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삶의 전부
송년회가 열리면 한해가 다 지나감을 실감한다. 한해 끝자락에 열리는 송년회는 늘 추울 때이다. 올해의 경우 예년 보다 추위가 더 일찍 왔고 첫 추위치고는 매우 혹독하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훈훈한 인정을 맛 보는 곳이 송년회이다.
열 한번째 열리는 송년모임
예전에는 ‘망년회’라 불리웠던 송년회가 있었다. 불교로 인하여 맺어진 법우모임이다. 2004년 불교교양대학에 입교하여 맺은 인연들이다. 그런데 올해 송년회의 경우 매우 조촐하게 열렸다. 올해로 열 한번째로 열리는 법우송년모임은 예년과 달랐다. 참석인원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빠짐없이 해 오던 삼귀의 등으로 시작되는 여법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식당에 모여서 음식을 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4년 법우송년모임이 일식집에서 열렸다. 양재동 꽃시장 맞은편에 있는 일식집 ‘나고야’이다. 일식집에서 열린 것은 법우님 중에 한분이 그곳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평소 모임에 빠지지 않고 경사든 조사든 어디든 달려 가는 팔방미인형 법우님의 배려로 일식집에서 열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일식집은 고급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식집은 고급식당의 대명사와 같다. 그것은 음식의 질도 좋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좋기 때문이다. 많은 인원이 일식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웠지만 법우님의 배려로 거의 반값에 자리를 하게 되었으니 법우님의 덕이 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번 송년모임에 참석한 인원은 14명 가량 된다. 지난 십년동안 열린 송년회와 비교하여 가장 적은 규모이다. 그런데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참석인원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는 불교교양대학을 졸업한 첫해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일생일대의 커다란 사건
2004년 불교교양대학에 들어 가게 되어 불교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전에는 정서적으로 불자이었을 뿐 절에 간 적도 없었고 스님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정식으로 불교와 인연을 맺은 곳이 교양대학이고 현재 교류하고 있는 법우님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십년전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일생일대의 커다란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십년전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함으로 인하여 이후 삶의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그것은 불교적 삶의 방식이다. 불교를 접하면서 비로서 불교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알면 알수록 흥미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공부하기 시작 하였다. 그래서 십년이 지난 지금 글쓰는 사람, 속된 말로 ‘글쟁이’, 또 다른 말로 ‘블로거’가 되었다.
글을 쓴 것은 지난 2006년 부터이다. 지금까지 8년 간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필명이 많이 알려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진흙속의연꽃’이라는 필명을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어느 교계기자는 기사에서 ‘파워블러거’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마 영향력이 있다는 의미로 붙여준 것이라 본다. 그러나 한번도 파워블로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날 그날 그저 생각하고 느낀 것을 경전에 근거하여 쓰다 보니 많이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 하였을 때
불교와 인연을 맺고 나서 가장 큰 변화가 온 것이 글쓰기의 생활화이다. 이전에는 글을 써 본적이 없었다. 조직에 얽매여 살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은 추호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조직을 떠나 홀로 남게 되었을 때 남는 것은 시간 뿐이었다. 그래서 조금씩 끄적거리다 보니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분명한 사실은 이전 생활 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려울지 몰라도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 하였을 때 가장 만족하고 행복한 삶이라 한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어느 날 갑자기 필연적으로 찾아 온 사건으로 인하여 글쓰기가 생활화 되었을 때, 글쓰기로 인하여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충분히 보상을 받고도 남는다고 본다.
이제 글쓰기는 생활과도 같다. 밥을 먹는 것과 같이 일상이면서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해 본 것이었지만 삶의 과정에서 굴곡을 겪다 보니 내면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경계에 부딪칠 때 마다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초기경전을 열어 본다. 그러면 틀림 없이 해법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초기경전에 모든 답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여법하게 치룬 2013년 송년회
올해 열 한번째 열리는 송년회는 매우 조촐하였다. 예년과 다르게 의식을 행하는 것 없이 곧바로 식사에 들어 갔으니 큰 변화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작년의 경우 여법하게 송년회를 치루었다. 이에 대하여 ‘재가불자모임은 작은 ‘재가상가’, 여법하게 치룬 열번째 송년법회(2013-12-08)’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올린 글에서 재가상가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상가라는 원래 의미가 ‘화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화합하여 유지 되는 재가불자들의 모임 역시 상가개념으로 보았다.
2013년 송년회
작년에 열린 열번째 송년회는 ‘삼귀의’를 제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그리고 마무리 할 때는 늘 그렇듯이 ‘사홍서원’을 하고 ‘산회가’를 끝으로 모임을 마쳤다. 이렇게 여법하게 지난 십년동안 그렇게 해 왔다. 그러나 금년 송년회의 경우 아무런 의식 없이 단지 먹기만 한 것에 그쳐서 아쉬웠다.
