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적 깨달음과 수행의 깨달음은 어떻게 다른가? ‘길없는 길’의 무대 천장사에서
산사의 밤은
천장사 주지스님과 차담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경허스님이 보림 하였다는 작은 방 바로 뒤에 있는 방이다. 새로 리모델링해서일까 방이 매우 깨끗하다. 두 세 사람 잘 정도면 적당한 것 같다.
방에는 간단한 침구 이외 가구는 아무것도 없다. 안거철에는 스님들이 머물던 방이라 한다. 템플스테이를 위한 별도의 전각이 있음에도 이곳에 거처를 마련해 준 것으로 보아 특별대우를 받은 듯 하다.
산사의 밤은 길고 지루하다. 저녁 10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산중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방안에는 아무 것도 없으므로 경행이나 좌선 밖에 할 것이 없다. 그나마 유일한 문명의 이기 스마트폰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수단이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서 들리는 것도 없다. 도시에서는 온갖불빛과 온갖소음으로 가득하지만 산사의 밤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들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찌르레기 소리이다. 자세히 들어 보니 주기성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소리 같다. 주기성을 갖는 찌르레기 소리는 도시의 아파트에서도 들을 수 있다.
너무 적막하다 보니 숨소리까지 들린다. 움직일 때 뽀스락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참선이 저절로 될 듯 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 맡는 것 등 오감이 모두 차단 된 상태 때문일 것이다. 다만 생각의 문은 차단할 수 없다. 의문을 통하여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이럴 때 유효한 것이 호흡관찰이다. 호흡관찰하다 보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 할 수 있다. 설령 생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흘려 보낼 수 있다.
산사에 있으면 수행이 절로
산사에 있으면 수행이 절로 될 듯 하다. 수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에 대하여 법인스님은 자신의 칼럼에서 “우리 출가수행자들은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산자수려한 곳에 있는 절과 작은 암자가 평생 저희의 거처이고 수행처이니 주거환경은 지구별에서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니 늘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돈과 재물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은 그야말로 ‘분수’ 밖의 일이며 예의와 염치가 없는 짓이지요.” (법인스님, 암자일기, 느끼며, 행복하게, 휴심정 2014-05-19) 라 하였다. 출가수행자들의 삶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라 보여진다.
수행자의 삶에 대하여 누군가 시기와 질투를 할지 모른다. 그런 시선을 의식하였는지 법인스님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일 수 있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갖 이해와 경쟁으로 인한 시비와 갈등으로 지치고 편안한 날이 드문 요즘 사람들에게 자연에서의 삶은 환상일 것입니다. 팔자 좋은 인생이라고 비웃고 질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스님이 하고자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것일까? 이는 “금강산에서 살면 애써 수도하지 않아도 탐욕은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고요.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는 욕심내고 미워하는 일이 참으로 부질없고 어리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산중 자연에서 살아가는 내가 그 무엇을 애써 탐할 이유가 있겠습니까?’라는 말일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라는 뜻이다. 산사에 머물러 사는 것 자체가 수행인 것이다. 모든 오염원과 차단된 산사야말로 수행이 잘 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새벽 4시에 예불이
새벽이 되었다. 그렇다고 동녁이 밝아 오는 새벽이 아니다. 아주 깜깜한 새벽이다. 새벽 3시대에 도량석이 시작 된 것이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스님이 목탁으로 사람들을 깨우는 것 같다. 이어 목탁소리와 함께 느릿느릿한 음조로 도량석이 시작 되었다. 자세히 들어 보았으나 내용을 알 수 없다. 아마 한문게송이나 경전 중의 하나일 것이다.
새벽 4시에 예불이 시작 되었다. 새벽 4시라면 도시생활에서는 오밤중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산사에서는 공식적으로 하루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세속으로 말한다면 출근하여 업무가 개시 되는 8시 반이나 9시에 해당된다. 이렇게 본다면 산사에서 삶은 세상사람들 보다 4시간이나 5시간 앞서 산다고 볼 수 있다.
