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번역비교

어둠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빛에서 빛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2. 3. 19:15

 

어둠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빛에서 빛으로

 

 

 

내가 왕년에…”

 

옛날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옛날 일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도있다. 이렇게 옛날을 회상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내가 왕년에…”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로 나이 먹은 사람들이 옛일을 떠 올린다. 새롭게 하는 일이 없어서 이미 지나간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옛날 일을 자주 떠 올린다는 것은 현재가 옛날 보다 못해서 일 것이다. 옛날 보다 지금이 더 낫다면 굳이 옛일을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을 회상하며 사는 사람들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간 것과 같다. 마치 큰 집에서 살다가 작은 집에서 사는 것과 같고, 큰 차를 타고 다니다가 걸어 다니는 것과 같다. 경에 따르면 빛에서 어둠으로 이동한 것과 같다.

 

네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초기경전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경에 따르면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사람,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 빛에서 빛으로 가는 사람입니다.(S3.21)”라 하였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Kathañca mahārāja, puggalo tamotamaparāyao hoti? Idha mahārāja ekacco puggalo nīce kule paccājāto hoti caṇḍālakule vā veakule vā nesādakule vā rathakārakule vā pukkusakule vā daidde appannapānabhojane kasiravuttike yattha kasirena ghāsacchādo labbhati.

 

 So ca hoti dubbaṇṇo duddasiko okoimako bavhābādho. Kāo vā hoti kuīvā khañjo vā pakkhahato vā na lābhī annassa pānassa vatthassa yānassa mālāgandhavilepanassa seyyāvasathapadīpeyyassa.

 

So kāyena duccarita carati. Vācāya duccarita carati. Manasā duccarita carati. So kāyena duccarita caritvā vācāya duccarita caritvā manasā duccarita caritvā kāyassa bhedā parammaraā apāya duggati vinipāta niraya upapajjati.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andhakārā vā andhakāra gaccheyya, tamā vā tama gaccheyya, lohitamalā vā lohitamala gaccheyya, tathūpamāha mahārāja ima puggala vadāmi. Eva kho mahārāja puggalo tamotamaparāyao hoti.

 

 

대왕이여, 사람이 어떻게 해서 어둠에서 어둠으로 갑니까? 대왕이여, 여기 어떤 사람이 비천한 가문인 짠달라의 집이나 죽세공의 집이나 사냥꾼의 집이나 수레를 고치는 집이나 청소부의 집이나 또는 가난한 집에 태어납니다.

 

그의 집에는 음식물이 부족하고 생계가 곤란하여 어렵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습니다. 그는 아름답지 않거나 흉칙하게 보이거나 기형이거나 등이 굽었거나 병이 많거나 애꾸눈이거나 손이 뒤틀렸거나 절름발이거나 반신불수입니다. 그는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탈 것, 꽃장식, 향료, 크림, 침상, , 등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신체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언어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정신적으로 나쁜 일을 합니다. 그가 신체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언어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정신적으로 나쁜 일을 하면 몸이 부서진 뒤 죽어서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대왕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암흑에서 암흑으로 가고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며 피와 같은 어둠에서 피와 같은 어둠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나는 이 사람이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어둠에서 어둠으로 갑니다.

 

(Puggalasutta-사람의 경, 상윳따니까야 S3.21, 전재성님역)

 

 

 

hell

 

 

어둠에 처해 있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경에서는 천민에 대하여 묘사 되어 있다 어느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천민을 말한다. 흔히 불가촉천민이라 한다.

 

짠달라(caṇḍāla)

 

불가촉천민에 대한 직업으로 짠달라(caṇḍāla) 등이 열거 되어 있다. 여기서 짠달라는 무엇을 말할까? 각주에 따르면 죽은 소의 고기를 먹고 사는 가장 하천한 불가촉천민을 말한다.(상윳따1 931번 각주)”라고 설명되어 있다. 초불연에서는 짠달라(caṇḍāla)에 대하여 천민의 가문이라 번역하였다. 빠알리사전 PCED194에서는 ‘an outcaste or untouchable’라 설명 되어 있다. 빅쿠보디는 ‘a family of caṇḍāla’라 하여 빠알리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짠달라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을 대표하는 말이라 볼 수 있다.

