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음주계로 대략난감한 불자들, 불교포살달력이 필요해
전류리포구
등산을 마치고 김포로 향하였다. 김포에 터전을 잡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요즘 제철에 나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강변에 위치한 ‘전류리포구’로 향하였다.
이번 등산에서 네 명이 참석하였으므로 차로 이동하는 것은 여유로웠다. 등산지 영종도 백운산에서 김포 전류리까지 약 1시간 20분 가량 걸렸다. 주말이어서인 차가 밀려 평소 보다 늦게 도착한 것이다.
전류리포구 가는 길은 험한 길이라 볼 수 있다. 작은 도로를 따라 가다가 비포장 도로로 진입하여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알려져 않은 곳이 전류리포구이다. 그러나 김포를 터전으로 하고 있는 친구는 매년 이맘때쯤 꼭 찾는다고 하였다.
강에 있는 포구
전류리 포구에 도착하니 다른 포구와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바다가 아니라 강에 있는 포구라는 것이다. 그것도 철책으로 가로 막혀 있다. 철책에는 초소가 있어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전류리포구는 지도상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을까?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다.
전류리포구는 한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강이 마치 바다처럼 넓게 보인다. 이곳이 포구이긴 하지만 배는 몇 척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이 휴전선이기 때문에 조업구역은 한강 하류임을 알 수 있다.
전류리 전어 왕새우축제
전류리포구에서 해마다 이맘 때쯤 축제가 열린다. 축제명은 ‘전류리 전어 왕새우축제’이다. 전어와 왕새우를 테마로 한 축제임을 알 수 있다.
아주 작은 포구에서 작은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것은 먹거리 축제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잡히는 전어와 왕새우외 다른 것은 볼 수 없다. 김포친구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되었기 때문에 친구가 모든 것을 주도 하였다.
왕새우소금구이
전어회가 도착하고 왕새우는 튀겨먹는 방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왕새우를 산채로 넓직한 냄비에 넣는 것이었다. 냄비 바닥에는 소금이 깔려 있어서 가열된 소금위에 왕새우가 파닥 거린다. 좀 지나자 빨간색으로 변하자 시식이 시작 되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왕새우는 껍질째로 먹어도 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껍질을 까서 먹지만 껍질째로 먹는 것이 더 영양도 많고 씹는 맛이 난다고 하였다. 더구니 머리부분은 바싹 구워서 먹으면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하였다.
모임에 빠지지 않는 술
늘 그렇듯이 친구들이 모이면 술이 빠지지 않는다. 전어와 왕새우와 함께 술잔이 돌았다. 이처럼 만나면 기름진 음식에다 술이 빠지지 않는다. 이럴 때 불자들은 잠시 난감해 한다. 술을 마시게 되면 음주계를 어기는 것이 되고, 고기를 먹게 되면 살생계를 어기는 것 같아 찜찜하기 때문이다.
불살생계와 불음주계
불자들은 삼보에 귀의하고 계를 받음으로서 불자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계는 대승보살계를 말한다. 한국이 대승불교권이기 때문에 10가지 큰 계율과 48가지 가벼운 계율을 받는다. 연비와 함께 “옴살못지 사다야 사바하”를 낭송하면서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보살계에서 ‘살생하지 말라’와 ‘술을 마시지 말라’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다.
대승보살계의 내용대로 라면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자신의 직접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적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지목하여 “저 것을 회쳐 주시오”라고 말하면 살생업으로 본다는 것이다. 만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 가져 왔다면 관용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란 것은 왕새우를 소금위에 튀길 때 꿈뜰 거렸다는 것이다. 이를 본 친구들은 한마디씩 하였다.
네 명의 친구 중에 불자는 오로지 한명 밖에 없다. 두 명은 천주교이고 나머지 한명은 종교를 알 수 없다. 아마 아무 것도 믿지 않는 무교 일 것이라 본다. 그런데 천주교를 믿는 친구들은 꿈틀 거리는 새우를 보자 크게 게의치 않는 듯 하다. 창조주가 원래 인간위주로 창조하였기 때문에 다른 창조물은 인간이 지배하여도 된다는 논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꿈틀 거리는 새우를 보자 약간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에 따라 생각도
시대에 따라 생각도 바뀌어 진다. 그것은 ‘권투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한때 TV에서는 권투를 생중계 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이삼십년 전이다. 그래서 서로 피를 흘리며 치고 받는 모습을 보고서 전국민이 환호 하였다. 그러나 요즘 TV에서는 그런 장면을 일체 볼 수 없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것은 잔인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때리면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인간들이 구경한다는 것이 비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과 이삼십년전에는 국민들에게는 최고의 인기스포츠이자 스트레스 해소용이었다.
검투사영화가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글래디에이터(2000년)’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래 전에는 ‘스파르타쿠스’가 더 유명하였다. 영화의 특징은 두 명의 검투사가 죽을 때 까지 싸우는 것이다. 이는 권투시합과 차원을 달리 한다. 어느 한편이 죽어야 경기가 끝나는 매우 잔인한 경기인 것이다. 그런데 다큐프로에 따르면 고대로마시민들에게는 일종의 오락과도 같았다고 한다.
