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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번역이 옳은가? 서로 다른 번역 우빨라완나의 경(S5.5)

담마다사 이병욱 2015. 3. 5. 15:11

 

누구 번역이 옳은가? 서로 다른 번역 우빨라완나의 경(S5.5)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빅쿠니상윳따 다섯 번째 경은 우빨라완나에 대한 것이다. 경에 따르면 그 때 수행녀 우빨라반나가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싸밧티 시로 들어갔다.”라고 되어 있다.

 

이 문장과 관련하여 초불연 번역을 보면 그 때 웁빨라완나 비구니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 갔다.”라 되어 있다. 여기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라는 말에 주목한다.

 

옷매무새와 관련된 말은 “Atha kho uppalavaṇṇā bhikkhunī pubbahasamaya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āvatthi piṇḍāya pāvisi.”이다. 여기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라는 말은 nivāsetvā에 대한 번역어이다. 그런데 nivāsetvā에 대한 빠알리사전을 보면 ‘[abs. of nivāseti] having dressed oneself; having got clothed or dressed.’라 되어 있다. 단지 옷을 입는다정도의 의미이다.  그럼에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라 한 것은 지나친 의역이라 본다. 그래서인지 전재성님은 옷을 입고라 번역하였다. 빅쿠보디는 dressed’라 하여 옷을 입었다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세 개의 가사가 있는데

 

번역에서 한 가지 차이가 나는 것은 발우와 가사를 들고라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각묵스님은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라 하였다. 여기서 ()하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입다라는 말과 같다. 한국불교에서 가사를 수한다는 것은 예불이나 공식적 행사에서 괴색가사를 수한다고 하는데 이는 몸에 걸치는 것, 즉 가사를 입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전재성님은 발우와 가사를 들고라 하여 달리 번역하였다. 이런 차이에 대하여 발우와 가사, 수하는 것인가 드는 것인가(2014-03-17)’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발우와 가사는 수하는 것인가 드는 것인가? 이와 관련된 문구가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이다. 여기서 nivāsetvā‘having dressed oneself’의 뜻으로 입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이미 입은 상태를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세 벌의 가사 중에 하의에 해당되는 안따라와사까(antaravāsaka)’와 상의에 해당되는 웃따라상가(uttarāsaga)’를 입고 이미 입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개는 어떤 용도일까?

 

부처님 당시 세 개의 가사가 있었다. 빅쿠나 빅쿠니가 입는 의복을 말한다. 모두세 벌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하의와 상의가 있고, 또 하나가 있는데 이는 우리말로 대가사또는 중복가사라 불리우는 상가띠(saghāi)’를 말한다.

 

상가띠는 어떤 용도일까?

 

상가띠는 어떤 용도일까? 윗가사와 같은 길이와 폭으로 옷감이 2매 겹침이 되어 있는 큰 옷(大衣)’를 말한다.

 

상가띠는 무겁기 때문에 평상시 입기 보다 주로 어깨에 걸쳐 둘러 맨다. 또 추울 때나 침구가 없을 때 침구로도 활용된다. 이렇게 본다면 겨울이 아닌 때에는 입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매거나 들고 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전재성님은 발우와 가사를 들고라 번역하였을 것이다. 참고로 세 가지 종류의 가사(ticivara)’를 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Antaravāsaka(아랫가사)

 

 

 

 

uttarāsaga(윗가사)

 

 

 

 

 

 

saghāti(중복가사 또는 대가사)

 

 

초불연에서는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라 하였다. 여기서 수하다라는 말은 한국불교식으로 표현한다면 입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불교에서 “법계를 품서한 스님들은 가사를 수하고 장궤합장으로(2013-11-14 법보신문)”라는 설명에서 알 수 있다.

 

초불연에서 ‘pattacīvaramādāya’에 대하여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라 번역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가사를 수()할 수는 있어도 발우는 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자어 수자는 드리울 ()’이다.

 

가사를 수한다는 것은 가사를 드리우는 것은 가사를 입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발우를 수한다고 하였을 때 발우을 입는 것이 되어 이상한 번역이 되어 버린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상가띠(중복가사)는 어깨에 메고 다님을 알 수 있다. 아주 추운 경우가 아닐 때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 상가띠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수행자에게 있어서 가사와 발우는 늘 함께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발우와 가사를 들고라 번역해야 타당하다고 본다.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초불연에서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라 하였다. 이에 대한 빠알리어는 ‘pattacīvaramādāya’라는 복합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patta+cīvaram+ādāya’의 형태이다.

