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일생일대의 가장 큰 후회, 임종순간에 일어나는 후회

담마다사 이병욱 2015. 4. 23. 17:31

 

일생일대의 가장 큰 후회, 임종순간에 일어나는 후회

 

 

 

매일매일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책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성을 내게 된다. 이와 같은 후회는 성냄을 뿌리로 한다.

 

후회가 후회로 그치지 않고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알게 되었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왜 그런가? 후회는 불선한 마음의 작용이지만,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선한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후회가 후회로 끝나 마음이 항상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불행한 것이다. 더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눈물을 흘릴 정도로 후회 하고 있다면 크게 잘못 된 것이다. 법구경 67번과 68번 게송은 후회와 관련된 게송이다.

 

 

Na ta kamma kata sādhu      나 땅 깜망 까당 사두

ya katvā anutappati             양 까뜨와 아누땁빠띠

yassa assumukho roda            얏사 앗수무코 로당

vipāka paisevati.              위빠깡 빠띠세와띠.

 

Tañ ca kamma kata sādhu       딴짜 깜망 까당 사두

ya katvā nānutappati            야 까뜨와 나누땁빠띠

yassa patīto sumano              얏사 빠띠또 수마노

vipāka paisevati.              위바깡 빠띠세와띠.

 

(Dhp67-68, 빠알리어)

 

 

행한 뒤에 후회하고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비탄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행한 뒤에 후회하지 않고

만족스럽고 유쾌한

결과를 초래하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좋다.

 

(Dhp67-68, 전재성님역)

 

 

もしもをしたに、それを後悔して、

してきながら、

そのいをけるならば、

そのをしたことはくない。

もしもをしたのちに、それを後悔しないで、

しくんで、

そのいをけるならば、

そのをしたことはい。

(Dhp67-68, 中村元)

 

 

스스로 저지른 뒤에야 뉘우치거나

눈물을 흘리면서

그 대가를 치른다면

이런 행동은 옳지 않다.

 

스스로 행동한 뒤에도 뉘우치지 않고

즐거워 웃으면서

그 보상을 받는다면

이런 행동은 잘한 것이다.

 

(Dhp67-68, 법정스님역)

 

 

行爲不善 행위불선

退見悔 퇴견회린

致涕流面 치체류면

報由熟習 보유숙습

 

行爲德善 행위덕선

進覩歡喜 진도환희

應來受福 응래수복

喜笑悅習 희소열습

 

(Dhp67-68, 한역)

 

 

어떤 행동의 결과가

눈물이요 후회였다면

그 행동은 결코

훌륭했다 할 수 없다.

 

그 행동의 결과가

기쁨이요 행복이어서

한 점 후회도 없었나니

수마나의 행동은 매우 훌륭했도다.

 

(Dhp67-68, 거해스님역)

 

 

It's not good,

the doing of the deed

that, once it's done,

you regret,

whose result you reap crying,

your face in tears.

 

It's good,

the doing of the deed

that, once it's done,

you don't regret,

whose result you reap gratified,

       happy at heart.

 

(Dhp67-68, Thanissaro Bhikkhu)

 

 

  

 

Meditation landscape

 

 

 

행한 뒤에 후회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주석에 따르면 현세에서 회상하는 순간에 후회스럽고 비탄스로울 뿐만 아니라 미래에 비참한 운명의 상태의 태어남을 가져오므로, 그 결과가 고통스러운 행위는 훌륭한 것이 아니고 칭찬할만한 것도 아니고 유익한 것도 아니다.(DhpA.II.40)”라 하였다. 그래서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결과를 체험하는 것이다.

 

눈물은 주로 슬플 때 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린다. 바라던 것이 성취되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데 이런 경우 눈물이 긍정적 의미가 있다. 게송에서 보여지는 눈물의 의미는 후회와 회환의 눈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크게 뉘우치고 참회하는 눈물이다.

 

눈물을 흘릴 때

 

초기경전에서 눈물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대표적으로 눈물의 경(S15.3)’을 들 수 있다. 한량없는 윤회의 과정에서 흘리는 눈물이다. 오랜 세월 유전하고 윤회하는 동안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흘리는 눈물이다. 그 눈물의 양에 대하여 사대양에 있는 물과 비할 바가 아니라 하였다.

