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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싸움에서 양자 모두 승리 하는 방법

담마다사 이병욱 2015. 7. 30. 18:58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싸움에서 양자 모두 승리 하는 방법

 

 

 

 

 

싸움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 목숨 걸듯이 싸워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을 이기는 것으로 본다. 개인의 싸움이 그렇고 집단의 전쟁이 그렇다. 그런데 모든 싸움에서는 한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증오심이다. 증오심 없이는 전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증오심은 극도로 미워하는 마음이다. 아버지를 죽은 원수보듯이 해야 전투에 임할 수 있다. 옆에서 죽어 나간 동료들을 생각하였을 때 복수심으로 불탈 것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한에 의한 복수를 하고, 또 원한에 복수를 반복하다 보면 증오심만 키우게 된다. 그런데 전장의 장수들은 증오심을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임에도 목숨을 아끼지 말라. 언젠가는 한번 죽는다.”고 말한다.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증오심 없이는 전쟁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은 없을까? 부처님 가르침에 방법이 있다.

 

상윳따니까야 아쑤린다까의 경(Asurindakasutta, S7.3)’이 있다. 부처님 당시 지체높은 바라문 가문에서 잘배운 바라문들이 부처님 교단으로 출가를 줄이어 하였다. 이에 화가 난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 갔다.

 

경에 따르면 바라문이 세존을 무례하고 추악한 말로 비난하고 모욕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무례하고 추악한 말(asabbhāhi pharusāhi vācāhi)’의 뜻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도둑놈, 바보, 멍청이, 낙타, 황소, 당나귀등이라 하였다. 부처님에게 바보, 멍청이, 당나귀 등 모욕적인 말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도둑놈, 바보, 멍청이, 당나귀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 발끈할 것이다. 크게 모욕을 당하였고 생각하며 더 센 욕을 퍼붓는다. 그런데 부처님은 침묵하였다. 일체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잠잠히 듣고만 있자 흥분한 바라문은 수행자여, 그대가 졌다. 수행자여, 그대가 졌다. (jitosi, samaa, jitosi, samaā)”라고 말했다. 정말 부처님은 진 것일까?

 

누가 진정한 승리자인가

 

싸움은 붙어야 볼만 하다. 서로 주고 받아야 싸움이 된다. 이쪽에서 거친 말을 하면 저쪽에서도 더 거친 말을 해야 싸움이 된다. 더 거칠게 밀어 붙이는 쪽이 승리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한편에서 침묵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 먼저 흥분한 쪽에서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생각은 달랐다. 침묵을 지키던 부처님은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아쑤린다까의 경(Asurindakasutta, S7.3)게송1

 

빠알리어

Jaya ve maññati bālo,

vācāya pharusa bhaa;

Jayañcevassa ta hoti,

yā titikkhā vijānato.

 

전재성님역

[세존]

말로 거칠게 꾸짖으면서

어리석은 자는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인내가 무엇인가 안다면

승리는 바로 그의 것이네.

 

각묵스님역

[세존]

어리석은 자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견뎌내는 그런 자의 것이로다.

 

빅쿠보디역

"The fool thinks victory is won

When, by speech, he bellows harshly;

But for one who understands,

Patient endurance is the true victory.

 

 

 

 

이 게송에 대한 별도의 각주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빅쿠보디의 CDB에 이런 각주가 있다.

 

 

Spk: "For one who understands the excellence of endurance, this victory-patient endurance-is his alone(yā titikkhā vijānato adhivāsanaya gua l vijānantassa titikkhā adhivāsana, aya tassa vijanato va jayo)." Note that neuter jaya is here nominative.

(CDB 438번 각주, 빅쿠보디)

 

 

빅쿠보디의 각주에 따르면 진정한 승리는 인내하는 자라 하였다. 여기서 승리자라는 말은 ‘jayaṃ’이다. 중성으로서 주격이라 하였다. PCED194에 따르면 勝利者. ~ vera pasavati 勝者(負者)みを라 설명되어 있다. 이는 증오심을 일으키지 않는 자가 승리자임을 말한다.

 

전쟁에서는 증오심으로 싸운다. 그런데 증오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더 이상 싸울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증오심, 즉 성냄이 소멸 되었다. 바라문이 갖은 욕설을 퍼부어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승리는 인내하는 자라 하였다. 이는 법구경에서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원한의 여읨으로 그치나니 이것은 오래된 진리이다.(Dhp5)”라는 가르침과 일치한다.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

 

 

 

아쑤린다까의 경(Asurindakasutta, S7.3) 게송2

 

빠알리어

Tasseva tena pāpiyo,

yo kuddha paikujjhati;

Kuddha appaikujjhanto,

sagāma jeti dujjaya.

 

전재성님역

분노하는 자에게 다시 분노하는 자는

더욱 악한 자가 될 뿐

분노하는 자에게 더 이상 화내지 않는 것은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네.

 

각묵스님역

분노에 맞서서 분노하는 그런 자는

더욱 더 사악한 자가 되나니

분노에 맞서서 분노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도다.

