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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담마(Dhamma)의 의미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 21. 20:10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담마(Dhamma)의 의미

 

 

마라가 굉음을 내며

 

마라상윳따에서 악마 빠삐만이 이번에는 굉음으로 수행승들을 놀라게 한다. 경에 따르면 땅이라도 갈라지는 듯했다.”라고 하였다. 초불연에서는 땅이 산산조각 나는 듯 했다.”라고 하였다. 빅쿠보디는 as though the earth were splitting open”라 하였다. “땅이 열려서 찢어지는 것처럼이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이에 대한 빠알리어는 “Apissuda pahavi maññe udīrayati이다.

 

갈라진다라는 말과 산산조각난다라는 말은 다른 말이다. 그렇다면 초불연에서는 왜 산산조각나는 듯하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각주를 보면 주석서는 이 대지는 마치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듯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복주석서는 산산조각 난다는 것은 전복된다는 뜻이다.(초불연 상1 478번 각주)”라고 설명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각묵스님은 복주석에서 산산조각 난다는 것은 전복된다라는 견해를 중시하여  땅이 산산조각 나는 듯 했다.”라고 번역한 듯 하다. 이와 관련하여 빅쿠보디의 각주를 보면 복주석(Spk-pt)에서 “ ‘Is splitting open’ means: is turning over(cdb 291번 각주)”라 하였다. 각묵스님의 각주와 일치한다. 그래서 땅이 찢어지는 것처럼 마라가 굉음을 일으키고 있다고 번역하였다.

 

부처님이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땅이 갈라지고 땅이 찢어질 것처럼 매우 큰소리가 났을 때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고무 되었던 수행승들도 마라의 위협적인 소리에 놀랐을 것이다. 이때 부처님은 악마 빠삐만의 소행임을 알아 차리고 수행승이여, 이것은 땅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악마 빠삐만이 너희들을 눈멀게 하기 위하여 온 것이다.(S4.17)”라고 안심시킨다. 그리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악마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Āyatanasutta(여섯접촉의 영역에 대한 경, S4.17)

빠알리어

Rūpā saddā rasā gandhā

phassā dhammā ca kevalā,
Eta
lokāmisa ghora

ettha loko'dhimucchito.


Etañca samatikkamma

sato buddhassa sāvako,
M
āradheyyamatikkamma

ādiccova virocatīti

전재성님역

[세존]

형상, 소리, 냄새, , 감촉과 사실은

세상 사람을 유혹하는

참으로 무서운 미끼여서

세상 사람은 거기에 말려드네.

 

깨달은 님의 제자는

새김을 확립하여 그것을 뛰어넘어

악마의 영토에서 벗어나

태양처럼 널리 빛나네.”

각묵스님역

형색, 소리, 냄새, , 감촉,

[마노의 대상인] 법이 되는 모든 것-

이러한 것은 세상의 무시무시한 미끼이니

참으로 세상은 여기에 혹해 있네.

 

마음챙기는 깨달은 자의 제자는

이것을 멀리하여 건너가나니

마라의 영역을 철저하게 넘어서서

하늘의 태양처럼 아주 밝게 빛나도다.”

빅쿠보디역

"Forms, sounds, tastes, odours,

Tactiles, and all mental objects:

This is the terrible bait of the world

With which the world is infatuated.

 

"But when he has transcended this,

The mindful disciple of the Buddha

Shines radiantly like the sun,

Having surmounted Mara's realm."

 

 

 

 

 

Dhamma

 

 

 

이 게송은 여섯 가지 감각영역에 대한 것이다. 감각대상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형상, 소리, 냄새, , 감촉과 사실이라 하였다. 각묵스님은  형색, 소리, 냄새, , 감촉, [마노의 대상인] 라 하여 번역용어가 다른 것이 있다.

