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출생의 비밀과 석가족의 멸망, 위두다바 이야기(Vidudabhavatthu, Dhp47)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2. 3. 08:44

 

 

출생의 비밀과 석가족의 멸망, 위두다바 이야기(Vidudabhavatthu, Dhp47)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꽃만 보면 항상 눈길을 길게 보낸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서서 본다. 그것도 아쉬워 늘 휴대하는 디카로 촬영해 둔다. 이렇게 꽃을 모아 둔 것이 지난 8년동안 수 기가에 이른다. 컴퓨터 폴더의 속성을 보았더니 무려 85기가바이트이다. 거의 매주 새로운 폴더를 생성하다 보니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하다. 꽃을 포함하여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이든지 촬영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는 스마트폰이, 왼쪽 바지 주머니에는 디카가 들어 있다. 언제든지 찍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꽃에 대한 이야기

 

법구경 47번 게송은 꽃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이가 꽃을 좋아 하여 꽃을 따모으는 것을 소재로 한 것이다.

 

 

Pupphāni heva pacinanta 뿝파니 헤와 빠찌난땅

byāsattamanasa nara,   브야삿따마나상 나랑

Sutta gāma mahogho va  숫땅 가망 마호고와

Maccu ādāya gacchati.      맛쭈 아다야 갓차띠.

 

 

오로지 꽃들을 따는데,

사람이 마음을 빼앗기면,

격류가 잠든 마을을 휩쓸어 가듯.

악마가 그를 잡아간다.

(Dhp47, 전재성님역)

 

 

むのに夢中になっているを、

がさらってくように、

っているを、

洪水してくように、____

(Dhp47, 中村元)

 

 

꽃을 꺾는 일에만 팔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은

죽음의 신이 앗아 간다.

잠든 마을을 홍수가 휩쓸어 가듯이.

(Dhp47, 법정스님역)

 

 

如有採花 여유채화

專意不散 전의불산

村睡水漂 촌수수표

爲死所牽 위사소견

(Dhp47, 한역)

 

 

아름다운 꽃을 찾아 헤매듯

마음이 감각적 쾌락에 빠져있는 자를

죽음은 먼저 앗아 가버린다.

그가 쾌락에 채 만족하기도 전에.

(Dhp47, 거해스님역)

 

 

The man immersed in

gathering blossoms,

his heart distracted:

death sweeps him away —

       as a great flood,

       a village asleep.

(Dhp47, Thanissaro Bhikkhu)

 

 

 

꽃들을 따는데 마음을 빼앗기면

 

예쁜 꽃이 있으면 눈으로 감상하고 코로 향기를 맡는다. 그러나 일부는 꽃을 따기도 한다.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이처럼 꽃을 따 모으는 자에 대하여 오로지 꽃들을 따는데, 사람이 마음을 빼앗기면(Pupphāni heva pacinanta byāsattamanasa nara)”이라 하였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Pupphāni heva pacinanta byāsattamanasa nara: DhpA.I.361에 따르면, 화환을 만드는 자는 꽃밭으로 가서 나는 꽃들을 따 모으리라.’라고 생각하며 그 밭에서 꽃을 따 모은다. 그리고 다른 꽃을 원해서 나는 여기서도 꽃을 모으리라.’라고 생각하며, 그의 마음은 꽃밭 전체로 향한다. 그러나 거기서 꽃을 따 모으지 못하면, 그의 마음은 또 다른 곳을 향하여 머뭇거리다가 그 식물에서 꽃을 딴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꽃밭에 비유되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五欲樂: pancakamaguna]가운데 내려 온다.

 

그가 즐거운 형상을 얻으면 그는 다른 즐거운 소리, 냄새, , 감촉과 같은 다른 대상을 원한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얻은 뒤에 또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다. 또는 어떤 사람은 형상을 얻은 이후에 다른 것을 원하지 않고 바로 그것을 감상하는 것을 즐긴다. 소리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축이나 하인이나 토지나 마을이나 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승단으로 출가한 자들도 건물이나 처소나 발우나 가사와 같은 것에 대하여 동일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감각적 쾌락의 대상인 꽃들을 따 모으는 사람은 그의 마음을 감각적 쾌락의 가닥에 빼앗기는 것이다. 그의 마음은 얻은 바에 빼앗길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에 빼앗긴다.

 

(법구경 654번 각주, 전재성님)

 

 

주석에서는 꽃에 대하여 감각적 쾌락의 대상, 즉 오욕락에 비유하였다. 눈과 귀 등의 감각기관으로 누구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오욕락을 추구 함에 따라 마음을 빼앗긴다. 그런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을 때도 역시 마음이 빼앗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얻은 바에 빼앗길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에 빼앗긴다.”라 한 것이다.

