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베이비붐 세대는 행운아들일까?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에

담마다사 이병욱 2015. 6. 25. 12:05

 

베이비붐 세대는 행운아들일까?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에

 

 

베이비붐 세대가 있는데

 

전쟁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가 60여년 지속되고 있다. 전쟁 없는 시대에 태어나 전쟁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운아들이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붐세대들이 그렇다.

 

최근 TV에서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명견만리라는 프로이다. 이 프로에서 소설가 성석제님이 출연하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런 성석제는 고등학교 친구이다. 성석제는 고1일 때 같은 반이었다. 그렇다고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명한 소설가가 되고 난 후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명견만리, [1회]700 베이비부머, 기로(岐路) 서다, 2015-06-18)

 

 

 

성석제는 키가 작아서 앞에 앉았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도 거의 교류가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공부를 잘 하였기 때문이라 본다.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에 동안의 얼굴이 특징이었다. 최근 TV를 보니 동안의 얼굴을 간직하고 있다. 대게 나이를 먹으면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하는데 성석제의 경우 고등학교 당시의 얼굴이 남아 있다.  

 

성석제는 명견만리 프로에서 자신도 베이비붐 세대임을 밝히면서 베이비붐 세대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일반적으로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이 끝난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하였다. 대략 800여만명 된다고 한다. 베이비붐 당시 전체 인구의 삼분의 일이 베이비붐 세대 이었다 하니 전쟁후 평화의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는지 알 수 있다.

 

베이비붐세대가 있다면 베이비붐 세대를 있게 한 부모도 있을 것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를 말한다. 모진 전쟁을 겪고 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세대가 평화의 시대가 되자 아이를 많이 낳은 것이다. 그런 사람중의 하나가 박완서작가이다.

 

박완서작가는 몇 해 전 별세 하였다. 언젠가 TV를 보았는데 방송에서 자신은 출산의 의무를 다 하였다고 했다. 베이비붐 시대에는 한 두 명 낳는 것이 아니라 보통 세 명 이상 낳았는데 그런 출산의 의무를 다했다고 한 것이다.

 

세상이 바뀐 줄도 모르고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세대인 박완서 작가는 끔찍한 전쟁을 겪었다. 그런 경험을 소설로 표현 하였다. 몇 년 전 읽은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 볼 수 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바라 보았다. 1950 6 25일 한국전쟁이 발발 하였을 때 서울에 살았고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1학년 이었다고 했다. 작가는 6 25일 이후 삼일 만에 서울이 점령된 것에 대하여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날이 밝자 숙부와 숙모는 오늘은 상점을 열 수 있을 것 같다며 집으로 떠났다. 우리도 다들 밖이 조용해진걸 전쟁이 진정된 것 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붙들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헐레벌떡 되돌아 온 숙부는 몹시 얼뜬 목소리로 밤사이에 세상이 바뀐 걸 알려 주었다.

 

엄마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어쩔꼬, 이를 어쩔꼬.” 헛소리처럼 탄식하는 엄마의 손을 잡으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숙부는 그런 엄마가 잘 이해 안되는 모양이었다. 싱글대며 농담을 다 했다. “아 형수님이야 무슨 걱정이유. 툭하면 이승만 박사 욕도 잘 하시더니만. 잘 됐지 뭐 그래요.”그리고 우리 한테도 빨리 나가 보라고 했다.

 

길가에 인민군을 환영하는 인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엄마가 굳은 표정으로 못나가게 했다. 대통령이 남긴 목소리를 곧이 곧대로 믿던 숙부는 이미 바람 부는 대로 살 각오가 되 있는 반면, 같은 대통령을 그렇게 못마땅해 하던 엄마는 되레 새세상에 심한 낯가림을 하고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책으로 읽은 것이 아니다. 오디오북이라 하여 스마트폰으로 다운 받아 들은 것이다. 성우가 나레이션 하고 대화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라디오 연속극을 듣는 것과 같다. 이를 다운 받아서 녹취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텅빈도시의 절대고독,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2013-02-16)’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작가는 세상이 바뀐 거리의 모습을 표현 하고 있다. 그런데 소설에 따르면 서울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세상이 바뀐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난지 불과 삼일 만에 서울이 점령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거리에 나가 보니 인민군들이 진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딴 세상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하였다.

 

지붕에서 기왓장이 다 들썩들썩

 

세상이 바뀌면 환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소설에 따르면 길가에 인민군을 환영하는 인파가 적지 않다고 했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바뀐 세상을 극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사상범들이 풀려나 트럭을 타고 거리를 질주 하는 장면이다.

