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왜 음식절제를 해야 하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5. 4. 22. 08:45

 

왜 음식절제를 해야 하는가?

 

 

 

누구나 잘 먹고 싶어한다. 한상 가득히 차려놓고 눈으로 즐기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 본 후 목구멍으로 넘겼을 때 사람들은 행복해 한다. 요즘 TV에서 경쟁적으로 방영하는 먹거리프로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음식절제를 강조하였다. 물론 수행자에 한정된 것이라 하지만 일반사람들도 새겨 들어야 할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음식절제가 필요한가? 그것은 청정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요청된다.

 

맛에 대한 갈애가 있다. 이전에 맛 본 것에 대한 갈애가 일어나면 자주 찾게 된다. 그러나 가르침에 따르면 갈애는 새로운 태어남(業有)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윤회의 원인이 되는 것이 갈애이다. 이는 초전법륜경 집성제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일상에서 갈애가 잘 일어 나는 것은 식욕과 성욕이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식욕과 성욕,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인류는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본능적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식욕과 성욕은 진화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식욕과 성욕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이 총 동원 되는 것이 식욕과 성욕이다.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에게 성적 접촉은 치명적이다. 오감으로 인한 갈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경전을 보면 성적접촉을 금하는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 숫따니빠따 담미까의 경(Sn2.14)’에서는 순결하지 못한 성접교섭을 떠나라.(Stn400)”라 하였다. 순결한 삶은 청정한 삶(Brahmacariya)을 뜻하는데, 이는 성적교섭을 금하는 삶이 전제 조건이라 하였다.

 

청정한 삶을 실현하기 위하여 성적교섭을 금하는 것과 함께 요청되는 것이 음식절제이다. 왜 음식절제인가? 섹스를 하지 않아도 삶을 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곡기를 끊으면 죽는다. 고승들이 열반을 예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은 곡기를 끊음으로서 사실상 안락사하고자 위함이다. 사람의 목숨을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유이다.

 

부처님은 음식절제를 말씀하셨다. 먹긴 먹되 알아차리면서 먹으라는 것이다. 탐욕으로 성냄으로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음식절제 하는 것도 깨닫기 위한 중요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음식절제 할 수 있을까?

 

초기경전에서 음식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음식을 윤활유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들고기를 대하듯 음식을 취하는 것이다. 먼저 윤활유의 비유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치료가 될 때까지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또한 예를 들어 짐을 옮길 수 있도록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것은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있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불편했던 경험을 제거하고 새로운 고통을 초래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리라.’라고 이치에 맞게 성찰해서 음식을 섭취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이 음식을 먹을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안다.(S35.239)

 

 

 

 

 

 

부처님은 이 설법에 앞서 세 가지 원리를 갖춘 수행승에 대하여 말씀 하신다. 그 세 가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는 것, 음식을 먹을 때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 그리고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 이렇게 세 가지 원리를 말한다. 세 가지 원리 중에서 두 번째 해당되는 음식을 먹을 때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에 대하여 연고와 기름의 비유를 들고 있다.

 

부처님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에 대하여 상처가 났을 때 더 이상 덧나지 않게 연고를 바르는 정도라 하였다. 일종의 ‘치유(ropanatthāya)’를 말한다. 이는 약으로서 음식을 말한다. 또 차축이 잘 돌아 갈 수 있도록 ‘기름칠(abbhañjeyya)’ 하는 정도로 음식을 섭취하라고 하였다.

 

음식을 대하는 두 번째 방식은 아들고기의 교훈이다. 아들고기란 무엇인가? 이는 윤회의 동력이 되는 자양분과 관련된 끔찍한 비유를 말한다. 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두 사람의 부부가 적은 양식만을 가지고 황야의 길을 나섰는데, 그들에게는 사랑스럽고 귀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수행승들이여, 그 두 사람의 부부가 황야를 지날 때 갖고 있던 적은 양식이 다 떨어져버렸는데도 그들은 아직 황야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때 수행승들이여, 그 두 사람의 부부는 ‘우리들의 적은 양식이 다 떨어져버렸지만 아직 황야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우리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귀한 아들을 죽여서 말린 고기나 꼬챙이에 꿴 고기를 만들어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서 황야를 빠져나가는 것이 어떨까?’라고 이와 같이 생각했다.(S12.63)

 

 

부처님이 아들고기 이야기를 매우 실감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보면 일반적인 상식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 처하면 알 수 없다. 자식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할 경우 아들고기를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이렇게 아들고기의 교훈을 말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경에서 이어지는 구절로 알 수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놀이 삼아 자양분을 먹을 수 있는가? 그들은 취해서 자양분을 먹을 수 있는가? 그들은 진수성찬으로 자양분을 먹을 수 있는가? 그들은 영양을 위해 자양분을 먹을 수 있는가?(S12.63)

 

 

세상에 어느 부모가 아들고기를 먹으면서 맛을 즐기면서 먹을 수 있을까? 경에 따르면 생존하기 위하여, 육신을 지탱하기 위하여 아들고기를 먹을 뿐이지 진수성찬으로서, 또는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하여 먹지 않았을 것이라 하였다. 청정한 삶을 목적으로 한 수행자들은 아들고기의 교훈으로 음식절제를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201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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