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의 가르침

최초의 재가신자와 최초의 재가제자, 라자야따나 나무아래의 이야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0. 30. 16:50

 

 

최초의 재가신자와 최초의 재가제자, 라자야따나 나무아래의 이야기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는 누구일까? 상식 있는 불자라면 누구나 꼰단냐를 말할 것이다. 부처님이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성취한 후에 오비구에게 가르침을 펼치셨는데, 이 때 가장 먼저 진리의 눈이 뜬 자가 꼰단냐이다. 그래서 꼰단냐는 부처님에게 구족계를 요청하고 최초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최초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재가신자는 누구이고, 최초의 재가제자는 누구일까?

 

깨달음의 나무

 

율장대품에서는 승가의 형성과정이 설명 되어 있다. 승가형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부처님의 깨달음과 관련된 사건이 언급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율장대품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사부니까야에는 보이지 않는다. 쿳다까니까야 우다나에 일부 보이긴 하지만 파편적이다.

 

율장대품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이 해탈의 지복을 누리는 장면이 설명 되어 있다. 주로 나무아래에서 이다.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나무가 보리수이고, 두 번째로 아자빨라니그로다’, 세 번째가 무짤란다’, 네 번째가 라자야따나이다. 다음으로 하느님(범천)의 권청이야기로 유명한 아자빨라니그로다나무이다.

 

처음 오만한 바라문을 만났지만

 

네번째 나무가 라자야따나이다. 부처님은 라자야따나나무아래서 칠일동안 해탈의 지복을 누린다. 그런데 이 나무아래에서 부처님의 최초의 재가자를 만난다. 경에 따르면 따뿟싸발리까라는 상인이다.

 

두 상인이 길을 가다가 라자야따나나무아래서 해탈의 지복을 누리고 있는 부처님을 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재가의 사람이 지나갔었다. 그것은 두 번째 나무인 아자빨라니그로다나무아래에서 해탈의 지복을 누릴 때 이었다거만한 바라문이다. 부처님 당시 지배계층으로서 아쉬울 것이 없는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 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오만한 바라문과 부처님과의 인연은 특별한 것이 없다.

 

바라문은 부처님에게 어떻게 해서 바라문이 되는지, 바라문을 만드는 성품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는 오만한 질문이다. 태생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바라문이 자신의 계급을 확인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에 부처님은 청정한 삶을 성취한 자가 진정한 바라문이라 말한다. 현재의 바라문은 타락하였지만 이전의 바라문은 그렇지 않음을 말씀 하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흥흥거리는 오만한 바라문과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이야기(2014-10-5)’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하늘사람의 인도로 부처님을 만난 두 상인

 

부처님이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이 있다. 네 번째 나무인 라자야따나나무아래 계실 때 이었다. 바로 이전 세 번째 무짤란다 나무에서 사람을 만나긴 하였지만 용왕이었으므로 제외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상인이었다 그런데 상인 두 사람이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신화적이다. 하늘사람의 인도에 따라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하늘사람이 상인 두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Aya mārisā, bhagavā rājāyatanamūle viharati pahamābhisambuddho. Gacchatha ta bhagavanta manthena ca madhupiṇḍikāya ca patimānetha. Ta vo bhavissati dīgharatta hitāya sukhāyā"ti.

 

[하늘사람]

벗들이여, 세존께서 비로소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고 라자야따나 나무아래 계십니다. 그대들은 가서 세존께 보리죽과 밀환(蜜丸)을 공양하십시요. 그러면 그대들에게 그것이 오랜 세월 안녕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Rājāyatanakathā niṭṭhatā-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의 이야기, 율장대품, 1장 크나큰 다발, 전재성님역)

 

 

 

Rājāyatana(the tree Budhanania Latifolia)

 

 

경에서 하늘사람(devatā)’이 등장한다. 하늘사람이 상인 두 명에게 부처님을 찾아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상인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likā)는 하늘사람의 인도하는 대로 부처님을 찾아 뵙는다. 그리고 공양을 올린다.

 

상인 두 명이 공양을 올린 것은 보리죽과 밀환(manthena ca madhupiṇḍikāya)’이다. 보리죽은 mantha로서 ‘churning stick; parched corn-flour’의 뜻이다. 밀환은 madhupiṇḍikāya‘a ball of flour mixed with honey’라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두 상인이 부처님이 공양하는 장면은 초기경전에서 처음 나온다.

