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후기

리더들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는 ‘철의 여인’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2. 10. 12:00

 

리더들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는 철의 여인

 

 

머슴부리듯이

 

회항사건이 커다란 사회이슈화 되고 있다. 항공사의 여부사장이 서비스가 불친절하다고 노발대발한 것이다. 그 결과 비행기가 도중에 회항하게 된 사건을 말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땅콩회향이라 한다. 기내 서비스를 담당하는 승무원이 땅콩을 봉지째 준 것이 발단이다.

 

여부사장은 재벌3세이다. 그러다보니 능력에 관계없이 요직에 앉아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어서일까 회사가 커 나감에 따라 창업자의 가족은 물론 주변 친척까지 포진하게 된다.

 

가족이 회사경영에 참여 하게 되었을 때 흔히 족벌경영이라 한다. 그런데 족벌경영을 하면 할수록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게끔 되어 있다. 왜 그런가? 전문경영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경영능력이 있으면 모를까 대부분 가족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손쉽게 정상에 올라 가 있는 자들을 보면 대게 자질이 부족하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척이 포진 하고 있는 회사에 가지 말라고 한다. 올라가보아야 한계가 있고 마치 머슴부리듯이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땅콩회항사건도 족벌경영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바로 이 맛이야!” 병장권력

 

사람이 정상에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아래로 보이는 모양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분노하면 조직은 순식간에 얼어 버린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최고책임자의 기분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조직의 장이 화를 낸다면 고개를 숙여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상하관계가 확실하게 성립하고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이럴 때 조직의 장은 권력의 맛을 느낀다. 하다못해 가장 작은 권력이라는 병장도 권력의 맛을 안다. 병장은 내무반에서 왕 못지 않은 권력을 향유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갖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내 뜻에 따른다. 내 명령대로 따르는 것을 보았을 때 바로 이 맛이야!”라고 말할지 모른다. 누구나 한번쯤 맛 보았을 병장권력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권력을 행사하면 할수록 오만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그렇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면 그 오만함은 절정에 달할 것이다. 특히 콤플렉스있는 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렇다.

 

EBS에서 철의 여인을 보고

 

EBS에서 철의 여인을 보았다. 몇 년전에 개봉된 영화이지만 TV로 처음 보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보았다. 영화에서는 철의 여인에 대한 성공스토리도 보여 주고 있지만 점차 오만해져 가는 권력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십년이라는 장기집권 기간동안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 모습 중의 하나가 보좌진을 무안하게 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집권십년차의 마가렛 대처는 남성들 가운데 앉아 있다. 마치 홍일점식으로 좌우에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통쾌하기 그지 없어 보일지 모른다. 남성들이 여수상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이 그렇다.

 

실무자가 해야 할 일을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수상은 매우 꼼꼼하다. 보고서가 올라 오면 토씨 하나 문제 삼을 정도로 깐깐하다. 초안에 ‘commitee’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를 지적하여 ‘t’가 두 개 들어가 ‘committee’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좌진에게 보고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연필을 들고 보고서의 이곳저곳을 수정한다. 관여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다. 장관이 해야 할 일을 수상이 하는 것 같다. 아니 실무진이 해야 할 일을 수상이 직접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장관의 입장에서는 무안하게 되고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절대 타협 안해요!”

 

영화 철의 여인은 대처수상을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다. 만일 수상의 업적을 미화 하였다면 영화의 가치가 없을 것이다. TV에서 다큐프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는 긍정적 이야기 보다 부정적 이야기가 더 많다. 영화제목 철의 여인이 암시하듯이 여수상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나는 절대 타협 안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비타협, 불관용의 원칙으로 일관하는 여수상의 모습을 많이 보여 준다. 특히 우유부단하고 나약해 보이는 남성들 속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처럼 비타협 불관용의 원칙으로 일관하는 여수상에게 철의 여인이라는 명칭을 구소련에서 붙여 주었다고 한다.

