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그윽한 향기 품고 이제 새출발이네, 해남기행(3) 친구의 서혼식
달마산 산행을 마친 일행은 목포로 향해 달렸다. RV차량에 5명이 승차하였으므로 자리는 비좁았다. 더구나 등산으로 인한 땀으로 범벅이 되어 한시바삐 목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근에 목욕탕은 보이지 않았다. 서혼식이 열리는 목포신안비치호텔로 가서 사우나 하는 것이 상책이다.
달마산 도솔암 주차장에서 목포까지는 한시간 이상 걸렸다. 전형적인 남도의 도로를 달리는 중에 창밖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유럽의 평원에 와 있는 듯 구릉에는 녹색 일색이다. 자세히 보니 보리가 심어져 있다. 이곳 저곳이 보리밭이어서 목가적 분위기이다. 아마 5월말이나 6월초가 되면 보리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붉은 황토
이동중에 관심 있게 본 것 중의 하나가 ‘붉은 황토’이다. 이곳 남도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토양이다. 시뻘겋다고 표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붉은 황토를 볼 때마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김지하의 시집 ‘황토(黃土)’이다.
중학교다닐 때의 일이다. 사촌형이 서울의 명문 S대에 입학하여 함께 살게 되었다. 지방에서 명문중학교와 명문고등학교를 다닌 형은 역시 우리나라 최고명문대에 다녔다. 지방 명문중학교를 수석입학하여 지방신문에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때 당시 큰어머니인터뷰기사도 작게 실렸다고 하였다.
형과 한방을 사용하였다. 약 일년간 함께 보냈다. 그 때 당시 중학교 일학년 때 이었다. 그런데 문리대에 다니던 형이 늘 보는 책이 있었다. 그것은 ‘사상계’이었다. 그때 당시 대학생이 많이 보던 책이었다. 이런 책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또 형이 종종 가져 오던 ‘대학신문’을 보았다. 4.19특집에 대한 기사를 보았는데 교수와 학생들의 수준 높은 글을 접할 수 있었다.
형은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그것은 ‘황토’라는 시집이다. 왜 이 시집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까? 그것은 시집의 표지에 한자로 ‘黃土(황토)’라 적혀 있었고, 흑백처리된 인물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인물은 반은 밝게 반은 어둡게 처리 되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젊었을 때 시인‘김지하’의 얼굴이었다.
시집 황토를 읽어 보았다. 의미도 모르고 읽은 것이다. 그러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붉은 황토라는 말이 강하게 기억이 남는다. 김지하의 시집 황토를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보았다. 여러 시가 실려 있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시가 ‘황톳길’이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김지하)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니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숲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 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든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 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황토, 한얼문고, 1970)
이 시를 중학교 일학년 때 읽었다. 다시 읽어 보니 기억이 난다. 특히 첫 구절에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라는 말이 또렷이 기억에 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붉은 황토와 피를 매칭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후에 황토를 볼 때 마다 ‘핏자국’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목포로 이동하는 내내 붉은 황토의 연속이다. 남도 특유의 황토에는 농작물이 잘 자란다. 그래서 황토가 풍요의 상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붉은황토와 핏빛을 매칭하는 시를 접한 이후 황토를 바라 볼 때 마다 김지하의 시집 황토를 떠 올리게 되었다.
목포대교
이동 중에 비가 거세게 내렸다. 출발할 때는 잔뜩 흐린 정도이었으나 목포로 다가갈 수록 점점 빗줄기가 거세어서 앞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다행스런 것은 산행 중에 비를 만나지 않은 것이었다. 산행이 다 끝나고 이동 중에 비를 만났으니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해갈 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비가 많이 오지 않아 가뭄에 시달렸으나 이렇게 시원하게 쏟아 부으니 오히려 후련하게 느껴졌다.
저 멀리 목포대교가 보인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일 것이다. 그런데 다리가 매우 길다. 드넓은 바다를 가로 질로 다리가 건설 되었다는 것이 경이롭다.
대체 길이는 얼마나 될까? 총길이가 무려 4Km에 달한다. 사장교형식으로 2012년에 완공되었다.
함께 목욕을 하고
목적지 신안비치호텔에 도착하였다. 앞으로는 목포대교가 있는 바다가 바라보이고 뒤로는 목포의 상징 유달산이 있다. 진입 하는 도로에는 벗꽃이 만발하여 벗꽃길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거세게 내리는 비로 인하여 밖으로 나가서 볼 수 없다.
호텔에 예정시간 보다 빠르게 도착하였다. 행사는 5시에 열린다. 약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여유가 있다. 이럴 때 뒤에 있는 유달산이라도 오르면 좋으련만 거세게 내리는 비 때문에 어찌 할 수 없다. 일행은 산행으로 인하여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깨끗하게 씻고자 호텔사우나로 갔다.
다섯 명이서 한방에 잔 것도 졸업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함께 목욕까지 하다니 이런 일은 전에 없었다. 사우나를 하고 나니 한결 상쾌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등산복 차림이다. 이렇게 등산복 차림으로 8층 행사장으로 향하였다.
서혼식
8층 행사장에서는 파티가 준비 되어 있다. 결혼식이라 하지만 젊은 남녀가 식을 올리는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축의금을 받는 곳이 하나 밖에 없다. 신랑측과 신부측 구분이 없이 모두 한꺼번에 받는 것이다.
식장에는 부페음식이 준비 되어 있다. 결혼식장에서는 볼 수 없고 피로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친구들과 가족들을 모아 놓고 혼인을 선언하는 자리라 볼 수 있다.
이런 결혼식을 무어라 해야 할까? 사회자는 ‘서혼식’이라 하였다. 혼인을 서약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례가 보이지 않는다. 주례 없이 사회자의 사회에 따라 자율적으로 식이 거행된다.
