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부처님의 8만4천 법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가 달 그 자체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5. 8. 25. 16:19

 

부처님의 84천 법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가 달 그 자체인가?

 

 

성보박물관에 가 보면

 

성보박물관에 가 보면 고서적을 볼 수 있다. 특히 불경의 경우 한문으로 되어 있다. 한지에 큰 글씨로 필사되어 있는 것도 있고 인쇄 되어 있는 것도 있다. 공통적으로 어려운 한자가 많이 있어서 일반사람들이 읽기가 난해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님들은 잘 읽을 수 있을까?

 

 

 

 

 

한국불교에서는 강원교재가 수 백년 동안 변함 없었다. 한문으로 된 교재를 수 백년간 사용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2010년 당시 조계종 교육부장이었던 법인 스님은 불교평론에서 현재의 강원교재는 암호문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의 승가대학 학습 내용은 어려운 한문 교재를 읽고 해석하는 데 급급할 뿐 정작 텍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이해는 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한문경전의 경우 한자를 익히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한자를 익히고 또한 난자(難字)를 익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표의문자인 한자의 경우 해석이 각기 다를 수 있어서 지도하는 사람이 해석해 주지 않으면 단 한줄도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성보박물관에서 본 한문경전을 보았다. 한문을 모르는 세대의 경우 사실상 암호문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뜻도 모르는 외국어와 다름 없다. 이렇게 본다면 오로지 한문경전에 의존 하던 시절 경전을 다 읽고 이해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말 우다나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한문경전에 의존 하지 않고도 부처님 원음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빠알리로 된 니까야를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지 이십여년 되었다. 최초의 번역이 전재성박사의 상윳따니까야 일부 번역본이 1999년 이므로 정확하게 26년 전부터 원음을 접하기 시작 한 것이다.

 

사부니까야 뿐만 아니라 쿳다까니까야도 상당수 번역되어 출간 되었다. 그 중에 우다나가 있다. 전재성박사의 우다나번역물을 보면 2009년에 초판이 발행 되었다. 원음이 본격적으로 전파 된지 이제 6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전에는 우리말로 된 우다나를 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로지 한문경전에 의존하던 시절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다나를 접하였을까? 암호문 같은 한문경전을 읽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우다나를 보고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우다나를 읽고 있다. 우리말로 감흥어린 시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역사적인 부처님의 깨달음과 열반에 대한 감흥어린 시구와 그 인연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다나와 더불어 이띠붓다까도 함께 읽고 있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 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구입해서 읽을 수 있다. 어려운 한자로 된 한문경전으로 되어 있다면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주석이 없다면

 

빠알리니까야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 되었다는 것은 불자들에게는 행운이다. 만일 번역되어 있지 않아 한문으로 된 경전만 접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원음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까?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 부처님 원음에 장점이 있다. 그것은 주석이라 볼 수 있다. 만일 주석 없이 원문만 나열 되어 있다면 부처님의 깊은 뜻을 이해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주석가들이 해설해 놓은 것을 읽다 보면 부처님이 어떤 의미로 이야기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우다나와 이띠붓다까는 쿳다까니까야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경전을 보면 주석이 매우 상세 하게 되어 있다. 우다나와 이띠붓다까의 경우 담마빨라(Dhammapāla)가 주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다나 서시를 보면 주석에 임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우다나의석(Udāna-aṭṭhakathā)의 서시

 

 

Mahākāruika nātha, ñeyyasāgarapāragu;

Vande nipuagambhīra-vicitranayadesana.

 

Vijjācaraasampannā, yena nīyanti lokato;

Vande tamuttama dhamma, sammāsambuddhapūjita.

 

Sīlādiguasampanno, hito maggaphalesu yo;

Vande ariyasagha ta, puññakkhetta anuttara.

 

Vandanājanita puñña, iti ya ratanattaye;

Hatantarāyo sabbattha, hutvāha tassa tejasā.

 

Tena tena nidānena, desitāni hitesinā;

Yāni suddhāpadānena, udānāni mahesinā.

 

Tāni sabbāni ekajjha, āropentehi sagaha;

Udāna nāma sagīta, dhammasagāhakehi ya.

 

Jinassa dhammasavega-pāmojjaparidīpana;

Somanassasamuṭṭhāna-gāthāhi paimaṇḍita.

 

Tassa gambhīrañāehi, ogāhetabbabhāvato;

Kiñcāpi dukkarā kātu, atthasavaṇṇanā mayā.

 

Sahasavaṇṇana yasmā, dharate satthusāsana;

Pubbācariyasīhāna, tiṭṭhateva vinicchayo.

