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감자를 한 바구니에 넣고 씻으면 , 왜 수행공동체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5. 9. 24. 22:41

 

감자를 한 바구니에 넣고 씻으면 , 왜 수행공동체인가 

 

 

초기불교경전에서 늘 대조되는 문구가 있다. 꾸살라(kusala)와 아꾸살라(akusala), 뿐냐(puñña)와 빠빠(papa) 등이다. 꾸살라는 착하고 건전한 행위로, 아꾸살라는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로 번역된다. 뿐냐는 공덕행으로, 빠빠는 악행으로 번역된다. 이와 함께 자주 나오는 말이 발라(bāla)와 빤디따(paṇḍita)이다. 발라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 빤디따에 대하여 현명한자로 번역된다.

 

쌍으로 되어 있는 가르침

 

법구경에는 두 개의 단어가 대조되어 쌍으로 되어 있는 게송이 있다. 그리고 쌍으로 되어 있는 왁가()가 있다. 법구경 여섯 번째 품에 대하여 빤디따왁가라 한다. 이는 다섯 번째 품인 발라왁가와 대조적이다. 현명한 자는 어떤 자일까? 법구경 78번 게송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Na bhaje pāpake mitte      나 바제 빠빠께 밋떼

na bhaje purisādhame       나 바제 뿌리사다메

bhajetha mitte kalyāne     바제타 밋떼 깔야네

bhajetha purisuttame.      바제타 뿌리숫따메.

 

 

악한 벗과 사귀지 말고

저속한 사람과 사귀지 말라.

선한 벗과 사귀고

최상의 사람과 사귀어라. (Dhp78, 전재성님역)

 

 

わるな。

しいるな。

われ。

われ。(Dhp78, 中村元)

 

 

나쁜 벗과 사귀지 말라.

저속한 무리들과도 어울리지 말라.

착한 벗과 기꺼이 사귀고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섬기라. (Dhp78, 법정스님역)

 

 

나쁜 친구와 사귀지 말고

비열한 자와도 사귀지 말라.

좋은 친구를 사귀고

덕 높은 성자와 함께하라. (Dhp78, 거해스님역)

 

 

Don't associate with bad friends.

Don't associate with the low.

Associate with admirable friends.

Associate with the best. (Dhp78, Thanissaro Bhikkhu)

 

 

대단히 심플한 가르침이다. 세 살 먹은 아이라도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여든 살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다.

 

악한 친구와 저속한 사람

 

첫 번째와 두 번째 게송에서 나쁜 벗과 사귀지 말라. 저속한 무리들과도 어울리지 말라.”라고 하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주석을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Na bhaje pāpake mitte na bhaje purisādhame: DhpA.II.111에 따르면, 악한 친구는 신체적 악행과 같은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에 매인 자이고 저속한 사람은 주거침입과 같은 행동이나 스물한 가지 부적절한 행실을 범히는 자들을 말한다.

(767번 각주)

 

 

악한 친구와 저속한 사람을 구분하였다. 악한 친구는 신체적으로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를 하는 자라 하였다. 한마디로 오계를 어기는 자들을 말한다. 저속한 사람에 대해서는 스물한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주석에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저속한 사람일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승단에 속하는 대나무 지팡이, 종려나무 잎사귀, , 열매, 단단한 나뭇가지[칫솔용], 세수용물, 목욕용물, 파우더, 진흙[비누용]을 신자에게 주는 것(9가지),쓸데 없는 말을 하는 것, 일부만 진실인 말을 하는 것, 의사로서 행동하는 것, 밀사를 보내는 것, 재가신도의 토지 등에 대해 심부름하는 것, 재가신도와 소유물을 교환하는 것, 뇌물을 주는 것, 부지를 선정하는 것, 길일을 택하는 것, 관상을 보는 것(12가지)을 말한다.

(767번 각주)

 

 

저속한 사람의 유형을 보면 수행승에 대한 것이다. 주로 신도와 관련된 것이 많다. 소유하는 것 등 율장에서 금하는 행위를 하는 자가 저속한 자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귀지 말고 섬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선한 벗이고 고귀한 사람이라 했다. 바로 그들과 사귀고 그들을 섬기라고 하였다. 그래서 착한 벗과 기꺼이 사귀고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섬기라. (bhajetha mitte kalyāne bhajetha purisuttame)”라 한 것이다.

 

장로 찬나와 관련된 이야기(Channatheravattthu)

 

법구경 78번 게송과 관련하여 인연담이 있다. 장로 찬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찬나는 부처님의 마부이었다. 부처님이 유성출가할 때 도와 준 이가 마부 찬나이었다. 마부출신 찬나에 대한 인연담은 다음과 같다.

