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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락에 대한 승리, 오온의 정복, 승리와 정복을 뜻하는 위자야(vijaya)

담마다사 이병욱 2015. 2. 26. 11:24

 

오욕락에 대한 승리, 오온의 정복, 승리와 정복을 뜻하는 위자야(vijaya)

 

 

 

빅쿠니상윳따 네 번째의 경은 위자야경(Vijayā sutta, S5.4)’이다. 위자야라는 말은 승리의 뜻으로 알려져 있다. ‘자야망갈라가타라 할 때 자야승리를 뜻한다. 담마위자야라 할 때 담마에 의한 승리또는 담마에 의한 정복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수행녀상윳따에서 위자야는 수행녀의 이름이다.

 

빅쿠니의 이름이 위자야인 것은 여로 모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악마와 싸워 이겼다는 의미도 갖기 때문이다. vijayā에 대하여 빠알리사전 PCED194를 찾아 보면 남성명사로서 ‘victory; triumph’의 뜻이다. 또 다른 뜻으로 ‘victory; conquering’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위자야라는 말은 승리와 정복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PCED194에서는 승리와 정복을 뜻하는 위자야에 대하여 경의 출처를 밝혀 놓고 있다. D.I,46; A.IV,272 (idha-loka°)이 대표적이다. 이중 D.I,46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세존]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그 법문에 대하여 의미의 그물이라고도 새길 수 있고 진리의 그물이라고도 새길 수 있고 하느님의 그물이라고도 새길 수 있고 견해의 그물이라고도 새길 수 있고, 전쟁에서 위없는 승리라고도 새길 수 있다.

 

(하느님의 그물의 경, 디가니까야 D1, 전재성님역)

 

 

브라흐마잘라경의 마지막 장면이다. 의미의 그물, 진리의 그물, 하느님의 그물,견해의 그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석에 따르면, 이 법문에 이러저러한 의미가 시설 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의 그물이라 하고, 많은 경전의 진리가 설해져 있기 때문에 진리의 그물이라 하고, 최상의 상태의 하느님의 일체지가 시설되어 있어서 하느님의 그물이라 하고, 62가지 견해가 시설되어 있기 때문에 견해의 그물이라 한다. 이와 같은 법문을 듣고 하늘의 악마, 죽음의 악마, 오염의 악마도 쳐부술 수 있기 때문에 전쟁에서 위없는 승리라 한 것이다.

 

여기서 전쟁에서 위없는 승리라는 말은 ‘anuttaro sagāmavijaya’의 번역어이다. 이는 ‘Anuttaro(supreme second to none)+sagāma(battle)+ vijaya(victory)’의 뜻이다.

 

그대는 젊고 아름다우며

 

승리 또는 정복의 뜻을 가진 것이 위자야이다. 수행녀의 이름도 위자야이다. 그런 수행녀 앞에 악마 빠삐만이 나타났다. 탁발을 마치고 숲에 들어가 선정에 드려 하는데 소름끼치는 공포를 일으켜 수행을 방해 하려 하는 것이다. 악마빠삐만은 수행녀에게 다가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한다.

 

 

 

위자야경(Vijayā sutta, S5.4)

 

빠알리어

Daharā tva rūpavatī

ahañca daharo susu,
Pañca
gikena turiyena

ehayyebhiramāmaseti.

daharo

전재성님역

[빠삐만]

그대는 젊고 아름다우며

나 또한 젊은 청년이니

사랑스런 이여, 오라.

다섯 악기로 즐겨보세.”

젊고

각묵스님역

그대는 젊었고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나도 또한 젊었고 청춘입니다.

여인이여 오소서, 다섯 가지로 구성된

악기와 더불어 둘이 함께 즐깁시다.”

젊었고

빅쿠보디역

“You are so young and beautiful,

And I too am a youth in my prime.