 

부처님에게 최초로 공양한 자는?

 

부처님이 깨닫기 이전 최초로 공양한 자로 수자따를 들고 있다. 하지만 사부니까야에는 공양자로서의 수자따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맛지마니까야 고귀한 구함의 경(M26)에서도 이지역이 마음에 든다. 이곳은 정진을 바라는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정진에 집중하기에 충분하다.(M26”라는 구절이 있긴 하지만 수자따처녀의 공양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또 디가니까야 완전한 열반의 큰 경(D16)’에서 두 가지 공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벗이여 쭌다여, 나는 세존 앞에서 두 가지 공양은 동등한 과보, 동등한 공덕이 있는데, 다른 과보나 다른 공덕을 훨씬 능가한다. (D16)”라고 되어 있다. 두 가지 공양이란 여래가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을 때와 그 공양을 들고 여래가 잔여 없는 완전한 열반을 드는 때의…(D16)”라 되어 있다.

 

하지만 4부니까야에서 수자따의 공양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앙굿따라니까야에서 수행승들이여, 나의 여제자인 재가의 여자 신도 가운데 쑤자따 쎄나니딧따는 먼저 귀의한 님 가운데 제일이다.(A1.266)”이라 하였다. 부처님에게 처음으로 공양을 하였다는 수자따는 먼저 귀의한 님 가운데 제일(pahama saraa gacchantīnaṃ)’ 로 나온다. 이에 대한 각주를 보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유미죽을 담아 공양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디가니까야에서 두 가지 공양이 가장 수승하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마지막 공양이 쭌다의 공양이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깨달음을 얻을 때의 공양이 수자따의 공양인지 아니면 두 상인의 공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스리랑카의 역사서 붓다왐사에 수자따의 유미공양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부처님에게 최초로 공양한 자는 율장대품에 언급되어 있는 두 상인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likā)라고 볼 수 있다.

 

저희들에게 오랜 세월 안녕과 행복이 있도록

 

하늘사람의 인도에 따라 두 상인은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린다. 초기경전에서 보여 지는 최초의 공양이라 볼 수 있다.

 

 

"patigahātu no bhante, bhagavā manthañca madhupiṇḍikañca ya amhāka assa dīgharatta hitāya sukhāyā"ti.

 

[따뿟싸와 발리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오랜 세월 안녕과 행복이 있도록, 보리죽과 밀환을 받아 주십시요.”

 

(Rājāyatanakathā niṭṭhatā-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의 이야기, 율장대품, 1장 크나큰 다발, 전재성님역)

 

 

두 상인이 바라는 것은 단지 자신들의 안녕(hitāya)’ 행복(sukhāyā)’ 이었다. 뭇삶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소박한 소망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의 전도선언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안락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S4.5)”라 하였는데, 전도선언에서도 똑 같은 내용이 이익(hitāya)’행복(sukhāyā)’이라는 말이 나온다.

 

부처님의 차별화 된 말을 보면

 

두 상인은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바라면서 보리죽과 밀환을 공양하였다. 그러나 의외의 말이 나온다. 부처님이 공양의 곤란함을 말씀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경에서 여래들은 손으로 받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보리죽과 밀환을 받을 것인가?”라고 표현 되어 있다. 바루와 같은 받을 도구가 없음을 말한다.

 

부처님은 최초의 공양에 대하여 두 손을 벌려 받는 공양을 거부하였다. 이에 대한 각주나 주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여래들은 손으로 받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보아서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차별화 되는 이야기는 초기경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부처님이 처음 깨달음을 증득하였을 당시 유행자 우빠까와의 만남이 있다. 그 때 부처님은 나는 일체를 극복한 자, 나는 일체를 아는 자이다. 일체의 사실에 오염되지 않았고, 일체가 버려졌고 갈애가 부수어져 해탈되었다. 스스로 곧바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랴.(Dhp353)”라 하였다.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한 부처님에게 더 이상 스승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체를 아는 자라 하여 일체지자라 부른다.

 

부처님이 오비구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특별한 행위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부처님은 오비구들이 알아 보자 수행승들이여, 여래의 호칭을 벗이여라고 부르지 말라.”라고 말한다. 이처럼 부처님이 처음 깨달음을 얻었을 때 차별화 된 언급이 보인다.