 

윤회의 과정에서 수 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또 아버지, 형제, 자매, 자식의 죽음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이때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과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에 과정에서도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잘못된 만남, 원치 않는 만남으로 인하여 받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따른 눈물의 양 또한 사대양의 물 보다 더 많을 것이다.

 

눈물은 무기도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하여 눈물을 흘림으로서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여자는 울음으로 남자를 묶는다.(A8.17)”라 하였다. 눈물은 여자의 무기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볼테르는남자가 온갖 말을 다 하여도 여자가 흘리는 한 방울의 눈물에는 당하지 못한다.”라 하였다. 그런 여자의 눈물에 남자는 구속된다.

 

여자의 눈물만이 남자를 구속하는 것만은 아니다. 경에 따르면 남자는 울음으로 여자를 묶는다.(A8.18)”라 하여 남자의 눈물 역시 여자를 구속한다. 이렇게 본다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들어 주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슬픔의 눈물인가 기쁨의 눈물인가

 

눈물에는 슬픔과 기쁨의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후회의 눈물도 있고 억울함의 눈물도 있고 안타까움의 눈물도 있다. 그런데 눈물과 관련하여 초기경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보인다.

 

 

Katamo ca bhikkhave paisotagāmī puggal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kāme na paisevati, pāpañca kamma na karoti,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assumukho'pi rudamāno paripuṇṇa parisuddha brahmacariya carati. Aya vuccati bhikkhave paisotagāmī puggalo.

 

“수행승들이여, 흐름을 거슬러 올라 가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빠지지 않고, 악한 업을 저지르지 않고, 고통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완전한 청정한 삶을 실천한다면, 수행승들이여, 그를 두고 흐름을 거슬러 올라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Anusotasutta-흐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4.5,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도라는 표현이 있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두 번역서에는 각주가 보이지 않는다. 이때 흘리는 눈물은 슬픔의 눈물일까 기쁨의 눈물일까?

 

청정한 삶을 사는 수행자는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살아 간다. 세상에서 범부들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살아 갈 때 수행자는 이런 흐름과 정반대로 살아 간다. 그래서 흐름을 거슬러 올라 가는 자라 하였다.

 

흐름을 거슬러 사는 자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도 빠지지 않고 악업도 짓지 않는다. 그런 수행자에 대하여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도라 하였다. 대체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경에 따르면 고통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완전한 청정한 삶을 실천한다면이라 하였다.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사는 것이 고통스런 것이긴 하지만 이는 청정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눈물의 의미는 기쁨이 된다. 결정적으로 고통에도 불구하고라 하였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 냈을 때 흘리는 눈물을 말한다. 이는 빠알리 원문을 보면 알 수 있다.

 

해당구절과 관련하여 빠알리 원문에는 “domanassena assumukho'pi rudamāno paripuṇṇa라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paripuṇṇa’이다. 이는 ‘paripūrati’의 과거분사 형태로서 ‘become full or perfect.’의 뜻이다.

 

PTS사전에 따르면 ‘paripuṇṇa’‘(quite) full, fulfilled, complete, finished, satisfied’뜻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는 완성되다 만족되다의 뜻이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등의 극복이 고통스런 것이긴 하지만 청정한 삶을 실현 하기 위한 과정에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초불연에서는 고통을 겪어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도록 울면서도 완전하고 지극히 깨끗한 청정범행을 닦는이라 번역하였다. 빅쿠보디는 Even with pain and dejection, weeping with a tearful face, he lives the complete”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기쁨의 눈물이라 볼 수 있다.

 

수행자가 고통이나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슬픔은 알아차림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을 하여 성취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리는 눈물은 상상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도라 하였고, 초불연 대림스님은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도록 울면서도라 하였고, 빅쿠보디는 weeping with a tearful face”라 하였다.

 

빠일리원문은 assumukho'pi rudamāno paripuṇṇa라 되어 있다. 여기서 assumukho’얼굴의 눈물이라 번역할 수 있고, ‘rudamāno’‘crying’의 뜻으로 울고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paripuṇṇa’‘fulfilled, complete, finished, satisfied’의 뜻으로 완성이나 만족의 뜻이 된다. 따라서 assumukho'pi rudamāno paripuṇṇa의 뜻은 수행의 성취에 따른 만족의 눈물 또는 기쁨의 눈물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사는 수행자의 눈물은 만족에 따른 기쁨의 눈물이 된다.

