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땔감은 다르지만 불꽃은 같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 19. 08:34

 

땔감은 다르지만 불꽃은 같다

 

 

 

 

 

 

주변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종종 접합니다. 일종의 인간승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미디어붓다에 실린 유영희님의 우리의 선택이 바로 우리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We become what think we are.

We are what we think.

We are the choices

that we make each moment, every day.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그것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다.

매 순간 매일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

바로 우리인 것이다.”

 

 

독일에서 최약 최연소의 풋볼팀을 최정상으로 올려 놓은 코치가 한 말이라 합니다. 이 문구에 대하여 유영희님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무엇이든지 마음 먹은 대로 된다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면 된다의 의미이겠죠.

 

초기경전을 접하다 보니 모든 것을 초기경전의 가르침에서 찾고자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민하던 모든 것들이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안에 다 들어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경전을 열어 보게 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답이 들어 있습니다.

 

영문구절에 대하여 초기불교적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행위에 대한 것이라 봅니다. 코치는 생각하는 것(thinking)과 선택(choice)라 하였지만 사실상 행위(action)라 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능인이 되고

행위에 의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에 의해 고용인이 됩니다.”(stn651)

 

 

이 게송은 매우 유명합니다. 귀하고 천한것은 행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초기경전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나,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아닌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아닌 자도 되는 것입니다. (stn650)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능인이 되며,

행위로 인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로 인해 고용인이 됩니다. (stn651)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전사가 되며,

행위로 인해 제관이 되고,

또한 행위로 인해 왕이 됩니다.” (stn652)

 

 

흔히 왕대밭에 왕대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자라도 미천한 행위를 하면 천한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태생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사성계급의 카스트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어야 하리.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에도 지혜로운 현자가 생기네.

부끄러움으로 자제하는 자가 고귀하네.” (S7.9)

 

 

부처님은 땔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땔감에서도 불꽃은 같다는 말입니다. 지혜를 땔감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천한 가문에서도 지혜로운 자가 생겨 날 수 있음을 말씀 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땔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쌀라야나여, 또한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왕위를 이어 받은 왕족계급의 왕이 여러 출신의 사람 백여 명을 모아놓고‘존자들이여, 귀족 가문, 왕족 가문,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당신들이 사라수, 사라라수, 전단수, 또는 발담마수의 부싯목을 가져와서 불을 지펴서 불빛을 밝혀라.

 

존자들이여, 짠달라 가문, 사냥꾼 가문, 죽세공 가문, 마차수리공 가문, 도로청소부 가문에서 태어난 당신들도 개 먹이통, 돼지 먹이통, 세탁통이나 엘란다 나무의 부싯목을 가져와서 불을 지펴서 불빛을 밝혀라.’ 고 했다고 합시다.

 

아쌀라야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쌀라야나여, 만약에 귀족가문, 왕족 가문,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자들이 사라수, 사라라수, 전단수, 또는 발담마수의 부싯목을 가져와서 불을 지펴서 불빛을 밝힌다면, 바로 그 불꽃만이 화염이 있고, 광채와 광명이 있어, 바로 그 불꽃으로만 불을 만들 수 있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짠달라 가문, 사냥꾼 가문, 죽세공 가문, 마차수리공 가문, 도로청소부 가문에서 태어난 자들도 개 먹이통, 돼지 먹이통, 세탁통이나 엘란다 나무의 부싯목을 가져와서 불을 지펴서 불빛을 밝힌다면, 바로 그 불꽃만이 화염이 없고, 광채와 광명이 없어, 그 불꽃으로는 불을 만들 수 없습니까?(M93)

 

 

어떤 땔감에서도 불이 붙으면 다 똑같습니다. 향기가 좋은 고급 전단향목재를 땔감으로 한 것이나 야크똥을 말린 것을 땔감으로 한 것이나 모두 불이 붙으면 불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어느 땔감이든지 불의 화염, 광채, 광명은 동일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깨달음은 동일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르침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귀한 가문의 양가집 자제나 불가촉천민의 노예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 얻은 지혜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나 재가자나 역시 가르침을 실천하면 깨달음의 내용 역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의 평등사상입니다. 누구든지 가르침을 실천하면 부처님과 똑 같은 경지에 올라 갈 수 있음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행위를 강조 하셨습니다. 출생이 아니라 행위에 따라 귀하고 천한자의 구별이 생겨난다고 하였습니다.  

 

최약의 풋볼팀이 최강으로 이끈 코치의 말에 대하여 일체유심조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불교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행위로 봅니다. 그것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깜마(kamma:)’에 따른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주변에는 불교적 가르침이 도처에 깔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잘 보면 보입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바보짓을 해야 바보지하는 말도 불교적인 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바보가 아니라 바보짓을 해야 바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이라는 말이 행위를 뜻하기 때문에 불교적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코치가 한 말 역시 불교적입니다. 그런데 코치가 한 말에서 초이스(choice)를 액션(action)으로 바꾸어 표현 하면 완전한 불교적 말이 됩니다.

 

 

We become what think we are.

We are what we think.

We are the actions

that we make each moment, every day.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그것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다.

매 순간 매일 우리가 행위한 것들이

바로 우리인 것이다.

 

 

 

2015-01-1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