 

오욕락으로 사는 세상

 

꽃을 보면 눈길을 주어 꺽고 싶듯이 눈으로 형상을 취하면 갈애가 생긴다. 그래서 마음은 항상 대상을 향하여 있다. 이렇게 대상에 넋을 놓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도둑이 침입해 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넋을 놓는 것이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눈과 귀, 코 등으로 항상 대상을 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상에 마음을 빼앗겼을 때 사실상 넋을 놓고 사는 것과 같다. 누군가 옆에서 지켜 본다면 넋 나간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넋 나간 것처럼 살아 간다. 대상에 대하여 갈애를 일으키고, 갈애가 집착으로 발전 되는 등 온통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 간다. 마치 아름다운 꽃을 보고 마음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그 꽃과 같은 것이 여자나 남자일 수 있고, 재산일 수도 있고, 명예나 권력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과 귀 등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만족시키는 오욕락으로 살아 가지만, 또 한편으로 누구나 추구하는 식욕, 성욕, 안락욕, 재물욕, 명예욕 등 또 다른 오욕락으로 살아 간다.

 

네 가지 비참한 운명의 바다에

 

오욕락으로 살아 갈 때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인정사정 봐 주지 않고 흘러 가는 것이 세월이기 때문에 어느덧 죽음의 문턱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격류가 잠든 마을을 휩쓸어 가듯. 악마가 그를 잡아간다.(Sutta gāma mahogho va Maccu ādāya gacchati)”라 하였을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Sutta gāma mahogho va Maccu ādāya gacchati : DhpA.I.362에 따르면, 집들과 담장으로 이루어진 마을에 잠은 없지만, 마을주민들이 잠이 들어 알아채지 못하는 까닭에 잠자는 마을이라고 불린다. 죽음의 악마가 2-3요자나 넓이와 깊이를 가진 커다란 격류처럼 잠든 마을을 휩쓸어간다. 커다란 격류는 전체마을을 휩쓸어 남자나 여자, 가축이나 가금류 등을 흔적도 남겨 두지 않고 결국은 물고기나 거북이의 먹이가 되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형태를 띤 악마는 혼란된 마음의 사람을 휩쓸어서 목숨을 앗은 뒤에 네 가지 비참한 운명의 바다에 빠뜨린다.

 

(법구경 655번 각주, 전재성님)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기고 있을 때 대문을 열어 놓고 잠든 것이나 똑같다. 문단속을 하지 않고 도둑이나 강도가 침입 하듯이, 마음이 온통 오욕락에 빠져 있을 때 격류가 휩쓸어 버릴 수 있음을 말한다. 왜 그럴까? 알아차림이 없기 때문이다. 늘 깨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마음을 다른 곳에 두었을 때 재난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격류가 마을을 휩쓸고 가듯이라 한 것이다.

 

감각적 쾌락에 빠져 마음을 놓은 채 세월을 보냈을 때 마주 하는 것은 결국 죽음의 신이다. 그럴 경우 대게 악처라 하였다. 주석에서는 네 가지 비참한 운명의 바다라 하였는데, 이는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의 세계를 말한다. 아름다운 형상, 매혹적인 소리 등에 매료 되어 오로지 먹는 것을 즐기며, “죽어도 좋아라며 느낌에 목숨을 거는 삶을 살았을 때 결국 비참한 운명과 마주 할 것이라 한다.

 

위두다바와 관련된 이야기(Vidudabhavatthu)

 

법구경 47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은 위두다바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인연담에 따르면 꼬살라의 국왕 위두다바는 자신의 태생의 비밀을 알고 격노하였다. 47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은 다음과 같다.

 

 

이 시가 설해진 데는 이와 같은 인연담이 있다. DhpA.I.337-361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싸밧티 시에 계실 때, 급류에 휩쓸려가 죽은 비두다바와 관련된 이야기(Vidudabhavatthu)이다.

 

싸밧티 시에서 빠쎄나디 왕은 수천 명의 수행승들이 탁발하기 위해 거리를 지나 아나타삔다까(Anathapindika)와 쭐라 아나타삔디까(Culla Anathapindika), 비싸까(Visakha)와 쑵빠바싸(Suppavasa)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왕궁에서 수행승들에게 매일 공양을 올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처님의 허락을 받아 아난다 장로와 그 일행에게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여드레가 되자 궁중에서는 공양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수행승들은 떨어져 나가고 아난다 장로만 궁중에 가서 공양을 얻어 왔다. 왕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는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해서 까삘라밧투 시에 사신을 보내 싸끼야의 공주를 왕비로 삼겠다고 제안했다.

