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인데”동기동창 송년모임에서
황혼고독에 따른 고독사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살아 간다. 가장 기초단위라 볼 수 있는 가족관계에서 부터 사회관계에 이르기까지 관계속에서 살아 간다. 만일 관계가 끊어지면 어떻게 될까? 가족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사회와의 관계가 끊어 졌을 때 마치 외딴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모든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이 있다. 종종 매스컴에 발표 되는 ‘고독사’가 그것이다. 고독사는 ‘무연고사망’을 뜻한다. 아무도 장례를 치루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죽음과 함께 장례절차 없이 화장되어 무연고 묘역에 묻힌다. 그런데 고독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한다. 그리고 OECD국가에서 상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고독사와 함께 거론 되는 것이 노인자살이다. 만 65세 이상의 노인자살율이 OECD국가 중에서 최고라 한다. 그런데 노인자살율은 ‘황혼고독’에 따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상 고독사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황혼고독에 따른 고독사는 OECD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 한다.
고독사하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많이 맺어 놓아야 할 것이다. 단지 회사처럼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라 터 놓고 지낼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동창회, 종교모임, NGO모임 등이 해당 될 것이다. 이해관계를 떠난 모임을 말한다.
동창회라면 같은 시절의 한때를 공유하였던 순수한 우정의 모임이 될 것이다. 종교모임이라면 소속된 종교의 교우들과 종교적 목적을 추구하는 모임이 될 것이다. NGO모임이라면 자선단체나 봉사단체에 들어가 남을 위해 돕고 나누고 베푸는 모임이 될 것이다.
이해관계를 떠난 순수한 목적을 추구하는 모임을 많이 가졌을 때 그 사람의 생은 풍요로워 질 것이다. 그리고 노년에 황혼고독에 따른 고독한 죽음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모임을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다. 고작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모임 중에 동창회모임이 있다. 한때 같이 배웠던 같은 또래의 모임이다. 졸업한지 오래 되었지만 짧은 시간 함께 하였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강산이 세 번 변한 현재까지 모임이 이어져 오고 있다.
동창회라 하여 거창한 모임은 아니다. 연말 송년회 할 때 기껏 십 여명 모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학과 같은 학번 친구들이다. 그나마 10여명 모이는 것도 연말모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평소에 10여명이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연말에 동기들이 모였다. 늘 그렇듯이 송년모임이다. 예년과 같이 12명이 모였다. 대체로 많이 모인 편이다. 몇 해 전에는 모임이 유명무실하여 모이는지 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관심이 적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참여도가 점차 높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모임에 참여 하는 친구들을 보면 매번 그 얼굴이다.
그 많던 학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함께 배웠던 그 많은 학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송년회라는 말을 하기에도 민망한 수치이다. 일부 알음알이로 근황을 물어 보니 모두 다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 뿐이다.
참석하기 힘든 분명한 이유도 있다. 저 먼 타국에서 사는 사람, 천리 밖에 사는 사람 역시 참석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카톡으로 소통하고 있다. 미국이나 땅끝에 있는 친구나 인도로 비즈니스 출장 간 친구나 모두 카톡으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카톡이 대세라 하지만
요즘에는 카톡이 대세인 것 같다. 시대에 따라 통신수단이 발전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카톡만큼 강력한 수단을 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통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터넷이 잘 발달되지 않은 외국에서도 카톡만큼은 잘 소통이 된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글과 사진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카톡이 대세이다 보니 ‘인터넷카페’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때 ‘카페’만들기 붐이 있었다. 학교 동창모임 카페를 말한다. 같은 학과의 동기카페도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이후 새로운 글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고 글도 올리지 않는 것이다. 지난 2008년에 카페가 개설 되어 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상태나 다름 없다. 그 대신 카톡방이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연말 송년모임도 카톡으로 소통하였다. 카톡에 공지를 하고 카톡에 약속장소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전화로 직접 알려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문자로 소통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아직까지 카톡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폴더형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카톡이 되지 않는다. 설령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카톡 하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개인적인 취향이 다르다 보니 오로지 카톡에 의존하여 전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럴 경우 직접적인 전달이 필요할 것이다.
베이붐시대의 피크에 태어나
오랜만에 같은 학과 학우들이 모였다. 대부분 매년 보는 얼굴들이다. 아직까지 졸업이래 한번도 보지 못한 얼굴들도 많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연락이 오랫동안 되지 않으면 생사여부까지 생각하게 된다.
아직까지 한번도 모임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만난다면 얼굴이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야 매년 보기 때문에 늙어 가는 모습을 알 수 있지만 갑자기 볼 경우 수십년의 세월 때문에 드라마틱하게 변한 얼굴 모습일 것이다.
세월이 참으로 빨리 흘러 가는 것 같다. 대부분 염색을 하여 검게 보이지만 청년시절의 칠흑같이 검은 머리는 반백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퇴장하는 세대가 되었다.
베이붐시대의 피크에 태어난 사람들이 수 많은 경쟁을 하여 여기 까지 왔다. 하지만 세월은 우리를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무심하게 무지막지 하게 세월이 흘러 갔다. 마치 세월의 수레에 치이고 깔리듯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마치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하듯이 술잔을 높이 들었다.
끼리끼리 모이는 이유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끼리 모이고, 악한 사람은 악한 사람끼리 모인다. 착한사람과 악한사람이 함께 친구가 되기는 힘들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어울리는 것이다.
