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를 마시면 시간은 속도를 잃고 만다
차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러나 최근 수 년간 차를 접하면서 어렴풋이 차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결정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법우님의 초청으로 경복궁 자경전에서 열린 다례회에 참여 하면서 부터이다. 오래 전에 차를 배웠고 또 차를 보급하고 있는 법우님은 다례제의 진행멤버이었다. 이름하여 ‘경복궁다례문화체험’이었다. 이를 ‘경복궁 ‘궁중다례’문화체험과 황차(黃茶))2011-06-06-05)’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이후 차박람회가 열리면 매번 참여하고 있다.
2015년 차문화대전
2015년 차문화대전이 코엑스 전시홀에서 열렸다. 일년에 두차례 열리는데 이번 전람회의 경우 원래 6월달에 열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메르스 여파로 한달 가량 연기되어 열린 것이다.
이제 차박람회는 익숙하다. 지난 3월 불교박람회에 이어 4개월만에 다시 찾은 차와 관련된 박람회이다. 늘 기대 되는 것은 차맛이다. 이곳 저곳 부스에 무료로 시음하는 코너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도반들과 함께 가면 좋다. 담소를 나누며 여러 가지 차를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가도 그만이다. 자유롭게 돌아 다니며 이곳저곳 기웃 거리며 “차한잔 주세요”라고 말하면 어느 부스에서든지 환영한다.
어디 차뿐인가?
도중에 도반을 만났다. 바른불교모임 회원이다. 차에 대하여 관심을 많은 법우님과 이곳 저곳 돌아 다니며 구경을 하였다. 그런데 차박람회장은 차만 전시는 것이 아니다. 차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볼 수 있다. 차를 우리기 위한 도도구에부터 심지어 천연염려로 만든 옷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향을 피워 놓으면
이번 차박람회에서 관심 있게 본 것이 몇 개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향이다. 절에 가면 법당에서 향을 사른다. 그러나 냄새가 너무 강렬하여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선입관을 가지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전시된 향은 달랐다. 직접 냄새를 맡아 보니 은은하다. 미목 등으로 만들어진 천연향이다. 집이나 사무실에 하나 피워 놓으면 굳이 인공향수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멋쟁이들도 많고
박람회장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모두 여유롭고 한가해 보인다. 차라는 것이 원래 한가함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다 보니 멋쟁이들도 많은 것 같다. 또 차문화가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니 종종 스님들도 눈에 띈다.
단아 하게 차려 입은 시연자
차박람회장에서는 행사도 열리고 있다. 중앙 끝 부분에 있는 무대에서는 ‘원유전통문화연구원’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일종의 차에 대한 예절과 차문화에 대한 홍보라 볼 수 있다. 단아 하게 차려 입은 시연자의 모습에서 격조를 보았다.
차박람회장은 시간보내기 좋은 장소
차박람회장은 시간보내기 좋은 장소이다. 다른 전시회와 달리 떠들썩 하거나 분위기가 산만하지 않다.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이다. 이는 차를 매개로 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인정이 넘친다. 모든 부스가 시음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느 곳에 가든지 “차 한잔 마시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잡으면 팽주 역할을 하는 주인은 따끈한 차를 따라 준다. 이렇게 차를 받아 마시며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차맛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차를 구입하기도 한다.
감로다반에서
최근 수 년간 차박람회를 다니다 보면 스님들이 운영하는 부스도 많이 본다. 특히 3월에 열리는 불교박람회의 경우 삼분의 일이 차와 관련된 것인데 스님이 팽주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이번 차문화대전에서도 스님이 팽주역할 하는 부스가 있었다. 주로 불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 온다. 몰려 와서 스님이 따라 주는 맛있는 차를 음미한다. 스님은 인심도 좋아서 차를 연이어 계속 따라준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렀다. 다른 곳 보다 더 인정이 있고 특히 차맛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먼저 차를 끓이는 도구부터 달랐다. 무겁고 두꺼워 보이는 철 주전자 모양이다. 스텐레스나 플라스틱으로 된 순간 온수기와는 다른 것이다. 물은 봉은사에서 떠 왔다고 하였다. 스님에 따르면 봉은사에서 나는 물이 맛이 좋다고 하였다.