 

PCED194에 따르면 patta‘an alms bowl’의 뜻이고, cīvaram‘the dress or robes of a buddhist monk’의 뜻이고, ādāya‘having taken’의 뜻이다. 그래서 ‘pattacīvaramādāya’라는 복합어는 발우와 상가띠(대가사 또는 중복가사)를 들고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전재성님의 번역 발우와 가사를 들고라 한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또 한가지 초불연 번역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라 한 것은 문제가 있다. 왜 그런가 경에 따르면 살라꽃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살라꽃이 피었다는 것은 추운 겨울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뜻한 계절임을 말한다. 그것도 탁발을 마치고 되돌아 가는 낮시간을 말한다.

 

중복가사라 불리는 상가띠는 추울 때나 잠을 잘 때 침구 대용으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꽃이 만발한 따뜻한 낮시간에 중복가사를 입었다기 보다 발우와 가사를 들었다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빅쿠보디는 taking bowl and robe’라 하여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초불연의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라 번역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살라(sala)나무

 

우빨라완나경에서 살라나무가 나온다. 경에서는 그녀는 안다 숲의 숲속 깊숙이 들어가 활짝 핀 쌀라 나무 밑에 서 있었다.(S5.5)”라 되어 있다. 살라나무는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학명은 Shorea robusta로서 높고 잔가지가 없는 줄기를 가지고 있는 장려한 나무로서 동북인도에 있으며 남서인도의 티크에 해당된다.(1220번 각주)”라 설명되어 있다.

 

살라나무에 검색해 보았다. Shorea robusta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This article is about the plant commonly known as "sal". For other uses, see Sal (disambiguation). Shorea robusta, also known as śāl, sakhua or shala tree, is a species of tree belonging to the Dipterocarpaceae family.(위키백과 Shorea robusta)”라 설명되어 있다.

 

살라나무는 일반적으로 (sal)’로 알려져 있다. 빅쿠보디는 she stood at the foot of a sal tree in full flower”라 하여 ‘sal tree’라 하였다. 살라나무는 인도대륙이 원산지로서 히말라야 남쪽까지 범위를 가지며, 네팔 동쪽 미얀마에서부터 방글라데시, 아삼에 이른다.

 

경에서 보는 살라나무

 

살라나무는 초기경에서 많이 등장한다. 맛지마니까야 고싱가 법문의 경에 따르면 벗이여 아난다여, 고씽가쌀라 숲은 아름다워서, 밤에는 밝은 달이 비추고, 쌀라 꽃이 만개하고, 하늘의 향기가 퍼지는 듯합니다. (M32)”라 하였다. 살라나무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도 좋음을 알 수 있다.

 

살라나무꽃은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에서도 등장한다. 경에서는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려 할 때 그 때 쌀라 쌍수는 때 아닌 꽃으로 만개했다.(D16)”라는 내용이 있다.

 

초기경에는 살라나무를 비유한 경도 있다. 앙굿따라니까야 큰 살라나무의 경이 그것이다. 경에서는 살라나무의 다섯 가지 특징에 대하여 그것은 가지와 잎사귀로 자라고, 껍질로 자라고, 마디로 자라고, 속껍질로 자라고, 나무심으로 자란다.(A5.40)”라 하였다. 이와 같은 사라나무의 다섯 가지 특징을 비유를 들어 가족은 믿음이 있는 가장에 의지하여 다섯 가지 성장으로 자란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가족은 믿음으로 자라고, 계행으로 자라고, 배움으로 자라고, 보시로 자라고, 지혜로 자란다.(A5.40)”라 하였다.

 

악마 빠삐만이 말하기를

 

초기경에서 살라나무 꽃은 아름답고 향기롭게 묘사 되어 있다. 우빨라완나의 경에서는 악마 빠삐만이 살라나무 꽃과 비교하여 우빨라완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한다.