 

싸끼야족은 회의를 열어 왕족 마하나마와 노예사이에서 난 딸 바싸바깟띠야(Vasabhakhattiya)를 공주로 만들어 보냈다. 빠쎄나디 왕은 그녀를 왕비로 책봉했고, 왕비는 비두다바(Vidudabhava)라는 아들을 낳았다.

 

비두다바는 어렸을 적부터 외가에 가 보고 싶었으나 왕비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그 것을 막았다. 그러나 비두다바가 열여섯 살이 되 던 해에 외가에 가는 것을 허락했다. 싸끼야 족들의 어른들은 사전에 싸끼야 족들의 왕자들을 다른 곳에 보내고, 비두다바 왕자를 성대히 맞았고 무사히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하녀가 비두다바가 묶었던 방을 우유와 물로 씻으며 이곳이 노예인 바싸바깟띠야의 아들이 앉았던 곳이다.’라고 투덜거렸다. 한 사람이 그것을 듣고 군대에 알렸고 큰 소동이 일어나자 비두다바도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왕권을 잡으면, 나의 보좌를 그들의 목에 나오는 피로 씻을 것이다.’라고 맹세했다. 빠쎄나디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분노하고 왕비와 비두다바의 지위를 모두 박탈하고 노예로 전락시켰다.

 

며칠이 지나 부처님께서 왕궁을 방문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빠쎄나디 왕에게 싸끼야 족의 경망한 행동은 잘못이지만 왕비와 비두다바는 모두 왕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지위를 박탈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충고 했다. 그러자 빠쎄나디왕은 그들의 지위를 예전처럼 복원시켰다. 이 때 꼬쌀라국의 최고사령관은 반둘라(bhandula)이었다. 그의 아내 말리까는 한 동안 아이가 없어서 소박을 맞고 친정으로 돌아가다가 부처님께 들렸다가 다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반둘라에게 와서 아이를 열여섯 쌍둥이나 낳았다.

 

그런데 한번은 반둘라가 소송에 패한 사람의 억울함을 들어주어 자신이 재판을 주재해서 재산을 찾게 해주었다. 왕은 반둘라의 정의로운 판결 이야기를 듣고 다른 판사들을 해고 하고 반둘라에게 판결을 맡겼다. 그러자 해고된 판사들이 반둘라가 왕위를 찬탈한다고 음모하였다.

 

그것을 곧이 들은 왕은 반둘라를 제거하기 위해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가짜 명령을 반둘라에게 내렸다. 반둘라와 그의 아들 두 명이 현장으로 출동하자 왕은 그들을 참살했다. 이때에 반둘라의 부인 말리까(Malika)는 오 백명의 수행승들의 무리와 장로 싸리뿟따와 장로 마하 목갈라나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다가 이 소식을 편지로 받았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녀들이 식사를 대접하고 버터를 담은 항아리를 옮기다가 그것을 깨뜨리자 장로 싸리뿟따가 항아리는 부서지고 마는 것이다.’고 위로 했다. 그러자 그녀는 비로서 참살의 소식을 장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서른두 명의 며느리를 불러서 너희들의 남편은 죄악이 없다. 다만 전생의 악업이 성숙한 것일 뿐이다. 슬퍼하고 비탄해 하지 말고 왕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말리까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말리까는 왕을 용서하고 며느리들을 각자의 친정으로 돌려 보내고 자신은 고향인 꾸씨나라로 돌아갔다. 왕은 반둘라의 조카인 디가까라야나(Dighakarayana)를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그는 빠쎄나디 왕에게 나의 삼촌을 죽인 왕이다.’라고 욕했다.

 

왕은 반둘라를 죽인 이후에 심기가 불편하여 부처님을 만나러 갔다. 이때 사령관 디가까라야나는 비두다바 왕자를 왕으로 추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빠쎄나디왕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이 반란의 사실을 뒤늦게 알고 노구를 이끌고 조카인 왕 아자따삿투를 찾아 마가다 국으로 갔다가 성문 앞에서 더위와 피로에 지쳐 죽었다 그러자 정식으로 왕이 된 비두다바는 싸끼야 족에 당한 모욕을 상기하고 싸끼야족의 정벌에 나섰다.

 

부처님께서는 싸끼야족을 보호하기 위해 까삘라밧투 근처 비두다바의 진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늘이 없는 앙상한 나무 밑에 앉았다. 비두다바가 부처님을 보고 세존이시여, 왜 그늘이 드리운 보리수 밑에 앉지 않고 앙상한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라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대왕이시여, 상관하지 마십시오. 친지의 그늘이 나를 시원하게 해줍니다.’라고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해서 세 차례의 왕의 침공을 막았으나 네 번째에는 싸끼야 족의 업보인 것을 알고 막지 않았다.