 

불가촉천민(untouchable)?

 

불가촉천민은 백과사전에 따르면 전통적인 인도 사회에서 가장 낮은 카스트에 속하는 수많은 집단 또는 카스트 체계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정의 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인도에서는 법으로 차별행위가 금지 되어 있다. 1949년 인도의 제정된 헌법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인도에서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계급에도 들어 가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에 대하여 하리잔이라 부른다. 그러나 아무리 법으로 금하고 있지만 여전히 차별은 존재한다. 그들과 접촉하면 오염된다고 생각하여 일체 접촉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가촉천민은 주로 더럽고 힘든 일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① 어부 같은 사람들, ② 소를 죽이거나 죽인 소를 치우는 일 또는 가죽무두질을 하면서 생계를 잇는 사람들, ③ ·오줌··침 등 인체의 배설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청소부나 세탁부, ④ 쇠고기를 먹거나 집돼지·닭 등의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 되어 있다. 이런 직업은 경에서 표현된 짠달라의 집이나 죽세공의 집이나 사냥꾼의 집이나 수레를 고치는 집이나 청소부의 집이라는 구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가난은 일반적으로 대물림된다고 하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보다 높은 지위로 올라 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최하위 카스트에서 상위 카스트로 이동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더구나 선행 보다 악행을 더 많이 하였을 때 더 낮은 세계로 떨어질 수 있다. 그것은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에 따른다.

 

신구의 삼업이 악업이 되었을 때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몸이 부서진 뒤 죽어서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라 하였다. 여기서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apāya duggati vinipāta nirayaṃ)이라 하였는데 이는 어떤 뜻일까?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apāya duggati vinipāta niraya: Mrp.I.57에 따르면, 각각 괴로운 곳(苦處: apāya), 악한 운명(惡趣: duggati), 타락한 곳(墮處: vinipāta), 지옥(地獄: niraya)은 모두 지옥의 동의어이다.

 

그러나 Las.I.51에 따르면, 이 말들은 각각 서로 다른 네 가지 하층의 세계를 의미한다. 즉 차례로 축생, 아귀의 세계, 아수라의 무리, 지옥을 의미한다. 지옥은 어원적으로 산산 조간난 것이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경전상에서는 네 가지는 동의어로 네 가지 하층의 세계를 모두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상윳따1 935번 각주, 전재성님)

 

 

‘apāya duggati vinipātaṃ’는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을 뜻하는데 지옥과 동의어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분류방식에 따르면 축생, 아귀의 세계, 아수라의 무리라 한다 빅쿠보디는 the plane of misery, in a bad destination, in the nether world”라 하였다. 각묵스님은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趣], 파멸처라 하였다.

 

표를 만들어 보면

 

‘apāya duggati vinipātaṃ’에 대하여 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빠알리어

apāya

duggati

vinipāta

전재성님역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빅쿠보디역

the plane of misery

a bad destination

the nether world

각묵스님역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趣]

파멸처

상징(Las.I.51)

축생

아귀의 세계

아수라의 무리

 

 

초기경전에서 apāya duggati vinipāta nirayaṃ”문구는 정형화 되어 있다. 그래서 초기경전 도처에서 있는데전재성님은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이라 하였고, 초불연에서는 대괄호를 이용한 한자어와 함께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趣], 파멸처, 지옥이라 번역하였다. 그런데 Las.I.51에 따르면, apāya duggati vinipāta 대하여 축생, 아귀의 세계, 아수라의 무리의 라고 대비하여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파레토의 법칙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것은 악행을 저질렀을 때이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저질렀을 때 어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경에서는 암흑에서 암흑으로 가고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며 피와 같은 어둠에서 피와 같은 어둠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라 하였다. 이는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도 알 수 있다.

