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두 갈래의 길에서, 해남기행(2) 미황사와 달마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4. 6. 14:09

 

 

두 갈래의 길에서, 해남기행(2) 미황사와 달마산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식단

 

특별한 여행 두 번째 이야기는 달마산이다. 땅끝마을에서 일박을 하였다. 오전에 달마산 등반을 하고 오후에는 서혼식장에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등산의 출발지인 미황사까지 9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그러나 전날 늦게 도착하여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서 대부분 늦게 일어 났다.

 

이렇게 한방에 여럿이서 자본 적이 얼마만이던가? 아마 학교시절을 제외하고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든 다섯 명이 커다란 한방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밥을 해 먹었다. 전날 미리 시장을 봐 두었기 때문에 재료는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렇다고 진수성찬은 아니다. 햇반과 라면, 그리고 김치가 전부이다.

 

팬션에는 조리기구가 준비 되어 있다. 냄비와 그릇이 있고 가스가 들어 오기 때문에 가져간 음식재료로 요리만 하면 된다. 한 친구가 능숙한 솜씨로 라면을 끊인다. 햇반은 끓는 물에 10분간 담궈 두면 된다. 마침내 아침상이 마련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식단이다. 햇반과 라면과 김치, 이 세 가지가 전부이다.

 

 

 

 

 

 

팬션에서는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까지 해 놓아야 한다. 한 친구가 설거지를 담당하였다.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것이다.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난 후에 다음 목적지 미황사를 향해 떠났다.

 

미황사 가는 길에

 

땅끝의 풍경은 수도권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서울에서 400키로 이상 떨어져 있어서일까 남도 특유의 풍광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낙엽수가 많아 앙상하고 메마른 느낌이다. 그러나 이곳 땅끝 풍광은 전혀 다르다. 산에는 소나무가 대부분이어서 녹색일색이다. 들에는 보리가 심어져 있어서 마치 유럽의 초원을 보는 듯 하다. 이렇게 온통 녹색뿐이다 보니 마음도 넉넉하다. 산이나 들이나 모두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미황사 가는 길은 한적하다. 주변에 집들이 보이지 않아 인구밀도가 매우 낮다. 한적하다 못해 고요해 보인다. 또한 온통 녹색이어서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이다. 남도 끝자락에서 보는 미황사길은 한마디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다.

 

6년만에 다시 와 보니

 

미황사에 도착하였다. 6년만에 다시 와 본 절이다. 2009 5월말 순례법회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당시 12일로 템플스테이 하였다. 여행을 하면 반드시 기록으로 남긴다. 그래서  “아~좋다” 라는 감탄사가, 템플스테이 전문사찰 미황사에서(2009-06-02)’라는 제목으로 순례기를 작성하였다.

 

6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보는 미황사는 규모가 커진 듯하다. 새로운 전각들이 세워졌고 전반적으로 대찰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것 같다. 특히 사천왕문이 건립중에 있는데, 이 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여법한 가람의 틀을 갖추어 가는 것으로 본다사천왕문에는 아직 사천왕상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다음에 오면 네 기의 사천왕상을 보게 될 것이다.

 

 

 

 

 

 

 

미황사는 아름다운 절이다. 대웅전을 바라 보았을 때 특히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저 멀리 달마산의 뽀족한 봉우리와 함께 고색창연한 법당이 보물처럼 서 있다. 6년전에도 그 모습이었다. 지금 역시 그 모습 그대로이다. 아마 수십년 전에도 그랬고 수 백년 전에도 그 모습 그대로 이었을 것이다.

 

 

 

 

 

 

 

 

미황사 대웅전은 1754년 중건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260년 가량 되된 건물이다. 그런데 대웅전에는 단청이 되어 있지 않다. 울긋불긋 단청한 대웅전을 보면 최근에 지어진 것이 많다. 그러나 단청이 벗겨진 채 있는 대웅전을 보면 고색창연한 것이 마치 국보급 골동품을 보는 것 같다. 실제로 대웅전 건물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자체가 보물인 것이다. 앞면 3, 옆면 3칸의 팔작지붕형태로서 보물 947호이다.