Come, noble lady, let us rejoice

With the music of a fivefold ensemble.”

young

 

 

첫번째 구절에서 각묵스님역을 보면 그대는 젊었고라 하여 과거형으로 하였다. 그러나 전재성님과 빅쿠보디는 현재형으로 하여 그대는 젊고“You are so young”이라 하였다. ‘그대는 젊었고라 하여 과거형으로 하였다면 이어지는 말도 아름다웠습니다라 하여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젊었고 참으로 아름답습니다라 하여 앞뒤의 시제가 맞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다섯 악기들

 

게송에서 다섯악기(Pañcagikena turiyena)라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 따르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이라 한다.

 

 

1) 아따따(atata): 쿰바와 같이 한쪽이 가죽으로 된 북

2) 비따따(vitata): 베리나 무딩가와 같이 양면이 가죽으로 덮인 드럼

3) 아따따비따따(atatavitata): 비파와 같은 가죽으로 덮인 머리에 줄로 묶여 있는 현악기

4) 쑤씨라(susira): 피리나 소라고둥이나 나팔과 같은 관악기

5) 가나(ghana): 징이나 심벌즈, 탬버린과 같은 악기

 

 

여기서 아따따비따따(atatavitata)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에 대하여 빅쿠보디는 an instrument with a head covered with skin and bound with strings, such as a lute (vīā)”라 설명하였다. 각묵스님은 간단히 현악기라 하였다. PCED194에서는 ‘a drum covered with leather on all sides’이라 하였다. 하지만 PCED194에서는 잘못 설명한 것 같다. 아마 모든 면이 가죽으로 씌어져 있다면 이는 비따따(vitata)일 것이다.

 

아따따비따따(atatavitata)에 대하여 lute와 같은 현악기와 같다고 하였다. Lute에 대하여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다.

 

 

Lute can refer generally to any string instrument having the strings running in a plane parallel to the sound table (in the Hornbostel–Sachs system), more specifically to any plucked string instrument with a neck (either fretted or unfretted) and a deep round back, or more specifically to an instrument from the family of European lutes.

(Lute, 위키백과)

 

 

 

Various lutes

 

 

위자야 빅쿠니가 답송하기를

 

악마빠삐만은 위자야빅쿠니에게 다섯 악기로 즐기자며 유혹한다. 왜 하필이면 다섯 악기일까? 이에 대하여 위자야빅쿠니는 다음과 같이 세 개의 게송으로서 답송한다.

 

 

 

위자야경(Vijayā sutta, S5.4)

 

빠알리어

Rūpā saddā rasā gandhā

phoṭṭhabbā ca manoramā,
Niyyātayāmi tuyheva

māra nāha tenatthikā.

Iminā pūtikāyena

bhindanena pabhagunā,
A
ṭṭīyāmi harāyāmi

kāmatahā samūhatā,


Ye ca rūpūpagā sattā

ye ca āruppahāyino,
Yā ca santā samāpatti

sabbattha vihato tamoti.

Aṭṭīyāmi harāyāmi

전재성님역

[비자야]

마음을 즐겁게 하는

형상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을

나는 그대에게 넘겨주니

악마여, 그것은 내게 필요하지 않네.

 

이 취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부패하는 몸에 대하여

나는 곤혹하여 참괴하니

감각적 쾌락의 욕망과 갈애는 내게서 근절되었네.

 

미세한 물질의 세계에 들어선 뭇삶들

비물질적 세계에서 지내는 자들,

고요한 선정을 성취한 자들에게도

모든 곳에서 그 어둠은 사라졌네.”

곤혹하여 참괴하니

각묵스님역

형색, 소리, 냄새, ,

마음을 끄는 감촉들

마라여, 이들은 그대에게 주노라.

나에게는 더 이상 아무 필요 없노라.

 

썩어 문드러지고 부서지고

망가지기 마련인 이 몸이

너무나 역겹고 혐오스러워

애욕에 대한 갈애 뿌리뽑아버렸도다.

 

색계에 도달한 자들과

무색계에 확고한 자들과

평화로운 증득 얻은 자들은

모든 곳에서 어둠을 부수었도다.”