 

리더들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는

 

과유불급이라 하였다.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보는 여수상은 해가 갈수록 오만해지고 독선적 스타일로 변해 간다. 집권십년차에 이르면 그 오만과 독선이 절정에 다다른다. 마치 전제군주시절 여왕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여수상의 오만과 독선에 주변의 남성들은 동화속에 나오는 일곱난장이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여왕을 위해 있는 것처럼 강철 같은 이미지의 여수상만 돋보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는 남성들이 그들끼리 모였을 때 여수상의 독선에 대하여 끔찍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우리를 하인 취급한다라고 말한다. 리더들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오버랩되는 여성대통령

 

권력의 정점에 있게 되면 독선적 스타일로 바뀌기 쉽다. 이는 영화 철의 여인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런 모습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국이래 처음 여성대통령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성대통령의 모습에서 철의 여인이미지가 오버랩된다.

 

영화 속에서 철의 여인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타협하지 않는 불관용의 원칙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광산파업 노동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 붙여 굴복시켰다. 더구나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테러를 일삼던 IRA대원의 단식투쟁에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철의 여인 집권 기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IRA대원 열명이 단식투쟁으로 사망하였다. 그럼에도 철의 여인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것은 보수에 대한 가치때문 일 것이다.

 

철의 여인 대처는 보수당 출신이다. 가진 자를 기반으로 하여 가진 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 출신의 여수상이다. 한국의 여대통령 역시 보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80년대 철의 여인과 현재 한국의 여대통령의 지지기반은 일치 한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여대통령에 대하여 영국을 위기에서 구한 철의 여인으로 비유하는 이도 있다.

 

한국의 여대통령에게서 철의 여인 이미지를 보았다. 영국에서 철의 여인이 자당의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비타협과 불관용으로 일관하였듯이, 한국의 철의 여인 역시 비타협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세월호유가족들에 대한 태도가 대표적이다.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170여일 동안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대통령면담을 기대하는 유가족들을 대통령은 철저히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의 모습에서 철의 여인이 오버랩되었다.

 

최빈민층에게도 백만장자와 같은 세금을 내게 합니다

 

대처는 80년대 레이건과 함께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가소유의 공기업을 민영화 하고 자유롭게 경쟁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모든 규제를 풀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은 기득권자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이다. 똑 같은 조건에서 자유경쟁한다면 자본이 많은 자가 결국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자유정책은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은 불공평한 점에 대하여 영화에서는 어느 노동자의 입을 빌어 고발하고 있다. 인상적인 말이어서 이를 스마트폰 메모란에 기록으로 남겼다. 그 말은 최빈민층에게도 백만장자와 같은 세금을 내게 합니다이다. 이 말은 무슨뜻인가? 간접세를 말한다. 간접세를 인상함으로 인하여 백만장자 못지 않은 세금을 서민들에게 부담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담뱃값 인상을 보는 듯 하다.

 

소주와 담배는 서민의 친구

 

담뱃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 한다. 현재 가격보다 2천원이 더 인상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담뱃값 인상은 다름 아닌 간접세를 더 내는 것과 같다.

 

부자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아마 건강을 생각해서 일 것이다. 담배 대신 골프 등으로 건강을 유지할지 모른다. 담배는 주로 서민들이 피운다. 골프를 칠 능력이 되지 않는 서민에게 있어서 담배 한모금 빠는 것은 유일한 낙이다. 삶이 답답할때 담배 한 모금 빨아 폐로 들이 밀었다 내쉬면 가슴이 탁 터지는 시원함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태워 가며 하루를 버티는 것이 서민들의 삶의 방식이다.

 

하루하루가 고단한 서민들에게는 소주와 담배가 유일한 낙이다. 그래서일까 어떤이는 하루도 소주 없이 못산다고 한다. 그리고 담배빠는 것을 낙으로 산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소주와 담배는 서민들의 친구와도 같은 것이다.

  

서민들의 유일한 낙이 담배이다. 그런데 담뱃값을 대폭 인상하였을 때 이는 매우 가혹한 처사이다.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부족한 세수를 메꾸기 위한 꼼수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이 일년에 간접세로 부담하는 금액은 아파트 10억을 가진 부자의 재산세와 맞먹는 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철의 여인영화속 대사인 최빈민층에게도 백만장자와 같은 세금을 내게 합니다라는 문구가 2014년의 한국의 현실에 와 닿는다.