 

범죄를 저질로 교도소에서 살다 나온 자를 일반적으로 전과자라 한다. 그런데 전과자 중에는 전과 3범이니 5범이니 하는 딱지가 붙어 있다. 이렇게 별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범죄를 저지른 자가 또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전체 범죄 중에 전과자의 의하여 저질러 진 범죄가 약 80%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소수의 전과자들이 범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파레토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80 20법칙이라고 한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백과사전에 표현 되어 있는 몇 가지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통화한 사람 중 20%와의 통화시간이 총 통화시간의 80%를 차지한다.

-즐겨 입는 옷의 80%는 옷장에 걸린 옷의 20%에 불과하다.

-전체 주가상승률의 80%는 상승기간의 20%의 기간에서 발생한다.

-20%의 운전자가 전체 교통위반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른다.

-성과의 80%는 근무시간 중 집중력을 발휘한 20%의 시간에 이뤄진다.

-두뇌의 20%가 문제의 80%를 푼다.(<??) 우수한 20%의 인재가 80%의 문제를 해결한다. 혹은 뇌의 20프로만 사용하여 문제 해결에 필요한 80%를 해결한다

-운동선수 중 20%가 전체 상금 80%를 싹쓸이한다.

-인터넷 유저의 20% 80%의 양질의 정보를 생산한다.

 

(파레토 법칙, 위키백과)

 

 

파레토라는 명칭은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모든 사회현상에 공통적인 비율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범죄 역시 80 20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체 범죄 중에 80% 20%의 전과자에 의하여 저질러 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둠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대부분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기 때문이다.

 

악처에서 수평이동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것에 대하여 암흑에서 암흑으로 가고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며 피와 같은 어둠에서 피와 같은 어둠으로라 하였다. 이는 “andhakārā vā andhakāra gaccheyya, tamā vā tama gaccheyya, lohitamalā vā lohitamala gaccheyya”구절에 대한 번역이다. 각묵스님은 암흑천지에서 암흑천지로 가거나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거나 더러운 곳에서 더러운 곳으로 가거나라 하였다. 빅쿠보디는 darkness to darkness, or from gloom to gloom, or from stain to stain”라 하였다. 번역차이가 있다면 세 번째 항의 lohitamalā에 대한 것이다.

 

Lohitamalā‘lohita(blood) +mala(stains)’의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Lohitamalā는 피와 같이 오염된 곳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재성님은 피와 같은 어둠이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각묵스님은 더러운 곳이라 하였다. 이는 빅쿠보디의 stain’과 일치 한다. 그렇다면 왜 피와 같이 오염된 것이라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아수라의 무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는 Las.I.51에 따르면 vinipāta에 대하여 아수라의 무리라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수라는 싸우기 좋아 하는 신들이 사는 악처이다. 그래서 하늘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삼십삼천의 신들과 전쟁을 하며 지냈다. 전쟁을 하면 피를 흘리기 때문에 피처럼 오염된 곳이라는 뜻의 Lohitamalā이 아수라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것에 대하여 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빠알리어

andhakārā

tamā

lohitamalā

영어

Darkness,

bewilderment

darkness, ignorance

lohita(blood) +mala(stains)

전재성님역

암흑

어둠

피와 같은 어둠

빅쿠보디역

darkness

gloom

stain

각묵스님역

암흑천지

어두운 곳

더러운 곳

상징

축생

아귀의 세계

아수라의 무리

 

 

andhakārā에 대하여 축생으로, tamā에 대하여 아귀의 세계로, lohitamalā에 대하여 아수라의 무리로 놓았다. 이는 주석적 근거를 갖지 않는 개인적 견해이다. 그런데 어둠에서 어둠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하여 암흑에서 암흑으로’ ‘어둠에서 어둠으로’ ‘피와 같은 어둠에서 피와 같은 어둠으로라 하였다. 암흑(andhakārā)에서 어둠(tama)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암흑(andhakārā)에서 암흑(andhakārā)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다름아닌 수평이동을 뜻한다. Andhakārā를 축생이라 하였을 때 축생들은 축생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한다. tama아귀의 세계라 하였을 때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한다.