 

 

 

우빨라완나 경(Uppalavaṇṇāsutta, S5.5)

 

빠알리어

Supupphitagga upagamma bhikkhunī

ekā tva tiṭṭhasi sālamūle,
Na catthi te dutiyā va
ṇṇadhātu

idhāgatā tādisikā bhaveyyu
Bāle na tva
bhāyasi dhuttakānanti.

Supupphitagga

전재성님역

[빠삐만]

수행녀여, 위아래 아름답게 꽃핀

쌀라 나무 아래 그대 외롭게 서 있으니

그대의 아름다움 견줄 데 없네.

어리석은 여인이여, 악인이 두렵지 않은가?”

위아래 아름답게 꽃핀

각묵스님역

꼭대기에는 꽃이 만개한 살라 나무아래 가서

그대는 외롭게 홀로 서 있군요.

그대의 아름다움에 필적할 여인 없으니

어리석은 여인이여, 불한당들이 무섭지도 않나요?”

꼭대기에는 꽃이 만개한

빅쿠보디역

"Having gone to a sal tree with flowering top,

You stand at its foot all alone, bhikkhuni.

There is none whose beauty rivals yours:

Foolish girl, aren't you afraid of rogues?"

with flowering top

 

 

필사할 때 생긴 오류

 

빠알리게송에서 네 번째 구절 “idhāgatā tādisikā bhaveyyu 이 있다. 번역자마다 이 구절에 대하여 번역하지 않았다. 초불연 각주에 따르면 이 구절은 바로 아래에 나타나는 구절인데 보디 스님은 필사할 때 생긴 오류라고 간주하여 옮기지 않고 있다. 역자도 옮기지 않는다.(.1, 538번 각주)”라 하였다. 빅쿠보디의 각주를 찾아 보았다.

 

 

Pad a c: Na catthi te dutiyā vaṇṇadhātu. I translate freely in accordance with the gloss of Spk: “There is no second beauty element like your beauty element; there is no other bhikkhuni similar to you.” A pun on the bhikkhuni's name is probably intended.

 

Se and Eel & 2 include an additional pada between padas c and d, idhāgatā tādisikā bhaveyyu, absent in Be and Thi 230. This seems to me a scribal error, as it is identical with pada b of the next verse, where it fits.

 

(CDB 347번 각주, 빅쿠보디)

 

 

빅쿠보디는 idhāgatā tādisikā bhaveyyu구문에 대하여 필사 오류(a scribal error)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 구문에 대하여 번역하지 않았다. 전재성님 역시 번역하지 않았다. 전재성님은 각주에서 우빨라반나의 대답에서 차용된 것으로 당연히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여겨진다.(1222번 각주)”라 하였다.

 

위아래 아름답게 꽃핀 쌀라 나무 vs 꼭대기에는 꽃이 만개한 살라 나무

 

악마 빠삐만은 우빨라완나 빅쿠니의 미모에 대하여 살라나무꽃에 비유하여 찬탄하고 있다. 수행녀의 미모가 살라나무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아래 아름답게 꽃핀 쌀라 나무 아래 그대 외롭게 서 있으니 그대의 아름다움 견줄 데 없네.”라 하였다. 여기서 위아래 아름답게 꽃핀 쌀라 나무라 하였다. 이는 살라나무가 아름답게 꽃이 핀 모양을 묘사 한 것이다. 특히 위아래 핀 것이라 하였다. 이는 무슨 뜻일까?

 

위아래 아름답게 꽃핀 쌀라 나무Supupphitagga upagamma에 대한 번역이다. 그렇다면 왜 위아래서 피었다고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의 각주를 보면  “Srp.I.192에 따르면, ‘꼭대기부터 꽃이 핀 쌀라나무를 말한다.(1221번 각주)”라 하였다. 주석을 인용하여 살라나무 전체에서 꽃이 만발하였다는 의미로 표현하였다. 나무 꼭대기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 까지 나무 전체가 만개한 꽃으로 뒤덥힌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초불연 번역을 보면 꼭대기에는 꽃이 만개한 살라 나무라 하였다. 이는 빅쿠보디가 번역한 a sal tree with flowering top”와 일치 한다. 마치 나무의 꼭대기 부분만 꽃이 핀 것으로 보인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주석의 견해를 중시하는 초불연에서 주석의 견해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위아래에서 꽃이 피었다는 것은 Supupphitagga upagamma’에 대한 번역이다. 여기서 SupupphitaggaSupupphita+agga의 복합어이다. Supupphitacovered with flowers’의 뜻이고, aggathe highest’의 뜻이다. upagammahaving approached’의 뜻이다. 따라서 Supupphitagga upagamma’의 뜻은 꼭대기에서부터 꽃으로 덥혀 있는의 뜻이 된다. 다시 말하면 살라나무전체가 꽃으로 만개한 상태를 말한다. 그럼에도 초불연의 꼭대기에는 꽃이 만개한 살라 나무라고 번역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살라나무꽃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sal tree sala tree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다. 검색결과 다음과 같다