 

사상범들 즉 죄수복장을 한 채 마치 자신들의 세상인 것처럼 인민가요를 부르며 거리를 질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죄수들이 자신의 집에서 식사 하는 장면이 나온다. 죄수중의 한명이 오빠를 알아 보고 오빠를 차에 태워 함께 거리를 질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밥먹을 때가 되자 자신이 사는 삼선동에서 식사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장면에 대한 묘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오빠는 거의 한 트럭분 됨 직한 죄수들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죄수라고 했지만 머리를 빡빡깍고 죄수복을 입고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지, 그들의 표정은 훈장을 주렁주렁 단 개선장군보다 더 당당하고 위엄과 영광에 넘치고 있었다. 그들에 비해 평상복을 입은 오빠가 되레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이해 못하는 사람처럼 맹하니 무표정했다.

 

그들 중 하나가 댓돌 아래에서 역시 표정이 바른 채 우두망찰하고 서 있는 엄마를 사뿐히 안아 올려 좌정을 시키고 큰 절을 하자 모두 따라했다. 엄마도 이제야 그를 알아 보고 그의 손을 잡고 그간의 고생을 위로 했지만 한 번 바랜 핏기는 돌아 오지 않았다.

 

엄마한테 먼저 큰 절을 올린 이는 우리가 삼선교 집에서 살 때 문간방에 세들어 살다가 바로 우리 집에서 잡혀간 바로 그 사내이었다. 오빠도 그때는 조직생활을 할 때 이었기 때문에 비록 횡적인 관계는 없지만 서로 정체를 간파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체포된 후 남은 가족에게 우리가 그다지 야박하게 굴지 않았다는 것을 아내한테 듣고 옥중에서도 늘 감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28일 아침 서울에 입성한 인민군대는 제일 먼저 갇힌 사상범들을 해방시켰고, 갈아 입을 옷도 없었겠지만 있다고 해도 안 갈아 입을 만큼 죄수복 자체가 혁명투사의 자랑스런 표지가 된 그들은 그대로 트럭에 올라타 시내를 누비며 군중의 환호에 답하는 일방, 군중의 열광을 유도했을 것이다.

 

(중략)

 

트럭이 오빠 곁으로 바싹 다가 오는 것 같아 비실비실 피하려는데 누가 손을 내밀더라고 했다. 트럭에 탄 사람들과 행인들의 열렬한 악수와 포옹을 이미 무수히 목격한 오빠는 수줍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순간 오빠는 “이럴 수가 , 동지를 이렇게 만날 수가!” 하는 감격스런 소리와 함께 부웅 떠서 트럭 위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 자전거!”하고 아끼던 자전거를 불러 볼 새가 없었다. 그리고 한 나절을 지칠 줄 모르고 흥분의 도가니 속에 쌀의 뉘처럼 어설프게 끼여 있다가 마지 못해 그들을 달고 귀가 한 것이었다.

 

곧 우리집 좁다란 마루가 그 트럭 위가 되어 엄마하고 올케하고 나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찌게도 끓이고, 지짐질도 했다. 동네 반찬가게에서 두부는 목판째, 술은 짝으로 들여 왔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지치지도 않고 인민가요를 불러 댔다. 조그만 집이 떠나갈 듯 했다. 지붕에서 기왓장이 다 들썩들썩 하는 것 같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소설에서 가장 실감 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지붕에서 기왓장이 다 들썩들썩 하는 것 같았다.”라는 표현이다. 이는 죄수복을 입은 채로 트럭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던 사상범들이 인민가요를 부르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잘 표현 한 것이다.

 

자전적 성장소설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주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개성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이야기에서부터 서울로 유학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이야기 들이 한국의 근대사를 보는 것 같다.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유년과 소녀시대의 경험을 되살려 상세히 그 때 당시 감정을 상세히 묘사 하였다. 방학때가 되면 서울에서 개성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일제시대 당시 봉천역에 대한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서울역에서 만주 봉천가는 열차가 있는데 안내방송에서 호텐유끼(奉天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국적 분위기를 느꼈다고 하였다. 마치 공항에 가면 머나먼 도시의 방송 멘트가 나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저 멀리 만주에 있는 호텐(봉천)에 가고픈 충동을 느꼈다고 하였다.

 

박완서의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마치 동화와도 같다. 어느 방송에서는 아이들이 소설속의 장소를 찾아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의 말미를 보면 한국전쟁에 대하여 상세히 묘사 되어 있다. 그것도 승자의 입장이 아닌 패자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텅 빈 도시에서

 

작가는 스무살 나이에 6.25를 맞이 하였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 일학년 이었던 작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바뀐 세상에 적극참여 하였고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아 괴리감을 느끼고 그런 괴리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음을 밝히고 있다.

 

문제는 다시 한번 세상이 바뀌면서 발생하였다. 9.28 수복으로 인하여 부역자의 신세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벌레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빨갱이년이라 불렀고 마치 벌레 보듯이 하였다고 한다.