 

한번 축생으로 태어나면 계속 축생으로 태어나기 쉽다. 한번 아귀로 태어나면 연속해서 아귀로 태어나기 쉽다. 아수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축생은 축생의 행위를 하기 때문에 축생으로 태어나고, 아귀나 아수라 역시 아귀나 아수라의 행위를 하기 때문에 또다시 그런 존재로 태어난다. 그래서 암흑에서 암흑으로 가고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며 피와 같은 어둠에서 피와 같은 어둠으로라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는 빛에서 빛으로 가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선처에서 수평이동

 

빛에서 빛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선처에서 난 자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선업을 쌓아 계속 선처에 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수레에서 수레로 옮기고 말의 등에서 말의 등으로 옮기고 코끼리의 어깨에서 코끼리의 어깨로 옮기고 궁전에서 궁전으로 옮기고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수레에서 말로, 말에서 코끼리의 어깨로 라는 식으로 상향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수평이동에 대한 것이다. 그것도 수레, , 코끼리, 궁전 이렇게 네 가지에 한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네 가지 경우에 대하여 단지 개별적으로 수평이동하는 것으로 설명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각주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추론할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하여 욕계천상, 색계, 무색계 이렇게 네 곳을 선처라 하는데, 이를 말, 수레, 코끼리, 궁전으로 대비하여 볼 수 있다. 그래서 한번 인간으로 태어나면 계속 인간으로 태어나고, 한번 욕계천상에 태어나면 계속 욕계천상에 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빛에서 빛으로 이동시에는 상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선처로 에스컬레이트하려면

 

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악처에서 선처로 상향되는 케이스에 해당된다. 이럴 경우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그가 신체적으로 착한 일을 하고 언어적으로 착한 일을 하고 정신적으로 착한 일을 하면 몸이 부서진 뒤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납니다.

 

대왕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지상에서 수레에 오르고 수레에서 말의 등에 오르며 말의 등에서 코끼리의 어깨에 오르고 코끼리의 어깨에서 궁전으로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나는 이 사람이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어둠에서 빛으로 갑니다.

 

(Puggalasutta-사람의 경, 상윳따니까야 S3.21, 전재성님역)

 

 

Puggalasutta라는 경의 제목이 암시 하듯이 인간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이다. 현재 비참한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이 선행을 하면 선처에 날 수 있음을 말한다.그래서 형벌과 같은 삶을 사는 자(지상)가 선행을 하면 높은 지위의 인간(수레), 욕계천상(), 색계천상(코끼리), 무색계천상(궁전)으로 에스컬레이트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주석에 없는 개인적인 견해이다.

 

빛에서 어둠으로 가기는 쉽다

 

가장 비참한 것은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자이다. 마치 크고 화려한 집에 살다가 사업이 망해서 햇볕도 들지 않는 지하방으로 들어 가는 것과 같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대왕이여, 사람이 어떻게 해서 빛에서 어둠으로 갑니까? 대왕이여, 여기 어떤 사람이 부유하고 돈이 많고 호화롭고 금과 은이 많고 재물이 풍부하고 재산과 곡식이 많은 권세 있는 귀족의 집이나 권세 있는 성직자의 집이나 권세 있는 장자의 집과 같은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보기에 좋고 깨끗하고 연꽃과 같은 최상의 아름다움을 갖추었습니다. 그는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탈 것, 꽃장식, 향료, 크림, 침상, , 등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체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언어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정신적으로 나쁜 일을 합니다. 그가 신체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언어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정신적으로 나쁜 일을 몸이 부서진 뒤 죽어서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대왕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궁전에서 코끼리의 어깨에 내리고 코끼리의 어깨에서 말의 등에 내리고 말의 등에서 수레로 내리고 수레에서 땅으로 내리고 땅에서 암흑으로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빛에서 어둠으로 갑니다.

 

(Puggalasutta-사람의 경, 상윳따니까야 S3.21, 전재성님역)

 

 

어둠에서 빛으로 가기는 어렵다. 선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에서 어둠으로 가기는 쉽다. 선행 보다 악행을 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향하는 것을 보면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궁전에서 살다가 코끼리 어깨로 내려 가는 등 계속 하향하다고 마침내 땅까지 내려 온다. 여기서 땅의 의미는 바닥을 의미한다. 경의 제목이 Puggalasutta이므로 사람으로 따지면 형벌과도 같은 삶을 말한다.

