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그대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자비의 축원

담마다사 이병욱 2015. 7. 4. 18:00

 

그대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자비의 축원

 

 

수행승에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이득을 위한 길이 있고 또 하나는 열반의 길이 있다. 과도한 이득을 취하려 할 때, 또 명예와 칭송을 바랄 때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수행자는 항상 열반으로 향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Aññā hi lābhūpanisā,

aññā nibbānagāminī;

Evameta abhiññāya,

bhikkhu buddhassa sāvako;

Sakkāra nābhinandeyya,

vivekamanubrūhaye.

 

하나는 이득을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반의 길이다.

이와 같이 곧바로 알아

수행승은 깨달은 님의 제자로서

명성을 즐기지 말고

멀리 여읨을 닦아야 하리.

(Dhp75, 전재성님역)

 

 

손을 구부려 많은 이익을 취하는 행위

 

첫 번째 구절에서 하나는 이득을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반의 길이다.”라 하였다.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Aññā hi lābhūpanisā, aññā nibbānagāminī: DhpA.II.102에 따르면,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알려진 것이 하나이고 열반으로 이끄는 과정이 다른 하나이다. 이득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수행승에 의해서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가 행해진다. 그는 굽어진 부정한 행위 등을 자주하게 된다. 그가 굽어진 부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이득이 증가한다.

 

유미죽에 손을 구부르지 않고 곧게 해서 집어넣으면, 손이 단지 유미죽으로 묻어나지만, 손을 구부려서 집어넣으면, 유미죽의 덩어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굽어진 부정직한 행동을 자주함으로써 이득이 늘어난다. 이것이 여법하지 못한 이득의 수단이다.

 

반대로 여법한 이득은 구족계를 받는 것, 가사를 입는 것, 많이 배우는 것, 도반을 갖는 것, 숲속에서 사는 것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다. 열반에 이르는 과정을 완성하려는 수행승은 굽어진 부정직한 행위와 같은 것을 버려야 한다.

 

굽어진 부정직한 행위에 대하여, 그는 실제로 봉사가 아니더라도 봉사와 같아야 하고, 실제로 벙어리가 아니더라도 벙어리와 같아야 하고, 그는 실제로 귀머거리가 아니더라도 귀머거리와 같아야 한다. 그는 간교하고 교활해서는 절대 안된다.

 

(748번 각주, 전재성님)

 

 

유미죽 단지를 예로 들어 부정한 행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손을 구부려 많은 이익을 취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한 행위로 본 것이다. 특히 부정직한 행위에 대하여 봉사, 벙어리, 귀머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득과 명예와 칭송이 있는 것에 대하여 눈 감고, 입을 다물고, 귀를 막아야 함을 말한다.

 

구부러진 것에서 벗어나야

 

강화도 전등사에 가면 대웅전에 귀막은 원숭이 조각상이 있다. 안내 표지판에는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을 조각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나쁜 짓을 경고 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추녀상을 조각한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는 전설속의 이야기이다. 아마 원숭이는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기 위해서 귀를 막았을 것이다.

 

 

전등사 원숭이상

 

 

일본 동조궁에는 귀막은 원숭이 뿐만 아니라 입을 가리고 눈을 가린 원숭이 상이 있다고 한다. 왜 눈과, 귀와 입을 막았을까?

 

 

일본 동조궁의 마리 원숭이

 

 

이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게 함이 좋다.”라는 내용이라 한다.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세상사에 때가 묻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세 마리 원숭이 조각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주석에서와 같이 이득과 명예와 칭송 등 수행자로서 취해서는 안될 구부러진 것에 대하여 봉사, 벙어리, 귀머거리 같아야 한다는 말과 일치 한다.

 

구부러진 것에서 벗어난다는 게송이 있다. 테리가타에 뭇따빅쿠니는 다음과 같이 노래 하였다.

 

 

“오! 자유! 정말로 나는 벗어났다.

세 가지 굽은 것들에서 벗어났다.

절구, 절구공이, 그리고

마음이 비뚤어진 남편으로부터 벗어났다.

나는 생사에서 벗어났다.

윤회로 이끄는 것은 뿌리째 뽑혔다.

(테리가타 11, 뭇따비구니)

 

 

여법한 보시는 받아야

 

게송의 세 번째 구절 이와 같이 곧바로 알아(Evameta abhiññāya)”가 있다. 이는 이러한 방식으로 물질적인 이득을 얻는 수단과 열반으로 이끄는 과정을 알고 나서(DhpA.II.102)”라는 뜻이다.