 

Tasmā ta avalambitvā, ogāhetvāna pañcapi;

Nikāye upanissāya, porāaṭṭhakathānaya.

 

Suvisuddha asakiṇṇa, nipuatthavinicchaya;

Mahāvihāravāsīna, samaya avilomaya.

 

Punappunāgata attha, vajjayitvāna sādhuka;

Yathābala karissāmi, udānassatthavaṇṇana.

 

Iti ākakhamānassa, saddhammassa ciraṭṭhiti;

Vibhajantassa tassattha, sādhu gahantu sādhavoti.

 

 

대자비를 지닌 님,

알려진 바다의 저 언덕으로 가신 님,

섬세하고 심오한 방법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명지와 덕행을 갖추어

세상에서 벗어난,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존중하던

그 최상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계행 등을 갖추고

길과 경지를 확립한

최상의 복밭인

고귀한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삼보에 예경하여

공덕이 생겨났으니

그 공덕의 광휘로

일체 장애가 제거되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요익을 구하는 위대한 선인께서

청정한 성취의 결과로서

우다나들을 가르치셨으니,

 

가르침을 결집한 님들이

이 모든 것들이 편집하여

함께 역어 모았으니,

우다나라고 불렀습니다.

 

승리자의 진리에 대한

감동과 환희를 밝히는,

희열에서 일어난

시구들로 장식되었습니다.

 

심오한 궁극의 앎을 가진

님들이 뛰어들었으니

그 의미를 해설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벅찬 작업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그 주석과 더불어 남아 있으니

그 예전의 사자(獅子)들의 해석이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해석에 매달려

가르침에 뛰어들어

다섯 가지 니까야 뿐만 아니라

예전의 주석의 방법에 의존하여,

 

지극히 청정하고,

혼란을 여의고, 섬세한 해석을 하는

마하비하라의 스님들의

의견을 거스리지 않고,

 

거듭해서 전해 내려온

의미를 명확히 자세히 밝히고

힘닿는 데까지

우다나의 주석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하오니 선지식들이여,

진솔한 가르침이 영원하길 열망하오니,

해석하는 자의

의취를 받아주십시오.”

 

(우다나 서시, 담마빨라,  전재성님역)

 

 

 

 

 

스리랑카 마하위하라(Mahavihara : 大寺)

 

 

서시를 보면 주석이 담마빨라 혼자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담마빨라 이전의 선배 주석가들의 주석을 계승하고 정리한 것이다. 이는 스승의 가르침은 그 주석과 더불어 남아 있으니 그 예전의 사자(獅子)들의 해석이 온전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주석이 이루어진 장소가 마하비하라(Mahāvihāra)’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스리랑카의 마하비하라를 말한다. 한자로 대사(大寺)라 한다.

 

담마빨라는 누구인가?

 

담마빨라는 어느 시대 인물일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 해제를 보면 담마빨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 남방 아비담마 불교는 담마빨라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정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마빨라 이후 그 어느 누구도 그의 견해에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고 한다.

 

역자가 연구한 Pm의 혜품의 토대부분(『청정도론』XIV-XVII에 해당하는 Pm)을 보더라도 남방 아비담마는 사실은 담마빨라에 의해서 이미 완결이 되었으며 이것을 토대로 『아비담맛타 상가하』는 남방 아비담마의 전체 구도를 최종 확정지은 책이라 본다.

 

이처럼 상좌부 불교의 주석서체계를 완성시키는데 붓다고사와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세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붓다고사와 아난다(6세기 초)와담마빨라(6세기 중반)이다.(붓다닷따를 넣긷 하나 논의의 대상이 아니므로 제외한다).

 

 아난다 스님은 빠알리 문헌 가운데 최초의 복주서(Tika)를 저술한분인데 그의 논장의 복주서에서 붓다고사스님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제법 드러냈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아난다의 제자로 여겨지는 담마빨라가 그의 빼어난 실력으로 붓다고사의 견해를 지지함으로써 완전하게 상좌부의 견해로 정착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붓다고사가 남방불교의 큰 체계를 완성한 사람이라면 아난다는 여기에 대한 이론을 제기하여 몇몇 문제점들을 부각시켰고 담마빨라는 다시 이런 모든 다른 견해를 불식시켜 남방불교를 완전히 고착시켰다 해야 한다.