 

 

 

 

 

 

 

 

Sal flower`

 

 

공손한 악마 빠삐만의 말씨?

 

악마 빠삐만은 무서운 모습으로 수행녀앞에 나타났다. 수행녀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살라나무에 꽃이 만발한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라 하였다. 그러면서 외롭게 서 있다고 하였다. 왜 이렇게 말하였을까? 이는 다음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빠삐만은 어리석은 여인이여, 악인이 두렵지 않은가?”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숲속에서 여인이 홀로 있으면 위험할 것이다. 잘 보이지 않는 숲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출가한 빅쿠니라도 숲에 있으면 안전하지 못하다. 더구나 꽃 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젊은 빅쿠니의 경우 그럴 것이다. 그래서 악인이 두렵지 않은가?”라 한 것이다.

 

여기서 악인이라는 말은 ‘dhutta’를 말한다. 영어로는 ‘one who leads a corrupted life’로 설명된다. ‘부패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초불연에서는 불한당으로 옮겼다. 빅쿠보디는 rogues(악한, 사기꾼)으로 옮겼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지금 수행녀 앞에 있는 자가 매우 험상굿고 악하게 생겼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초불연 번역을 보면 외롭게 홀로 서 있군요라든가, “불한당들이 무섭지도 않나요?”라 하여 마치 여인이 공손하게 말하듯이 번역하였다.

 

우빨라완나 빅쿠니 말하기를

 

수행녀 우빨라완나는 빠삐만임을 알아차렸다. 자신에게 소름끼치는 공포심을 주어서 선정에 드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을 알아 차린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한다.

 

 

 

우빨라완나 경(Uppalavaṇṇāsutta, S5.5)

 

빠알리어

Sata sahassānapi dhuttakāna

idhāgatā tādisikā1 bhaveyyu,
Loma
na iñjāmi na santasāmi

na māra bhāyāmi tamekikāpi.

 

전재성님역

[우빨라반나]

그대와 같은 악한이 백명.

천 명이 여기 와 있더라도,

터럭만큼도 동요 없고 두려움 없네.

악마여, 홀로지만 그대가 무섭지 않네.”

 

각묵스님역

지금 여기에 온 그대 같은 불한당이

백 명이든 천 명이든 아무 상관없도다.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고 떨리지도 않나니

마라여, 나는 혼자지만 그대를 무서워 않노라.”

 

빅쿠보디역

“Though a hundred thousand rogues

Just like you might come here,

I stir not a hair, I feel no terror;

Even alone, Mara, I don't fear you.”

 

 

 

 

수행녀는 백명이든 천명이든 어떤 악한이 와도 두렵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떨끝 하나도 동요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악마는 매우 무서운 존재이다. 그러나 악마인줄 알게 되면 더 이상 무섭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악마여, 홀로지만 그대가 무섭지 않네라 한 것이다. 

 

이 게송은 누가 읊었나?

 

이에 빠삐만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한다.

 

 

 

우빨라완나 경(Uppalavaṇṇāsutta, S5.5)

 

빠알리어

Esā antaradhāyāmi

kucchi vā pavisāmi te,
Pakhumantarikāyampi ti
ṭṭhanti

ma na dakkhasi.

kucchi

전재성님역

[빠삐만]

내가 여기서 사라져서

그대의 자궁에 들어가거나

또한 그대의 미간에 서면

그대는 나를 볼 수 없네.”

자궁에

각묵스님역

내가 여기서 사라져서

그대의 뱃속으로 들어가거나

그대의 눈썹 사이에 서면

그대는 그런 나를 볼 수 없으리.”