인욕바라밀
모임이 십년이상 유지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법우들 모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처음에는 기세 좋게 나가던 모임도 몇 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모임이 깨지는 가장 큰 요인은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이다. 모임을 누군가 이끌고 가야 하나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을 때 그 모임은 쉽게 흩어진다. 또 하나는 ‘돈문제’이다. 모임이 도중에 깨지고 소란스러워 지는 것은 돈문제가 크게 작용 한다. 특히 모임의 존속을 위한 기금문제와 관련하여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였을 때 심각한 내분을 초래한다.
십년동안 모임이 이렇게 유지 되어 온 것은 총무를 맡고 있는 법우님의 역할이 매우 크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일을 십년동안 해 온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몹시 지쳐 보인다. 그래서 그만 맡겠다고 한다. 지난 십년동안 우여곡절도 있었고, 도중에 돈문제로 인하여 모임이 깨질 뻔 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극복하게 여기까지 왔지만 지쳐 가는 것 같다.
문제는 누구도 모임을 이끌어 가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돈도 안되는 일에’ 신경 쓸 일만 많기 때문이다. 모임을 이끌어 가는 고충을 들어 보면 그야말로 ‘인욕바라밀’이 따로 없는 듯 하다.
2007년부터 기록을 남겼는데
지난 십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불교와의 인연은 처음이기에 빠짐 없이 지켜 보았다. 그리고 각종 법회나 모임에 빠짐 없이 참석하였다. 그리고 사진과 글을 남겼다. 사진의 경우 2007년부터 디카를 소지 하였으므로 2007 이후에 있었던 모든 행사는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법회 등의 주요한 행사가 있을 때 반드시 글로 남겼다. 그런 기록이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07년 송년법회를 보니
송년법회에 관련하여 지난 자료를 찾아 보았다. 2007년 송년회 사진을 찾아 보니 지금과 많이 다르다. 참석인원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보지 못하였던 인물을 사진속으로나마 접하였기 때문이다.
2007년 송년법회
2007년 송년법회는 강남에 있는 ‘천년부페’에서 열렸다. 2004년에 처음 송년법회가 열린 이래 네 번째이다. 사진을 보니 참석인원이 많다. 같이 공부한 같은 기수들의 모임이지만 회장이 있고 총무가 있는 등 조직으로서 틀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송년회를 시작 하기 전에 반드시 의례를 하였다. 벽에 걸 수 있는 벽걸이형 불상을 걸어 놓고 삼귀의를 봉행하는 것으로부터 법회가 시작 되었다. 그래서 명칭도 송년회가 아닌 ‘송년법회’라 하였다.
2008년 송년법회
디카를 항상 소지 하고 다닌다. 왼쪽주머니에는 디카가 있고 오른쪽 주머니에는 핸드폰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찍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송년법회와 같이 주요한 모임의 경우 반드시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런 자료가 쌓이다 보니 이제 역사가 된 것 같다. 2008년에 열린 송년법회는 다음과 같다.
2008년 송년법회
사진을 보면 불과 6년 전의 일이지만 삼귀의를 봉행할 때는 진지해 보인다. 장소는 이전 해와 마찬가지로 ‘천년부페’이다.
레스토랑 ‘작은행복’
2009년 부터는 송년회 장소가 바뀐다. 과천에 있는 레스토랑 ‘작은행복’이다. 후배기수의 법우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둥그런 원형스타일로서 소규모 모임을 갖기에 적합하다.
2009년 송년법회
2009년 송년법회 역시 삼귀의와 함께 시작 되었다. 그리고 음식을 들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레스토랑이어서일까 준비된 음식은 양식이다.
2009년 이후 내리 4년 동안
레스토랑 ‘작은행복’은 지하철 4호선 대공원입구역에 있다. 바로 옆에 ‘카메라박물관’이 있다. 주인은 같은 불자이고 또한 후배기수이다. 그래서일까 2009년 이후 2012년 까지 4년 동안 송년회가 작은행복에서 열렸다. 2010년의 송년회는 다음과 같다.
2012년 송년회
지난 십년동안 거의 개근하다 시피 모임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사진과 글로 남겼다. 그런데 모임이 열릴 때마다 얼굴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쁜 것이다. 또 선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얼굴 보기가 힘들지만 송년회 만큼은 꼭 참석하는 법우님도 있었다. 작은행복에서 열린 2012년 송년회는 다음과 같다.
2012년 송년회
2012년 작은행복에서 열린 송년회에 대하여 ‘누구나 바라는 작은 행복, 집착을 여읜 큰 행복(2012-12-0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이날 작은행복에는 눈이 내렸다. 돔형의 건물이 마치 동화속의 집을 연상시켰다. 눈에 둘러 쌓인 돔형 건물 창문에 불빛이 차가운 바깥과는 달리 훈훈 하였다.