 

붓다고사는 그의 역할에 충실하여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기 보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모으고 편집해서 빠알리어로 재창출해내는 작업을 한 사람이라면 아난다는 거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고 담마빨라는 모든 다른 견해를 논파하고 아울러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유감없이 드러내면서 남방 아비담마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만천하에 천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상좌부의 교설은 담마빨라에 의해서 최종 완성단계에 이르게 된다. 자연스럽게그 후에는 이렇다할만한 큰 인물이 나타나지 않으며 600여년이 지난 12세기에 인도에서 무슬림왕조가 등장하자 불교가 사라지면 스리랑카에서는 뽈론나루와 시대가 열리고 불교도 부흥의 시대에 다시 들어서게 된다. 이때여러 대가들이 나타나서 다시 상좌부 교설을 여러 측면에서 연구하여 드러내게 된다.

 

(청정도론 해제, 대림스님)

 

 

청정도론 해제에 따르면 주석가로서 담마빨라는 6세기 중반의 인물이다. 5세기의 붓다고사와 6세기 초의 아난다에 이어 6세기 중반의 담마빨라에 이르러 주석이 완성된 것이다. 특히 상좌부의 교설은 담마빨라에 의해서 최종 완성단계에 이르게 된다.”라고 하였다.

 

한역경전에는 주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한역 아함경에는 주석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빠알리삼장의 경우 모두 주석이 되어 있다. 같은 초기경전이라도 주석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다. 만일 주석이 없다면 경전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아마 눈먼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식이 될 것이다.

 

표의문자로 이루어진 한자의 경우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더구나 주석이 없기 때문에 더욱더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 하기 어렵다. 그러나 빠알리 삼장의 경우 주석이 자세히 되어 있어서 마치 등대의 불과 같다. 그런 주석가 중에 담마빨라가 있다.

 

담마빨라의 서시를 보면 부처님에 대한 예경과 찬탄으로 가득차 있다.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에 대하여 주석하는 것에 대하여 그 의미를 해설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벅찬 작업입니다.”라 하였다. 그래서 힘닿는 데까지 우다나의 주석을 하고자 합니다.’라 하였다. 그런 노력이어서일까 후대 사람들은 좀 더 쉽게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한국불교에서는 좀처럼 경전을 인용하지 않는다. 법문을 할 때도 자신의 말만 할 뿐 경전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에 대하여 인색하다. 아마 경전에 대하여 손가락을 가리키는 달 정도로 생각해서 일 것이다.

 

한국불교에서는 수행을 강조 한다. 손가락을 볼 것이 아니라 달을 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방 테라와다의 경우 다르다. 철저하게 경전위주로 법문 하고 있다. 그리고 주석가들이 주석해 놓은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 같은 말을 한다. 이는 각기 다른 말을 하는 대승불교의 스님들과 매우 비교 된다. 그렇다면 테라와다불교에서 경전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어느 정도일까? 청정도론 해제 글에서 대림스님은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이처럼 출가자들의 제일의 관심은 오직 법이었지 결코 중생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생이니 인간이니 하는 것은 법이 아닌 개념(pannatti)일뿐이었다. 그들은 법을 배우고 연구하고(pariyatti, 교학) 그것을 내 삶에 적용시켜 도를 닦고(pariyatti, 도닦음) 그래서 무상. . 무아의 법의 실상(보편적 성질)을 꿰뚫고 통찰하여(pativedha) 부처님이 보이신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일생을 다 바쳤다.

 

이처럼 법을 참구하며 평생을 바친 스님들이 부처님의 법을 참구하여 출가사문이 된 성스러운 과실(samannaphala, 沙門果)을 증득하고 불법이 오래 오래 이 세상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전승해온 가르침이 상좌부불교이고 아비담마이다.

 

그들은 소승이라든지 은둔불교라든지 아공법유라든지 부처님 가르침을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다든지 하는 그들을 향한 어떠한 비난이나 도전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법을 올바르게 이해(빠리얏띠)하고 그것을자신에게 적용시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고 바른 도를 실천하여(빠때빳띠) 괴로움에서 벗어나(빠띠웨다) 부처님이 보이신 해탈열반을 직접 실현하는 것이었으며 이런 출가 생활이 이웃이나 불교도 들에게 가장 큰 공덕을 가져다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 punnakkhetta)이 된다고 부처님께서 설하셨기 때문이다.

 

(청정도론 해제, 대림스님)

 

 

청정도론 해제에 따르면 테라와다불교 빅쿠들의 법의 전승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소승이라 하건 말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 하든 말든 오로지 원음을 전승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부처님 원음이 고스란히 전승되어 왔을 것이다.

 

원음이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다. 또한 기라성 같은 주석가들이 해설을 해 놓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어떤 뜻으로 말씀 하셨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부처님 말씀에 대하여 방편이라거나 대기설법, 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각락이라 할지 모르지만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은 모두 진리(Dhamma)’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84천 법문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2015-08-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