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 가운데 생각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생각하며” 왜곡된 사유의 전개과정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 12. 15:13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 가운데 생각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생각하며왜곡된 사유의 전개과정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좀처럼 알 수 없다. 왜 그럴까?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사람의 마음은 변덕이 죽 꿇듯이변하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미지에 놀아난다. 겉으로 보기에 잘 생기고 잘 차려 입고 온화한 모습을 보면 호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하여 그 사람이 이미지 그대로의 사람일까?

 

이미지도 조작 될 수 있다

 

이미지도 조작 될 수 있다. 그런 사례를 TV에서 종종 본다. TV에서 보는 대통령의 모습은 온화하다. 늘 웃는 모습으로서 한 눈에 보기에도 다정하고 인자해 보인다. 더구나 주변 사람의 인터뷰를 통하여 미담형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좋은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래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각인 된다. 그러나 종종 뉴스를 통하여 나타나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영 딴판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김영한 수석 파문일 것이다.

 

뉴스에 따르면 김영한청와대수석이 항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돌출행동에 대하여 여러가지 추측을 하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 한다. 그런데 최근 한겨레신문의 심층보도에 따르면 김수석의 행위가 이해 될 만하다. 그것은 소통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한수석의 돌출행위에 대하여 한겨레신문에서는 대통령이라도 자주 본다면 마음을 붙이고 있으련만 박 대통령이 김영한 수석을 포함한 대부분의 수석으로부터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아 그럴 기회도 없었다고 한다.(한겨레 2015-01-11)”라고 전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기?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도 하지 않고 있지만 심지어 자신의 수석비서하고도 소통하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 이렇게 소외 되다 보니 문건파동에 대하여 자신이 대신 매를 맞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사표를 던진 것이라 보고 있다.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대부분 매스컴을 통하여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단점은 감추고 장점을 부각시키다 보니 국민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발자국만 더 들어가 보면 본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는 인터넷뉴스나 팟캐스트방송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기 때문에 자신만이 구축한 이미지에 갇혀 산다. 조작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이다.

 

빠빤짜(papañca:희론, 망상)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할 때 망상이 될 수 있다. 이를 빠알리어로 빠빤짜( papañca)’라 한다. 빠빤짜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희론()’으로 번역하였다. 희론은 무의미하고 무익한 의론을 말한다. 그렇다면 희론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초기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벗들이여,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해서 시각의식이 생겨나고, 그 세 가지를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낀 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것을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희론하고, 희론한 것을 토대로 과거, 미래, 현재에 걸쳐 시각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형상에서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이 일어납니다.

 

(Madhupiṇḍikasutta-꿀과자의 경, 맛지마니까야 M18, 전재성님역)

 

 

희론의 발생은 시각, 청각 등 여섯 가지 감각능력에 따른 접촉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석에 따르면 빠빤짜(희론, 망상)는 1) 갈애에서 만들어진 희론, 2) 견해에서 만들어진 희론, 3) 자만에서 만들어진 희론 이렇게 세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느낌은 두 갈래로 방향으로

 

지금 여기에서 ‘접촉’에 따라 발생된 것은 ‘느낌’이다. 그런데 초기경에 따르면 느낌 이후에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 된다. 하나는 연기의 회전이다. 이는 다름 아닌 십이연기를 말한다. ,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으로 전개 되는 연기의 회전을 말한다. 또 하나는 희론으로의 전개이다. 느낀 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것을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망상(희론)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느낌은 두 갈래로 방향으로 진행된다.

 

왜곡된 사유로 인하여

 

희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왜곡된 사유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곡된 사유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이에 대하여 생각에 어떻게 실체성이 되는가? 왜곡된 사유 만냐띠 6단계(2013-08-2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사람들은 생각하며 산다. 이 생각이라는 말을 한자어로 사유(思惟)’라 한다.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 사유이다. 그런데 사유는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조작되는가? 이에 대하여 맛지마니까야 근본법문의 경에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있다.

 

 

pahavi pahavito sañjānāti. Pahavi pahavito saññatvā pahavi maññati pahaviyā maññati pahavito maññati pahavi me'ti maññati.