뱃속으로

빅쿠보디역

I can make myself disappear

Or I can enter inside your belly.

I can stand between your eyebrows

Yet you won't catch a glimpse of me.

belly

 

 

화자가 다른 두 번역서

 

이 게송은 누가 읊었을까? 두 번역서에서 화자가 다르다. 전재성님은 악마 빠삐만이 읊은 것으로 하였다. 각주에 따르면 잡아함 454(대정2, 326c 1201)에 의하면, 이것은 악마의 시이다.(1227번 각주)”라 하였다.

 

반면 초불연에서는 우빨라완나의 게송으로 보았다. 그래서 화자가 우빨라완나로 되어 있다. 빅쿠보디 역시 우빨라완나가 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PTS본에서도 우빨라완나가 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세 개의 게송을 연속해서 실어 놓았기 떄문이다. 그럼에도 전재성님은 잡아함경을 근거로 들어 악마 빠삐만이 읊은 것으로 번역하여 놓았다. 과연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악마 빠삐만은 변신에 능하다. 악마의 모음(S4)에서도 수행승의 수행을 방해 하기 위하여 무서운 나가의 모습으로, 또는 콜록거리며 브라만 수행자의 모습으로, 또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방해하기 위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행녀의 모음(S5)에서도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수행녀를 유혹하기도 한다.

 

이처럼 변신에 능한 악마 빠삐만이 이번에는 자신이 사라져서 자궁속으로 들어가거나 미간 사이에 서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였을 경우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악마 빠삐만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라 본다.

 

그러나 화자를 수행녀로 바꾸었을 때 어색해진다. 수행녀가 악마 빠삐만의 자궁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수행녀를 화자로 내세워 번역한 각묵스님은 그대의 뱃속으로 들어가거나라 번역하였다. 자궁이 아니라 뱃속이라 하였다. 이와 관련된 단어가 kucchi이다.

 

자궁인가 뱃속인가?

 

kucchi에 대하여 PCED194에서는 ‘the belly or womb; interior.’라 하였다. ‘또는 자궁’, 또는 내부라는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뱃속이나 자궁이나 다 맞는 말이다. 빅쿠보디는 ‘belly’라 하여 배로 번역하였다.

 

우빨리완나를 화자로 두면 자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악마의 자궁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뱃속으로 들어가거나(inside your belly)”라 번역한 것이라 본다.

 

그러나 악마를 화자로 두면 자궁이라 번역할 수 있다. 악마가 수행녀의 자궁으로들어가 숨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전재성님은 그대의 자궁에 들어가거나라고 번역한 것이다.

 

문제는 뱃속이나 자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통에 대한 것이다. 우빨리완나는 이 경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로서 신통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음 게송에서 보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수행녀가 신통을 부린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신통의 기초를 잘 닦았고 모든 속박에서 해탈하였다.”라는 식으로 나온다.

 

그러나 악마 빠삐만은 악마의 모음(S4)에서부터 등장하여 변신에 매우 능하다. 따라서 악마 빠삐만이 내가 여기서 사라져서 그대의 자궁에 들어가거나 또한 그대의 미간에 서면 그대는 나를 볼 수 없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PTS본에서는 세 개의 게송을 모두 우빨라완나가 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전재성님은 화자를 잘못 설정한 것이 된다. 비록 잡아함경을 근거로 하여 화자를 바꾸었지만 PTS본을 따르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의 경우 앞서 언급된대로 악마 빠삐만이 읊은 게송 중에 필사의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이는 빅쿠보디 뿐만 아니라 전재성님도, 각묵스님도 각주에서 필사 하는 과정에서 잘못 들어간 구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화자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오류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빨라완나 빅쿠니 말하기를

 

악마 빠삐만이 수행녀에게 자신의 자재함을 보여 알려 주었다. 자신은 변신에 능하기 때문에 어느 곳이든지 나타날 수 있음에 대하여 수행녀의 자궁속이나 눈썹 사이에도 서 있을 수 있음을 말한다. 수행녀가 아무리 악마 빠삐만이라고 알아 차려도 자궁속이나 미간 사이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수행녀 우빨라완나는 다음과 게송으로 답한다.