 

두 여인이 닮은 점은

 

80년대 철의 여인과 2014년 한국의 철의 여인은 여러모로 닮았다. 가장 먼저 여성이라는 점이 닮았다. 그렇다고 여성차별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도 능력에 따라 누구나 정상에 올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과 신체적 구조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능력은 똑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여인이 가장 닮은 점은 보수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지기반이 가진 자들이다 보니 그들을 위한 정책위주 임을 알 수 있다. 80년대 철의 여인이 파업노동자들에게 비타협과 불관용의 원칙을 적용하였듯이, 2014년 철의 여인 역시 비타협적 원칙주의자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을 내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철의 여인은 보수기득권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한다. 부자감세를 원위치 해야 함에도 이를 놓아 두고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들로부터 간접세를 징수하여 세수를 확보하고자 한다. 바로 이런 점이 영국의 철의 여인과 한국의 철의 여인이 닮았다. 모두 보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닮은 것이다.

 

인간의 왕권과 천상의 행복

 

영화 철의 여인은 영국 여성총리의 기록물이 아니다. 어느 늙은 여성 정치인의 회상에 대한 기록이다. 집권 십년차에 보는 철의 여인은 오만과 독선에 가득차 있다. 주변의 리더들의 충고를 경청하지 않고 오히려 면박한다. 이처럼 정점에 있었던 철의 여인은 권력을 마음껏 향유하였다. 하지만 초기경전에 따르면 왕권과도 같은 권력은 천상의 세계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바쎗타여,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와 같이 많은 칠보가 있는 십육대국 즉, 앙가, 마가다, 까씨, 꼬쌀라, 밧지, 말라, 쩨띠, 방가, 꾸루, 빤짤라, 맛차, 쑤라쎄나, 앗싸까, 아반띠, 간다라, 깜보자의 지배자로 왕권을 누리는 것이 이와 같이 여덟 가지 고리를 갖춘 포살을 준수하는 것의 십육분의 일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바쎗타여, 인간의 왕권은 천상의 행복에 비해 보잘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쎗타의 포살에 대한 경, 앙굿따라니까야 A8.44,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인간의 왕권은 천상의 행복에 비해 보잘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부처님 당시 십육대국의 열 여섯 나라를 열거 하면서, 이들 나라의 왕들의 권세는 천상의 존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 그럴까? 나라가 자신의 소유물과 같은 왕도 수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명은 보장 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최고권력의 맛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 왕권이다. 그런데 천상의 존재는 수명이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왕권 보다 더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바쎗타여, 인간의 오십 년이 네 위대한 왕의 하늘나라 신들의 하루 밤낮이고, 그러한 서른 밤이 한달이고, 그러한 열두 달이 일년이고, 그러한 일년의 오백년이 네 위대한 왕의 하늘나라 신들의 수명입니다. 바쎗타여, 세상에 어떤 여자나 남자가 여덞 가지 고리를 갖춘 포살을 준수하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네 위대한 왕의 하늘나라 신들 사이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인간의 왕권은 천상의 행복에 비해 보잘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쎗타의 포살에 대한 경, 앙굿따라니까야 A8.44, 전재성님역)

 

 

영화 철의 여인을 보면 한 때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강철 같은 여인은 평범한 시민이 되었다. 잠시 십년 동안 권력의 맛을 본 것이다. 때가 되니 물러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권력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잠시 맡겨진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마치 천년, 만년을 살 것처럼 권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왕권과도 같은 행복은 천상의 그것에 비하면 매우 보잘 것 없다고 하였다. 천상의 세계는 왕권 보다 더한 행복이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수명으로 향유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섹스보다 더 즐거운 것이 있는데..”

 

이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 오욕락이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인 식욕과 성욕이 충족되면 다음 욕구가 발동된다. 안전의 욕구, 재물의 욕구, 명예의 욕구 등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욕락을 누리기 위하여 돈 버는 일에 올인하고 돈 벌기 선수가 되어야 한다.