새벽예불에는 모두 6명이 참가 하였다. 천장사에는 모두 7명이 머물고 있는데 한명이 불참한 것이다. 불참자는 약 2주간 일정으로 머물고 있는 수험준비생이다. 현재 삼수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산사체험하라고 보낸 것이라 한다. 아마 예불참석못한 것이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아서일 것이다. 도시에서 젊은 사람들은 새벽 2시에 자는 것이 보통인데 새벽 4시에 예불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예불의식을 보니
새벽예불에 스님 두분, 절에 3일간 머물 예정인 환갑맞은 거사님 한 분, 2주간 머물고 있다는 약간 정신지체장애의 청년 한명, 그리고 연로한 공양주보살님이 참석하였다. 천장사의 새벽예불은 어떤 것일까?
몇 차례 새벽예불 참석한 바 있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순서로 진행하였다. 어느 예불에서나 빠지지 않는 것은 천수경이다. 그리고 대부분 한문문장으로 된 예불문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예불의식에 익숙해서인지 천장사의 예불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전혀 한문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불문을 모두 우리말로 풀어서 하고 있다. 이는 조계종에서 새로 만든 한글예불문에 따른 것이라 한다. 반야심경도 마찬가지이다. 예불문, 반야심경, 발원문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다.
예불의식은 예불문, 반야심경, 발원문 식으로 진행된다. 이외 없다.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서 한문에 익숙한 불자들은 약간 싱겁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한문으로 독송해야 맛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한문예불문이나 한문반야심경 등을 줄줄이 외고 있다. 그러나 한글로 길게 풀어 쓴 예불문이나 반야심경을 외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법당 한켠에 커다란 글씨를 써서 붙여 놓았다. 누구나 보면서 예불 할 수 있도록 배려 해 놓은 것이다.
한글반야심경에서 특이한 문장을 보았다. 그것은 반야심경 주문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제 아제’로 시작되는 주문이다. 이는 한문이나 한글 반야심경에서 공통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이곳 천장사 한글반야심경에서는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로 되어 있다.
예불문이 한문에서 한글로 바뀌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고 모두 바뀐 것은 아니다. 어느 경우에는 조사만 삽입된 듯한 느낌도 받는다. 반야심경의 주문처럼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이왕 한글로 바꾸었다면 주문마저 산스크리트원어로 바꾸면 더 나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아직도 저항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한글반야심경을 보면 한문반야심경과 절충식으로 보인다.
아침 6시의조공
새벽예불은 30만에 끝났다. 칠정례라 불리는 한글예불문, 한글반야심경, 한글발원문 이렇게 세 가지만으로 진행되었다. 천수경 좋아하는 불자들이라면 약간 싱겁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할 것 같다. 천수한번 쳐야 법회 하는 것 같고, 신묘장구대다라니 한번 해야 가피 받는 것 같은 불자들에게는 무언가 허전함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산사에서 아침공양은 시간은 매우 빠르다. 아침 6시에 조공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점심때 먹는 것처럼 모두 갖추어 놓고 먹는 것이 아니다. 죽 같은 것을 먹는다. 아침에 호박죽이 나왔다. 떡과 과일 등이 곁들여 있다. 간단히 때우는 식이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침공양시간이 되자 예불에 불참하였던 삼수생이 얼굴 모습을 보였다. 밥먹을 때가 되니 나타난 것이다. 보통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다른 것은 참가 하지 않아도 밥때만은 놓치지 않는 것이다.
혜월스님동굴
조공을 마치자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일요법회가 10시에 있으니 무려 4시간 가까이 시간이 남은 것이다. 세상에서라면 한나절에 해당된다.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였다. 방안에서 참선과 경행하는 것도 좋지만 천장사 주변을 둘러 보기로 하였다. 삼일째 머물고 있는 거사님을 도움을 받아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게 본 것이 혜월스님동굴이다. 3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놓쳤던 곳이다.
혜월동굴은 천장사 바로 입구에 산기슭에 있다. 표지판에는 천진도인 혜월스님이 도를 닦던 토굴이라 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사람이 간신히 앉을 정도로 작은 동굴이다. 동굴안에는 동그란 나무 받침이 있었다. 앉기에 좋았다. 그곳에 앉아 보았다. 허리를 곧추 세우니 머리가 천정에 닿는다. 마치 세상을 이고 있는 듯 하였다.