 

불자들이 순례지로서 많이 찾는 곳이 미황사이다. 그런 미황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지난 2009년 당시 템플스테이 할 때도 외국인 참석하였는데 함께 저녁 예불도 보고 저녁식사도 함께 하였다.

 

 

 

2009년 5월 미황사 템플스테이

 

 

 

 

미황사에 가면 꼭 만나 보고 싶은 분이 있다.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다. 직접 대면 하여 차를 마신 적이 없지만 6년전 템플스테이 하였을 때 본 적이 있다. 이번에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그러나 스님의 일정이 매우 바쁘다고 한다. 그래서 인사나 드리려고 종무소에 갔으나 스님은 이미 대웅전에 들어가 버렸다. 49재 막재가 있어서 12시에나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만남을 일단 접고 산행을 하하였다.

 

달마산 정상에 올라

 

달마산 등산은 미황사 등산로 입구 등산로에서부터 시작 된다. 미황사를 바라 보고 좌측 등산로이다. 이 길로 가면 달마산 달마봉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이후 능선길을 따라 도솔암에 이르는 꽤 긴길이의 코스이다. 더구나 뾰족한 바위길이 많아 등산하기에 난코스이다. 

 

달마산은 해발 489미터로서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럼에도 막상 등산을 해 보면 매우 험하다. 등산로가 잔바위 투성이로 되어 있는 너덜길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낙차가 큰 곳이 많아 밧줄을 타야 한다.

 

달마산은 특이하게 생겼다. 바위가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듯 보인다. 이런 형상의 연속이어서일까 초심자에게는 부담스럽다. 더구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정상에 올라 왔다. 정상에서 바라 본 세상은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든다.

 

 

 

 

 

 

 

발아래 세상이 보인다. 그러나 서울 근교의 산에서 보는 느낌과는 다르다북한산이나 관악산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았을 때 인간이 과연 저렇게 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생겨난다. 왜 그런가? 사방을 둘러 보아도 보이는 것은 백색의 아파트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아득하다.

 

거대한 인공구조물을 마주 하였을 때 접하는 느낌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간이라는 왜소한 존재가 이룩해 낸 문명에 대한 경이이다. 또 하나는 자연과 환경파괴로 인하여 재난이 닥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달마산 정상에서 세상을 바라 보았을 때 문명에 대한 경이도 재난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단지 장쾌한 자연을 접한다는 느낌만 있을 뿐이다. 사람사는 곳에 논밭과 집이 보이긴 하지만 주변자연환경과 잘 졸화를 이룬다.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지금 이대로 보존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시야를 서쪽으로 돌렸다. 다도해상이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는 미황사의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온통 숲속에 둘러 쌓인 사찰이 자연의 품속에 안긴 듯 하다. 

 

 

 

 

 

 

당신은 어떻게 거센흐름을 건너셨습니까?”

 

산행을 하면 힘이 든다. 가파른 곳을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주말이면 산을 찾는다. 사람들은 왜 산을 찾을까? 아마 산에서 배우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힘겹게 오를 때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산행이 인생길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발 한발 힘겹게 옮길 때마다 숨은 거칠어진다. 다리는 아프고 숨이 가빠 짐에 따라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어 닥친다. 이때 잠시 쉬었다 간다. 아주 잠시라도 쉬면 놀랍게도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힘들면 쉬었다 가면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금 힘겨울 때 잠시 쉬면 된다. 너무 애쓸 필요가 없다. 애를 쓴다는 것은 집착을 말한다. 그렇다고 현상에 머물지도 않는다. 지금 편안하고 안락하다고 머문다면 항상 그대로일 것이다. 자신을 향상코져 한다면 앞으로 나아 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 다음과 같은 시가 말해 준다.