로마에 콜로세움이 있다. 이는 로마 시민들을 위한 것이다. 마치 오늘날 대형축구장이나 야구장과 같은 개념이라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로마시민들은 검투사들의 경기를 즐겼다. 그런데 검투사들의 시합은 목숨을 건 매우 잔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치 축구나 야구경기를 즐기듯이 로마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들의 시합에 환호 하였던 것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도 변한다. 로마시대에 목숨을 건 검투사의 경기는 로마시민들에게 즐거운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요즘 목숨을 건 시합을 하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권투경기가 TV에서 사라진 것도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대신 사람들은 사이버공간에서 검투사시합과 같은 죽고 죽이는 게임을 즐긴다.
불자들을 대략난감하게 만드는 것
살아 있는 생새우를 소금불판 위에 튀기는 것은 잔인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거의 일상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매일 매시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서 꿈틀 거리는 낙지를 뜨거운 물 속에 집어 넣어 요리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기는 어렵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이 아닌 축생이나 어류가 사람의 먹이가 되기 위하여 희생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살생하지 말라”는 계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불자들에게는 난감하기만 하다.
불살생계의 의미는?
불살생계는 불교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타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타종교에서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은 있어도 ‘살생하지 말라’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의 불살생계는 매우 포괄적이다. 인간 뿐만 아니라 축생, 어류 등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죽여서는 안되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오계에 들어 있는 항목이다.
오계의 정형구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곡주나 과일주 등 취기있는 것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kāmesu micchācār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ā paṭivirato hoti, S55.37).”이다.
불살생계에 대한 것을 보면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라는 정형구로 표현 된다. 여기서 ‘pāṇātipātā’는 ‘pāṇa(呼吸)+atipāta(杀)’의 뜻이다.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을 살생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것이 다 포함된다. 모기나 파리와 같은 미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다.
paṭivirato의 뜻은 ‘Abstaining from’의 뜻이다. 이는 ‘삼가는’ 또는 ‘자제하는’ 뜻으로 번역된다. 이렇게 본다면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의 뜻은 ‘살생을 삼간다’는 뜻이 된다. 가급적 죽이지말라는 뜻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경우를 제외하고 죽이는 것을 삼가라는 말이 된다.
불교에서 금하는 직업
어쩔 수 없이 살생을 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또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금하는 직업이 있다. 다음과 같은 직종이다.
Pañcimā bhikkhave, vaṇijjā upāsakena akaraṇīyā. Katamā pañca:
Satthavaṇijjā, sattavaṇijjā, maṃsavaṇijjā, majjavaṇijjā, visavaṇijjā.
Imā kho bhikkhave, pañca vaṇijjā upāsakena akaraṇīyāti.
[세존]
“수행승들이여, 재가의 신자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를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무기를 파는 것, 사람을 파는 것, 고기를 파는 것, 술을 파는 것, 독극물을 파는 것이다.”
(Vaṇijjāsutta -판매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5.177, 전재성님역)
불자로서 가져서는 안될 직업 다섯 가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판매하지 말라 하였다. 무기, 사람, 고기, 술, 독극물을 만들어 파는 행위를 금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장사는 자신이 해서도 안되고 타인에게 시켜서도 안됨을 말한다.
여기서 ‘고기를 파는 것(maṃsavaṇijjā)’이 있다. maṃsavaṇijjā는 ‘maṃsa(flesh)+ vaṇijjā(trade)’의 형태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여 돼지나 동물을 사육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공장식으로 대량사육되어 판매 되는 닭, 돼지, 소와 같은 산업용 축산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판매목적이 아닌 생계목적에 대하여 금하지는 않았다.
지키기 어려운 불음주계
오계중에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음주계이다. 왜 불음주계를 지키기 어려운가? 그것은 생활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사회생활을 하려면 음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각종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다. 술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다. 또 음식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이러 저러 이유로 마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계를 받은 불자라도 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불자들은 매번 오계를 어기는 셈이 된다.
십악행에서 음주항목이 없다!
초기경전에서는 오계와 함께 강조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십선행이다. 이는 오계의 확장이라 볼 수 있다. 십선행은 십악행의 반대이다. 십악행은 다음과 같다.
1)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자(Pāṇātipāta)
2)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자(Adinnādāna)
3) 잘못을 저지르는 자(Kāmamicchācāra)
4) 거짓말을 하는 자(Musāvāda)
5) 이간질을 하는 자(Pisuṇāvācā)
6) 욕지거리 하는 자(Pharusāvācā)
7)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Samphappalāpa)
8) 탐욕스러움(Abhijjhālu)
9) 악의에 찬 마음(Byāpannacitta)
10) 잘못된 견해(Micchādiṭṭhi)
(출처: 앙굿따라니까야 A4.261-A4.270)
십악행에서 음주에 대한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하여 음주가 오계를 어기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그래서 “음주는 5악 중 나머지 4가지 악인 망어 · 살생 · 투도 · 사음을 범하는 동기가 되므로 5악에 포함시켜 경계하게 한 것이다.(위키백과)”라 한다.
