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불 난 것처럼
일년의 절반이 지났다. 무엇이든지 반만 너머서면 급격히 줄어든다. 책을 읽을 때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급격하게 얄팍해진다. 세월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기대수명이라는 것이 있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에 대한 기대치를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2014년 발표된 한국인 남녀 기대수명은 81세이다. 여자가 남자 보다 높고 매년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기대수명이 81세라 하여 그때까지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일까? 기대는 기대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나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내가 남의 안전을 책임져 져 줄 수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상대방이 착한지 악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책임지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왜 그런가?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누군가 책임진다고 말한다면 그저 그러려니 하고 흘려 버리는 것이 났다. 그때 가 봐야 안다.
기대수명이 81세라면 40세부터 꺽어 진다. 책을 읽으면 절반 이후에서 얄팍해지듯이 수명 또한 얼마 남아 있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한다. 대부분 즐기는데 시간을 보낸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천상에서 하루는 인간의 백년이라 한다. 하루살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빈둥거리며 살아간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잘 말해 준다.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주인님, 백년입니다.”
“그렇게 짧습니까?”
“주인님, 그렇습니다.”
“인간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 태어나서 산다면, 시간을 빈둥거리며 방일하게 보냅니까?”
“주인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인간들은 늙음과 죽음이 없이 무수한 세월을 사는 것처럼 방일합니다.”
법구경 인연담에 나오는 말이다. 천상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간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수 천 년을 사는 것처럼 즐기며 산다. 인간들이 게으르게 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한 말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 보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매번 태어나 고통스럽게 살아 가는 삶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남은 시간이 긴 것이 아니다. 이번 생에 가능하지 않다면 다음 생을 위한 발판이라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목숨은 길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그 목숨을 경시하지 말라. 우유에 도취한 듯 살아야 하리. 죽음이 다가오는 일은 결코 없다네.(S4.9)” 라고. 이는 악마의 유혹이다.
아기가 우유를 마시는 순간은 달콤하다. 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시간이 잘 간다. 장미와 와인의 나날을 보냈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지나간 시절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임종에 이르렀을 때 이미 지난 시절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남아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또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다음과 같은 시가 잘 말 해 준다.
“사람의 목숨은 짧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그 목숨을 경시하라.
머리에 불이 붙은 듯 살아야 하리.
죽음이 다가오는 것은 피할 수 없네.”(S4.9)
사람의 목숨은 짧다고 하였다. 더구나 기대수명에서 반이 꺽어진 나이라면 얄팍하게 남아 있는 책장처럼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귀중한 시간을 아기가 우유 마시듯, 꽃을 따는데 정신 팔리듯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에 불난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2015-07-0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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