 

 

“스승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거센흐름을 건너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참으로 머무르지 않고

애쓰지도 않고 거센흐름을 건넜습니다.

벗이여,

내가 머무를 때에는 가라앉으며

내가 애쓸 때에는 휘말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처럼 머무르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거센흐름을 건넜던 것입니다.” (S1:1)

 

 

어떤 존재가 스승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이 거센흐름을 넌너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거센흐름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생사가 거듭되는 폭류를 말한다. 그런 폭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폭류,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폭류, 잘못된 견해에 대한 폭류, 무지의 폭류를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폭류에 휩쓸려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폭류를 건너는 자들도 있다.

 

폭류에 휩쓸리지 않고 폭류를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일 머물러 버린다면 폭류에 휩쓸려 갈 것이다. 감각적 욕망을 충족하는 삶에 안주 한다면 감각적 욕망에 대한 폭류에 휩쓸려 갈 것이다. 또 한편으로 잘못된 견해나 잘못된 신조, 잘못된 가치관으로 폭류에서 벗어나고자 애쓴다면 역시 폭류에 휩쓸려 갈 뿐이다. 결국 갈애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잘못된 견해 때문에 애쓰고 휩쓸리게 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잘못된 의지와 노력은 결국 운명적 파탄을 초래하고 만다는 것을 말한다.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누구나 태어난 이상 이 세상을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살기 싫어도 살아야 되는 곳이 세상이다. 마치 돈벌기 싫어도 돈벌기 선수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과 같다. 선천적으로 돈을 잘 벌기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돈버는 재주가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돈을 벌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똑똑한 자나 아둔한 자나 모두 돈벌기 선수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을 살아 갈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까지 생사가 거듭한 삶에서 늘 그래 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거센 생사의 폭류에서 해쳐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은 머무르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길을 잘못 들어 섰을 때 전혀 다른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프로스트는 다음과 같이 노래 하였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시인은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길을 택하였다. 그 결과 훗날 모든 것이 달라졌음을 말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바른길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길 없는 길도 바른길이 될 수 있다. 이는 길을 아는 이에게 물어 보면 된다.

 

왼길이 아닌 바른길로

 

우리는 하루 에도 여러 차례 선택을 해야 한다. 차를 마실것인지 커피를 마실 것인지도 선택이다. 점심 때 어떤 메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날 오후가 달라진다. 가전제품을 선택하면 십년 간다고 하였다. 배우자를 선택하면 일생 갈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선택은 가치관이다. 어떤 가치관을 갖느냐에 따라 일생뿐만 아니라 내세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가이드 없이 홀로 산행을 하였을 때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곳에 있을 수 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스승이 없다면 잘 못된 견해나 잘못된 신조를 가질 수 있다. 결국 허망한 정열이 된다. 이번 산행에서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숨이 가쁘고 다리는 뻐근하다.

 

오르고 또 오르지만 정상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다.

 

힘들면 쉬어 간다.

잠시 쉬고 나면 그 사이에

새로운 힘이 충전 된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니

일행과는 멀리 뒤쳐진다.

 

혼자서 산길을 오른다.

온통 바위 투성이로 된

너덜너덜한 길이다.

 

산길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올라가야 한다.

목적지를 향해서.

 

길을 몰라 처음부터

걷게 되는 너덜길,

가도가도 끝이 없다.

 

정상이 머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정상에 섰다.

더 이상 올라 갈 곳이 없다.

 

정상에서 세상을 바라 보았다.

발아래 세상이 있다.

 

인생길을 간다.

평탄한 길이 아니라

돌밭 투성이의 너덜길이다.

 

인생의 정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끝이 어디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때로는 너덜길로

때로는 평탄길로

지친 나그네에게 길은 멀다.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 본다.

왼쪽길로 가지 말고

오른쪽길로 가라 한다.