신랑신부가 입장하였다. 한복을 입은 신랑신부가 함께 손을 잡고 무대로 입장하였다. 씩씩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입장하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 결정하여 치루는 주체적인 결혼식임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재혼한 결혼식을 본적이 없다. 재혼은 성대하게 치루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족들만 참석하여 조용히 치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번 서혼식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초청 되었다. 거의 대부분 친구들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초청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것은 두 사람의 결합에 대하여 만천하에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라 본다. 만일 이런 행사 없이 둘이서만 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쉽게 헤어질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동거하는 사람들은 잘 헤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서혼식을 하였을 때 다시는 물리지 못할 것이다. 결혼식을 공개적으로 치루는 이유중의 하나라고 본다.
청춘은 우리를 버리고
친구의 서혼식장에는 친구의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 그리고 사회 친구들이 초청되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친구들이다.
친구의 초등학교 친구들을 보았다.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서로 반가워서 어쩔줄 모른다. 대부분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어떤 사람은 나이보다 매우 늙어 보이고, 또 어떤 사람은 젊어 보인다. 그런 친구의 친구들 역시 같은 또래라는 것이다.
친구의 초등학교 친구를 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까지 마음만은 항상 젋다고생각하고 있었지만 같은 또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를 먹었음을 실감하였다. 타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알았다.
흘러 가는 세월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세월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또 중년에서 노년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세월은 스쳐가고 밤낮은 지나가니
청춘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
죽음의 두려움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행복을 가져오는 공덕을 쌓아야 하리.”(S1.4)
시간은 흘러가는 것일까? 시간은 사라지는 것일까? 그런데 시를 보면 세월은 ‘스쳐간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세월은 우리를 버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청춘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라 하였다. 세월에 떠 밀려 청춘이 가는 것이 아니라 청춘이 우리를 보내 버린 것이다. 아니 청춘이 우리를 버린 것이다.
청춘이 우리를 버렸다. 그래서 중년이 되었다. 그런데 중년도 우리를 버린다. 그리고 노년이 기다리고 있다. 청춘은 항상 이삼십대이다. 누구나 이삼십대를 거쳐 간다. 청춘의 입장에서 본다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세월은 스쳐가고”라 하였고 “청춘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라 하였다.
서혼식의 하이라이트
친구는 재혼하였다. 친구의 전처는 몇 년 전에 투병하다 사망하였다. 거의 십년 가까이 병석에 있었다고 하였다. 그 오랜 세월동안 병수발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런 친구는 전처의 사망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인 해남으로 귀촌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현재 서혼식의 주인공인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고 한다. 동갑내기로서 고향친구인 것이다.
친구의 새로운 배우자는 오래 전부터 혼자의 몸이었다고 한다. 혼자의 몸으로 자식을 다 키웠고 결혼까지 시켜 손자까지 보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친구는 이번 결혼으로 인하여 새로운 가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손자까지 보게 되었다.
친구의 배우자는 동갑내기 고향친구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고향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대거 초청되었다. 그리고 참석한 모든 친구들을 대상으로 혼인을 선언하였다.
친구부부는 준비한 원고를 함께 읽어 나갔다. 신랑이 “슬픈 일이 생길 때”라고 읽으면 신부는 “항상 옆에 있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신부가 “이해를 청하기 보다는”이라 말하면 신랑은 “먼저 이해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십여가지 되는 항목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읽어 나갔다. 이것이 서혼식의 하이라이트이다.
신랑신부가 서혼선언문을 낭송할 때 참석한 사람들은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많은 사람들, 즉 증인을 앞에 놓고 선서하는 것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어서 축가가 있었다. 그런데 일반결혼식장과는 다르다. 보통 초청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날 서혼식에는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함께 불렀다. 합창한 곡명은 노사연이 1989년에 불러 히트한 ‘만남’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 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노래가사에서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였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연을 맺게 된 것은 결국 필연이다. 그것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노래가사처럼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 이었기에”에 다시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인생의 그윽한 향기 품고 이제 새출발이네
친구의 서혼식을 보고서 시를 하나 지었다. 초등학교 동갑내기로서 이제 인생후반적을 함께 하는 친구의 인생이모작을 위한 축시이다.
친구와 같은 아내
어느 날 왕이 왕비에게 물었네.
"왕비여, 당신은 누구를 가장 사랑하오."
왕은 자신을 가장 사랑할 것이라
말하기를 기대하며 물어 본 말이네.
그러나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갔네.
왕비는 이렇게 말했네.
"대왕이시여, 자신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현명한 왕은 이렇게 추인했네.
"왕비여, 나도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사람이 없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하지 않는다네.
자신을 친구로 여기기 때문이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서슴없이 한다네.
자신을 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네.
이 세상에 가장 사랑스런
사람은 자기자신이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사람이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네.
남을 친구처럼 여기기 때문이네.
이 세상에는 일곱종류의 아내가 있네.
살인자와 같은 아내,
도둑 같은 아내,
사나운 여주인 같은 아내,
어머니와 같은 아내,
누이 같은 아내,
친구 같은 아내,
하녀 같은 아내가 있네.
이 중에 제일은 친구와 같은 아내라네.
헤어졌던 친구들이
서로 환영하듯이
남편 앞에서
항상 즐거운 모습이며
훌륭한 태생의 계행을 지키고
헌신적인 아내
이런 아내가 친구 같은 아내라네.
친구와 같은 아내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네.
자신을 사랑하기에 남도 사랑할 수 있네.
친구와 같은 아내는
인생이모작의 동반자이네.
인생의 그윽한 향기 품고
이제 새출발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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