 

비교표를 만들어 보면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은 번역용어가 같다. 그러나 형상과 형색, 사실과 법이라는 용어는 다르다. 빅쿠보디는 Forms, sounds, tastes, odours, Tactiles, and all mental objects’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빠알리어

전재성님역

각묵스님역

빅쿠보디역

rūpā

형상

형색

forms

saddā

소리

소리

sounds

rasā

tastes

gandhā

냄새

냄새

odours

phassā

감촉

감촉

tactiles

dhammā

사실

[마노의 대상인]

all mental objects

 

 

 

오온에서는 rūpā에 대하여 물질이라 한다. 그러나 여섯 감역에서는 형상으로 번역되어 있다. 초불연에서는 형색이라 하였다. 그런데 가장 차이가 나는 용어는 담마(dhammā)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각주에서 담마에 대하여 원래는 제법인데 여기서는 모든 정신의 대상으로서의 사실을 의미한다.(1079번 각주)”라 하였다.

 

담마에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여섯 감역에서는 모든 정신의 대상이 담마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초불연에서는 대괄호치기를 이용하여 ‘[마노의 대상인] 라고 주석적 번역을 하였다. 빅쿠보디 역시 all mental objects(모든 정신의 대상들)’이라 하여 주석적 번역을 하였다. 이런 번역은 빅쿠보디의 번역방침에 어긋난다.

 

빅쿠보디의 번역방침

 

빅쿠보디는 cdb 해제에서 When the word denotes the Buddha's teaching, I have retained the Pali"Dhamma," for even "teaching" fails to convey the idea that what the Buddha teaches as the Dhamma is not a system of thought original to himself but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ruth, virtue, and liberation discovered and taught by all Buddhas throughout beginningless time. This is the Dhamma Venerated by the Buddhas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which they look upon as their own standard and guide (see 6:2).”라 하였다.

 

이는 무슨 말인가? 빅쿠 보디에 따르면 빠알리어 담마를 다른 뜻으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담마에 대하여 ‘teaching(가르침)’이라 번역하였을 때 이 말이 담마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함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빅쿠보디는 시종일관 빠알리어 담마에 대하여 원어 그대로 담마라고 번역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Āyatanasutta(여섯접촉의 영역에 대한 경, S4.17)에서는 담마에 대하여 all mental objects’라 하여 이를 어겼다.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초불연에서도 빅쿠보디와 마찬가지로 담마는 담마로 번역하여야 함을 천명하였다. 이는 청정도론 해제에서 대림스님의 담마에 대한 번역방침을 보면 알 수 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dhamma는 ‘법’으로 한역 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혹 드물게 문맥에 따라 현상 등으로 옮긴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반드시 ‘()’이라 부기해 넣어서 그것이 담마(dhamma)의 역어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내 안에서 파악하는가 하는 것은 불교의 근본이며 특히 법(dhamma)과 대면함(abhi)을 근본주제로 하는 아비담마의 생명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현상’이니, ‘것’이니, ‘사물’이니 하는 애매한 용어로 dhamma를 옮기는 것은 피하였다.

 

그리고 viparinnama-dhamma같은 경우에는 ‘변하기 마련인 것’이라든지 ‘변하기 마련이며’라는 등으로 옮기지 않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라고 ‘법’을 살려서 옮겼다. 경에서 부처님께서 dhamma라는 술어를 채용하셨을 때는 그런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청정도론 해제, 초불연 대림스님)

 

 

대림스님에 따르면 부처님이 dhamma라는 술어를 채용하셨을 때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담마에 대하여 가르침이나 진리 등으로 함부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런 번역방침은 빅쿠보디의 번역방침과 일치한다.

 

번역이 딱딱해 지는 이유는?

 

각묵스님은 담마를 법이라고 번역하였으나 대괄호치기를 이용하여 ‘[마노의 대상인] 이라 하여 주석적 번역을 하였다. 그러나 전재성님은 담마에 대하여 문맥에 맞게 사실로 번역하였다.

 

전재성님의 경우 담마에 대하여 문맥에 따라 ‘진리’ ‘사실’ ‘것’ 그 밖에 ‘가르침’ 등으로 번역한다. (S6:1 각주)”라고 하였다. 그래서 진리, 가르침, 원리, 사실, 것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였다. 이는 담마라는 말이 매우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담마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법으로 번역한다면 번역이 경직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예를 초불연에서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저~ 거시기, 거시기 말여~”담마(dhamma) 법() (2012-12-2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다양한 의미를 갖는 담마

 

담마에 대하여 빠알리 사전을 보면 ‘doctrine; nature; truth; the Norm; morality; good conduct.’이라 설명되어 있다. 한자어로는 , , , 正義의 뜻이라 설명되어 있다. 우리말로는 교법, 자연, 진리, 도덕, 선행의 의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이에 대하여 초불연에서는 담마란 1)성전을 배움, 2) 진리, 3) 삼매, 4) 통찰지, 5) 자연적 현상, 6) 본성, 7) 공성, 8) 공덕, 9) 범계, 10) 알아야 할 것(초불연 맛지마1 32번 각주)”라고 설명 되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담마에 대하여 아비담마에 따르면 고유의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빠라맛따담마라 부르고 있다.