 

밝은 곳인가 빛나는 곳인가?

 

빛에서 어둠으로 내려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행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업은 쌓지 않고 악업만 쌓는 다면 마치 은행의 잔고가 점점 줄어 드는 것과 같다. 그래서 큰 집에서 중간 집으로 옮기고 마침내 햇볕도 들지 않는 지하방으로 옮겨 가는 것과 같다. 물론 이는 비유이다.

 

경에서 궁전이라 표현한 것은 무색계천상이라 볼 수 있다. 코끼리의 어깨는 색계천상, 말의 등은 욕계천상, 수레는 지위가 높은 인간, 땅은 지위가 낮은 인간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전재성님은 천상과 같은 높은 지위에 대하여 빛이라 하였다. 그래서 어둠에서 빛으로라 하였을 때 여기서 말하는 빛은 밝은 곳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천상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디가니까야 아간냐경에 따르면 바쎗타여, 언제 어느 때인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이 세계가 괴멸하는 시기가 있다. 세상이 괴멸할 때에 대부분 뭇삶들은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의 세계에 태어난다. 그들은 거기서 정신으로 이루어진 자로서, 기쁨을 먹고 지내고, 스스로 빛을 내고, 허공을 날며, 영광스럽게 오랜 세월을 산다. (D27)”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색계천상을 말한다. 색계천상에 사는 자들은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하늘을 날아 다니고 빛을 내고 기쁨을 먹고 사는 자들이라 하였다. 또 미연마의 속담에 빛나던 범천도 돼지우리에서는 꿀꿀거리네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천상에 사는 존재들은 빛나는 존재들이라 볼 수 있다.

 

빛에서 어둠으로 간다고 하였을 때, 빛은 천상을 뜻하고 어둠은 지옥을 의미한다. 이렇게 빛에서 어둠으로가는 것에 대하여 빠알리어로는 ‘jotitamaparāyao’로 표현 되어 있다. 여기서 빛에 해당되는 말이 jotita(illuminated)이다. Joteti의 과거분사형으로서 illuminated(채식된, 빛을 받은, 조명된)의 뜻이다. 그런데 각묵스님의 번역을 보면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라 하였다.  빅쿠보디는 light to darkness(밞음에서 어둠으로)”라 하였다.

 

천상을 뜻하는 곳이 단지 밝은 곳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밝은 곳이라기 보다 빛나는 곳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빛나는 존재는 하늘을 날아 다닐 수 있고 기쁨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는 아간냐경(D27)에서 색계천상의 존재가 빛나는 존재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천상은 빛나는 곳이다. 그럼에도 천상의 세계에 대하여 단지 밝은 곳이라 한 것은 부적절한 표현이라 본다.

 

수평이동과 상하이동

 

사람의 경(puggalasutta)에서는 네 종류의 인간이 설명되어 있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빛에서 빛으로 이렇게 네 가지 경우가 있다. 이 중에서 어둠에서 어둠으로빛에서 빛으로의 경우는 수평이동에 대한 것이고, 어둠에서 빛으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 가듯이 상향이동이고, 반대로 빛에서 어둠으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 가듯이 하향이동이다. 여기서 빛은 천상을 상징하고 어둠은 지옥을 상징한다. 모두 몸이 부서져 죽은 다음의 세계를 말한다.

 

네 종류의 경우에 대한 게송이 있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빠알리어

전재성님역

각묵스님역

빅쿠보디역

Daiddo puriso rāja assaddho hoti maccharī,

Kadariyo pāpasakappo micchādiṭṭhi anādaro.

 

[세존]

대왕이여, 어떤사람은

가난하고 믿음이 없고 인색하며

비열하고 나쁜생각,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무례하네.

어떤 사람 가난한데

믿음 없고 인색하고

구두쇠에 악한 생각 품고 있고

삿된 견해 가졌으니 존경받지 못하도다.