 

수마노(Sumano)에 대하여

 

행한 뒤에는 후회가 없어야 한다. 후회하지 않는 행함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주석에 따르면 신들과 인간의 번영과 열반의 성취를 가져오는 행위는 행한 뒤에도 후회가 없다.(DhpA.II.47)”라 하였다. 이런 성취는 만족스럽고 유쾌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만족스럽고 유쾌한 결과를 초래 하는 것이 좋다(yassa patīto sumano vipāka paisevati)”는 어떤 뜻일까? 주석에 따르면 그에게는 현세에서의 삶의 회상의 순간에 초래되는 기쁨의 감동으로 환희하고 만족의 감동으로 행복한 체험뿐만 아니라 미래에서의 삶에서도 기쁨과 만족(patīsomanassa)이 생겨난다. (DhpA.II.47)”라 하였다.

 

주석에서 patīsomanassa’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기쁨과 만족으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키워드는 소마낫사(somanassa)’이다. 이는 ‘joy; delight; happiness’뜻으로 정신적 즐거움을 뜻한다. 후회 없는 행위를 하였을 때 정신적 즐거움이 뒤따름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도마낫사(domanassa)’이다. 이는  영어로 ‘displeasure; melancholy; grief’의 뜻으로 정신적 고통을 뜻한다. 후회 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정신적 고통이 뒤따름을 말한다.

 

게송에서 소마낫사와 유사한 말이 ‘sumano’이다. 이는 ‘satisfied, happy’의 뜻이다. 그럼에도 거해스님역을 보면 sumano에 대하여 사람 이름으로 하여 수마나의 행동은 매우 훌륭했도다라 하였다. 하지만 이는 적절치 않은 번역으로 보인다. 어느 번역에서도 sumano에 대하여 사람이름으로 하여 번역하지 않았다. 여기서 sumano는 사람이름이라기 보다 만족한 상태를 뜻한다. 정신적 즐거움을 뜻하는 소마낫사(somanassa)와 유사한 단어이다.

 

일생일대의 가장 큰 후회는?

 

행한 뒤에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면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불행한 과보를 초래한다. 반면 행한 뒤에 만족스럽고 유쾌하다면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행복한 과보를 가져 온다.

 

후회는 불선한 마음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성냄을 뿌리로 하는 마음이다. 불선한 행위를 했거나 선한행위를 하지 못하여 아쉬워할 때 일어나는 마음으로서 성냄을 뿌리로 하는 마음이다.

 

후회를 할 때는 마음이 과거에 가 있다. 현재를 알아차리는 대신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을 범하고 후회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왜 그럴까? 그 때 당시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후회는 질투와 인색과 함께 성냄을 뿌리로 하는 마음이다. 후회하는 마음의 바탕에는 불만족스런 마음의 뿌리가 내재 되어 있다.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아 불편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후회는 어떤 것일까? 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이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무위와 무위로 이끄는 길에 관해 설했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든 제자의 이익을 위하여 자비로운 스승이 자비심에서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그대들에게 행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이 나무 밑이다. 이것들이 텅 빈 집이다. 선정을 닦아라. 방일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 이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신체에 대한 새김의 경, 상윳따니까야 S43.1, 전재성님역)

 

 

경에서 부처님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mā pacchā vippaisārino ahuvattha)”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열반에 이르는 길을 이미 설명하였음에도 방일 하여 행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 하였다.

 

부처님은 왜 후회할 것이라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주석에 따르면 젊음과 건강의 시기에 번영을 구가할 때에 스승이 앞에 있을 때에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고 밤낮으로 빈대의 밥이 되어 보다 나은 즐거움을 누리며 방일하게 지내면, 그들은 나중에 늙을 때에, 병들 때에, 죽을 때에, 불행의 시간에, 스승이 열반에 들 때에, 그 예전에 방일하게 지낸 것을 기억하고 결생(結生)의 시간에 그 이행을 보고 후회하게 된다.(Srp.III.111)”라고 설명 되어 있다.

 

가장 큰 후회는 임종의 순간에 일어난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매우 후회스런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방일하게 지낸 것을 기억하고 결생(結生)의 시간에 그 이행을 보고 후회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다른 모든 후회보다도 죽음의 침상에 누웠을 때 일어나는 후회야말로 가장 큰 후회라 볼 수 있다.

 

 

 

2015-04-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