 

비두다바는 까삘라밧투로 진격해서 싸끼야족을 거의 모두 죽였다. 싸끼야 족은 훌륭한 전사이었고 활쏘기의 명수들이었으나 전쟁에서 활솜씨만을 보여주고 적은 죽이지 않았다. 정직하고 비폭력적이었던 싸끼야 족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은 풀잎-싸끼야 족과 갈대잎-싸끼야 족인데, 그들은 풀잎이나 갈대잎을 물고는 적들이 싸끼야 족인가?’라고 물으면, ‘아니요, 풀잎입니다.’라든가 아니요, 갈대잎입니다.’라고 대답하여 죽임을 면한 사람들이었다.

 

비두다바가 성공적으로 싸끼야 족을 죽이고 철수하다가 아찌라바띠(Aciravati)강변에서 야영했다. 그런데 밤중에 강의 상류에 큰 폭우가 내려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비두다바와 수천의 군사들은 몰살당했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 수행승들이여, 존재의 욕구가 충족되더라도 격류가 잠든 마을을 휩쓸어 가듯, 죽음의 왕이 목숨을 앗아 윤회의 고통에 빠뜨린다.’고 말했다. 이어서 시로써 오로지 꽃들을 따는데, 사람의 마음이 빼앗기면, 격류가 잠든 마을을 휩쓸어 가듯, 악마가 그를 잡아간다.”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든 경지 등을 성취했다.

 

(법구경 47번 게송 인연담, 죽은 비두다바와 관련된 이야기(Vidudabhavatthu), 전재성님역)

 

 

법구경 47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은 꼬살라의 왕 위두다바(Vidudabhava)의 태생에대한 비밀과 관련이 있다. 위두다바와 관련하여 맛지마니까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 것에 대한 경(M87)’“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장군 비두다바를 사랑합니까?(M87)”라는 말이 나온다. 깐나깟탈라의 경(M90)’에서 위두다바가 아난다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다른 니까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위두다바의 출생의 비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 것에 대한 경(M87)’에서 위두다바에 대한 주석을 보면 빠세나디 왕의 아들로 왕비 바싸바(Vasabha)사이에 난 아들이다. 아버지 빠쎄나디의 왕위를 찬탈하고 어머니 바싸바의 신분을 속인 싸끼야 족을 멸망시킨다.(M87, 1544번 각주)”라고 설명되어 있다. 태생의 비밀을 알자 격노하여 싸끼야족을 멸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비밀이 있었기에 격노하였을까? 경에서 말리까왕비가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왕족의 규수 바싸바를 사랑합니까?(M87)”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바싸바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Vasabha: Pps.III.345에 따르면, 빠세나디 왕의 비의 이름으로 바싸박캇띠야라고도 불린다. 그녀는 원래 싸끼야 족의 대신 마하나마와 하녀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는데, 싸끼야 족들이 그 신분을 속이고 빠세나디 왕의 요구를 받아 들여 왕비로 보내진 여인이었다. 빠세나디 왕은 부처님을 존경한 나머지 싸끼야 족의 출신 왕족여인을 왕비로 맞고 싶어 했다. 그녀의 아들이 비두다바였는데 나중에 자신의 어머니의 신분을 알고 싸끼야족을 멸망시킨다.

 

(맛지마니까야 1542번 각주, 전재성님)

 

 

위두다바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다. 빠세나디왕이 부처님을 존경하여 싸끼야 족과 인연을 맺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부심 강한 싸끼야 족에서는 하녀에게서 난 공주를 왕비로 시집 보낸 것이다. 이런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위두다바가 격노하여 싸끼야 족을 멸망시킨다.

 

싸끼야 족의 멸망을 막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인연담에 따르면 부처님은 싸끼야 족의 멸망을 막기 위하여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싸끼야 족의 멸망은 부처님도 어쩔 수 없었다. 세 번째 까지 막았으나 네 번째에서는 싸끼야 족의 업보인 것을 알고 막지 않았다.”라고 설명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녀에게서 난 왕족을 빠세나디왕의 비로 보낸 것이 나중에 화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위두다바 역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 한다. 싸끼야 족을 멸망시키고 강가에서 야영하다 불어난 물 때문에 휩쓸려 군대와 함께 몰살 된 것이다. 이와 관련 된 게송이 법구경 47 48번 게송이다.

 

 

오로지 꽃들을 따는데,

사람이 마음을 빼앗기면,

격류가 잠든 마을을 휩쓸어 가듯.

악마가 그를 잡아간다. (Dhp47)

 

 

오로지 꽃들을 따는데,

사람이 마음을 빼앗기면,

욕망이 채워지기 전에

악마가 그를 지배한다. (Dhp48)

 

 

 

2014-12-0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