동굴에서 잠시 입정 하였다. 눈을 감으니 고요만 있을 뿐이다. 이름 모를 새소리만 들린다. 동굴안이어서일까 아늑하다. 앞만 터져 있을 뿐 상하좌우가 두터운 암벽으로 꽉 막혀 있어서 어떤 나쁜 기운도 들어 올 것 같지 않다. 이렇게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저절로 도인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서 혜월스님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탁탁’ 두드리는 소리에
혜월동굴에는 혜월스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안내판에 적혀 있다. 혜월스님은 경허스님의 짚신을 삼다가 깨달았다고 한다. 짚신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나무망치로 ‘탁탁’ 두드리다가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탁탁 소리를 인연으로 큰 깨침을 얻은 것이다. 그 깨달음은 어떤 것일까?
흔히 선사들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기연에 대한 것이 많다. 세수하다 코를 만지다가 깨달았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경허스님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마디 하는 것을 듣고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기연은 선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초기경전에서도 볼 수 있다.
율장대품 주석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존자 바구의 기연에 대한 것이다. 율장대품 주석에 따르면 “바구는 싸끼야족의 출신으로 아누룻다와 낌발라와 함께 출가했다. 어는 날 그는 졸음을 쫓아 내기 위해서 방사를 나섰는데, 현관에 발을 내딛다가 넘어졌다가 일어서려고 애쓰다가 깨달음을 얻어 거룩한 님이 되었다. 그의 시는 Thag.271-274에 있다.” (바구와 존자들, 10장 꼬삼비의 다발, 율장대품) 라 되어 있다. 마치 선사들의 기연에 의한 깨달음과 매우 유사하다. 그때 바구존자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혜월스님은 나무망치로 탁탁치는 소리에 깨달았다고 하였다. 부처님 당시 바구존자는 넘어졌다고 일어나려고 하다가 깨달았다고 하였다. 똑 같이 문득 깨달은 것이다. 문득 이라는 말이 ‘몰록’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돈오’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혜월스님의 깨달음과 바구존자의 깨달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등불을 쳐다 보다가
초기경전에는 선사들의 깨달음에 대한 기연담 못지 않게 인연담이 많다. 그중 법구경 인연담을 보면 등불이나 물방을 떨어지는 소리를 관하여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법구경 114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 끼사 고따미대한 이야기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죽은 아이를 내려놓고 출가하여 수행녀가 되었다. 그후 포살당에서 램프의 불꽃을 보고 어떤 불꽃은 타오르고 어떤 불꽃은 깜박이는 것을 보고는 ‘ 이 세상의 뭇삶들이 타오르기도 하고 깜박이기도 하지만 열반에 든 자, 그만은 시설되지 않는다.’라고 깨우쳤다.
(법구경 114번 게송 인연담)
죽은 아이를 잃고 수행녀가 된 고따미는 등불을 쳐다 보다가 깨달았다. 여러 개의 등불이 있는데 어느 등불은 연료가 있어서 계속 타오르지만, 또 어떤 등불은 연료가 다해서 깜박이다가 꺼져 버렸을 때 이를 보고 깨달은 것이다.
빗물을 보고서
법구경인연담을 보면 빗물을 보고서 깨달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법구경 170번 인연담에 따르면 오백명의 수행승들이 여기 저기 입구에 서서 급류의 힘으로 솟아올랐다가 부서지는 물거품을 보면서 ‘우리의 몸이 생겨나고 부서지는 것이 물거품과 같다.’라고 생각하며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 깨달았다고 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고 사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가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에 물거품이 생겨나고 사라지는데, 눈 있는 자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하면,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실로 물거품의 실체일 수 있는가?”
(Pheṇapiṇḍūpama suttaṃ-포말 비유의 경. 상윳따니까야 S22:95,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물질에 대하여 물거품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비가 내려 땅바닥을 칠 때 포말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현상을 보고서 물질도 이처럼 실체가 없음을 관하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우리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 뿐만 아니라 느낌, 지각, 형성, 의식도 실체가 없는 것으로 관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물질은 포말과 같고 느낌은 물거품과 같네. 지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S22.95)라고 하셨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오온이 실체가 없음을 말한다. 우리 몸과 마음이 실체가 없음을 말한다. 이는 오온에 내 것이 아님을 말한다. 조건에 따라 무상하게 변하는 것이 우리 몸과 마음으로 본 것이다. 이처럼 실체가 없는 오온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이 모든 괴로움의 시작이라 하였다.