어느 동창모임이나 어느 종교모임이나 어느 봉사모임이나 할 것 없이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인다. 따라서 저열한 경향을 가진 자들은 저열한 경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맺고, 탁월한 경향을 가진 자들은 탁월한 경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런 경향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동창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의 성향을 보면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아마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럴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직업으로 삼았던 것도 비슷하다. 물론 같은 학과를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가면 갈수록 분화 되는 것 같다. 지금은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드믈다. 각자 삶을 유지 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비록 짧지만 학창시절에 함께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사이에서는
동기들 모임이라 하여 모두 다 친한 것은 아니다. 일부 학우의 경우 학교 다닐 때 거의 대화가 없었던 경우도 있다. 단지 안면만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 카톡과 같은 통신수단이 생겨서 소통하다 보면 직접 대화하는 것 못지 않다. 그래서 과거에 안면만 있고 대화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이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짧은 인연이지만 왜 학교친구는 오래갈까?
흔히 사회친구는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건질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자리를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항상 ‘갑’의 위치에 있었다. 개발한 제품에 들어 가는 부품을 ‘승인’해 주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업하는 사람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자의이든 타의이든 조직을 나오게 되었다. 더 이상 갑의 위치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부로 전화한통 오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사회에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동료나 동업자 등은 친구가 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학교친구는 다르다.
안면만 있는 친구가 있다. 그것은 짧은 학창시절 때문이다. 1학년 때는 계열이었기 때문에 소속학과가 없었지만 2학년 올라 갈 때는 소속과에서 배웠다. 그러나 2학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80년 5월 서울의 봄 당시 비상계엄령으로 인하여 장기간 학교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해 9월이 되어서야 간신히 개학이 되었다. 더구나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같은 또래의 학우들이 함께 배운 기간은 고작 1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휴교로 인하여 더욱 더 짧아 졌다. 그럼에도 짧은 1년간 함께 하였던 학우들이 오늘날까지 모임에 참여 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이해나 손익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친구는 오래 가고 평생가는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베이비붐세대의 피크에 태어난 동기들은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 중에는 정년을 몇 달 앞둔 친구가 있다. 그런데 공무원이 아닌 사기업에서 정년까지 갔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대부분 정년이 되기 훨씬 이전에 그만 두기 때문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 두다 보니 ‘사오정’이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동기들 대부분 넉넉한 것 같지는 않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그 중에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사업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가시밭길을 간다는 것을 모두 다 안다. 그럼에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아마도 ‘열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 하는 말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말일 것이다.
노래방에 자주 가지 않는다. 그러나 송년회 등으로 노래방에 갈 일이 있다. 그 때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이 잘 부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즘 왜 이 노래가 유행하는 것일까?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검색해 보니 최근 포털사이트에서 성인가요 상위에 랭크 되어 있다고 한다. 오승근이 2001년 ‘있을 때 잘해’를 부른 후 12년 만에 히트한 곡이다. 노래를 들어 보니 공감가는 내용이 많다.
가사 중에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구절이 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였다. 달리 말하면 사랑에는 나이가 있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사랑은 젊은 청춘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이 든 자라도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2의 인생을 살아 갈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누구나 지금 내 나이가 사랑하기에 딱 좋은 나이 일 것이다.
노래 가사를 패러디 해 볼 수 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내 나이가 어때서 사업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바꿀 수 있다. 지금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험난한 길이 될지 모르지만 사업에는 나이 제한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사랑을 할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사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 든 사람에게 가장 듣기 좋은 말이 있다. 그것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실제로 해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말이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지금 당장 실천하라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이고 또 하나는 긍정적인 의미이다. 먼저 부정적인 예를 보면 황혼부부싸움을 볼 수 있다.
요즘 EBS에서는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가 방영되고 있다. 주로 부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에 대하여 다룬다. 특히 부부간의 갈등에 대한 것을 보면 살만큼 산 부부가 치열하게 다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부부간의 갈등은 결혼생활이 오래 되었다고 해서,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줄어 드는 것 같지는 않다. 자신과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나이 들어서까지 ‘치열하게’ 다투는 것을 보면 절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록 나이가 들어 여든 살이나 아흔 살이나 백 세가 되었더라도 하는 행위가 어린아이와 같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달라졌어요’프로를 보면 컨설턴트가 ‘젊다’는 사실이다. 피터지게 싸우는 나이든 부부를 앞에 두고 조언을 하는 컨설턴트를 보면 상대적으로 젊다. 마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충고하는 것처럼 비추어지진다. 이 때 젊은 컨설턴트를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나이가 얼마 되지 않지만 세상의 이치를 알아 가르쳐 주는 것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밤새도록 재잘재잘 할 것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눈다. 자리만 제공된다면 밤새도록 재잘재잘 할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곧바로 집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가는 해가 아쉬어서일까 “이대로 못 가”하는 것 같다. 늘 그렇듯이 호프집으로 향한다. 호프집에서는 음식점과 달리 약간은 차분한 분위기이다. 그리고 밀착 되어 있기 때문에 화기애애하다. 이럴 때 기념사진을 하나 남겨 본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인데”
호프집을 나와서 다시 한번 포즈를 잡았다. 파이팅을 하자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구호는 없다. 다만 가는 해를 아쉬워 하며 오는 해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구호를 정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인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
2014-12-2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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