 

빅쿠보디역

One who repays an angry man with anger

Thereby makes things worse for himself.

Not repaying an angry man with anger,

One wins a battle hard to win.

 

 

 

 

 

첫 번째 게송에서는 인내하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jaya)’라 하였다.  두 번째 게송에서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라 하였다.

 

상대방이 화를 낸다고 함께 화를 내면 지는 싸움이다. 그것도 모두가 지는 싸움이다.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다. 설령 이겼다고 할지라도 상처투성이다. 부부싸움이 대표적이다.

 

부부싸움 4단계

 

부부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가트만 박사는 3,000쌍을 조사하였다고 한다. 분석한 결과 싸움에도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난-경멸-방어-담쌓기’ 이렇게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불교TV(BTN)사이트에서 ‘김송호박사의 21세기 행복한 노후특강’을 녹취하여 요약정리 한 것이다.

 

첫째, 비난단계이다

 

남자들의 경우 “당신 왜 맨날 하는 게 그 모양이야?”라고 말하거나, “하루종일 집구석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와 같은 비난의 말을 퍼붓는다. 이렇게 말할 때 여자들은 어떻게 말할까. 여자들의 경우 “아니 말하는 것이 당신 엄마를 꼭같이 닮았어?” 라든가 “왜 하는 것이 없어?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도 나를 깔보지” 라고 받아친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부싸움에서 비난단계라 한다.

 

둘째, 경멸단계이다

 

남자의 경우 “웃기고 있네” “그걸 말이라고 해?” 라고 말한다. 또 여성의 약한 부분, 예를 들면 정치나 사회현안에 대하여 말하였을 때 대응을 잘 못하면 “야, 그것도 모르냐?”라고 면박을 준다. 좀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머리는 뒀다가 국 꿇여 먹어?” “그런건 네가 잘 보는 TV에는 안나오디?” 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멸하는 말을 하면 상대방은 열받기 시작한다. 여자의 경우 “지금까지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것이 뭐있어?” “아니, 꼴에 남자라고” 이렇게 남자를 깔아 뭉게는 발언을 한다. 이 단계가 경멸의 단계이다.

 

셋째, 방어단계이다

 

자기방어의 단계라 한다. 예를 들어 여자가 “당신은 맨날 그 모양이야?” “왜 맨날 술만 먹어? 그러니까 그 모양이지”라고 공격하면, 남자들은 “내가 맨날 그랬다고 그래” “일주일에 다섯 번 밖에 안했어” 라고 말하면서 방어모드로 들어간다.  그래도 계속 비난을 하면 “당신은 그러는게 문제야” “당신은 안그랬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방어단계이다. 이제 막판으로 가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 “당신이나 잘하셔” “그래, 나 이러는 거 이제 알았어?” “나, 원래 그런사람이야!” 라고 말하면서 대든다. 위험수위에 온 것이다.

 

넷째, 담쌓기단계이다

 

남자의 경우 “일절만 해라, 일절만 응?” 라든가 “알았어, 됐어, 이제 그만해!” 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알았거든!” “됐거든!” 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다음부터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담쌓기이다. 가장 위험수위가 높은 단계이다. 담쌓기 단계에 들어서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표현을 할 수 없다. 그 다음 부터는 각자의 길로 가게 된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단계이다.

 

이렇게 부부싸움에는 네 단계가 있다. 오로지 세치 혀로 싸우는 부부싸움에서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 순서로 점차 높아 진다는 것이다. 이런 부부싸움에서 도끼나 칼만 들지 않았을 뿐 입으로 상대방을 난타하고 난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서로 화를 내며 눈을 부라리며 욕설을 하며 심지어 때리는 싸움을 하였을 때 모두 패배자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싸움을 걸어 오더라도 응하지 말아야 한다. 갖은 비난과 욕설로 모욕을 주어도 참고 인내 하여야 한다. 이럴 때는 침묵이 최고이다. 부처님도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노하는 자에게 더 이상 화내지 않는 것이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라 하였다.

 

양자의 이익을 위하여

 

 

 

아쑤린다까의 경(Asurindakasutta, S7.3) 게송3

 

빠알리어

Ubhinnamattha carati,

attano ca parassa ca;

Para sakupita ñatvā,

yo sato upasammati.

 

전재성님역

다른 사람이 분노하는 것을 알고

새김을 확립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그 둘 다를 위하는 것이리.

 

각묵스님역

그런 사람 자신과 상대 둘 다의

이익을 도모하는[여여한 사람이니]

상대가 크게 성이 난 것을 알면

마음챙기고 고요하게 처신하노라.

 

빅쿠보디역

He practises for the welfare of both

own and the other's-

When, knowing that his foe is angry,

He mindfully maintains his peace.

 

 

 

 

세 번째 게송은 사띠(sati)에 대한 것이다. 분노하는 그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이익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 부부싸움이든 이권다툼에 의한 싸움이든 국가간 전쟁이든 싸움이 일어나면 모두 피해자가 된다. 모두 파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싸움이 일어나면 둘 다 손해이다.

