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남의 흉보다 자신의 허물을, 괴로움에서 벗어나 청정에 이르는 길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2. 18. 15:21

 

남의 흉보다 자신의 허물을, 괴로움에서 벗어나 청정에 이르는 길

 

 

 

자신의 허물부터

 

꽃이 피면 열매를 맺듯이 가르침을 실천하면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꽃도 향기가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꽃은 아름답지만 향기 없는 꽃에는 벌과 나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의 허물을 지적 하기 이전에 자신의 허물부터 살펴 보아야 한다.

 

 

Na paresa vilomāni,      나 빠레상 윌로마니

na paresa katākata,    나 빠레상 까따까땅

Attano va avekkheyya       앗따노 와 아웩케이야

katāni akatāni ca.         까따니 아까따니 짜.

(Dhp50)

 

 

남들의 모순과

남들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살피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살펴 보라.

(Dhp50, 전재성님역)

 

 

他人過失るなかれ。

他人のしたこととしなかったことをるな。
ただ自分のしたことと

しなかったことだけをよ。

(Dhp50, 中村元)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남이 했건 말았건 상관하지 말라

다만 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만을 보라

(Dhp50, 법정스님역)

 

 

不務觀彼 불무관피

作與不作 작여부작

常自省身 상자성신

知正不正 지정부정

(Dhp50, 한역)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남이 했건 말았건 상관하지 말라

다만, 자기의 허물과

게으름만 살펴라.

(Dhp50, 거해스님역)

 

 

Focus,

not on the rudenesses of others,

not on what they've done

       or left undone,

but on what you

have & haven't done

       yourself.

(Dhp50, Thanissaro Bhikkhu)

 

 

 

게송의 요지는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이다. 남의 허물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에게도 허물이 있는지 돌아 보라는 말이다.

 

흉보기 좋아 하는 사람은

 

첫번째 구절에서 남들의 모순이라 하였다. 이는 무슨 뜻일까? 주석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모순된, 귀에 거슬리는 말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데,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된다.(DhpA.I.379)”라고 설명 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지적하며 잔소리 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 잔소리를 들으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에게 간섭을 하려 하거나 남이 간섭하는 것에 대하여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게송에 따르면 남들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살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들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살피지 말고라 하였다.

 

그렇다면 간섭하기 좋아 하는 사람, 쓸데 없는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paresa katākata : DhpA.I.379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행하고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와 같이 이러이러한 재가의 남자신도는 믿음이 부족하고, 믿음의 기쁨도 없다. 그의 집에는 탁발자를 위해 국자로 퍼줄 음식도 없고 정규적인 공양도 없다. 그는 옷이나 필수품을 보시 하지도 않는다.’ 또는 이러이러한 수행승은 믿음이 부족하고, 믿음의 기쁨도 없다. 그는 설법자, 친교사, 방문자에 대하여 할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두타행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명상수행에도 전념하지도 않는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법구경 664번 각주, 전재성님)

 

 

주석에 따르면 간섭하기 좋아 하는 사람의 유형이 나와 있다. 마치 참새들이 재잘재잘 하듯이 여럿이 뒤에서 흉을 보는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흉을 보기 시작하면 흉만 보이게 끔 되어 있다. 지나가는 수행승이 있다면 또한 이러쿵 저러쿵 말하거나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행자들은 일반인들과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수행자의 허물이 커 보이는 이유

 

수행자들이 일반인들과 가까이 하여 좋을 것이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수행자에 대하여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석에서와 같이 사람들은 수행자에게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수행자들이 마치 두타행자처럼 인식할 수 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두타행은 특별한 수행에 속한다. 누구나 두타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반사람들은 수행자를 보았을 때 매우 청정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본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무너질 때가 있다. 보지 못할 것을 보았을 때이다.

 

스님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한 순간에 스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환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스님이라면 이러이러 해야 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님의 막행막식을 보았을 때 우리와 다름 없는 똑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수행자에게 수행자상을 기대하는 것은 수행자의 삶의 방식이 일반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허물이라도 수행자의 허물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초기경에서는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 (S9:14)”라 하였다. 예를 들어  술마시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지만, 청정한 삶을 살기로 약속한 수행자에게는 매우 커다란 허물로 보인다.

 

행하고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남의 허물을 지적 하는 것에 대하여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는 더 큰 흉이 있으면서도 도리어 남의 작은 흉을 본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의 말 하기 이전에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절이 오로지 자신의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살펴 보라.(Dhp50)”이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Attano va avekkheyya katāni akatāni ca: DhpA.I.379에 따르면, 승단으로 출가한 사람은 항상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낮과 밤을 보낼 것인가라고 숙고해야 한다. 이러한 교훈을 간직하고 믿음으로 출가한 자는 자신이 행하고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는 세 가지 특징에 대하여 새긴 뒤에 명상수행에 필요한 실천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법구경 665번 각주, 전재성님)

 

 

게송에서 살펴 보라(avekkhati)”라 하였다. 이는 무상, , 무아로 설명된다. 그래서 한 것(kata)’하지 않은 것(akatā)’에 대하여 살펴 보라(avekkhati)’고 하였는데, 이는 주석에 따르면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는 세 가지 특징에 대하여 새긴 뒤에 명상수행에 필요한 실천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성찰하는 것이라 하였다.