 

사대왕천의 네 돌발우

 

두 상인의 공양물을 두 손으로 받을 수 없다고 부처님이 말씀 하신다. 그러자 이때 네 하늘나라의 대왕(사대왕천)이 나타난다. 경에서는 사대왕천이 부처님의 마음을 읽은 것으로 표현 되어 있다. 그래서 사방으로 부터 네 돌발우를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돌발우가 마련 되자 그제서야 부처님은 두 상인의 공양을 받았다.

 

초기경전에서는 신화적인 내용이 종종 등장한다. 사대왕천의 이야기도 그렇다. 사대왕천은 최하층의 하늘나라에 거주 하는 신들을 말한다. 네 하늘의 사방을 지키는 안내자들이 있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세계(욕계)에 속하는 하늘나라이다. 이렇게 중요한 고비에서 사대왕천이 등장하는 것은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싯다르타를 모태에서부터 보호하였고 부처님이 된 후에는 추종자들도 보호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 비인간으로부터 해코지 당하지 않으려면, 수호경 아따나띠야의 경(D32)(2104-09-1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율장대품에서는 돌발우를 바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대는 발우와 법복을 갖추었는가?”

 

부처님이 두 상인의 공양 받기 곤란한 말씀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의 문맥으로 추론 하건데  발우가 없었기 때문이라 본다. 왜냐하면 발우는 출가수행자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대왕천이 등장하여 돌발우를 마련 하자 그제서야 부처님은 공양을 받는다.

 

만일 부처님이 두 손으로 공양을 받았다면 걸인과 다름 없었을 것이다. 불교에서 수행자를 상징하는 것이 가사와 발우이다. 그런데 발우 없이 두 손을 벌려 받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맛지마니까야에서도 알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 세계에 대한 분석의 경(M140)’이 있다. 부처님과 뿍꾸사띠가 옹기장이의 토굴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대한 것이다. 경의 말미에 뿍꾸사띠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앞에서 구족계를 받고자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수행승이여, 그대는 발우와 법복을 갖추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수행승이여, 나는 발우와 법복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 구족계를 주지 않는다.”라고 말씀 하신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가사와 발우를 갖추는 것은 단순하게 얻어 먹는 걸인이나 외도수행자와 차별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부처님은 두 손으로 공양받는 것을 거부 하였다. 사대왕천이 돌발우를 바치자, 그 돌발우에 공양을 받았다. 이것이 초기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공양이다.  

 

이귀의(二歸依)한 최초의 재가신자

 

두 상인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셨을 때 공양을 바친 최초의 사람들이다. 비록 하늘사람의 인도로 공양을 올리게 되었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매우 소박한 것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있어서 안녕과 행복이다. 이와 같은 안녕(이익)과 행복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 불자들 역시 안녕과 행복을 바란다. 그래서 절에 가면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바란다. 그런 범주에 입시발원과 사업번창 등도 포함 된다. 두 상인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두 상인은 공양을 바치고 부처님에게 귀의하였다. 이에 대한 장면이 다음과 같이묘사되어 있다.

 

 

"ete maya bhante, bhagavanta saraa gacchāma dhammañca. Upāsake no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upete saraa gate"t

 

 [따뿟싸와 발리까]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들은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Rājāyatanakathā niṭṭhatā-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의 이야기, 율장대품, 1장 크나큰 다발, 전재성님역)

 

 

두 상인은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최초의 재가자의 귀의라 한다. 그런데 귀의의 대상이 두 가지이다. 부처님과 담마에 대한 것이다. 이를 이귀의라 한다. 아직 상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상인 따뿟싸와 발리까는 특별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부처님이 깨달음과 관련하여 최초의 공양인이라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최초의 재가신자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부처님과 담마에 귀의하였으므로 이귀의자(二歸依者)’라 한다. 그리고 최초의 재가신자로 기록된다. 더 정확하게는 남자재가신자(Upāsaka)’라 한다.

 

재가신자와 재가제자

 

불교에서는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고 난 후 몇 사람을 만났지만 부처님의 재가신자로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두 상인따뿟싸와 발리까가 최초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에 대하여 재가제자라 부를 수 있을까?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준수하는 자들을 재가신자라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재가신자로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재가신자중에서 빅쿠나 빅쿠니가 나오기 때문이다. 또 재가신자라 하더라도 흐름에 든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흐름에 들어간 재가자라면 재가신자라기 보다 재가제자에 가깝다. 흐름에 들어 갔다는 사실은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비록 현전상가의 일원은 아니지만 재가로 있으면서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재가제자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재가제자로서 최초는 누구일까?