 

부동산투기로 부자가 된 졸부는 넘쳐 나는 돈을 주체 하지 못하여 향락을 일삼는다. 그래서 맛집을 순례하고 애인을 두고 마음껏 감각적 쾌락을 즐긴다. 돈이 없는 자 역시 나름대로 즐길거리를 찾아 즐긴다. 부자나 가난한자나 즐기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부자는 부자나름대로 즐길거리가 있고 가난한자 역시 나름대로 즐길거리가 있다. 즐기는데 있어서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질의 차이는 있지만 즐기는 것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이처럼 즐길거리를 찾는 것이 뭇삶의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초전법륜경 집성제에 따르면 여기저기에 환희하며(tatra tatrābhinandinī)”라 하였다. 쾌락과 탐욕을 갖추고 여기저기 즐길거리를 찾는 것을 말한다.

 

즐길거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식욕에 따른 먹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성욕에 따른 섹스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이어서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 권력욕에 따른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법우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어느 스님의 입에서 섹스보다 더 즐거운 것이 있는데..”라 하였다는 것이다. 태국의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전수받은 호주의 수행자가 있는데, 그 수행자를 섬기는 스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 한다.

 

섹스보다 더 즐거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수행의 즐거움이라 한다. 수행의 즐거움을 설명하기 위하여 섹스를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보는 섹스의 즐거움 보다 더 즐거운 것이 삼매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에서 알 수 있다.

 

 

[세존]

아난다여, 만약 어떤 사람이 ‘그것이 뭇 삶이 체험하는 최상의 즐거움과 기분 좋음이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그 즐거움보다 훨씬 아름답고 탁월한 다른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어떠한 것이 그 즐거움보다 훨씬 훌륭하고 탁월한 다른 즐거움인가? 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떠남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그 즐거움보다 훨씬 훌륭하고 탁월한 즐거움이다.”

 

(Bahuvedaniya -여러 가지 느낌에 대한 경, 맛지마니까야 M59,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뭇 삶이 체험하는 최상의 즐거움과 기분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첫 번째 선정에서 맛 보는 희열과 행복이라 하였다.

 

세상사람들의 즐거움은 오욕락이다. 그 중에서도 먹는 즐거움과 섹스하는 즐거움이 가장 일반적일 것이다. 특히 섹스하는 순간의 엑스터시는 이 세상 어느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런 세속적인 즐거움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식도락, 섹스 보다 더 즐거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삼매의 즐거움이다. 삼매에 들었을 때 느끼는 희열과 행복은 세속의 행복과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산유곡에서 스님들은 무슨 재미로?

 

스님들은 심산유곡에서 산다. 사람들이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에서 홀로 사는 스님들도 많다. 그런 스님들을 볼 때 마다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스님들은 왜 저렇게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살아 갈까? 대체 스님들은 무슨 재미로 살아 갈까?” 라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어느 스님은 스님들이 나름대로 살아 가는 방식이 있다고 하였다.

 

세상사람들이 보았을 때 깊은 산속의 스님들의 삶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누리는 행복 보다 더한 행복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것은 삼매의 행복을 말한다. 삼매에 들었을 때 희열과 행복은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과 비할바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깊은 산중에서도 스님들이 홀로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다름 아닌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떠남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다. 이런 행복이 있기 때문에 산속에서 홀로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남산에 올라보니

 

지난 여름 남산에 올랐다. 동국대에서 시작하여 도보로 올라 갔다. 오랜만에 남산에 가보니 중국사람들 천지이다. 휴일 남산 팔각정에는 중국말만 들려서 내국인 보다 중국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남산은 서울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망대가 있다.

 

조망대에서 바라 본 서울은 장관이다. 수 많은 빌딩이나 아파트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위에서 내려다 보니 빌딩의 높이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인다. 아래에서는 꽤 높은 빌딩이지만 남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면 모두 고만고만해 보인다.

 

 

 

 

재벌3세라 하여 비행기를 회항시킬 정도로 권세를 가진 땅콩여인의 빌딩도 산정상에 서면 발아래에 있다. 천하를 호령하는 철의 여인이 사는 집도 역시 발아래에 있다. 제 아무리 높은 빌딩을 가지고 있어도 산위에서 보면 마치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것 같다. 제아무리 철의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산에서 보면 그런 권력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

 

 

2014-12-1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