 

담마에 대한 다섯 가지 사용예

 

다양하게 사용되는 담마에 대하여 경전을 근거로 하여 번역비교 하여 보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No

빠알리어

전재성님역

각묵스님역

비고

1

dhammo ca vinayo ca desito paññatto, so vo mamaccayena satthā

가르침과 계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D16)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D16)

 

Dhammo,

가르침,

2

dhamma passati so ma passati, yo ma passati so dhamma passati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 (S22.87)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S22.87)

dhamma,

진리,

3

Katamo ca bhikkhave, paiccasamuppādo? Jātipaccayā bhikkhave jarāmaraa uppādā vā tathāgatāna anuppādā vā tathāgatāna hitāva sā dhātu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 idapaccayatā.

“수행승들이여, 연기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이 생겨난다.’라고 여래가 출현하거나 여래가 출현하지 않거나 그 세계는 원리로서 확립되어 있으며 원리로서 결정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S12.2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연기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이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며,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이것에 조건되는 성질이다.”

(S12.20)

dhammaṭṭhitatā,

원리로서 확립되어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며

4

Rūpā saddā rasā gandhā

phassā dhammā ca kevalā,
Eta
lokāmisa ghora

ettha loko'dhimucchito.

형상, 소리, 냄새, , 감촉과 사실은

세상 사람을 유혹하는

참으로 무서운 미끼여서

세상 사람은 거기에 말려드네.” (S4.17)

형색, 소리, 냄새, , 감촉,

[마노의 대상인] 법이 되는 모든 것-

이러한 것은 세상의 무시무시한 미끼이니

참으로 세상은 여기에 혹해 있네. (S4.17)

dhammā,

사실,

[마노의 대상인]

5

Rūpa kho ānanda, anicca, sakhata paiccasamuppanna khayadhamma vayadhamma virāgadhamma nirodhadhamma.

아난다여, 물질은 무상하고 조건지어지고 연기된 것으로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S22.21)

아난다여, 물질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有爲] 조건에 의해 생겨난 것[緣而性]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되기 마련인 법이다.”(S22.21)

khayadhamma,

부서지고야 마는 것,

부서지기 마련인 법

 

 

 

 

가르침으로서의 담마

 

첫 번째 항을 보면, 가르침으로서의 담마이다. 초기경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담마의 의미이다. 대표적으로 “dhammo ca vinayo ca desito paññatto, so vo mamaccayena satthā, D16)”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담마에 대하여가르침이라 번역하였다. 이는 한글삼귀의문에서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라고 표현 된 것에서 가르침이라는 말과 일치한다. 

 

이렇게 본다면 초기경전에서 담마는 문맥에 따라 가르침으로 표현 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그러나 초불연에서는 한자어 으로 통일 하였다. 그래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라 한 것이다. 전재성님은 가르침과 계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 라 하였다.

 

진리로서의 담마

 

두 번째 항을 보면,  진리로서의 담마이다. 역시 초기경전에서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dhamma passati so ma passati, yo ma passati so dhamma passati, S22.87)”라는 유명한 구절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 라고 하여 담마에 대하여 진리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초불연에서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라 하여 담마에 대하여 으로 번역하였다.

 

가르침을 뜻하는 것도 진리를 뜻하는 것도 모두 법이라 하면 어느 법이 가르침인지 어느 법이 진리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담마에 대하여 일괄적으로 법으로 번역한 것은 초불연의 방침이기 때문에 방침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원리로서 담마

 

세 번째 항을 보면, 원리로서 담마이다. 원리로서 담마는 초기경전에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인 문구가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전재님은 원리로서 확립되어 있으며 원리로서 결정되어 있으며라 하여 담마에 대하여 원리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초불연에서는 법으로 확립된 것이며,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라 하여 담마에 대하여 으로 번역하였다.