 

 

 

우빨라완나 경(Uppalavaṇṇāsutta, S5.5)

 

빠알리어

Cittasmi vasībhūtāmhi

iddhipādā subhāvitā,
Sabbabandhanamuttāmhi

na ta bhāyāmi āvusoti.

 

전재성님역

[우빨라반나]

나는 마음의 자재함을 얻어

신통의 기초를 잘 닦았고

모든 속박에서 해탈하였기에

벗이여,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네.”

 

각묵스님역

나는 마음의 자재를 얻었고

[네 가지] 성취수단[如意足]을 잘 닦았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탈하였으니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노라. 도반이여.”

 

빅쿠보디역

"I am the master of my mind,

The bases of power are well developed;

I am freed from all bondage,

Therefore I don't fear you, friend."

 

 

 

 

Iddhipādā, 신통의 기초 또는 성취수단

 

이 게송에 따르면 우빨라완나는 신통의 소유자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신통이라는 말은 iddhipādā이다. 이에 대한 빠알리 사전을 보면 ‘basis of psychic power’라 되어 있다. ‘정신적인 힘의 기초라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초불연에서는 ‘[네 가지] 성취수단[如意足]’라고 대괄호치기를 이용한 주석적 설명과 함께 한자어까지 사용하여 길게 번역하였다. 한마디로 iddhipādā성취수단이라는 것이다.

 

초불연에서 신통에 대하여 성취수단이라 번역하였다. 하지만 성취수단이라는 말이 신통을 의미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래서 대괄호치기를 이용하여 ‘[네 가지] 성취수단[如意足]’라고 주석적 번역을 해 놓은 것이라 본다. 더구나 시어에서 이처럼 주석적 번역을 해 놓으니 시어로서 맛이 떨어지는 것 같다. 마치 산문처럼 보인다.

 

빅쿠보디는 iddhipādā에 대하여 ‘The bases of power’라 번역하였다. 각주에서 ‘bases for spiritual power(영적 힘의 기초)’라 하였다. 더 자세한 것은 ‘See 51:11’라 한다.

 

S51.11을 찾아 보았다. 상윳따니까야 신통의 기초의 모음(S51’)에 실려 있는 원인의 경이다. 경에 따르면 수행승이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히면, 여러 가지 초월적 능력을 경험한다.(S51.11)”라 하였다. 경에서는 하나에서 여럿이 되는등 구체적인 여러 가지 신통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해탈한 수행녀에게 신통은

 

게송에 따르면 우빨리완나는 신통의 기초를 닦았다. 그래서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되고,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지기도 하고, 자유로운 공간처럼 장에 없이 담을 통과 하기도 하는 등 신통을 부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자재함을 얻어 신통의 기초를 잘 닦았고(S5.5)”라 하였다. 이는 악마 빠삐만이 고작 자궁속에 들어가 숨어 있거나 미간 사이에 서 있어서 안보이게 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송을 보면 악마 빠삐만이 작은 신통을 부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작 자궁속에 숨거나 미간 사이에 서 있어서 안보이게 하는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신통의 기초를 닦은 수행녀에게 있어서 빠삐만의 잔재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통변화와 초월지

 

신통의 기초를 닦으면 어떤 능력이 생기는 것일까? 먼저 초월적 능력을 경험한다고 하였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이와 같이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히면, 여러 가지 초월적 능력을 경험한다. 그는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되고,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자유로운 공간처럼 장애 없이 담을 통과하고 성벽을 통과하고 산을 통과하고, 물속처럼 땅속을 드나들고, 땅 위에서처럼 물 위에서도 빠지지 않고 걷고, 날개 달린 새처럼 공중에서 앉은 채 날아다니고, 그는 손으로 이처럼 큰 신비를 지니고 이처럼 큰 능력을 지닌 달과 해를 만지고 쓰다듬고, 하느님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미친다.

 

(원인의 경, 상윳따니까야 S51.11,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혔을 때 열 가지 초월적 능력이 소개 되어 있다. 우빨리완나가 이러한 신통의 기초를 닦았다면, 악마 빠삐만의 잔재주, 즉 뱃속 또는 자궁에 숨는다거나 미간사이에 서서 안보이게 하는 것은 저급한 신통이라 볼 수 있다.