"The person, 0 king, who is poor,

Lacking in faith, stingy,

Niggardly, with bad intentions,

Wrong in views, disrespectful,

Samao brāhmae vāpi aññe vāpi vaibbake3,

Akkosati paribhāsati natthiko hoti rosako,

Dadamāna nivāreti yācamānāna bhojana.

 

수행자나 성직자나

다른 걸식자를 비웃고 매도하니

허무주의자로서

걸핏하면 화를 내는 자로서

탁발하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을 방해한다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다른 걸식하는 자들을

욕하고 비방하는 그를 일러 사람들은

허무주의자요 조롱하는 자라 칭하나니

음식 구해 찾아온 자들에게

베푸는 것조차 방해하도다.

Who abuses and reviles ascetics,

Brahmins, and other mendicants;

A nihilist, a scoffer, who hinders

Another giving food to beggars:

Tādiso puriso rāja mīyamāno janādhipa,

Upeti niraya 1 ghora tamotamaparāyao.

 

대왕이여, 백성의 주인이여!

그런 사람은 죽어서

무서운 지옥으로 떨어지니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것이네.”

만백성의 주인인 왕이여, 이런 인간 죽어서

무시무시한 지옥에 떨어지나니 그가 바로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는 자도다.”

When such a person dies, 0 king,

He goes, lord of the people,

To the terrible hell,

Heading from darkness to darkness.

 

 

첫 번째 게송을 보면 Daiddo puriso rāja assaddho hoti maccharī”구절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대왕이여, 어떤사람은 가난하고 믿음이 없고 인색하며라 하였다. Rāja에 대하여 대왕이라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각묵스님의 번역을 보면 Rāja에 대한 번역이 빠져 있다. 그래서 게송만 본다면 혼자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라자에 대한 실역(失譯)’이라 본다. 빅쿠보디의 경우 The person, 0 king”이라 하여 Rāja에 대하여 king으로 번역하였다.

 

첫 번째 게송에서 anādaro가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무례하네라 하였다. 그러나 각묵스님은 존경받지 못하도다라 하였다. 이는 전혀 다른 말이다. 빅쿠보디는 disrespectful(경의를 표하지 않는, 실례되는, 예절이 없는)”라 번역하였다

 

anādaro에 대한 빠알리 사전을 보면 “Disrespectful, careless, reckless, bold”라 되어 있다. 무례하고 예의 없다는 뜻이다. 왜 이런 표현을 하였을까? 그것은 이어지는 두 번째 게송에 답이 나와 있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자들은 수행자나 성직자에게 보시를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방해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대단히 무례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첫 번째 게송과 두 번째 게송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초불연에서는 존경받지 못하도다라 하여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어둠에서 빛으로

 

 

빠알리어

전재성님역

각묵스님역

빅쿠보디역

Daiddo puriso rāja saddho hoti amaccharī,

Dadāti seṭṭhasakappo abyaggamanaso4 naro.

 

[세존]

대왕이여, 어떤 사람은

가난하지만 믿음이 있고 인색하지 않고

보시를 하고 훌륭한 생각을 하며

마음이 산란하지 않네.

어떤 사람 가난하나

믿음 있고 인색않고

보시하고 고결한 생각 품고 있고

그의 마음 산란하지 않도다.

"The person, 0 king, who is poor,

Endowed with faith, generous,

One who gives, with best intentions,

A person with unscattered mind

Samae brāhmae vāpi aññe vāpi vaibbake,

Uṭṭhāya abhivādeti samacariyāya sikkhati,

Dadamāna na vāreti1 yācamānāna bhojana.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나

다른 걸식자에게도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올바른 행위로 자신을 닦아,

탁발하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다른 걸식하는 자들을

일어나서 맞이하고 공경하는 그를 일러

바른 행실 공부짓는 선한 자라 칭하나니

음식 구해 찾아온 자들에게

베푸는 것 방해않도다.

Who rises up and venerates ascetics,

Brahmins, and other mendicants;

One who trains in righteous conduct,

Who hinders none giving food to beggars:

Tādiso puriso rāja mīyamāno2 janādhipa,

Upeti tidiva hāna tamojotiparāyao.