 

연기법은 부처가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이미 확정 되어 있는 법이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원리로서 확립되어 있으며 원리로서 결정되어 있으며라는 표현이 법으로 확립된 것이며,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라고 표현 되어 있는 것 보다 더 타당해 보인다.

 

사실로서 담마

 

네 번째 항을 보면, 사실로서 담마이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담마에 대하여사실이라고 번역하였다. , 귀 등 여섯 감역에 해당되는 담마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사실이라 번역하였지만, 초불연에서는 으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전재성님은 형상, 소리, 냄새, , 감촉과 사실라 하였지만, 각묵스님은 형색, 소리, 냄새, , 감촉,[마노의 대상인] 이라 하여 달리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전재성님은 여섯 감역에 있어서 담마에 대하여 사실이라고 번역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해제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담마야따나(dhammayatana:法處)의 경우에는 마나야따나(manayatana)에 대응되는 말인데  정신의 감역에 대한 정신적 대상으로서의 사실을 의미하지만 역자는 ‘사실의 감역’으로 번역한다. 따라서 담바싸띠빳타나(dhammasatipatthana:法念處)도 사실에 대한 새김의 토대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필자가 사용한 사실이란 광의의 의미로 곧 유위법은 물론이고 정신의 대상으로서의 무위법인 열반까지 포함하는 전체를 지시한다. 비구 보디(cdb,1777)는 ‘현상(phenomena)’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되면 불교를 단순히 현상론으로 해석할 소지가 많고 열반도 단지 현상으로 전락함으로 이 말은 되도록 피했다.

 

담마다뚜(dhammadhatu: 法界)도 역시’사실의 세계’라고 번역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마노빈냐나다뚜(manoviññāadhātu)는 ‘정신의식의 세계’라고 번역했다.

 

(사실로 번역된 담마, 전재성님, 각권 니까야 해제)

 

 

전재성님의 설명에 따르면 사실이란 광의의 의미로 곧 유위법은 물론이고 정신의 대상으로서의 무위법인 열반까지 포함하는 전체라 하였다. 특히 법입처에 대하여 사실영역으로 보았다. 이에 대하여 상윳따니까야 4권 해제에서는 오온과 육입처와 관련하여 하나의 표를 볼 수 있다. 시각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존재의 다발[오온]

시각인식[안식]

감역[육입처의 하나]

물질[]

시각[]-형상[]

시각영역[안입처]-형상영역[색입처]

의식[]

시각의식[안식]

정신영역[의입처]

(형성)[]

시각접촉[안촉]

사실영역[법입처]

느낌[]

시각접촉에 의한 느낌[眼觸所受]

사실영역[법입처]

지각[]

형상에 대한 지각[색상]

사실영역[법입처]

형성[]

형상에 대한 의도[색의도]

사실영역[법입처]

 

(상윳따니까야 4권 해제)

 

 

표를 보면 오온과 여섯 감역중에서 시각에 대한 것이다. 사실영역을 보면 느낌과 지각과 형성이 해당됨을 알 수 있다. 이를 법입처라 하였다. 물질과 의식은 사실영역에 속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담마에 대하여 사실이라 번역한 것은 담마에 대하여 단지 법으로 번역한 것 보다 더 사실적이다. 그런 사실은 어떤 것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실(事實)’에 대하여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영어로는 팩트(fact)’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여섯 감역에서 마노의 대상으로서 사실이라 번역한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관형사로서의 담마

 

다섯 번째 항을 보면, 관형사로서의 담마이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담마에대하여 이라 번역하였다. 빠알리어 ‘khayadhamma에 대하여 부서지고야 마는 것이라고 번역한 예가 대표적이다.