끝까지 가는 법우님들
2004년 이래 열한번째 열리는 송년회는 초라하였다. 이것도 제행무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은 화려하게 시작 하였으나 해가 지날수록 작고 초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끝 까지 자리를 함께 한 법우님도 많다. 아마 끝까지 가는 법우님이라 본다.
법우님들은 불교로 맺어져 있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사회와는 다른 것이다. 사회에서는 사람을 만날 때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해가 될 것인가를 판단한다. 그래서 도움이 되면 만나지만 해가 되면 만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친구가 되기 힘들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떠나 종교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라 볼 수 있다. 그것도 부모처럼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친구이다. 그런 친구를 ‘법우(法友)’라 한다. 또 다른 말로 선우(善友)라 한다. 선우의 의미는 ‘영적친구’를 의미한다. 그런데 선우는 나이를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을 초월한다. 그래서일까 선우 중에는 위로 ‘띠동갑’도 있고, 아래로 띠동갑도 있다.
순례법회사진을 보니
지난 십년 동안 법우님들과 모임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진 것이 ‘순례법회’이다. 일년에 서너 차례 열리는 사찰순례를 통하여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 사진을 찾다 보니 2007년도 ‘반야사’ 순례가 눈에 띈다.
2007년 반야사
사진을 보니 모두 젊어 보인다. 불과 7년 전의 일임에도 지금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세월이 꽤 흐른 것처럼 보인다.
순례법회는 거의 빠지지 않았다. 갈 때 마다 사진을 남겼는데 주로 사물에 대한 것이다. 인물사진 보다 전통사찰의 볼 거리 위주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종종 인물사진도 보인다.
2007년 내소사
2007년 광덕사
2008년 지리산 법계사템플스테이
2009년 미황사 템플스테이
2010년 무량사
2007년 당시 연등축제
불교를 접하며 신행생활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접하였다. 그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연등축제’이다. 불자들의 최대 축제라 볼 수 있는 연등축제에 대한 기록을 2007년부터 남겼다. 2007년 당시 연등축제 사진을 보면 다음과 같다.
2007년 연등축제
2008년 연등놀이
지역에서 열리는 연등축제
또 하나의 연등축제가 있다. 그것은 절에서 하는 것이다. 동대문에서 하는 것과 달리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를 말한다. 2008년 당시 법우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2008년 지역연등축제
거리를 행진하는 힘든 축제가 끝나고 뒷풀이를 가진 사진도 보인다. 시간은 지나가 버렸지만 그 날에 일어 났던 일이 순간포착으로 남아 있다.
사십대는 이제 오십대가 되고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 간다. 송년회를 한해 두해 하다 보니 어느 덧 열한번째를 맞았다. 이렇게 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갔다. 십년이년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먼저 나이가 변한 것이다.
십년전에 사십대는 이제 오십대가 되었다. 오십대는 육십대가 되었고, 육십대는 칠십대가 되었다. 삼십대는 사십대가 되었다. 그리고 삼십대는 사십대가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보니 십대를 두었던 자녀들은 이제 이십대가 되었다. 수능시험을 위하여 기도 하던 아이들이 이제 시집장가 갈 나이가 된 것이다.
십년이라는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무엇 보다 많이 변한 것은 익숙한 얼굴들이 차츰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초창기의 수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간 것일까? 이런저런 이유로 도중에 떠난 법우님들이 매우 많다. 졸업할 당시 약 4백명에 달한다고 하였으나 십년이 지난 지금 모이는 법우님들은 30명이 채 안된다. 이것도 아마 제행무상법칙의 영향일 것이다. 어느 것도 항상하지 않고 늘 변한다 하는데 법우모임 역시 제행무상에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늘 함께 하는 법우님들도 있다.
2014년 송년회는 예년과 달리 여법하게 치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년에는 여법한 법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지난 십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다시 여법한 송년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함께 하는 법우님들은 모두 부처님의 제자들이다.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삶의 전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착한 친구라 볼 수 있다. 이를 한자어로 선우라 한다. 그런 선우는 어떤 뜻일까?
초기경전에 따르면 친구는 “항상 전전긍긍하며, 금이 갈까 염려하면서도, 벗의 결점만을 보는 사람은 친구가 아닙니다.(stn255)”라 하였다. 친구는 “아들이 아빠의 품에 안기듯 의지하고, 타인 때문에 금가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친구입니다.(stn255)”라 하였다. 이런 친구가 선우(善友), 즉 ‘좋은 친구’이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선우에 대하여 ‘충고와 인내와 용기를 주는 영적인 친구’라 한다. 그런 선우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왜냐하면 세존을 좋은 벗으로 삼아,
태어나야 하는 존재가 태어남에서 벗어나고
늙어야 하는 존재가 늙음에서 벗어나며
병들어야 하는 존재가 병듦에서 벗어나고
죽어야 하는 존재가 죽음에서 벗어나며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져야 하는 존재가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서 벗어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S3.18)
2014-12-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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