역겹고 혐오스러워

빅쿠보디역

"Forms, sounds, tastes, odours,

And delightful tactile objects-

I offer them right back to you,

For I, 0 Mara, do not need them.

 

 "I am repelled and humiliated

By this foul, putrid body,

Subject to break up, fragile:

I've uprooted sensual craving.

 

"As to those beings who fare amidst form,

And those who abide in the formless,

And those peaceful attainments too:

Everywhere darkness has been destroyed."

repelled and humiliated

 

 

 

 

Bhikkhuni

 

 

오악기와 오욕락, 그리고 오온

 

악기는 주로 여흥을 즐기는데 활용된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여러 개라면 더욱 더 흥겨울 것이다. 주석에 따르면 아따따 등 다섯 가지 종류의 악기가 있다고 하였다.

 

악마 빠삐만은 이 다섯 악기로 청춘을 즐기자고 유혹한다. 이에 위자야빅쿠니는 오악기와 관련하여 오욕락을 대비 하여 말한다. 그것은 형상(rūpā)과 소리(saddā)와 향기(gandhā)와 맛(rasā)과 감촉(phoṭṭhabbā)에 대한 감각적 쾌락이다. 그런데 안이비설신의에서 의, 즉 정신(mano)에 대한 것이 빠져 있다. 이유는 이와 같은 다섯 감각접촉으로 인하여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manoramā라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한다.

 

악마 빠삐만은 지금 여기에서 오악기로 여흥을 즐기듯이 오욕락을 즐기자고 유혹한다. 이에 위자야 빅쿠니는 나는 그대에게 넘겨주니 악마여, 그것은 내게 필요하지 않네라 한다. 왜 이렇게 말하였을까? 그것은 오욕락에 대한 갈애가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욕락에 대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필요치 않아서 한 말이다.

 

두 번째 게송을 보면 몸에 대하여 부서지기 쉽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패하기 쉽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항상하지 않음을 말한다. 몸이 항상한다면 오욕락을 즐겨도 될 것이다.

 

항상 청춘이라면 지금 이순간을 마음껏 즐겨도 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부서지기 쉽고 썩기 쉬운 것이 이 몸이라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만약 그대가 무상한 것을 실로 항상하다고 말한다면, 견고하지 않은 것을 실로 견고하다고 말한다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실로 영원하다고 말한다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실로 완전하다고 말한다면,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하느님 바까여, 그대는 무명에 빠진 것입니다. 하느님 바까여, 그대는 무명에 빠진 것입니다.(S6:4)”라고 말씀 하셨다. 또 부처님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재난과 그것의 여읨의 이익을 보고라 하였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들에게 악마의 유혹이 통할리 없다. 그래서 감각적 쾌락의 욕망과 갈애는 내게서 근절되었네(S5.4)”라 한 것이다.

 

두 번째 게송에서 전재성님은 나는 곤혹하여 참괴하니라 하였다. 이는 “Aṭṭīyāmi harāyāmi”에 대한 번역이다. 그런데 번역어서 참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런 말은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다. 사전을 찾아 보기 전에는 알기 힘들다.

 

참괴(慙愧)’라는 말은 몹시 창피스럽고 부끄러이 여김의 뜻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 또는 양심과 수치심의 뜻이다.

 

참괴에 해당되는 말이 harāyāmi이다. 이는 ‘harāyati + āmi’의 형태로서 ‘ashamed, depressed or vexed; worries’의 뜻이다. ‘Aṭṭīyāmi harāyāmi’구절과 관련하여 각묵스님은 역겹고 혐오스러워라 하였다. 여기서 Aṭṭīyāmi의 뜻은 ‘is in trouble; is worried’의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Aṭṭīyāmi harāyāmi’의 뜻은 몸이라는 것이 부서지기 쉽고 부패하기 쉬워서 곤혹하게 하고 실망을 준다는 뜻이다각묵스님역을 보면 원문과는 차이가 있는 의역으로서 역겹고 혐오스러워라 하였다. 