“아직도 바랑에 매고 다니냐?”
선사들의 오도송에서 부처님의 오온에 대한 가르침과 같은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사성제, 십이연기, 팔정도에 대한 이야기도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선사들의 깨달음에 대한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도 없다. 무상과 집착에 대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천장사가는 길은 가파르다. 가파른 산길에 표지판이 하나 있다. 경허선사와 만공선사의 일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여 영화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스승과 제자가 마을로 탁발하러 갔다가 처녀를 희롱하는 장면이다. 표지판에 따르면 경허선사가 만공선사가 “아직도 바랑에 매고 다니냐?”는 식으로 물어 보는 내용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집착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온에 대한 무집착을 말씀 하신 부처님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런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은 사제지간이었다.
기억한 것을 사유하고 되새겨서
스승과 제자는 어떤 관계일까? 아마 부자관계 보다 더 엄격한 관계일 것이다.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하듯이 스승의 말이라면 실천하는 것이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라 볼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승이 한 말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요즘처럼 필기구가 귀했기 때문에 가급적 기억에 의존했다. 기억한 것을 사유하고 되새겨서 스승의 말한 뜻을 파악하려고 노력 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늘 스승은 반복적으로 했던 말 또 하고 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반복적인 말을 듣기 싫어한다. 이전에 했던 말을 하면 “또 그 말 한다”고 속으로 무시하거나 “그 말 전에 했잖아요?”라고 불만을 표출할지 모른다. 이런 말에 대하여 어떤 이는 큰 의미를 두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장이 직원에게 이전에 했던 말을 하였을 때 누군가 “사장님 전에 말했던 거에요”라고 말하면 성공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한번 말해서 새겨 듣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반복적으로 말해야 기억할까 말까 한다. 그런데 전에 했던 말 또 하고 또 한다는 식으로 불만을 표출한다면, 역으로 자신의 말이 확실히 전달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부모나 스승들은 이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스님들이 법문할 때도 이전에 써 먹었던 내용을 다시 써 먹는 경우도 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전에 애써 작성하였던 글을 다시 인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반복학습의 중요성이다. 늘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대가 가르침을 외워보라”
필기구가 없던 시절, 물론 스마트폰 녹음기능도 없던 시절 부처님 제자들은 기억에 의존했다. 부처님이 설법 할 때 가능한 주의를 기울여 듣고 들은 것을 기억하고자 했다. 아마 부처님도 중요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반복해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 두었다가 사유하고 되새겼을 것이다. 이는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사띠’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고 되새기는 사띠는 깨달음을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 본다.
그렇다면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고 되새기는 것이 왜 중요할까? 이는 초기경전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우다나 ‘쏘나의 경(Ud.57)’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부처님 당시 어느 재가불자가 수행승이 되고자 하였다. 인도 변방에 있던 재가자는 수행승이 되었다. 부처님을 늘 동경하던 수행승은 부처님을 뵙고자 하였다. 중부지방을 유행하던 중 마침내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다. 그때 부처님은 “수행승이여, 그대가 가르침을 외워보라.” (Ud.57) 라고 하였다. 그러자 수행승 쏘나는 ‘앗타박가’ 16경을 모두 외웠다고 우다나에 기록 되어 있다.
앗타박가는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 품이다. 여덟 게송의 품이라 한다. 이 품은 다른 니까야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이 설법한 것을 제자들이 부처님당시에도 제자들이 외우고 있었음을 말한다. 특히 숫따니빠따 4품과 5품은 사리뿟따가 ‘닛데사’라는 주석서를 만들었을 정도로 수행승이들 모두 외우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에서 경을 인용한 경우
제자들은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고 사유하고 되새기고 있었다. 이런 증거로서 또 하나의 경을 들 수 있다. 상윳따니까야에 ‘찬나의 경(S22.90)’이 있다. 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난다가 부처님의 마부 출신이었던 찬나에게 “벗이여. 찬나여, 나는 세존께서 직접 수행승 깟짜야나를 가르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S22.90)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아난다는 깟짜야나곳따의 경에 실려 있는 유명한 가르침 말한다. 내용을 보면 “깟짜야나여, 참으로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세상의 발생을 관찰하는 자에게 세상에 비존재라는 것은 사라진다. 깟짜야나여, 참으로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세상의 소멸을 관찰하는 자에게 세상에 존재라는 것은 사라진다.” (S22.90) 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경에서 경을 인용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경에서 경을 인용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라는 뜻일 것이다.
