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스님들, 동국대 고공농성현장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5. 5. 10. 10:59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스님들, 동국대 고공농성현장에서

 

 

화창한 봄날이다. 신록의 계절 오월에 동국대로 향하였다. 바른불교재가모임에서 공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운영위원회 모임 위주로 동국대 농성현장을 방문하였다.  관심 있는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동국대 사태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는 스님들이 스님이사장과 스님총장선출을 편법, 불법, 탈법으로 선출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항의 하여 학생이 만해광장 조명탑 위에 올라가 19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이에 격려차 방문한 것이다.

 

화창한 봄날 동국대에서

 

동국대는 올 때 마다 늘 정겹다. 그것은 동국대와 특별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동대부중다녔기 때문에 중학교 다닐 때 자주 와 보았다. 그 때 당시 부처님오신날 동국대 대운동장에서 동국체전이 있었다. 동국학원 산하 학교가 모두 모여서 체육대회를 한 것이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저녁이 되면 조계사까지 제등행렬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불교와의 인연은 꽤 오래 된 것이다.

 

동국대는 그 동안 몰라 보게 변했다. 새로 신축된 건물이 많아 옛날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도 변치 않은 것이 있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변함 없이 서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상이다. 대학 본관 앞에 서 있는 불상은 그 때 당시나 지금이나 상호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세월은 무지막지 하게 흘러서 다시 불상 앞에  서 있다.

 

 

 

 

불상을 보니 옛날과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불상보호대이다. 옛날에는 불상만 그 자리에 서 있었으나 여덟 개의 기둥으로 된 보호대가 설치 되어 있다. 아마 불상이 비바람과 눈을 맞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보호대가 더 크게 부각 되어서 그 안에 불상이 있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다. 옛날처럼 불상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부처님오신날이 머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곳 교정에도 연등으로 울긋불긋하다. 다른 대학교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광경이다. 불상과 석탑과 연등이 어우러져 있어서 이곳이 한국불교를 이끌어갈 학문의 전당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들은 왜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일까?

 

날씨는 화창하고 공기는 상쾌하고 하늘은 청명하다. 더구나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이곳저곳에 연등으로 장관을 이룬다. 이렇게 축복받은 계절에 종단의 모순과 거짓과 위선에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다. 학생들이 종단스님들의 학교뺐기에 항의하여 생명을 건 고공농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장을 가 보았다.

 

 

 

 

조명탑 위에는 한 학생이 올라가 있다. 19일째라 한다. 교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한생이 지금까지 내려 오지 않고 19일째 머물고 있는 것이다. 플레카드에는 표절총장 반대 보광스님 사퇴등의 구호가 쓰여 있다. 아래 편에는 총장선거 재실시! 종단개입 거부!”라는 구호와 함께 최장훈 고공농성 19일차라고 쓰여 있다.

 

 

 

 

농성현장은 학생들이 다니는 길목에 있다. 누구나 거쳐 갈 수밖에 없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쳐다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명탑 아래에는 최장훈 학생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교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텐트가 있어서 30명의 학생들이 조를 짜서 함께 기거하고 있다고 하였다.

 

가던 날은 토요일 오후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낮이나 밤이나 주말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들은 왜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일까? 남들이 편안하게 쉴 때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 결국 스님들의 문제라고 보았다.

 

 

 

 

 

종단 권승들의 과도한 욕심이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에 따라 나이 어린 학생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와 종단측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같다. 같은 시기에 일어났던 감신대의 경우 여학생이 채플종탑에서 일주일째 농성을 하자 학교측에서 긴급이사회를 열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런 대응방식은 동국대와 매우 대조적이다. 왜 우리 스님들은 이렇게 냉정한 것일까?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스님들

 

스님들은 전반적으로 차가운 이미지이다.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런 말을 한다. 머리를 깍고 회색승복을 입은 모습 자체가 세상사람들과의 삶을 따르지 않는다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마음 역시 세상사람들에게 다정다감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도시에, 사람 사는 곳에 절이 없는지 모른다.

 

차가운 이미지라면 그다지 자비롭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자비의 종교라는 불교의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차가운 이미지의 스님을 함부로 비난하면 커다란 화를 당할 수 있다고 한다. 교계신문에 난 기사에 따르면 도올 김용옥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귀국했을 초장이었다.…나의 스승이었던 어느 선생이 나에게 이와 같이 충고해 주었다.

 

‘용옥이 야소쟁이들은 까도 불교는 까지마! 거긴 깡패동네야, 말이 안통해, 잘못 건드렸다간 그냥 죽는거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비판을 당해도 비판을 받아낼 수 있는 힘이 있고 오늘날까지 교리와 교세의 형성이 자체 비판을 축적해오면서 커나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비판을 해도 폭력으로 대처하진 않는다 말야.