 

땅을 땅으로 여기고

땅을 땅으로 여기고 나서, 땅을 생각하고

땅 가운데 생각하고

땅으로부터 생각하며

‘땅은 내 것이다.’고 생각하며

땅에 대해 즐거워한다.”(M1)

 

 

참으로 난해한 문장이다. 부처님이 땅을 예로 들었지만 경에 따르면 땅을 포함해서 지수화풍 사대에 대하여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을 때 희론-망상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사대 뿐만 아니라 오온, 신들, 창조주, 하느님 등 모든 것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에서 생각한다는 말이 만냐띠(maññati)’이다생각(사유)에 의해서 형성된 것을 유위법적 조작이라 한다왜곡된 사유로 인하여 사념의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다.

 

 

 

delusion

 

 

사념의 구조물은 실체가 없다. 자신의 생각에서 만든 사유의 구조물은 자신의 마음 속에 견고 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빠빤짜라 한다. 이 빠빤짜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희론이라 하였고, 초불연에서는 망상이라 번역하였다.

 

뉴스 같지 않은 뉴스가 넘쳐나는데

 

부처님은 빠빤짜(희론, 망상)가 일어나는 과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망상이 일어나는 첫 번째 단계는 접촉에서 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볼 때, 그리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할 때 발생된다.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할 때,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할 때 형성된다. 그래서 한번 이미지가 형성되면 결코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이미지에 대하여 누군가 나쁘게 말하면 대변하거나 방어 하게 된다. 

 

그런데 매스컴에서는 이미지 조작이 다반사로 일어 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TV에서는 주로 좋은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를 주로 보내 준다. 그래서일까 요즘 TV에서는 뉴스 같지 않은 뉴스가 넘쳐 난다우리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외면한다. 모순과 위선과 거짓을 고발하기 보다 즐거운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줌으로서 이미지 조작을 시도 하는 것이다. TV프로에서 먹거리 프로가 넘쳐 나는 것도 어려운 현실을 잊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 가운데 생각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생각하며

 

부처님의 땅에 대한 법문을 보면 어떻게 왜곡된 사유가 발생되는지 알 수 있다. 경에 따르면 왜곡된 사유의 예로서 땅을 들었으나 하는님도 마찬가지로 왜곡된 사유의 결과로 나타난다. 경에서는 하는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Brahma brahmato sañjānāti. Brahma brahmato saññatvā brahma maññati. Brahmani maññati. Brahmato maññati. Brahma me'ti maññati. Brahma abhinandati. Ta kissa hetu? Apariññāta1 tassā'ti vadāmi.

 

[세존]

그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여기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여기고 나서,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 가운데 생각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생각하며 ‘하느님은 내 것이다.’고 생각하며 하느님에 대해 즐거워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나는 말한다.

 

(Mūlapariyāyasutta-근본법문의 경, 맛지마니까야 M1, 전재성님역)

 

 

이 문장은 정형구에서 단어만 바꾼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브라흐마(Brahma, 梵天)를 말한다. 부처님 당시 고대인도에서 존재의 근원이자 창조신에 해당되는 최고의 신을 말한다.

 

왜곡된 사유의 전개과정

 

그런데 경의 본문만 보아 가지고는 심오한 뜻을 알기 어렵다. 이럴 경우 주석을 참고 해야 한다. 각주를 참고 하여 하느님에 대한 왜곡된 사유를 보면 다음 표와 같다.

 

 

왜곡된 사유에 따른 유위적 조작의 과정

단계

   

  

비 고

1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여기고

일반사람은 X X로 지각한다.

대격

있는 그대로 지각

2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여기고 나서,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는 X X로 지각하면서 X를 생각한다.

지각의 사유화

3

하느님 가운데 생각하고

그는 X가운데 생각한다.

처격

‘나’처럼 여김

4

하느님으로부터 생각하며

그는 X로부터 생각한다.

탈격

‘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

5

‘하느님은 내 것이다.’고 생각하며

그는 ‘X는 나의 것(또는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유격

‘나의 소유’란 자아관념의 기초가 형성

6

하느님에 대해 즐거워한다.

그는 X를 즐거워 한다.