아난다는 말썽만 피우는 거만하고 아만에 가득찬 찬나에게 ‘깟짠야나곳따의 경’에 실려 있는 가르침을 알려 주었다. 이 가르침을 듣고 찬나는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찬나의 경에 따르면 “저는 존자 아난의 설법을 듣고 진리를 꿰뚫었습니다.” (S22.90)라 하였다. 그렇다면 찬나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해차원의 깨달음
경에서 경을 언급될 정도로 깟짜야나 곳따의 경은 매우 가치가 있는 경이다. 그래서일까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에서도 가전연경이라는 이름으로 소개 되어 있다.
깟짜야나곳따의 경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연기를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발견한 이 연기법으로 그때 당시 바라문교와 육사외도의 가르침을 모두 논파 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영원주의와 허무주의를 논파한 가르침이 깟짜야나곳따의 경이다.
이는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세상의 발생을 관찰하는 자에게 세상에 비존재라는 것은 사라진다.”라 하여 허무주의를 논파 하였고, 또한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세상의 소멸을 관찰하는 자에게 세상에 존재라는 것은 사라진다.”라 하여 영원주의를 논파한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연기법의 진수라 볼 수 있다. 부처님 가르침이 왜 위대한지 알려 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온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깟짜야나곳따의 경은 짤막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연기법의 진수가 들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가르침을 잘 이해 하지 못한다. 깟짜야나곳따의 경에서 “올바른 지혜로 세상의 발생을 관찰하는 자에게 세상에 비존재라는 것은 사라진다.”라든가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세상의 소멸을 관찰하는 자에게 세상에 존재라는 것은 사라진다.”라는 구절을 보고 무릎을 친다면 문득 깨달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해 차원이다. 현응스님이 말한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한 것이다. 이것도 깨달음일 것이다.
이해 하였다고 하여 완전한 깨달음은 아니다. 수행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사들이 기연에 의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이해 차원으로 본다. 스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그리고 경전으로 본 것 등을 기억하고 사유하고 되새기는 과정에서 어느 날 어느 순간 어떤 기연에 의하여 이해한 것으로 본다. 그런 이해는 일반사람들이 이해 하는 것과 달리 일종의 ‘통찰지’라 볼 수 있다.
교학적 깨달음과 수행의 깨달음
한국불교에서는 수행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교학을 등한시 하기도 한다. 이는 선종의 교외별전이나 불립문자에 기인한 바도 크다. 그러나 부처님은 교학과 수행 모두 다 강조하였다. 이는 초기경전에서도 확인 된다.
앙굿따라니까야 ‘마하쭌다의 경(A6.46)’을 보면 교학승과 수행승이 다투는 장면이 있다. 서로 자신의 수행방법이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에 따르면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장점에 말하라고 하였다.
수행승에 대해서는 “세상에 이러한 불사의 세계를 몸으로 접촉하고 있는 놀라운 사람들을 세상에서 만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A6.46)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열반을 실현하려면 수행이 가장 빠른 길임을 말한다.
교학승에 대해서는 “세상에 이러한 심오한 의취를 지혜로 꿰뚫고 있는 놀라운 사람들을 세상에서 만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A6.46)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교학하는 것만으로도 통찰지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교학으로도 깨달음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해 차원이라 볼 수 있다. 깨달음의 완성에 이르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 이는 ‘불사의 세계’를 경험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경허스님의 보림도량
천장사는 경허스님의 보림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법당 한켠에 있는 작은 방이 경허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다. 한사람이 누우면 딱 좋을 만큼 매우 비좁은 방이다.
방에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 보니 아늑하다. 정면에는 경허스님의 영정이 보인다. 영정을 보니 나무지팡이가 있다. 그래서일까 둔탁하게 보이는 나무지팡이가 하나 세워져 있다. 큰 사이즈의 짚신 한켤레, 그리고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르지만 연꽃도 한송이가 한켠에 있다.