 

대왕이여, 백성의 주인이여!

그런 사람은 죽어서

서른셋 하늘나라에 이르니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것이네.”

만백성의 주인인 왕이여, 이런 인간 죽어서

삼십삼천의 [천상]세계로 가나니그가 바로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는 자도다.”

When such a person dies, 0 king, <215>

He goes, lord of the people,

To the triple heaven,

Heading from darkness to light.

 

 

첫 번째 게송에 amaccharī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인색하지 않고라 하였다. 이에 반하여 각묵스님은 인색않고라 하였다. ‘인색않고라는 말은 어법에 맞지 않다. 마치 안인색하고라 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 게송에 sikkhati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자신을 닦아라 하였다. 각묵스님은 공부짓는라 하였다. Sikkhati‘learns; trains oneself; practises’의 뜻이다. 배우고 훈련하고 연습한다는 뜻이다. 이는 수행을 뜻한다. 그런데 초불연에서는 공부짓는다라 하였다. 하지만 공부짓다라는 말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다. ‘공부하다라는 말은 있어도 공부짓다라는 말은 없다. 아마 선가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일 것이다.

 

 

빛에서 어둠으로

 

 

빠알리어

전재성님역

각묵스님역

빅쿠보디역

Aḍḍho ce puriso rāja assaddho hoti macchari,

Kadariyo pāpasakappo micchādiṭṭhi anādaro.

 

[세존]

대왕이여, 어떤 사람은 부자지만

믿음이 없고 인색하며,

비열하고 나쁜 생각을 하고,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무례하네.

어떤 사람 부유하나

믿음 없고 인색하며

구두쇠에 악한 생각 품고 있고

삿된 견해 가졌으니 존경받지 못하도다.

"The person, 0 king, who is rich,

Lacking in faith, stingy,

Niggardly, with bad intentions,

Wrong in views, disrespectful,

Samae brāhmae vāpi aññe vāpi vaibbake,

Akkosati paribhāsati natthiko hoti rosako,

Dadamāna nivāreti yācamānāna bhojana.

 

수행자나 성직자나

다른 걸식자를 비웃고 매도하니

무엇이든지 부정하고

화를 내고 탁발하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을 방해한다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다른 걸식하는 자들을

욕하고 비방하는 그를 일러 사람들은

허무주의자요 조롱하는 자라 칭하나니

음식 구해 찾아온 자들에게

베푸는 것조차 방해하도다.

Who abuses and reviles ascetics,

Brahmins, and other mendicants;

A nihilist, a scoffer, who hinders

Another giving food to beggars:

Tādiso puriso rāja mīyamāno janādhipa,

Upeti niraya ghora jotitamaparāyao.

 

대왕이여, 백성의 주인이여!

그런 사람은 죽어서

무서운 지옥으로 떨어지니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것이네.”

만백성의 주인인 왕이여, 이런 인간 죽어서

무시무시한 지옥에 떨어지나니 그가 바로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는 자도다.”

When such a person dies, 0 king,

He goes, lord of the people,

To the terrible hell,

Heading from light to darkness.

 

 

두 번째 게송에서 natthiko’가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고라 하였다. 각묵스님은 허무주의자요라 하였다. 이렇게 다르게 번역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초불연과 cdb의 각주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전재성님은 다음과 같이 각주 하였다.

 

 

natthiko: 이 단어에 대하여 Srp.I.163은 침묵하고 있지만, Krs.I.120‘natthiko’친구가 없고(there’s no fellow)’로 해석하고 Ggs.I.149허무주의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부정하고로 해석한다.

 

(상윳따1 939번 각주)

 

 

Natthiko에 대한 전재성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빠알리 주석서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Krs.I.120Ggs.I.149에서는 주석이 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전재성님의 경우 여러 가지 번역본을 비교 검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동국대 정각원 법회에서 제가 독일에서 공부를 해 보니까 티베트대장경, 빠알리대장경, 산스크리트대장경을 다 진열해 놓고 봐요. 그런데 보니까 한문도 한줄이 빠진거에요. 산스크리트나 빠알리에 있는데 한문이 한줄이 없어요. 이건 사경사가 졸다가 빼 먹은 거에요. (2012년 3월31 정각원 토요법회)”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빠알리니까야를 번역하는데 있어서 다수의 번역본과 각주, 그리고 검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전재성님은 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 티벳어 등 칠개국어에 능하다고 한다.