왜 음주계가 빠졌을까?
음주가 오계 중의 나머지 4계를 어기는 동기가 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경이 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세존]
“그러나 이와 같이 ‘이 사람은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 있는 것에 취하여 여자나 남자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사람은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 있는 것에 취하여 마을이나 숲에서 주지 않은 것을 훔칠 생각으로 빼앗았다. 이 사람은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 있는 것에 취하여 남의 여자나 남의 소녀를 범했다. 이 사람은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 있는 것에 취하여 거짓말로 장자의 아들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다. 그 악행이 알려지자마자, 그가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 있는 것에 취하는 것 때문에 왕이 그를 잡아서 때리고 묶고 추방하고 임으로 처벌한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왕의 경, 앙굿따라니까야니까야 A5.178,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만악의 근원이 마치 술인 것처럼 보인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살인, 도둑질, 음행,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악행의 원인은 술로 부터 비롯 됨을 알 수 있다.
오계에서는 불음주계가 반드시 들어 간다. 이에 대한 정형구가 “곡주나 과일주 등 취기있는 것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ā paṭivirato hoti, S55.37)”로 표현 된다. 빠알리어를 직역하면 곡주나 과일주 등 취기있는 것에 대하여 “삼갑니다”또는 “억제합니다”가 된다. 가급적 먹지 않는 것이 좋음을 말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불자들을 대략난감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불살생계와 불음주계이다. 출가수행자가 아닌 재가불자들에게 불살생계와 불음주계를 지켜내기는 어렵다. 이는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불살생계의 경우 사람 뿐만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 모든 것으로 확대 된다면 사실상 살아 갈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타종교에서는 사람으로 한정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생과 윤회를 믿는 불자라면 육도윤회를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천상 이렇게 여섯 세상을 윤회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축생을 보면서 “한 때 나도 저와 같았다”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코 육식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채식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고기도 먹어야 하고 술도 마셔야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재가자들의 삶의 방식이다. 이런 재가자들에게 불살생계와 불음주계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받아 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팔관재일이 나왔을 것이다.
한달에 네 번 만큼은
담미까경에 따르면 “각각 보름 기간의 제14일과 제15일과 제8일에(*1) 포살을 닦으라. (stn402)”라 하였다. 이는 인도력에 따른 것이다. 각주에 따르면 “인도의 1년은 3계절-겨울, 여름, 우기-로 나뉘며, 각 계절은 4개월씩 지속된다. 4개월은 8개의 보름 기간으로 나뉘고, 세 번째와 일곱 번째는 14일로 구성되고 나머지는 15일로 구성된다. 보름달이거나 신월이거나 반달의 날이 특별히 길조인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달에 네 번 8계를 지키는 날이 된다.
여덟고리로 된 포살(aṭṭhaṅgikamāhu posatha)
재가자가 출가자처럼 매일 계율을 지킬 수 없다. 특정한 날을 잡아 놓고 마치 출가자처럼 계를 지켜야 한다. 이것을 ‘여덟고리로 된 포살(aṭṭhaṅgikamāhu posatha)’
이라 한다. 여덟 가지 포살은 다음과 같다.
1) 생명을 해치지 말라.
2)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라.
3) 거짓말을 하지 말라.
4) 술을 마시지 말라.
5) 순결하지 못한 성적 교섭을 떠나라.
6) 밤에는 때 아닌 때의 음식을 먹지 마라.
7) 화한을 걸치지 말고 향수를 쓰지 말라.
8) 깔개를 깐 바닥이나 침대 위에서만 자라.
불음주계를 어기는 사람을 위하여
여덟 가지 포살을 지키면 어떤 점이 좋을까? 첫번째로 사회생활하면서 불음주계를 어기면서 대략난감해 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줄 것이라 본다. 매일 불음주계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한달에 네 번 만큼은 철저하게 지킴으로서 오계를 준수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위하여
또하나 좋은 점은 불자로서 가져서는 안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역시 일종의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하여 무기, 사람, 고기, 술, 독극물을 만들어 파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한달에 네 번 만큼은 8계를 철저하게 지켰을 때 오계를 준수하는 것이 된다.
불교포살달력이 필요해
8계를 지킬려면 불교달력이 필요하다. 8계를 지킬 날자가 표시 되어 있는 달력을 말한다. 그래서 이렇게 불교달력을 만들어 놓으면 이날 만큼은 8계를 지킬 수 있어서 ‘대략난감’한 마음도 피해 갈 수 있으리라 본다.
2014-09-29
진흙속의연꽃
'의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은 희망의 전조, 해남기행(1) 땅끝에서 본 해맞이 (0) | 2015.04.05 |
---|---|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인데”동기동창 송년모임에서 (0) | 2014.12.28 |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을 가져가는가? 친구와 둘이 떠난 관악산 (0) | 2014.11.03 |
돈벌기선수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동창 번개모임을 가졌는데 (0) | 2014.10.09 |
카카오톡(카톡)과 우물가 이야기, 잡담은 왜 수행자에게 무익한가? (0) | 201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