 

게송에서 키워드는 Ubhinnamattha이다. 이는 ‘Ubhinna(both) + attha (welfare)’의 뜻이다. 양자의 이익이라는 말이다. 왜 양자의 이익인가? 다른 사람이 분노하는 것을 알고 알아차렸을 때 이익이라는 것이다.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불연의 번역을 보면 그런 사람 자신과 상대 둘 다의 이익을 도모하는[여여한 사람이니] 상대가 크게 성이 난 것을 알면로 되어 있어서 대단히 난해한 번역이다.

 

의왕으로서 부처님

 

 

 

아쑤린다까의 경(Asurindakasutta, S7.3) 게송4

 

빠알리어

Ubhinna tikicchantāna,

attano ca parassa ca;

Janā maññanti bāloti,

ye dhammassa akovidā

 

전재성님역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치료하는 사람을

가르침을 모르는 자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각묵스님역

그런 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둘 다를 구제하나니

이런 그를 어리석다 여기는 사람들은

법에 능숙하지 못한 자들이로다.

 

빅쿠보디역

When he achieves the cure of both

own and the other's-

The people who consider him a fool

Are unskilled in the Dhamma."

 

 

 

 

부처님은 욕설하고 비난하는 바라문에게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성냄이 소멸된 이유도 있지만 싸움이 둘 다 모두를 파괴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바라문은 대단히 어리석은 자이다. 왜 어리석은 자인가? 그것은 가르침을 모르기 때문이다.

 

게송을 보면 부처님은 분노를 치료하는 의사와도 같다. 이는 tikicchantāna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빠알리어 tikicchantā의 뜻은 ‘treating medically’이다. 의학적으로 치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신적 치료라 볼 수 있다. 일종의 분노다스리기라 볼 수 있다.

 

달라이라마의 분노다스리기 8단계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즘 각종 정신적 치료법이 유행하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분노다스리기 8단계가 있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 상대방이 화낼 때 마주하기

2단계: 적으로부터 인내 배우기

3단계: 미움과 분노 없애기

4단계: 끓어오르는 감정 바로잡기

5단계: 화 성찰하기

6단계: 마음속 번뇌 줄이기

7단계: 적에게 관용 베풀기

8단계: 마음의 평정 유지하기

 

 

대체로 게송에 실려 있는 방식과 유사하다. 특히 2단계 인내에 대한 것을 보면 첫 번째 게송에서 인내가 무엇인가 안다면 승리는 바로 그의 것이네.”라 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인내 하는 것 자체가 승리임을 말한다. 이런 승리는 자신만의 승리는 아니다. 둘 다의 승리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모두를 치료하는 사람(Ubhinna tikicchantāna)”이라 하였다. 의왕으로서 부처님을 말한다.

 

청정도론 분노다스리기 9단계

 

분노다스리기에 대해서는 청정도론에 자세히 소개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분노다스리기 아홉단계와 보시공덕의 위력(2014-01-2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아홉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화를 화로써 앙갚음 하지 않는다.

둘째, 연민을 통해 적개심을 가라 않는다.

셋째, 자신을 훈계하여야 한다.

넷째, 업이 각자 자기의 주인임을 반조한다.

다섯째, 부처님이 전생에 인욕수행한 덕을 반조해야 한다

여섯째, 일체중생에 대하여 나를 한번쯤 낳아준 어머니로 생각한다.

일곱째, 자애수행의 열한가지 이익에 대하여 생각한다

여덟째, 존재를 나()나 나의 것이 아닌 오온, 12, 18계의 요소로 본다.

아홉째, 보시를 통하여 성냄을 제거 한다.

 

 

첫번째 단계 화를 화로써 앙갚음 하지 않는다.”라 하였다. 이는 게송에서 분노하는 자에게 다시 분노하는 자는 더욱 악한 자가 될 뿐(S7.3)”이라는 구절과 일치 한다. 청정도론의 아홉단계 분노다스리기는 모두 경전을 근거로 하고 있다.

 

아홉단계에서 보시를 통하여 성냄을 제거 한다.”라 하였다. 지금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찾아 가는 것이다. 빈손이 아니라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시 공덕의 효과는 엄청난 것이다. 그래서 청정도론 게송에서는 시물을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인다라고 하였다.

 

비록 미운 사람일지라도 그가 선물을 내밀었을 때 더구나 상냥하고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대하였을 때 봄눈 녹듯이 적개심이 풀어질 것이다. 서로 원한이 맺혀 있을 때 누군가 한사람이 보시 하였을 때, 보시하는 자나 보시 받는 자나 적개심이 모두 풀어 지는 것이다.

 

싸움에서 양자 모두 승리 하는 방법

 

싸움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누군가 싸움을 걸어 왔을 때 침묵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흥분하는 쪽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로서 참고 견디어 내었을 때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진정한 승리자라 하였다. 의왕으로서 부처님은 싸움에서 양자 모두 승리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2015-07-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