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또다시 새벽을 맞으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 21. 07:57

 

또다시 새벽을 맞으며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일월도 어느덧 말기로 접어 들었습니다. 이러다 올해도 다 가는 것이 아닌지 염려됩니다. 왜냐하면 늘 세월은 인정사정이 없었고 또 세월은 항상 우리를 버렸으니까요.

 

매일 새벽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퇴근 할 때는 깜깜한 저녁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과 저녁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중간 과정이 없는 듯 보이는 것 입니다.

 

아침이다 싶으면 저녁이고, 월요일이다 싶으면 금요일이고, 월초이다 싶으면 월말이고, 연초이다 싶으면 연말입니다. 지금 연초이니 곧 연말이 될 것 입니다. 이쯤 되면 세월이 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미친듯이 폭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폭주 하는 것이 세월입니다. 그 끝은 어디일까요? 아마 쏘아져 버려진 화살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구경 늙음의 품(jaravagga)’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습니다.

 

 

젊어서 청정한 삶을 살지 않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으니,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누워서 옛날을 애도한다.”(dhp156)

 

 

활을 쏘면 화살은 쏜살같이 날아갑니다. 그런데 한번 쏜 화살은 좀처럼 다시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려집니다. 마찬가지로 세월에 떠밀려 노인이 되었을 때 쏘아져 버려진 화살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나이를 먹도록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이룩해 놓은 성과도 없다면 더욱더 버려진 존재처럼 보이겠지요.

 

모은 것도 이룬 것도 없다면 착하고 건전하게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갈애로 한평생을 살아 온 자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젊어서 청정한 삶을 살지 않고라 한 것입니다.

 

모은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 늙은이는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생에서는 이루지 못했으니 다음생을 기약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합니다.

 

삼십삼천의 천상에서 하루는 인간의 백년이라 합니다. 천상의 존재가 실수로 죽어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존재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잘 살다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살던 천상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천상의 시계로 보았을 때 잠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잠시 자리를 비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 천상에서 사는 존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간의 백년은 천상의 하루에 해당되기 때문에 인간은 사실상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살이 같은 인간들은 마치 천년만년을 사는 것처럼, 영원히 사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의 말씀은 틀림 없습니다. 초전법륜경 괴로움의 성스러운진리(苦聖諦)’에 따르면 생노병사가 괴로움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노병사는 크게 ()’()’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태어남과 죽음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간과정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아침이다 싶으면 저녁이고, 월요일이다 싶으면 금요일인 것과 같습니다. 또 소년이다 싶은데 노년인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만 있는 것 같습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한존재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 입니다. 그런데 노년이 되면 필연적으로 병이 따르게 됩니다. 나이가 드는 것도 서러운데 병이라도 들면 더욱 더 서러울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노와 병과 사를 한묶음으로 하여 노병사라 합나다. 그래서 늙는 것도 괴로움이고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고 죽는 것도 괴로움이다.(S56.11)”라 하였습니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을까요? 유행가 가사처럼 밧줄로 꽁꽁묶어 둘 수 없을까요? 그럼에도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갑니다. 귀한자나 천한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인정도 없고 사정도 봐주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잔인합니다. 그런 세월에 등 떠밀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새벽을 맞이 하였습니다. 곧 저녁이 되겠지요. 새로 맞이한 새벽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입니다. 그런 오늘은 어제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또 내일이 어제 같은 일상이 반복됩니다. 물론 내일이 어제같다는 말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끊임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불자라면 당연히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죽음에 굴복하지 않기 위하여, 죽음의 신에게 끌려 가지 않기 위하여 지금 이 순간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번 지나간 버스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번 지나간 시간 역시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오지 않는 한번의 기회이기에 마지막 심정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없는 단 한번의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 입니다. 물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입니다.

 

 

 

2015-01-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