 

이런 번역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각권 니까야 해제에서 복합어의 뒷부분을 구성하는 담마는 문법적으로 독특한 성질을 지닌다. 예를 들어 카야담마(khayadhamma), 바야담마(vayadhamma),  니로다담마(nirodhadhamma)에서 담마는 단순히 ‘것’이라고 하거나 ‘해야만 하는 것’이란 문법적 의미를 지니므로 그 것들은 ‘파괴되고야 마는 것’ 괴멸되는 것이고 소멸되고야마는 것’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닛짜담마(aniccadhamma, 둑카담마(dukkhadhamma), 아낫따담마(anattadhamma)는 ‘무상한 것, 괴로운 것,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담마가 복합어로 사용되어 후미에 위치한다면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초불연의 경우 초불연번역 방침대로 담마에 대하여 한자어 을 일율적으로 적용하였다. 그래서 “khayadhamma vayadhamma virāgadhamma nirodhadhamma에 대하여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되기 마련인 법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하여 전재성님은 대신에 을 사용하여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라 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담마(Dhamma)의 의미

 

이외에도 담마에 대한 용례는 더 있다. 그러나 표에 언급된 다섯 가지 용례가 많이 사용된다. 그 중에서도 가르침을 뜻하는 담마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담마는 불교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일까? 이에 대하여 일아스님은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의 부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빠알리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담마를 설하셨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담마”“담마는 잘 설해졌다” “의미를 갖춘 담마” “붓다.담마.승가” “담마의 바퀴등부처님 가르침을 모두담마로 표현하고 있다. 이 경우는가르침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보다 진리나 우주현상, 대상, 바른 길등 광범위한 함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담마를 가르침이라는 한 단어로 한정할 수는 없다.그래서 가르침이라는 한 단어에 한정하기보다는 그냥 담마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담마가()으로 한역되었기 때문에, 그후 부처님의 담마를 불법으로, 붓다.담마.승가를 불법승으로, 담마의 바퀴를 법륜으로 한역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라는 번역은 의미가 한정돼 있어 담마의 뜻을 명쾌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담마의 원뜻은바른 의무덕성스러운 길을 뜻한다. 부처님 이전부터 사용한 인도의 정신적 종교적인 용어이다. 담마는 인도철학을 통하여 우주의 진리나 최상의 실체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인도의 고유종교인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시크교 등은 모두담마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담마의 넓은 의미로는 바른 행동, 도덕적 행위, 도덕적 가르침, 우주적인 법칙, 교리, 상태, 도덕적 행위, 현상, 정의, 대상, 개념, 진리, 바른 길, 교훈, 성질, 조건, 요소, 본성 등 다양하다.

 

부처님은 이런 다양하고 훌륭한 뜻을 지닌 용어인 담마를 채용하여 당신의 가르침을 표현할 때 담마라고 하였다. 그래서 좁은 의미로는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함축된 의미는 이런 다양한 훌륭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와 같이 담마의 뜻을 하나로 한정할 수 없으며 문장의 뜻과 문맥에 따라서 함축된 의미 중에서 더 합당한 뜻을 찾는 것이 바른 담마의 뜻일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담마(Dhamma)의 의미,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의 부록에서, 일아스님)

 

 

일아스님에 따르면 담마의 의미는 매우 여러 가지라 하였다. 그리고 고대인도에고부터 담마라는 말을 사용하여 왔고, 특히 담마라는 말은 불교의 전용용어가 아니라고 한다. 힌두교나 자이나교 등에서도 담마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담마에 대하여 단지 원어 그대로 담마라거나 또는 한자어 으로 사용한다면 다양한 담마의 의미를 제대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이는 빅쿠보디와 초불연의 번역방침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상황에 맞게 문맥에 맞게

 

빅쿠보디의 경우 담마에 대하여 원어 그대로 담마로 한다고 천명하였고, 초불연 역시 한자어 으로 번역한다고 천명하였다. 이렇게 천명한 배경에는 부처님이 다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담마라 한 것은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어를 중시하여 가르침, 진리, 원리, 것 등 다른 뜻으로 번역하지 않고 오로지 법으로 한정하여 번역하는 것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아스님은 이런 번역태도에 비판을 하고 있다. 글에서 담마의 뜻을 하나로 한정할 수 없으며 문장의 뜻과 문맥에 따라서 함축된 의미 중에서 더 합당한 뜻을 찾는 것이 바른 담마의 뜻일 것이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담마에 대하여 가르침, 진리, 원리, 사실, 것 등으로 상황에 맞게 문맥에 맞게 번역한 전재성님의 번역이 돋보인다.

 

 

2015-01-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