 

위자야빅쿠니는 몸에 대한 갈애가 소멸되었다. 이는 몸에 대하여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몸은 오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온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악기와도 대비된다. 초전법륜경에 따르면 오온에 대한 집착이 결국 괴로움이라 하였기 때문에 위자야 빅쿠니는 더 이상 오온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름 아닌 아라한이라는 뜻이다. 이는 세 번째 게송에서 모든 곳에서 어둠은 사라졌네(sabbattha vihato tamoti)”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어둠(tamo)이라는 무명이 타파 된 것이다.

 

서로 다른 각주를 보면

 

어둠이 사라졌다는 것은 무명이 타파되어 아라한이 되었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되면 걸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게송과 관련하여 번역자들의 각주를 보면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 전재성님과 각묵스님의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비자야는 자신이 해탈한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무명이 그녀에게서 사라졌다. 그녀는 여덟가지 선정의 경지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명상을 즐겼다. 그래서 미세한 물질의 세계(색계)와 비물질의 세계(무색계)를 드나들며 그 세계에 거주하는 하늘사람들과 사귈 수 있었다.

(성전협 상윳따1 1217번 각주, 전재성님)

 

 

첫 번째 구는 색계를, 두 번째 구는 무색계를 나타낸다. [세 번째 구의] ‘평화로운 증득이라고 한 것은 여덟 가지 세간적인 [삼매의] 증득(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은 그 대상이 평화롭고 또한 그 구성요소가 평화롭기 때문에 평화롭다고 하였다. [네 번째 구의] ‘모든 곳에서란 모든 색계와 무색계에서란 뜻이다. 이 두 가지를 언급함으로 해서 욕계도 포함된 것이다. 여기에다 여덟 가지 증득을 포함한 이 모든 곳에서 자신은 무명의 어둠을 부수었다고 말하고 있다.”(SA.i.192)

(초불연 상윳따1 536번 각주, 각묵스님)

 

 

전재성님은 주석을 인용하지 않고 설명하였다. 반면 각묵스님은 주석(SA.i.192)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전재성님의 설명을 보면 색계와 무색계를 드나들며 그 세계에 거주하는 하늘사람들과 사귈 수 있었다라 하였다. 삼계를 넘나드는 것으로 묘사 된 것이다. 반면 각묵스님의 각주에서는 이런 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빅쿠보디는 어떻게 각주 하였을까? 관련 구절에 대한 설명을 보Spk: Pada a refers to the form realm, pada b to the formless realm, and pada c to the eight mundane meditative attainments. By the mention of the two higher realms, the sensory realm is also implied. Hence she says, "everywhere the darkness of ignorance has been dispelled.(cdb 345번 각주, 빅쿠보디)”라 되어 있다. 이는 각묵스님의 설명과 일치한다.

 

전쟁의 승리자여!”

 

불교에서 승리나 정복이라는 말을 들어 보기 힘들다. 그러나 승리나 정복에 대한 말이 있다. 그것이 위자야이다. 사실 초기경전에 승리라는 말은 많이 나온다. 상윳따니까야 하느님의 청원에 대한 경(S6.1)’에서 사함빠띠가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Uṭṭhehi vīra vijitasagāma satthavāha anaa vicara loke)”라 하였다. 이때 전쟁의 승리자라는 말이 ‘vijitasagāma’이다. 여기서 vijita의 뜻은 vijināti의 과거분사형으로 ‘conquered; subdued’의 의미이다. 이렇게 본다면 승리를 뜻하는 말은 자야, 위자야, 위지나띠 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자야빅쿠니는 악마에게 승리하였다. 빛나는 청춘에 대하여 다섯 가지 악기로 여흥을 즐기며 놀자는 것에 대하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부서지기 쉽고 부패하기 쉬운 것이라 하였다. 오온에 대한 집착이 떠난 부처님의 제자에게 악마의 유혹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악마에 대한 전쟁에서의 승리, 오욕락에 대한 승리, 오온에 대한 정복이라는 뜻에서 위자야란 이름이 부여 되지 않았을까?

 

 

 

2015-02-2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