 

Natthiko에 대하여 빠알리 주석에서 별다른 설명이 없다고 한다. 빅쿠보디의 CDB에서도 설명이 없다. 이 단어에 대하여 빅쿠보디는 A nihilist(허무주의자)’라 번역하였다. 각묵스님도 역시 허무주의자라 번역하였다. Natthika에 대한 빠알리사전 PCED194를 보면 “one who professes the motto of “natthi,”라 되어 있다. 없음을 주장하는 자들을 말한다. 단멸론자나 허무주의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 게송을 보면 무례한 부자들임을 알 수 있다. 부유하게 살면서도 걸식자를 꾸짖는 자들을 말한다. 부처님 당시 바라문들이 이에 해당된다.

 

악꼬사까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 바라문에 대하여  그는 화가 나서 불만스럽게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 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무례하고 추악한 말로 비난하고 모욕했다.(S7.2)”라는 구절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자들은 걸식자를 꾸짖는 무례한 바라문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두 번째 게송에서 수행자나 성직자나 다른 걸식자를 비웃고 매도하니 무엇이든지 부정하고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각묵스님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다른 걸식하는 자들을 욕하고 비방하는 그를 일러 사람들은 허무주의자요라 하였다.

 

부유하면서도 걸식자를 꾸짖는 이야기는 상윳따니까야 바라문의 모음(S7)뿐만 아니라 숫따니빠따에서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바라문은 카스트의 최상층에 속해 있다. 그런 바라문이 단멸에 근거한 허무주의적 견해를 가졌을 리 없다. 그래서일까 전재성님은 Natthiko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부정하고라 번역한 것이라 본다. 그러나 초불연에서는 허무주의자라 하였다. 이는 빅쿠보디가 A nihilist’라고 번역한 것과 일치 한다.

 

 

빛에서 빛으로

 

 

빠알리어

전재성님역

각묵스님역

빅쿠보디역

Aḍḍho ve puriso rāja saddho hoti amaccharī,

Dadāti seṭṭhasakappo abyaggamanaso naro.

 

[세존]

대왕이여, 어떤 사람은 부자이면서

믿음이 있고 인색하지 않으며,

보시를 하고 훌륭한 생각을 하며,

마음이 산란하지 않네.

어떤 사람 부유하고

믿음 있고 인색않고

보시하고 고결한 생각 품고 있고

그의 마음 산란하지 않도다.

"The person, 0 king, who is rich,

Endowed with faith, generous,

One who gives, with best intentions,

A person with unscattered mind

Samao brāhmae vāpi aññe vāpi vaibbake,

Uṭṭhāya abhivādeti samacariyāya sikkhati,

Dadamāna na vāreti yācamānāna bhojana.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나

다른 걸식자에게도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올바른 행위로 자신을 닦아,

탁발하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다른 걸식하는 자들을

일어나서 맞이하고 공경하는 그를 일러

바른 행실 공부짓는 선한 자라 칭하나니

음식 구해 찾아온 자들에게

베푸는 것 방해않도다.

Who rises up and venerates ascetics,

Brahmins, and other mendicants;

One who trains in righteous conduct,

Who hinders none giving food to beggars:

Tādiso puriso rāja mīyamāno janādhipa,

Upeti tidiva hāna jotijotiparāyaoti.

 

대왕이여, 백성의 주인이여!

그런 사람은 죽고나서

서른셋 하늘나라에 이르니

빛에서 빛으로 가는 것이네.”

만백성의 주인인 왕이여, 이런 인간 죽어서

삼십삼천의 [천상]세계로 가나니그가 바로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는 자도다.”

When such a person dies, 0 king,

He goes, lord of the people,

To the triple heaven,

Heading from light to light."

 

 

 

 

2014-12-0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