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가난한 절 가난한 스님, 자발적으로 가난에 동참한 스님들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2. 4. 15:58

 

가난한 절 가난한 스님, 자발적으로 가난에 동참한 스님들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즐겨찾기로 해 놓아서 자주 방문한다. 그런 곳 중에 스님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천장사 주지스님이 운영하는 암자에서 하룻밤(천장암)’이다.

 

스님과의 인연

 

스님과는 인연이 있다. 블로그활동이 본격화 되기 시작할 즈음인 2007년 무렵 글로서 소통하였다. 꾸준히 올린 글을 보고 느낌을 올려 놓았는데 가장 잊혀 지지 않는 말이 공감합니다라는 말이다. 글의 내용에 공감한다는 뜻이다. 스님이 인도 뿌네대학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이야기이이다.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하였을 때 인상적인 글을 보았다. 스님의 블로그에 노무현대통령을 추모 하는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 인도라는 먼 곳에 있었지만 기숙사 방에는 작은 분향소가 만들어졌다. 대통령의 영정사진과 들꽃 몇송이, 그리고 차한잔이 올려져 있는 사진을 발견하였다. 이에 대하여 안양역 분향소에서 24 오후1시, 해외에서도 동참하는 노무현대통령 분향을 보고(2009-05-2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해외 인도의 기숙사 방에  마련된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

(내방에 차려진 분향소 http://blog.daum.net/whoami555/13741766))

 

 

스님이 인도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머물던 절에서 이후 주지소임을 맡았다.글을 쓰는데 있어서 자료를 주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한번 방문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알고 지내는 법우님들과 함께 봉고버스를 한대 대절하여 방문하였다.

 

 

 

천장사 법당

천장사는 충남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소재하고 있다.

 

 

모두들 처음 가본 절이었다. 유학승답게 부처님의 원음에 근거한 유익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차 대접을 받았다. 차를 직접 우려서 연속으로 주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 얼굴에 땀이 나고 배가 빵빵해졌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은 법문을 해야 하는 이유, 천장사에서(2012-03-11)’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시골의 가난한 절에서

 

스님이 살고 있는 절은 작은 절이다. 작은 절임에도 잘 가꾸는 것 같다. 비록 카페로 접하는 것이지만 절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 들이 글로서 또는 사진으로서 올려져 있다. 그래서 지난 수년 간의 일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작은 절, 가난한 절에서 안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최근 동안거를 앞두고 스님의 글이 카페에 실렸다. 그것은 가난을 이야기하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난을 이야기하다

 

 

가난한 것은 죄인가? 아니면 가난은 불편할 뿐인가? 가난을 이야기 하려고 작정했을 때 마음속에서 멈칫하는 망설임이 있었다. 마치 멀리서 찾아온 도반스님에게요즘 절의 사정이 어려워서 여비를 못 드립니다라고 변명하는 것처럼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

 

사실수행자는 가난해야 한다라는 당위성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우리가 처음 출가 할 때도 가난한 생활이나 노후대책을 걱정하지 않았다. 원효 스님도 "절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시려도 불 생각을 하지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질지라도 먹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타이르지 않으셨던가. 부처님이 무소유의 삶을 보여주신 것처럼 부처님의 제자도 청빈락도(淸貧樂道)의 살림살이 이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주지를 맡기전 선방에 다니거나 학교에서 공부할 때, 내게도 병원비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책을 사고 싶어도 여유가 없어 구입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도와달라는 말을 못하는 것이 나의 천성이기도 하였고 특별히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지만 그러한 가난은 불편한 것이었지 부끄럽거나 죄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도 걷지 않은 산길을 혼자서 걷는 기분처럼 상쾌하였고 수행자의 가난은 복이다라는 믿음도 있었다.