 

최초의 삼귀의자(三歸依者) 대부호 야사의 아버지

 

율장대품에 따르면 야사의 아버지가 나온다. 경에서는 대부호로 묘사되어 있다. 경에 따르면  아들을 찾아 나섰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고 하였다. 흐름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흐름에 든자로서 야사의 아버지는 최초로 삼보에 귀의한 자로 기록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최초로 삼귀의를 제창한 재가의 남자신도가 되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삼보에 귀의한 것은 이미 상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두 상인이 이귀의 한 것과 다르다.

 

부처님이 오비구에게 설법을 하여 구족계를 줌으로서 상가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대부호 야사의 아버지는 세존이시여,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수행승의 참모임에 귀의합니다.”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최초로 삼귀의를 제창한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그래서 최초의 삼귀의자라 한다.

 

부처님의 차제설법(次第說法)

 

부처님의 제자라 하면 일반적으로 빅쿠와 빅쿠니를 언급한다. 재가자는 단지 신도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재가의 남자신도에 대하여 우빠사까라 하고 재가의 여자신도를 우빠시까라 한다. 우리말로 청신사청신녀라 한다.

 

이처럼 재가자에 대하여 신자 또는 신도라고 말하는 것은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두 상인이 바라는 것이 안녕과 행복이었고, 전도선언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안락을 위하여(S4:5)라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단지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바란다면 신자 또는 신도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가자라 하여 가르침에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차제설법으로 모두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호 야사의 아버지에게 설법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처음에는 쉬운 가르침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근기에 따라 설법을 하고, 순서에 따라 차제설법을 한 것이다. 그래서 가르침이 무르익으면 심오한 가르침을 설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였다. 이와 같은 차제설법에 대하여 율장대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한쪽에 물러 앉은 대부호인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차례로 가르침을 설했다. 예를 들어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오염과 욕망의 여읨에서 오는 공덕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대부호인 장자에게 건강한 마음, 유연한 마음, 열린 마음, 기뻐하는 마음, 청정한 마음이 생겨난 것을 알자,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을 설했다.

 

(Rājāyatanakathā niṭṭhatā-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의 이야기, 율장대품, 1장 크나큰 다발, 전재성님역)

 

 

부처님의 차제설법을 보면 처음에는 보시, 지계 등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렇게 계를 지키며 보시하는 삶을 살아가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청정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재가자일지로도 가르침이 무르익으면 부처님은 최종적으로 사성제를 설하였다. 그래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라고 표현 되어 있다. 부처님은 빅쿠나 빅쿠니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온 재가자에게도 차제설법에 따라 사성제를 설한 것이다.

 

재가자도 부처님의 제자이다

 

이렇게 사성제의 진리를 접한 야사의 아버지 대부호는 진리의 눈이 생겨난다. 그래서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하여 흐름에 든 자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야사의 아버지는 최초의 부처님의 재가제자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재가신자와 재가제자는 다른 것이다. 재가신자는 삼귀의하며 오계를 실천하는 자이지만, 제가제자는 보다 높은 가르침에 접하여 흐름에 든 자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앙굿따라니까 제1제일의 품에 따르면 부처님의 으뜸 가는 제자 중에 빅쿠와 빅쿠니와 더불어 청신사와 청신녀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해공제일 수보리와 평화제일 수부띠, 부처님 십대 제자와 초기불교 팔십대 제자(2013-07-26)’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 하고 실천하면 누구나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부처님의 제자에는 출가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가자 중에서도 으뜸 가는 재가제자가 많았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에서 80명의 출가와 재가의 제자로 확인 된다, 그런 부처님의 재가제자로서 최초가 야사의 아버지이다. 야사의 아버지는 최초의 삼귀의자이면서 동시에 재가의 최초제자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초의 재가신자는 두 상인 따뿟싸와 발리까이다. 하지만 두 상인은 이귀의자로서 최초의 재가신자라 불리우지만 재가제자라 볼 수 없다. 

 

 

 

2014-10-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