 

그길을 잠깐만 가면  숲이 나온다.

그길을 잠깐만 가면 늪지대가 나온다.

그길을 잠깐만 가면 절벽이 나온다.

그길을 잠깐만 가면 푸른초원이 나온다.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었다.

왼길이 아닌 바른길로 갔다.

마침내 꽃이 피고 풍요로운

아름다운 초원에 도달하였다.

 

 

 

 

2013년 실크로드 바리쿤초원

 

 

여기서 길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스승이다. 그런데 스승은 항상 바른길로 가라고 한다. 두 갈래 길에서 왼길이 아닌 바른길을 말한다. 그렇다고 방향을 뜻하는 왼쪽길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바른길은 팔정도를 말한다. 숲은 무명을 말하고, 늪지대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뜻이고, 절벽은 분노와 절망을 의미한다. 험난한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바른 견해로 바른길로 들어 섰다면 머물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도 쉽게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다.

 

목적지는 아름다운 초원이라 하였다. 폭류를 건너 저 언덕에 안착하는 것이다. 그런 초원은 꽃이 피고 풍요로운 곳이다. 그곳은 다름 아닌 생사를 초월한 열반이다.

 

충신이 간언하다 목이 떨어진 것처럼

 

달마봉에서 도솔봉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험준한 바위투성이다. 길은 너덜너덜 하여 종종 설치 되어 있는 밧줄에 의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능선길을 가다 양지녁에 아름다운 동백을 발견하였다. 시푸르고 윤기나는 잎사귀와 정열적인 붉은 꽃을 특징으로 하는 커다란 동백나무가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동백나무 아래는 떨어진 꽃으로 가득하다. 마치 바닥에도 동백꽃이 핀 듯하다.

 

 

 

 

 

 

 

떨어진 동백꽃을 보니 생생하다.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지 않고 통째로 떨어져 있다. 마치 그 모습이 충신이 간언하다 목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여 충신을 상징하는 꽃이라 한다.

 

다시 미황사로

 

도솔봉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더구나 바람은 세차게 불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이다.

 

 

 

 

 

 

 

 

 

 

 

 

 

 

 

 

 

 

 

 

 

 

 

갈림길에 이르렀다. 도솔봉 방향으로 가려면 5키로를 더 가야 하고 미황사길로 가면 1키로 가량이면 된다. 지금 미황사로 내려 가면 12시가 될 것 같다. 그러면 금강스님을 만나 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일행과는 달리 미황사로 방향을 틀었다.

 

 

 

 

 

 

 

 

미황사로 내려 가는 길은 쉬웠다. 미황사에 도착하니 12시가 되었다. 종무소에 문의 하니 금강스님은 서정분교행사장에 갔다고 한다. 아침에는 늦게 도착해서 못 보았는데 이번에는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또 보지 못하게 되었다.

 

 

 

 

 

본교로 승격된 서종분교

 

종무원의 안내로 서종분교로 차를 몰았다. 미황사 아래 마을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이다. 미황사에서 지원을 하는 학교로 알고 있다. 이날 서종분교는 행사가 있었다.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한 것이다. 농촌의 초등학교가 학생이 없어서 폐교되는 상황인데 오히려 학생수가 늘어 본교로 승격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라 보여진다. 

 

 

 

 

학생수를 보니 3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플레카드를 보니 다시 세운 서정우리가 해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날의 행사에 금강스님도 참석하였다.

 

마침내 금강스님을 만나고

 

운동장에서 금강스님을 만났다. 인사를 하고 간단히 대화를 나누었다. 스님은 이미 필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구면이나 다름 없다. 준비 해 간 음악씨디를 선물로 드렸다. 이렇게 해남기행 두 번째 이야기가 끝났다. 다음 코스는 친구의 서혼식장이 열리는 목포신안비치호텔이다.

 

 

2015-04-0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