 

다음해 1.4 후퇴가 되자 또 다시 세상은 바뀌었다. 그러나 6.25직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6.25직후에는 전쟁이 났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바뀐 세상을 맞았지만 1.4후퇴 당시에는 참상을 겪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피난을 떠났다고 하였다. 만일 떠나지 않고 도시에 남아 있다면 나중에 수복 되었을 때 어떤 화를 입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 떠나 버린 것이다.

 

어머니와 오빠와 오빠의 처로 이루어진 작가의 가족은 미쳐 피난을 가지 못하였다. 오빠가 총상을 입고 다쳐서 내려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텅 빈 도시에 남게 되었다. 아마 다시 수복된다면 또 다시 벌레 취급 당할 것이 뻔한 상황이다. 먹을 것은 떨어지고 추위는 몰려 왔지만 텅 빈 도시에는 굴뚝에 연기 하나 올라 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작가는 소설의 말미를 이렇게 장식하였다.

 

 

우리는 먼저 양식이 있을 만한 데를 뒤졌다. 우리가 가진 양식은 너무 적었고 어느 세상에서나 목구멍은 포도청이었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짓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쌀은 없고 잡곡 한 움큼과 밀가루가 반 자루 가량 남아 있었다. 저녁은 새로 짓지 않고 남기고 간 찬밥으로 때웠다. 군불도 뜨끈뜨끈 하게 지폈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없을 지경까지 몰렸을 때 평화로움 안에서 우리는 깊은 숙면에 빠졌다.

 

새날이 밝았다. 오빠가 오래간만에 잘 잤노라고 기지개를 폈다. 나는 앞으로 후퇴한 정부가 수복 될 때만 생각하고 당장 당면한 또 바뀐 세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대책 없는 식구들이 답답하고 짐스러웠다. 오빠를 손수레에서 내려 놓았다고 해서 내 짐이 가벼워 진 건 아니었다.

 

나는 바뀐 세상의 눈치를 보려고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나갔다.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 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 이었다.

 

독립문까지 뻔히 보이는 한 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 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 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쫒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업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조금 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쭘, 보리쌀 한 두 대박 정도 없으라고.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고 하였다. 아침 시간이 되면 밥을 하기 위하여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야 하나 어느 집에도 연기가 나지 않은 것을 보고서 비로소 텅 비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런 도시에서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빈집을 터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였다.

 

작가는 텅빈 도시에서 절망을 보았다. 그러나 남의 집을 털면서 극적인 사고의 전환이 일어 났음을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언젠가는 글로서 남기고자 한 것이다. 그러자 새로운 의욕이 솟아 났다고 하였다. 마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유명한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를 연상케 한다.

 

작가는 절망적 상황에서 절망하기 보다 오히려 강렬한 삶의 의욕을 느꼈다. 반드시 살아서 느낀 것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수 많은 소설을 남겼다. 그런 소설 중의 하나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다.

 

40년 지나서 쓰여진 소설

 

박완서 작가는 1931년에 태어나 2011년 작고 하였다. 40세의 나이에 등단하여 소설과 산문을 쓰며 작가로 활동하였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오빠와 남편과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겪은 개인적인 아픔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오빠는 6.25 전쟁 때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와 죽었으며, 이것은 그녀에게 전쟁의 상처이자 문학을 시작한 이유가 되었다.”라 되어 있다.

 

작가에 따르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라고 고백하였다.  작가는 글을 통해서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인 증언을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작가의 대표작이자 동화로도 소개 되고 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발표 연도는 1992년으로 되어 있다. 소설 속에서 참담한 전쟁상황을 기록하겠다고 마음 먹고 난 후 무려 40년이 지나서 쓰여진 것이다.

 

의미 없는 눈물은 없다

 

역사는 기록된 자의 것이다. 누군가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조차 모른다. 마치 깊은 산중에서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누군가 기록으로 남겼다면 이야기가 되고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다. 그리고 역사가 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하여 유년기를 섬세하게 묘사 하였다. 그런 장면 중에 저녁노을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유년 시절 어느 날 해질 녁 하늘이 벌겋게 장엄된 것을 보았다. 그런 아름다운 광경을 최초로 보고 느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름답고 장엄한 노을을 보고서 커다란 쓸쓸함을 느꼈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하였다.

 

당시 여덟 살 정도의 아이가 벌건 저녁 노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는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마치 미래의 일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소설에서는 6.25전쟁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과정이 표현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의미 없는 눈물은 없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작가는 베이비부머의 부모세대이다. 작가는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겪고 이를 소설형식으로 기록을 남겼다. 작가의 세대의 자녀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들은 전쟁을 모른다.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가 60여년 지속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행운아들일까?

 

 

2015-06-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