방안에서 잠시 입정에 들었다. 절에 가면 법당에서 입정하면 좋다고 한다. 가장 기를 받기 좋은 곳이 법당이라 한다. 그런데 경허스님이 보림 하였던 곳이라 하니 더욱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천장사에 하루밤 머물기 위해 온 사람 중에는 굳이 작은 경허스님방에서 자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경허스님은 오도후에 이곳 방에서 보림 하였다는데 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경허스님의 행적에 대해서는 소설에 잘 알려져 있다. 작가 최인호의 ‘길없는 길’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경허스님의 행적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 첫번째 행선지가 바로 천장사이다.
소설 ‘길없는 길’을 오래 전에 읽어 보았다. 그러나 다 기억할 수 없다. 부분적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만 떠 오른다. 경허스님이 이곳 천장사에 머물 때 아마 어머니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경허스님의 제자인 수월, 혜월, 만공 이렇게 삼월이라는 불리는 제자와도 함께 살았다. 경허스님 바로 옆방을 만공스님 방이라 하는데 이 작은 방에서 세 명의 제자스님이 함께 산 것이다.
인법당에는 부엌도 있다. 그런데 인법당부엌은 유명하다. 그것은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으로 깨우쳤다는 수월스님과 관련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월스님이 불을 때다가 방광한 것이다. 수월스님이 다라니를 외며 불을 때다가 삼매에 든 것이다. 그러자 아래 마을사람들이 불난 줄 알고 불끄기 위해 왔다고 한다. 와서 보니 불난 것이 아니라 몸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부엌에는 솥단지가 있다. 안내판에 ‘수월스님과 부엌’이라 적혀 있으니 수월스님의 솥이라 볼 수 있다. 저 솥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글을 쓰면서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고, 대상 너머에 있는 것 까지 보게 되었다.
솥뚜껑을 열어 보았다. 놀랍게도 시퍼런 만원짜리 지폐 세 장이 있었다. 누군가 일부로 놓고 간 것이다. 그러나 발견되지 않은 채로 오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누군가 양심불량인 사람이 발견하였다면 가져갔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솥단지 옆에 불전함이라도 하나 놓아야 되지 않을까?
길없는 길을 가다가
소설속의 나그네는 늦은 오후 천장사에 찾아와 하루 밤을 묶었다. 나그네는 왜 깊은 산속에 있는 산사까지 왔을까? 아마 길을 찾지 못해서일 것이다. 길을 잃어 버렸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을 모르고 살아 간다.
여기 불륜을 저지른 유부남과 유부녀가 있다. 이불속에서 유부녀가 “우린 이제 어쪄죠?”라고 묻는다. 이에 유부남은 깊은 한숨과 함께 “나도 모르겠소”라고 답한다.
여기 살인을 저지른 도둑들이 있다. 한 도둑이 “우린 이제 어쩌죠?”라고 묻는다. 이에 대장도독이 “나도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오계를 저지른 자들의 앞날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물으면 공통적으로“나도 모르겠다”라 할 것이다. 탐진치로 살아 가는 잠재적 범죄자들 삶 역시 앞날이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여기 한 수행자가 있다. 그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려고 했다. 남들이 한번도 가지 않은 길로 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길을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가시덤불투성이었으나 한번 길을 개척해 놓자 많은 사람들이 다니게 되어 큰 길이 되었다.
부처님도 길을 개척하였다. 아직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런데 길의 끝에 아름다운 고대도시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광야의 숲속에서 방황하다가 옛날 사람들이 다니던 옛 길과 옛 거리를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가다가 정원을 갖추고 원림을 갖추고 연못을 갖추고 제방을 갖추고 분위기가 좋은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옛 성과 옛 도시를 발견했다.”(S21.65) 라고 표현하였다.
그 길은 어떤 길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 옛 길과 옛 거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이것이 수행승들이여, 과거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이다.” (S21.65) 라 하였다. 그 길은 팔정도의 길인 것이다.
경허스님은 가지 않는 길, 길 없는 길을 갔다. 그래서 길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한국선불교의 중흥조라 일컫는다. 그런 길 없는 길은 없던 길이 아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다닐 수 없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번 길을 내 놓자 많은 사람들이 다니게 되었다. 그런 경허스님의 도량, 천장사에서 하루 밤을 묵었다.
2015-09-2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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