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사람은 그 행위를 따라서 저 세상으로 가니

담마다사 이병욱 2015. 8. 11. 09:54

 

사람은 그 행위를 따라서 저 세상으로 가니

 

 

 

 

 

택시를 타면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다. 백원단위의 거스름돈이 발생하면 거스름 돈 됐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택시기사는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응대한다. 비록 작은 돈이지만 베풀어서 기분 좋고 받아서 기분 좋은 것이다.

 

택시에서 내릴 때 한 다리 걸쳐 놓는 사람들이 있다.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서이다. 백원단위의 동전을 챙겨 갖는 사람들을 비난할 목적은 없다. 그러나 자주 타지 않고 어쩌다 타는 택시라면 잔돈 됐습니다.” 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기분이 다를 것이다.

 

임종에 이르면 후회 되는 것이 많다고 한다. 해 보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 …하며 죽는다고 한다. 좀 더 즐길 껄, 좀 더 베풀며 살 껄 하는 것이다.

 

즐기며 산다고 해서 먹는 것 등 오감에 따른 감각을 즐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 같은 것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 해외여행의 경우 다녀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특히 불자라면 성지순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부처님도 장려한 것이다.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D16)’에 이런 말씀이 있다

 

 

[세존]

아난다여,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아야 하고 경건해야 할 이와 같은 네 가지 장소가 있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1)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태어났다.’라고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고,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

 

2)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았다.’라고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고,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

 

3)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라고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고,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

 

4)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잔여가 없는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라고 믿음 있는 고귀한 가문의 아들이 보고,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

 

아난다여, 믿음있는 수행자들, 수행녀들, 청신자들, 여자 재가신자들이. ‘여기서 여래가 태어났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았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잔여가 없는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라고, 아난다여, 누구든지 이러한 성지순례를 한다면, 그들 모두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D16)

 

 

이슬람교도는 일생에 한 번쯤은 메카성지순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한번쯤 예루살렘 등 성지순례를 한다. 그런데 불교에서도 성지순례에 대한 이야기가 경전에 실려 있다.

 

부처님은 유훈에서 네 곳 성지를 말씀 하고 있다. 부처님이 탄생한 룸비니(Lumbini), 부처님이 위 없는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gaya),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 사르나트(Sarnath), 부처님이 열반에 든 꾸시나라(Kusinara) 이렇게 네 곳의 성지를 말한다.

 

사대성지는 불자라면 한 번쯤 가보아야 한다. 시절인연이 되면 그곳에 가서 경건하게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한다. 그럴 경우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임종에 이르렀을 때는 가급적 좋은 기억을 떠 올려 주어야 한다. 그런 기억 중의 하나가 성지순례일 것이다. 저 멀리 인도 사대성지 또는 팔대성지가 아니더라도 불탑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은 모두 성지에 해당된다.

 

중국, 일본, 동남아 국가 등 불교유적이 있는 곳은 모두 성지이다. 그리고 국내 900여개에 달하는 전통사찰 역시 성지에 해당된다. 이런 성지에 도반들과 하께 또는 개인적으로 참배 하였다면 임종순건에 덜 “…,…, …하게 될 것이다.

 

껄껄껄하는 것 중에  베푸는 것이 있다. 많이 못 베풀어 후회 하는 것이다죽음에 이르러 아무것도 가져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다. 그래서 랏타빨라의 경(M8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속자가 그 재산을 가지고 가고

사람은 그 행위를 따라서 저 세상으로 가니

죽은 자에게 재산이 따라다니지 않으니

처자도 재산도 땅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M82)

 

 

임종에 이르면 애써 모은 재산을 단 한푼도 가져 갈 수 없다. 미래를 위하여 안락한 노후를 위하여 물불 가리지 않고 심지어 목숨 걸고 번 돈도 임종에 이르러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된다. 다만 상속자에게 좋은 일을 할 뿐이다.

 

여기 많은 재산을 가진 자가 있다. 그러나 형성과정이 석연치 않다. 지금 천상과 같은 호사를 누리고 살지만 타인의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것이라면, 부동산 투기 등 불법과 탈법에 따른 것이라면, 주식이나 경마 등 불로소득에 의한 것이라면결코 떳떳한 것은 아니다.

 

죽음에 이르러 어는 것 하나 가져 갈 수 없다. 가져 갈 수 있는 것이라곤 재산형성 과정에서 발생한 행위(kamma: )’일 뿐이다. 그것은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를 말한다. 이마의 땀과 팔의 힘으로 형성되지 않은 재산은 모두 불법, 탈법, 불로소득으로 이루어진 것임에 틀림 없다. 오계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러 행위에 대한 과보로 두려움에 떨지 모른다

 

어느 것 하나 가져 갈 수 없다. 재산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도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죽어 가는 자에게는 친족도 벗들도 친구들도 피난처가 되지 않습니다. (M82)”라 하였다.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행위일 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현자들은 잘 안다. 그래서 베푸는 삶을 살아 간다.

 

현자는 죽음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 잘 살다 가는 것이다. 지혜가 재산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안다. 지혜를 계발하여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였을 때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축복이다.

 

 

2015-08-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