 

삼세에 걸쳐서

 

주석에서 한 것(kata)’하지 않은 것(akatā)’에 대하여 말하였다. 여기서 한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 볼 수 있고, 하지 않은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성찰하라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상윳따니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무상한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물질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고, 현재의 물질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과거-미래-현재의 경1, 상윳따니까야 S22.9, 전재성님역)

 

 

오온 중에서 물질에 대한 설명이다. 물질은 무상하다는 것이다. 현재 내 몸을 보고 있지만 항상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보는 순간에도 변화가 있기 때문에 항상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온 중에 느낌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오온 중에 느낌은 매 순간 변한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접촉이 일어 났을 때 필연적으로 좋은 느낌, 싫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이 발생한다. 이렇게 본다면 오온 중에 느낌을 관찰하면 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경에 따르면 삼세에 걸쳐서 무상하게 변한다고 하였다. 과거의 느낌도 무상하였고, 미래의 느낌도 무상 할 것이고, 현재의 느낌 역시 느끼는 순간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무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무아인가?

 

오온에 대하여 무상만 성찰하는 것이 아니다. 고와 무아도 성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물질에 대하여 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괴로운 것인데…” 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무아인데..”라고 성찰하는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물질(느낌, 지각, 형성, 의식)은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무상한 것의 경, 상윳따니까야 S22.15, 전재성님역)

 

 

[세존]

수행승들이여, 물질(느낌, 지각, 형성, 의식)은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괴로운 것의 경, 상윳따니까야 S22.16, 전재성님역)

 

 

[세존]

수행승들이여, 물질(느낌, 지각, 형성, 의식)은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는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실체가 없는 것의 경, 상윳따니까야 S22.17, 전재성님역)

 

 

세 개의 경을 비교해 보면 특징이 있다. ‘무상한 것의 경에서는 무상, , 무아가 모두 표현 되어 있지만, ‘실체가 없는 것의 경에서는 오로지 무아만 표현 되어 있다.

 

부처님은 모든 현상에 대하여 무상, , 무아로 통찰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세 경을 보면 공통적으로 들어 가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달라 붙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이 가장 강조 하고 싶어 하였던 것이 바로 무아의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원인과 조건과 결과도

 

부처님은 오온에 대하여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 하였다. 물질을 예로 든다면 물질은 무상한 것이다” “물질은 괴로운 것이다” “물질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라 하였다.

 

그런데 물질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저절로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누가 만들었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연기적으로 발생된 것이다. 원인과 조건과 결과라는 연기법에 따라 물질 등 오온이 발생하고, 모든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게 되며 이것이 생겨남으로써 저것이 생겨난다.(iti imasmi sati ida hoti, imassuppādā ida uppajjati: 若有此卽有彼若生此卽生彼)”라 하였다. 이는 십이연기에서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Avijjāpaccayā sakhārā. Sakhārapaccayā viññāa)라고 설명된다. 여기서 “Sakhārapaccayā viññāa라 하였을 때 Sakhāra()+paccayā()+ viññāa()”가 된다.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난다라 하였을 때 형성도 무상하고 조건도 무상하고 의식도 무상한 것이다. 이는 괴로움과 무아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물질(느낌, 지각, 형성, 의식)은 무상한 것이다. 물질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에 의해 생겨나는 물질이 어찌 무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S22.18)

 

수행승들이여, 물질(느낌, 지각, 형성, 의식)은 괴로운 것이다. 물질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에 의해 생겨나는 물질이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는가?” (S22.19)

 

수행승들이여, 물질(느낌, 지각, 형성, 의식)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물질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에 의해 생겨나는 물질이 어찌 실체가 있을 수 있겠는가?” (S22.20)

 

 

오온은 무상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만 무상한 것이 아니라 과거, 미래도 무상한 것이다. 오온은 무상한 것이다. 그런데 오온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무상한 것이다. 이렇게 삼세에 걸쳐서 무상한 것이고, 원인과 조건과 결과도 무상한 것이다. 그런데 오온은 무상할 뿐만 아니라 괴로운 것이고 무아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 어떤 것도 항상 하지 않고 즐겁지 않은 것이고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표로 정리하면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의식

비고

과거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미래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무상

현재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무상

과거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미래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현재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과거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무아

미래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현재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원인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무상

조건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무상

결과

무상

무상

무상

무상

무상

원인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조건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결과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

원인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무아

조건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결과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실체없음

 

 

 

오온이 삼세도 무상, , 무아이고, 오온이 원인도 조건도 결과도 무상, , 무아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청정의 길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Sabbe sakhārā aniccā ti,   

yadā paññāya passati,           

Atha nibbindati dukkhe ~        

esa maggo visuddhiyā.             

 

‘일체의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라고

지혜로 본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니

이것이 청정의 길이다. (Dhp277)

 

 

Sabbe sakhārā dukkhā ti,   

yadā paññāya passati,           

Atha nibbindati dukkhe ~        

esa maggo visuddhiyā.           

 

‘일체의 형성된 것은 괴롭다’라고

지혜로 본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니

이것이 청정의 길이다. (Dhp278)

 

 

Sabbe dhammā anattā ti,     

yadā paññāya passati,           

Atha nibbindati dukkhe ~        

esa maggo visuddhiyā.           

 

‘일체의 사실은 실체가 없다’라고

지혜로 본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니

이것이 청정의 길이다. (Dhp279)

 

 

 

남의 흉을 보기 전에

 

부처님은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고 하였다. 남의 모순과 잘못에 지나치게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이나 귀에 거슬리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신심이 없어 보시를 적게 한다든지 그 수행승은 할 일을 다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명상주제를 놓치지 말고 항상 알아차려 현상이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음을 성찰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런 행위가 출가자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남의 일에 지나친 관여는 자칫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말을 듣기 쉽다. 자기는 더 큰 흉이 있으면서도 도리어 남의 작은 흉을 본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의 흉을 보기 전에 자신부터 되돌아 보아야 함을 말한다.

 

 

남들의 모순과

남들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살피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살펴 보라. (Dhp50)

 

 

 

2014-12-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