 

여섯 가지 초월지

 

경에 따르면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혔을 때 열 가지 신통변화 뿐만 아니라 초월지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초월지는 어떤 것일까? 경의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이와 같이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히면, 전생의 여러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한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천 번 태어나고 십만번 태어나고 수많은 파괴의 겁을 지나고 수많은 세계의 발생의 겁을 지나고 수많은 세계 파괴와 세계 발생의 겁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그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그 자신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한다.

 

(원인의 경, 상윳따니까야 S51:12,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으면 열 가지 신통변화와 여섯 가지 초월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표로 정리해 보면

 

이를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No

  

비 고

분류

1

하나에서 여럿이 되는 신통

 

열 가지 신통변화

2

여럿에서 하나가 되는 신통

 

열 가지 신통변화

3

나타나기도 하는 신통

어두움을 광명으로 만드는 것등

열 가지 신통변화

4

사라지기도 하는 신통

광명을 암흑으로 만드는 것등

열 가지 신통변화

5

장애가 없는 신통

벽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없이 통과

열 가지 신통변화

6

땅속으로 부터 출몰하는 신통

 

열 가지 신통변화

7

물위에서 침몰하지 않은 신통

 

열 가지 신통변화

8

날아다니는 신통

 

열 가지 신통변화

9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지는 신통

난도빠난다 용왕 길들이기

열 가지 신통변화

10

몸이 자유자재한 신통

 

범천의 세계까지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휘

열 가지 신통변화

11

신족통

(神足通, iddhi-vidha)

10가지의 신통변화

 

초월지

(사마타,사선정,

오신통)

12

천이통

(天耳通, dibba-sota)

 

신성한 귀의 요소 의 지혜

 

초월지

(사마타,사선정,

오신통)

13

타심통

(他心通, paracitta-vijāhana)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

 

초월지

(사마타,사선정,

오신통)

14

숙명통

(宿命通, pubbenivāsa-anussati)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

 

초월지

(사마타,사선정,

오신통, 삼명)

15

천안통

(天眼通, dibba-cakkhu)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

초월지

(사마타,사선정,

오신통, 삼명)

16

누진통

(漏盡通, āsavakkhaya-ñāa)

번뇌가 다한 경지

초월지

(위빠사나, 삼명)

 

 

표를 보면 열 가지 신통은 신족통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족통은 여섯 가지 초월지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에서 하나에서 여럿이 되는 등의 신통변화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초월지이다.

 

부처님을 깨달음에 이르게 한 삼명

 

초월지에는 신족통(神足通, iddhi-vidha), 천이통(天耳通, dibba-sota), 타심통(他心通, paracitta-vijāhana), 숙명통(宿命通, pubbenivāsa-anussati), 천안통(天眼通, dibba-cakkhu), 누진통(漏盡通, āsavakkhaya-ñāa) 이렇게 여섯 가지 초월적 지혜를 말한다.

 

이런 지혜 중에 삼명이 있다. 부처님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지혜를 말한다. 그래서 숙명통으로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를 얻어 윤회하는 뭇삶을 보게 되었고(초야), ‘천안통으로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지혜를 얻어 업과 과보를 보게 되었고(중야), ‘누진통으로 번뇌를 소멸하여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성취하여 깨달음을 이루었다(후야) 라고 경에 표기 되어 있다.  

 

이것이 부처님을 깨달음에 이르게 삼명이다. 이에 대하여 신통변화는 황당무계한 것일까?  여래십력과 사무외 그리고 삼명 육신통(2014-02-1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누진통은 다른 초월지와 달리 위빠사나 수행으로 완성된다. 맛지마니까야 사자후에 대한 큰 경(M12)’에 따르면 번뇌를 부수어 번뇌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잘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M12)”라 하였다. 사성제를 철견함에 따라 깨달음이 성취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위빠사나 수행으로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는 목적은

 

신통은 단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이와 같이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히면, 번뇌를 부숨으로써 번뇌 없이 마음의 의한 해탈,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S51.11)”라 하였다.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는 목적은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37조도품에 신통의 기초가 네 가지 들어가 있지만 신통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이루어 완전한 열반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해탈한 수행녀는 악마 빠삐만에게 모든 속박에서 해탈하였기에 벗이여,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네.(S5.5)”라고 말한 것이다. 모든 것을 아는 자에게 있어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2015-03-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