‘나의 소유’를 향수함

 

 

표를 보면 왜곡된 사유의 과정이 단계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할 때,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할 때,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할 때 왜곡된 사유가 발생하는 것이다.

 

왜곡된 사유는 접촉에서부터 기인한다. 마두삔다까경(M18)에 의하면, 시각과 형상과 시각의식에 따른 삼사화합이 일어난다. 삼사화합에 따라 접촉-느낌-지각-사유-희론(망상: 빠빤짜)’ 순으로 전개 된다. 최종적으로 희론(망상)이 발생된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과거, 미래, 현재에 걸쳐 시각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형상에서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이 일어납니다. M18)”라 하였다.

 

하느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여기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여기고 나서, 하느님을 생각하고단계 서부터는 희론-망상으로 전개 된다.

 

희론-망상은 생각으로부터 시작 된다. 그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갇혀 지낸다. 이에 대하여 전문용어로 인식론적 왜곡이라 한다.

 

인식론적 왜곡에 대하여

 

인식론적 왜곡에 대하여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만냐띠라는 단어는 어근 man ‘생각하다에서 생겨난 것으로 빠알리어에서는 왜곡된 사유를 나타낼 때 쓴다. 대상자체에서 유래하지 않는 그 대상에 대한 특징이나 의미를 부여 하는 사유를 말한다. 인식론적 왜곡은 순간적인 지각의 경험가운데서도 자아중심적인 관점이 침투함으로써 일어난다. 주석서(Pps.I.26)에 의하면, 인식론적 왜곡은 세 가지 방식, 갈애(tanha), 자만(mana), 견해(ditthi)에 지배당함으로써 일어난다.

 

(맛지마니까야 13번 각주, 전재성님)

 

 

인식론적 왜곡이 일어나는 가장 큰 요인이 있다. 그것은 자아중심적인 관점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름아닌 지각의 사유화를 말한다. 이는 경에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여기고 나서, 하느님을 생각하고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사유한다는 것 자체가 자아중심론적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볼 때 이는 즐기는 것에 해당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할 때도 즐기기 위해서이다. 즐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즐기고자 하는 갈애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주석에 따르면 인식론적 왜곡은 갈애(tanha), 자만(mana), 견해(ditthi)에 지배당함으로써 일어난다.(Pps.I.26)”고 하였다.

 

오온을 내 것이라고 여겼을 때

 

인식론적 왜곡이 일어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자아중심적인 관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하였다. 오온을 내 것이라고 여겼을 때 희론-망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존재론적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그래서 “‘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사유의 문지방, 자신을 인식주관으로 하고 지각된 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관계아래서 상상된 자아감각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다양한 형태를 대표하는 양식이다.(13번 각주)”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인식론적 왜곡, 즉 유위법적 조작에 따른 희론-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자아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내가 보고 내가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에 조작되고 왜곡된 이미지가 형상된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대상에 대하여 어떻게보아야 할까?

 

있는 그대로 보았을 때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명쾌하게 답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diṭṭhe diṭṭhamatta bhavissati,
sute sutamatta
bhavissati,
mute mutamatta
bhavissati,
viññ
āte viññātamatta bhavissatī

 

보인 것 안에는 보인 것만이 있을 뿐이며,

들린 것 안에는 들린 것만이 있을 뿐이며,

감각된 것 안에는 감각된 것만이 있을 뿐이며,

인식된 것 안에는 인식된 것만이 있을 뿐이다. (S35.95)

 

 

눈을 뜨면 보지 않을 수 없고, 귀가 있으면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알아차리지 않으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자아에 기반한 인식론적 왜곡을 가져 올 수 있다. 그 결과 망상(희론: 빠빤짜)이 생겨난다. 

 

 희론이나 망상이 생겨 나는 것은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면 즐거운 느낌이 일어난다라고 알아차리면 그뿐이다. 그럼에도 즐거운 느낌에 갈애를 일으키고 집착하여 지각하고 사유한다면 희론과 망상으로 발전된다. 이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보인 것 안에는 보인 것만이 있을 뿐이며라 하여 있는 그대로 볼 것을 강조 하였다. 들리는 것, 감각되는 것,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2015-01-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