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작은법회

기별법회에서 ‘위대한 축복의 경’을 낭송하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5. 15. 16:53

 

기별법회에서 위대한 축복의 경을 낭송하며

 

 

최근 모임에서 총무소임을 맡았다. 불교교양대학 법우모임에서 총무소임을 맡은 것이다. 2004년 입교한 이래 만 11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법우님들의 모임이 지금까지 여법하게 존속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기적 같은 일이다. 시간이 돈인 세상이고 건질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불러도 가지 않은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에 참여 하여 그 모임이 십년 넘도록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좀처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총무로 선정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 동안 빠짐 없이 모임에 참석해 왔고 모임을 위하여 적극성을 보였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근본적인 요인은 변화로 본다. 모임이 십년 지속되어 오면서 무언가 바뀌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 바램이 구체화 되어 지난 2월 기별법회 당시 새로 임원진이 구성되었다.

 

총무소임을 맡고 나서 처음으로 기별법회를 주도하게 되었다. 분기별로 한번 열리는 전체 법우님들의 모임이다. 이번 법회를 위하여 주로 카톡을 활용하였다. 요즘 SNS로 통하는 시대에 카톡은 매우 효율적인 소통수단이다. 그래서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카톡이 대세이다.

 

카톡으로 공지하였다. 카톡을 하지 않는 법우님들은 문자로 전하였다. 그 결과 많은 법우님들이 참석하였다. 아마 최근 이삼년 내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듯 하다.

 

법회를 하면 늘 그렇듯이 정해진 식순에 따라 의식이 진행된다. 외부에서 스님등의 법사를 초청함이 없이 자체적으로 천수경, 삼귀의, 칠정례, 반야심경 순으로 진행 된다. 중간에 경과 보고가 있고 안건에 대하여 토론한다. 사홍서원과 산회가를 제창함으로 법회가 마무리 된다. 이런 패턴이 지난 십년간 지속되어 왔다.

 

총무소임을 맡고 나서 변화를 주고 싶었다. 지난 십년 동안 천편일률적인 법회 패턴에 변화를 주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초기경전 낭송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반야심경 독송이 끝날 때 위대한 축복의 경을 낭송하였다.

 

미리 준비한 인쇄물을 준비 하였다. 법우님들이 한장씩 들고서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지 않으며부터 낭송하였다. 낭송이 무르익자 모두 한목소리가 되었다. 그 목소리는 경건하였다. 낭송 되는 순간만큼은 모두 거룩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위대한 축복의 경

 

[세존]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지 않으며,

슬기로운 사람에 가까이 지내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분수에 맞는 곳에서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아서,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많이 배우고 익히며 절제하고

훈련하며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

일을 함에 혼란스럽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나누어 주고 정의롭게 살고,

친지를 보호하며,

비난 받지 않는 행동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악함을 싫어하여 멀리하고,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존경하는 것과 겸손한 것,

만족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감관을 수호하여 청정하게 살며,

거룩한 진리를 관조하여, 열반을 이루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슬픔 없이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 길을 따르면,

어디서든 실패하지 아니하고

모든 곳에서 번영하리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Magalasutta- 위대한 축복의 경, 숫타니파타Sn 2.4, 전재성님역)

 

 

 

 

 

 

법회모임에서 초기경전 낭송이 있게 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이제까지 항상 천수경이나 반야심경을 독송하여 왔다. 그러다 보니 뜻도 모른 채 나모라 다라나야~”라 하며 주문을 외거나, “색즉시공공즉시색하며 심오한 교리를 따라 불렀다. 그러나 축복경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교훈적이다.

 

축복경은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다. 가장 고층의 경전이어서 부처님의 원음에 가장 가까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경의 빠알리어명은 망갈라숫따라 한다. 이 망갈라숫따에 대하여 어떤 이는 행복경이라 번역하였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빠알리어로 망갈라는 말은 행복 보다는 상서로운 징조또는  길상등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경의 제목을 축복경또는 길상경이라 한다.

 

행복이라는 말 보다 축복이라는 말이 더 좋다. 행복은 지금 여기서 즐거운 상태를 말하지만 일시적이다. 그러나 축복이라는 말은 지금 여기서 행복은 물론 미래의 번영까지 약속한다. 그런 표현이 경에서 모든 곳에서 번영하리니라는 구절이다.  

 

축복은 행복 플러스이다. 행복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것이다. 그 알파가 미래에 대한 번영이다. 이렇게 본다면 테라와다 예불문이자 수호경인 축복경은 불자들에게 행복과 번영, 축복을 가져 오게 하는 경이다. 그래서 라따나경(보배경 또는 보석경)과 자애경(메따경)과 함께 남방테라와다불교의 생활경전이다.

 

축복경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천수경과 같은 위치에 있다. 한국의 불자들이 조석으로 천수경을 낭송하듯이 테라와다 불자들은 축복경, 보배경, 자애경, 이렇게 세 개의 경전을 늘 수지독송한다.

 

축복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착하고 건전한 생활이다. 그래서 재가자의 생활경전이라 한다. 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거룩한 진리를 관조하여, 열반을 이루니라는 표현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해탈과 열반을 언급해 놓은 것이다.

 

기별법회모임에서 법우님들은 모두 일어서서 위대한 축복의 경을 낭송하였다. 한목소리 낭낭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낭송하는 그 순간 만큼은 법우님들의 모습이 거룩해 보였다.

 

 

2015-05-1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