 

네 번째 구절 수행승은 깨달은 님의 제자로서(bhikkhu buddhassa sāvako)”가 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제자란 가르침을 듣고 그렇게 되어버렸기 때문이거나 충고와 교훈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것이다. 깨달은 님[]은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하여 이해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DhpA.II.103)”라고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수행승(bhikkhu)은 제자(sāvaka)와 동격임을 알 수 있다. Sāvaka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아라한을 제외한 성스런 제자를 말한다. 더 배울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유학(有學)’이라고 한다.

 

다섯 번째 구절 명성을 즐기지 말고(Sakkāra nābhinandeyya)”의 의미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명성을 즐기지 말라는 것은 수행승은 여법하지 못한 네 가지 필수품을 받아 들이는 것을 즐겨서는 안 되고 여법한 네 가지 필수품을 거절해서도 안 된다.’라는 뜻이다.(DhpA.II.103)”라고 설명 되어 있다.

 

수행승에게 네 가지 필수품은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청정한 삶을 유지 하는데 있어서 최소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여법한 것을 받아서는 당연히 안된다. 그런데 필수품을 제공하였을 때 거절해서도 안된다고 하였다. 이는 보시자가 공덕 짓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 주어야 함을 말한다. 수행승은 필수품을 받아서 삶을 유지 하고 재가자는 보시함으로서 공덕을 짓게 되어 서로 이익이 된다.

 

세 가지 여읨에 대하여

 

여섯 번째 구절에서 멀리 여읨을 닦아야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Vivekamanubrūhaye : DhpA.II.103에 따르면, 신체적 멀리 여읨(kāyaviveka)과 정신적 멀리 여읨(cittaviveka)과 존재적 멀리 여윔(upadhiviveka)이 있다. 신체적 멀리 여읨은 신체적으로 홀로 지내는 것이고, 정신적 멀리 여읨은 여덟 가지 성취[八成就: aṭṭa samapattiyo]를 말한다. 존재적 멀리 여윔은 형성에 대한 집착을 없애 준다.

 

신체적 멀리 여읨은 정신적 멀리 여읨의 조건이 되고, 정신적 멀리 여읨은 존재적 멀리 여윔의 조건이 된다. 신체적 멀리 여읨은 여읨을 즐기는 대중으로 부터도 신체적으로 물러서는 자들의 특징이고, 정신적 멀리 여읨은 마음의 최상의 청정에 도달하여 청정한 마음을 지닌 자들의 특징이다. 존재적 멀리 여윔은 일체의 집착대상이 없어 모든 조건 지어진 것에서 해탈한 자들의 특징이다.

 

(752번 각주, 전재성님)

 

 

여윔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빠알리어 viveka를 말한다.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detachment, loneliness, separation, seclusion’의 뜻이다. 한자어로는 , 遠離, 独処라 되어 있다. 이 단어가 들어간 초기경이 다수 있다. 그중에 ‘S.I,2’을 찾아 보았다. 찾아 보니 존재의 환희를 부수고/ 지각과 의식을 부수고 느낌의 소멸을 그침으로써/ 벗이여, 이와 같이 해서 뭇삶들의/ 해탈과 자유와 멀리 여읨에 관해 나는 안다네. (S1:2)”와 같은 게송이 있다. 게송에서 해탈과 자유와 멀리 여읨에 관해 나는 안다네(Sattāna nimokkha pamokkha vivekanti)”라 하였다. 여기서 멀리 여읨‘viveka’에 대한 번역어이다.

 

장로 띳싸와 관련된 이야기(Vanavasitissattheravatthu)

 

주석에 따르면 세 가지 여읨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 존재적 여의고 닦아야 함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게송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인연담이 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계실 때, 숲에 사는 장로 띳싸와 관련된 이야기(Vanavasitissattheravatthu)이다.