 

주지가 되고 나서 주위에서 만나는 주지 스님들이 툭하면 절 살림이 어렵다 호소하기에 나만은 아무리 어려워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지말자고 다짐 하였다. 어렵다고 한들 누가 도와 줄 것도 아니고 어렵다는 것이 도대체 기준이 없었기에, 모두의 어려움은 모두의 엄살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게도 가난은 불편함을 넘어서 죄가 되어가고 있다. 가난한 사찰에서 선방을 운영하는 것이 벅차서 힘겨울 때, 특히 열심히 정진 하고 떠나는 스님들께 차비를 넉넉하게 드리지 못할 때, 선방에 다니는 반연 없는 사제스님들에게 공양금을 보내지 못할 때, 오랜만에 찾아온 도반스님들에게 차비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때 가난은 불편함을 넘어서 죄스럽게 느껴진다.

 

왜 우리는 가난한 수행자로서 끝까지 살아내지 못할까. 이 문제를 고민한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종단도 가난하고 스님들도 가난하다면 문제는 없다. 그런데 종단은 부자인데 그것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못하여 일부 스님들은 부자이고 대다수 스님들은 가난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재 승가는 부끄럽게도 사회와 똑같이 부익부빈익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행자의 가난은 종단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왜곡되어 있고 가난한 수행자가 존경받는 분위기가 아니라 다만 능력없음이 되어버렸다.

 

이번 동안거에는 일부러 우리절은 어느 사찰보다 가난하니 가난을 미덕으로 아시는 분들만 방부를 들이시라는안내문을 각 선방에 보냈다. 설사 나의 편지를 받고 선방에 방부를 들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보낸 편지였다. 다행스럽게도 7분이나 방부를 들이셨다. 자발적으로 가난한 사찰을 선택하는 분들을 보니 아직도 선방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선방에 다닌 구참스님이 자신의 소유물은 아끼면서도 사중(寺中)물건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나는 몇십년 선방에서 수행한 이력보다 뒷방에서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행자가 더 존경스럽다. 그래서 어떤 스님이 개인사찰이을 가지고 있고 통장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면 그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스님으로 불리운다 해도 나는 그를 인정하지 못한다.

 

(허정스님, 가난을 이야기하다, 2014-12-03, 암자에서 하룻밤(천장암))

 

 

스님은 글의 모두에서 가난한 것은 죄인가?”라며 의문을 표한다. 출가수행자가 가난이라는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시골에 있는 시골절이고, 그것도 작은 절이기 때문에 가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한숨짓는 것 같다.

 

스님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스님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여비도 줄 수 없는 현실이라 한다. 멀리서 온 스님들 뿐만 아니라 삼개월 동안 안거를 마친 스님에게도 여비조차 줄 수 없는 현실에 난감해 한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는 진짜 가난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불교에서는 수억평에 달하는 토지가 있고 조상이 물려준 문화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신도들의 보시도 있다. 그럼에도 시골절 주지는 여비걱정을 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인가 잘 못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스님은 종단도 가난하고 스님들도 가난하다면 문제는 없다. 그런데 종단은 부자인데 그것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못하여 일부 스님들은 부자이고 대다수 스님들은 가난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결론 지었다. 종단의 재산과 보시금 등을 투명하게 관리 하지 못하여 발생된 문제로 보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가난에 동참한 스님들

 

여비를 줄 여유도 없음에도 스님은 동안거를 포기 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알려 주었음에도 올해 동안거에는 일곱 분의 스님이 방부를 들였다고 한다. 이렇게 자발적 가난한 동참한 스님들로 인하여 한국의 선방에서도 희망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동안거철이 되었다. 오늘이 음력으로 10 13일이니 모레부터는 동안거가 시작 된다. 그래서일까 불교신문에서는 종정스님의 동안거 결제법어가 발표 되었다.

 

조계종의 종정인 진제스님은 六祖門下 家風라는 긴 길이의 동안거 법어를 내렸다. 그래서 수천명의 스님들이 제방의 선방에서 석달간 정진하게 되는데, 해제가 되면 두툼한 여비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한 절에서는 해제가 되어도 줄 여비가 없어서 걱정인 것 같다.

 

 

2014-12-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