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도 시인? 카톡방에 시를 올렸더니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2. 2. 12:34

 

 

나도 시인? 카톡방에 시를 올렸더니

 

 

 

요즘 시를 쓰고 있는데

 

요즘 시를 쓰고 있다.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카톡방에 가입 하고 나서 부터이다. 동창카톡방에서 재잘재잘 하다 보니 때로 의미 있는 이야기도 필요 하였다. 그래서 그날 느낌에 대하여 짤막한 글로 정리 하여 올려 보았다. 몇 차례 올렸으나 그다지 반응이 없다.

 

친구들이 공학을 전공해서일까 표현력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무관심해서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이십여명의 숫자에 대한 카운트가 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제로가 되었을 때 다 읽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글로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눈팅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톡방에 글을 올리며 재잘재잘 한다. 글을 매일 쓰기 때문에 재잘거리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셀프카톡이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카톡방에 글쓰는 것을 중단하였다. 그러자 친구들이 궁금하였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 났는지 궁금해 한 것이다.

 

혼자말로 미쳤어

 

카톡방에 다시 글을 올렸다. 종종 블로그에 올린 글을 링크 시켜 놓기도 한다. 한번 읽어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구동성으로 글이 너무 길다고 한다. A4로 열 페이지 가량의 분량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읽기에 벅찼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길다고 하며 글의 양을 줄일 것을 요청한다.

 

글을 쓸 때 경전의 문구를 인용하고 더구나 주석 또는 관련된 경을 인용하다 보면 열 페이지가 훌쩍 넘어 버린다. 어느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글을 쓰기 시작 하였다. 토요일이지만 처리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빨리 글을 끝내고 일을 마무리하고자 하였다. 점심시간을 목표로 글을 썼으나 갈길이 멀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을 넘기고 오후 늦게 까지 정신없이 써 나갔다. 글을 마칠 때 쯤의 시간을 보니 오후 6시가 되었다. 글을 마치고 나서 혼자말로 미쳤어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튀어 나왔다.

 

돈도 되지 않는 글쓰기에 그것도 토요일 오전과 오후를 모두 보내어서 약 10시간 가량 글에 매달렸다. 그래서 나온 말이 미쳤어이다. 이런 정도라면 남이 보기에도 미쳤다라는 말을 할 것이다. 그런데 열시간 동안 작성된 글의 양을 보니 A4 21장에 달한다. 그 글이 부처님의 전도선언은 행복론이 아니라 열반론(2014-11-22)’라는 제목의 글이다.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긴 글임에도 읽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공감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관리자 모드에서 읽은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처음 글을 접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너무 길다고 말한다. 특히 동창들과 법우님들이 그렇다.

 

매일 카톡방에서 채팅하는 것은 그야말로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그룹으로 이루어진 채팅방이 그렇다. 동창의 경우 얼굴을 알고 성향을 알고 더구나 수십년 함께 하였으므로 누구 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부족해서인지 별로 글이 올라 오지 않는다. 설령 올라 온다 하더라도 어디 가서 사진 찍은 것이나 먹는 것 등이 주류이다. 때로는 어느 곳에서 퍼와 ㅋㅋ’, ‘ㅎㅎ하며 즐기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화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마치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 하는 것도 하나의 대화 방식이기 때문이다.

 

늙음에 대하여 시를 하나 썼는데

 

채팅방에서 놀다 보니 재잘재잘 하기만 하며 보낼 수 없다. 때로는 의미 있는 글도 필요 하였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짤막한 글을 몇 차례 올렸다. 주로 경전에 실려 있는 게송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랬더니 반응이 왔다. 일부 친구들은 처음 보는 신선한 내용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어느 친구는 글이 기다려진다고 말하며 계속 올려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 카톡방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여 짤막한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 형식이 되었다. 오늘 카톡방에 올린 것은 다음과 같다.

 

 

(늙음)

 

계절은 늘 극적이네.

고개를 돌려보니

비바람 칼바람에

앙상한 가지만 남았네.

성하의 그 늠늠하던

자태는 어디로 갔는가?

 

사람도 늘 변해가네.

무심코 들여다 보니

친구의 모습에서

세월을 보았네.

친구의 빛나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청춘은 우리를 버렸네.

중년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

노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

 

자연은 언제나 그렇듯이

늘 극적으로 변하네.

세월은 무상하여 인정사정 없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네.

 

젊어서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그렇다고 청정한 삶도 살지 않은 늙은이가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옛날을 회상하며 누워있네.

마치 물마른 호수에

날개 부러진 백로처럼.

 

 

 

 

이 시를 동창카톡방에도 올리고 법우님들 6명에게도 공유하였다. 동창카톡방에서는 단 한명만이 반응을 보였다. 글이 너무 허무하다는 것이다. 동창중에는 교회나 성당다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마 이런 글을 처음 접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한 어리석은 자에 대한 글이라고 답글을 주었다.

 

이 시를 법우님들에게 올렸더니 대부분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대부분 불자들로서 격려를 해주는 글이 많았다. 어떤 이는 가슴에 와 닿네요라고 한 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나중에 모아서 책한번..”이라 하여 격려를 해 준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슬퍼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을 보내 왔다.

 

시를 써 본 적이 없지만

 

시를 써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8년 간 오로지 글만 써왔기 때문에 시는 시인이나 쓰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인터넷에는 자칭타칭 시인의 블로그도 많은데 시는 특별한 사람이나 쓰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동창가톡방에 들어 가면서부터 짤막한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의 형태로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카톡방에 매일 한편 씩 시를 올리기로 하였다. 물론 경전을 근거로 한 것이다.

 

경전에는 수 많은 게송이 있어서 이를 조합하면 무수한 시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빠알리 니까야(경장)와 위나야(율장)에 실려 있는 수 천, 수 만개 달하는 게송이 모두 시의 소재가 된다. 다만 게송을 그대로 배끼면 출처를 밝혀야 하지만 기억을 되살려 한 구절 인용하는 것은 문제 없으리라 본다. 단어 일곱개가 연속으로 되어 있으면 표절이지만 자신의 생각이 가미된 표현은 자신의 작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렇게 시를 올리는 것이 이제 생활화 단계로 접어 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정신이 맑을 때 시를 구상한다. 그리고 동창카톡방에 생각을 옮겨 놓는다.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에 저장해 놓는 것이다. 또 세수할 때 밥먹을 때 떠 오른 생각을 반영하여 다듬는다. 그리고 일터로 걸어 가면서 카톡을 날린다.

 

 

 

2014-12-0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