오래 머문 부스이름은 ‘감로다반’이다. 설명문을 보니 ‘전통 팽다법을 되살려 12시간의 중탕으로 발효차의 부드럽고 깊은 맛을 온전히 담았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발효차이어서일까 반응이 금방 오는 것 같다. 민감한 사람은 몸이 뜨거워 지면서 열이 날 정도라 한다. 아마 보이차가 이런 맛과 같을 것이다.
스님이 연거푸 따라 준 차 맛은 마셔도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그윽한 향과 발효차 특유의 맛이 난다. 은은한 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전시된 것을 보니 침향에서 나는 것이다. 귀해 보이는 침향나무가 보인다. 그래서 차의 이름도 ‘침향발효차’라 하였을 것이다.
차냐 커피냐?
사람들은 매순간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인생의 생사문제를 결정할 중대한 선택일 수도 있고 ‘차냐 커피냐’와 같이 가벼운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차와 커피에서 고민하는 가벼운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대부분 커피를 마신다. 바쁘게 살아 가는 현대인들에게 요구 되는 것은 스피드이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후딱 해치워야 한다. 그런 요구로 나온 것이 아마 자판기커피나 봉지믹스커피일 것이다.
자판기나 봉지카피를 마시지 않는다.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프림과 설탕이 잔뜩 들어간 봉지커피를 마시다 보면 어떤 때는 독극물을 마시는 듯 하다. 물론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때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단맛에 열잔 가량 마시는 이도 있다. 거의 획일화된 자판기커피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커피를 마신다면 원두커피를 마신다. 그렇다고 점심값에 해당되는 비싼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분쇄된 원두를 사서 종이 필터를 이용하여 만들어 마신다. 이렇게 마시면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는 것 보다 거의 20배 절감된다.
“차나 한잔 할까요?”
요즘은 커피 권하는 사회이다. 커피를 마셔야 일이 풀리는 것 같고 혈액순환이 도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커피에 중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새롭게 생겨난 커피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의 시대에 차는 생소한 것이다. 아는 사람만 차를 즐긴다. 특히 불가에서는 차를 자주 마신다. 그래서 “차나 한잔 할까요?”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과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회에서 “술이나 한잔 할까요?”라는 의미와 같다.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를 대접하려면 차 도구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초청한 사람이 팽주역할을 하면서 차를 따라 주는 것은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 갈 수 있다. 초대받은 사람은 감사하게 차를 받아 마신다. 이렇게 주고 받는 관계는 상호존중과 예의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차나 한잔 할까요?”라고 초청 받았다면 대화상대로서 인정됨을 뜻한다. 불가에서는 이를 법담(法談)이라 한다. 차를 마시면서 차담 하는 것이 법담이 된 것이다.
차를 마시면 시간은 속도를 잃고 만다
차는 단순히 마시는 것이라기 보다 하나의 문화이다. 차를 마시면 마실수록 청정해지기 때문에 대화 역시 맑고 향기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 차문화에 대한 인상적인 글을 보았다. 인터넷에서 만난 무설자 법우님이다. 법우님은 칼럼에서 “내가 치르는 고독한 싸움을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차 한잔’이다.”라 하였다. 그리고 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글을 남겼다.
차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약리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차를 마셔서 얻을 수 있는 일상의 여유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 ‘일 없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무료함이란 없다.
앞에 사람이 있어서 차를 마시면 ‘차를 우리는 일’을 하고 혼자서 마시면 ‘일 없는 일’을 통해 빈 시간을 채우는 충만함을 얻는다. 누구와 함께라도 차 한잔을 나누면 세상의 이야기나 자신의 이야기가 풀어져 나오면서 시간은 그 속도를 잃고 만다.
(무설자님, 차를 아십니까?)
2015-07-12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성시점부터 붕괴되는 인공구조물,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생명 (0) | 2015.07.17 |
---|---|
권승마피아와 애국보살 (0) | 2015.07.13 |
위대한 밥상을 접하고 (0) | 2015.07.09 |
깨어 있지 않으면 누구나 장애인 (0) | 2015.07.07 |
노숙인을 대하는 태도 (0) | 2015.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