 

그런데 불교는 그런 힘이 없어. 그런 사회적 힘의 축적이 없어. 약자란 말야! 약자일수록 우월의식이 강해. 우월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곧 열등하다는 증거야!

 

약자에겐 발악밖에 없어. 잘못 건드렸다가는 죽는거야. 아예 근처에도 가지 말라구.

 

이 선생님 말씀대로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불교의 현실에 대해 일말의 관심조차 갖기를 두려워한다.

 

( [취중잡설] 상식 밖의 조계종, 누가 멸빈자를 불렀나, 불교닷컴 2012-09-25)

 

 

김용옥님에 따르면 스님들은 열등감으로 가득차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비난에 대하여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비난하면 죽기살기로 덤벼 드는 것은 열등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대응방식과 매우 비교된다고 하였다.

 

기독교의 경우 목사들의 잘못에 대하여 수 많은 비난과 비판이 있지만 스님들처럼 대응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비판과 비난을 수용하여 잘못을 인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최근 감신대의 대응자세가 좋은 예라 본다.

 

스님들은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재가자가 잘못을 지적하면 즉시 나오는 말이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라는 말이다. 재가자는 스님들의 허물을 이야기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재가자가 말하지 않더라도 스님들이 초심으로 돌아 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재가자가 스님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열등감에 따른 자만으로 본다.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기를 우월감만을 자만으로 본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열등감도 자만으로 본다. 상대방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열등감 역시 자만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이는 초기경전에 따르면 동등하다거나 뛰어나다거나 못하다고 여기는 자 그 때문에 사람들과 논쟁하게 되노라. 이 세 가지 자만심에 흔들리지 않는 자 동등하다거나 뛰어나다는 것 존재하지 않도다.(S1.20)”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여 동등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Sn4.5)”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열등감도 자만임에 틀림 없다.

 

수 많은 자만이 있다. 주로 우월감에 따른 자만이다. 좋은 가문에서 훌륭한 부모를 잘 만나 남보다 뛰어난 용모나 신체적 조건을 갖는 것에 따른 ‘태생적 자만’일 수도 있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진 것에 따른 ‘부자의 자만’일 수도 있고,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교육받은 것에 따른 ‘교육의 자만’일 수 있다. 또 스님은 승보라서 스님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든가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는 말은 스님의 자만일 수 있다.

 

학생이 고공농성을 하여 뜻을 관철시키려 하였을 때 죽든 말든 무시전략으로 나갔을 때 이는 열등감에 따른 자만으로 볼 수 있다. 스님들이 자비심이 있다면 결코 고공농성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스님들이 기본적으로 냉정하기 때문에, 자비심이 없기 때문에 마치 갈데까지 가보자하는 심정으로 내 버려 두는 것이다. 스님들이 학생들하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사장선출과정에서 스님들이 서가모니불염불로 맞불을 놓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한국불교의 승가는 이익단체

 

학생들을 상대로 싸움을 하는 스님들의 행위는 졸렬하다. 큰 뜻을 품고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큰 용기를 내서 출가한 스님들이 학생들하고 기싸움이나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보았을 때 스님들은 자비롭지도 않고 재가자의 스승도 아니다. 승가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들끼리 똘똘 뭉친 이익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스님들은 열등감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있다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산속에서만 산다면 열등감이 많아서일 것이다. 오늘날 도시에, 사람이 사는 곳에 절이 없다는 것은 스님들이 열등감이 많아서일 것이다.

 

실제로 거리에서 스님들을 보면 안쓰럽다. 위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잔뜩 주늑들어 보이는 것 같다. 차라리 산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그런 스님들이 이권에는 매우 밝다. 마치 절뺐기 하듯이 학교를 뺐고자 한다. 온갖 편법, 탈법, 불법을 총동원하여 마치 청사만 점거 하면 성공한 쿠데타로 간주하듯이 빼았고자 한다. 그러다가 학생들에게 걸린 것이다.

 

스님들은 학생들과 싸우는 찌질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 스님들을 보면서 스님의 자만을 보기 보다는 스님들에게서 열등감을 본다. 열등함에서 오는 자만을 말한다.  

 

동국대사태가 하루 빨리 해결되기 바란다. 학생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이를 스님들이 받아 들여서 모두 정상적으로 되돌아 가기를 바라는 것이 불자들의 바램이다. 그럼에도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사람들은 스님들이 자비롭지 않다거나 스님들이 찌질하다거나 스님들이 열등감에 따른 자만에 가득 찼다라고 말할 것이다.

 

 

2015-05-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