹시 위축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마다 마음이 휘쓸리면 어떻게 될까? 아마 평정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여덟 가지 원리가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팔풍(八風)’이라고도 한다. 여덟 가지 바람을 말한다. 마치 팔랑개비가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꾸듯이 마음 또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 될 수 있다.
이득과 불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
두 가지가 쌍으로 된 여덟 가지이다. 이 여덟 가지는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겪는 것이다.
저 높은 바위산 처럼
돈이 많이 생겼다거나 명예를 얻었다거나 칭찬을 받았다거나 행복을 느꼈을 때 사람들은 한껏 고양된다. 그러나 세상사가 반드시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득이 있으면 불익이 있고, 명예가 있으면 불명예가 따르고, 칭찬이 있으면 비난도 있다.
또 지금 행복하다고 하여 그 행복이 천년 만년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이 다하면 불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세상사에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의 평정을 가져 올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저 높은 바위산 처럼’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돈벌기선수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모두 돈벌기선수를 강요하는 세상이다. 돈벌기에 특출난 재주를 가진 자에게는 세상이 스므스할지 모른다. 그러나 돈버는데 서툰 자의 삶은 고단하다. 그렇다고 하여 돈벌기선수의 삶이 성공적이라 볼 수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 한다면 돈벌기선수가 되지 않아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 간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실망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늘 되새기는 시가 있는데
돈벌기를 강요하는 시대에 늘 되새기는 시가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버려졌고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상태를
그때 그때 잘 관찰하라.
정복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그것을 알고 수행하라.” (M131)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하지 않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 나가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
지나간 일을 슬퍼하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시든다네.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S1.10)
2014-10-0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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