 

라자가하 시에 바라문 마하쎄나(Mahasena)가 살았는데, 그는 싸리뿟따의 아버지인 방간따의 친구였다. 장로 싸리뿟따는 가난한 마하쎄나의 집을 찾아 문 앞에서 탁발을 구하곤 했다. 그러나 마하쎄나는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창피해서 그때마다 몸을 감추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사제의 독경회에서 쌀죽과 의복을 얻은 마하쎄나는 그것을 모두 장로 싸리뿟따에게 보시했다. 그리고 나중에 죽어서 장로 싸리뿟따에 대한 존경 때문에 싸밧티시의 한 싸리뿟따의 후원자의 아내의 태에 들었다. 그녀는 너무 뜨겁거나 찬 것이나 신 것을 먹지 않고 모태에 태아를 보호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 축제가 있었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마다 아이를 목욕시키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 입혔다. 백천 냥의 가치가 있는 담요가 깔린 호화로운 침대에 눕혔다. 그는 거기에 누웠지만 장로를 보고 이분은 나의 전생의 스승이다. 그 분을 통해서 나는 성취를 얻었다. 나는 이분에게 공양을 올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담요를 집어서 장로 앞으로 놓았다.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아직 짓지 않았다고 하자, 장로 싸리뿟따는 자신의 어렸을 때의 이름인 우빠띳싸(Upatissa)를 따서 그 아이의 이름은 띳싸(Tissa)라고 지었다.

 

소년이 일곱 살이 되자 어머니, 나는 장로에게 출가해서 수행승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을 장로 싸리뿟따에게 출가시켜 사미로 만들었다. 장로는 그에게 띳싸여, 수행승의 삶은 어렵다. 더운 것을 좋아하면 찬 것을 얻게 되고, 찬 것을 좋아 하면 더운 것을 얻게 된다.’라고 말했다. 사미는 시키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장로는 신체의 부정관을 통해서 신체의 첫 다섯 가지 구성부분을 관찰하는 명상주제를 주었다. 사미 띳싸는 여러 마을에서 탁발하며 여러 곳에서 수행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오면 나는 그대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수행한지 석달만에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 그러자 장로 싸리뿟따와 오백 명의 수행승들과 마하 목갈라나와 오백명의 수행승들, 그리고 대장로들이 숲속의 사미 띳싸를 찾았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 장로 싸리뿟따를 맞아 설법을 요청하자 싸리뿟따는 사미 띳싸에게 띳싸여, 그대의 후원자들이 가르침을 원한다. 그들에게 법문을 설하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미 띳싸는 행복을 얻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설했다. 그는 존재의 다발, 인식의 세계, 감각의 영역에 대하여 가르쳤다. 그리고 거룩한 경지를 성취하면 행복을 얻고, 거룩한 경지를 성취하면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띳싸의 설법이 끝나자 장로 싸리뿟따는 사미의 설법에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마을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불만을 느꼈다. 부처님께서 제따 숲에서 띳싸의 법회광경을 관찰하고 마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투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띳싸의 설법이 가르침에 일치한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부처님께도 공양을 올리게 되어 더욱 기뻐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띳싸여, 숲속에서 짐승소리를 듣는 곳이 두렵지 않은가?’라고 묻자, 그는 세존이시여, 두렵지 않습니다. 반대로 짐승들의 소리를 들을 때, 숲에 대한 자애의 마음이 일어납니다.’라고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제따 숲으로 돌아 왔다. 법당에서 수행승들이 사미 띳싸를 칭찬하자, 부처님께서는 이익을 쫓는 길과 열반을 추구하는 길이 있는데, 열반을 추구하는 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길을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 가서  노력하고 정진하여 거룩한 경지를 성취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시로써 하나는 이득을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반의 길이다. 이와 같이 곧바로 알아 수행승은 깨달은 님의 제자로서 명성을 즐기지 말고  멀리 여읨을 닦아야 하리.’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든 경지 등을 성취했다.

 

(법구경 75번 게송 인연담, Vanavasitissattheravatthu - 숲에 사는 장로 띳싸와 관련된 이야기, 전재성님)

 

 

자비의 축원

 

인연담에서 사미 띳싸가 탁발을 나가서 축원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나는 그대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라는 말이다. 이는 자비의 축원이라 볼 수 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자애의 마음이고,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연민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렇게 탁발하며 자비의 축원을 하였을 때 삼개월만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나이 어린 사미가 아라한이 되어 법문하게 되었을 때 일부 사람들은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이 증명해 준다. 부처님이 대중들 앞에 나타나서 띳싸의 설법이 가르침에 일치한다고 말해 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이가 어려도 거룩한 경지, 즉 아라한이 되면 대중들 앞에서 설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나이는 듣는 사람이나 설법한 사람이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2015-07-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