 

 

장로 찬나(Channa)는 두 위대한 제자,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하여 나는 고귀한 아들과 함께 위대한 출가를 결행했다. 그때 다른 누구도 없었으나 지금은 내가 싸리뿟따다, 내가 목갈라나이다. 우리가 최상의 제자이다.’라고 떠들며 돌아다닌다.”라고 비난 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승들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장로 찬나를 불러 훈계했다. 그는 그 순간에는 말없이 듣고 있다가 다시 돌아가서는 장로들을 비난하곤 했다. 부처님께서는 두 세 번 그를 불러 찬나여, 두 명의 최상의 제자는 그대의 선한 벗이고 위없는 참사람이다. 이와 같은 선한 벗을 섬기고 사귀라.’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이어서 시로써 악한 벗과 사귀지 말고 저속한 사람과 사귀지 말라. 선한 벗과 사귀고 최상의 사람과 사귀어라.’라고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나는 부처님의 충고를 듣지 않고 예전처럼 두 장로들을 비난했다. 수행승들이 다시 부처님께 알리자 부처님께서는 수행승들이여,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대들은 찬나를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야 가능하리라.’라고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들기 전에 존자 아난다가 세존이시여, 장로 찬나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장로 아난다에게 하느님의 벌(brahmadaṇḍa)’이라는 처벌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에 그를 불러 처벌을 내리자 그는 부처님으로부터 세 번이나 용서받고도 가르침을 어긴 것을 회상하며 슬픔과 비탄에 잠겨 존자여, 나를 파멸시키지 마시오.’라고 울부짓었다. 그 후 그는 해야 할 의무를 충실히 하여 네 가지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

 

(Channatheravattthu-장로찬나와 관련된 이야기, 법구경 78번 인연담, 전재성님역)

 

 

찬나는 승단에서 골칫덩어리이었다. 부처님도 어찌 할 수 없는 골치 아픈 존재는 부처님이 유성출가할 당시 출가를 도왔던 마부이었다. 부처님과 함께 카필라성을 빠져 나올 때 도움을 준 찬나는 자부심이 대단 하였다. 또한 매우 거만 하였다. 그것은 내가 누군데!”라고 하는 자만심이다. 이런 자만심이 부처님의 두 상수제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하여 극에 달하였다.

 

 

 

유성출가상(조계사)

 

 

열등감이라는 자만

 

찬나의 두 상수제자에 대한 자만심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열등감이라 볼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두 상수제자에 대하여 찬나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지 부처님과 한날 한시에 함께 성을 빠져 나왔다는 자만심이 평생을 지배한 것이다. 그런데 두 상수제자들을 모두 인정하고 떠 받드는 꼴을 못 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누군데!”라 하였다. 이는 열등한 자의 자만심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우월감만 자만심이 아니라 하였다. 동등감, 열등감도 자만심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Katame tayo mānā pahātabbā:

Māno, omāno, atimāno. Ime tayo mānā pahātabbā,

 

수행승들이여, 버려야 하는 세 가지 자만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자만, 열등, 우월, 이것이 버려야 하는 세 가지 자만이다.”(A6.106, 전재성님역)

 

 

자만심에 대하여 우월(atimāno)뿐만 아니라 열등(omāno)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두 버려야 될 것들이다. 왜 그런가? 모두 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누군데라든가, “나는 누구이다.(I am)”이라는 자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상윳따니까야 사밋디의 경(S1.20)’에 따르면 세 가지 잘못된 견해는 자만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세 가지 자만은 우월, 동등, 열등을 말한다. 그래서 같다, 낫다, 또는 못하다, 이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싸우네. 이 세 가지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님에게는 같거나 나은 것이 없다네.”(S1.20)라 하였다. 세 가지 자만에 흔들리지 않는 자에 대하여 자만의 족쇄를 부순 아라한이라 하였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 여섯 가지 원리를 끊어 버리지 않으면 아라한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자만, 열등, 우월, 교만, 완고, 비열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원리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거룩한 경지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A6.76)라 하였다.

 

아홉 가지 자만이 있는데

 

자만심의 바탕은 무엇일까? 그것은 철저하게 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나는~(I am~)”이라는 말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보다 낫다. (I am better.)”라든가, “나는 그 보다 못하다. (I am worse.)”라든가. “나는 그와 동등하다.(I am equal.)”로 표현 된다. 이런 자만심은 모두 아홉 가지로 표현 된다. 옮기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탁월한 자보다 낫다.

Being superior to others, one thinks, I am better.

 

2) 나는 탁월한 자와 동등하다.

Being superior to others, one thinks, I am equal.

 

3) 나는 탁월한 자보다 못하다.

Being superior to others, one thinks, I am worse.

 

4) 나는 동등한 자보다 낫다.

Being equal to others, one thinks, I am better.

 

5) 나는 동등한 자와 동등하다.

Being equal to others, one thinks, I am equal.

 

6) 나는 동등한 자보다 못하다.

Being equal to others, one thinks, I am worse.

 

7) 나는 열등한 자보다 낫다.

Being inferior to others, one thinks, I am better.

 

8) 나는 열등한 자와 동등하다.

Being inferior to others, one thinks, I am equal.

 

9) 나는 열등한 자보다 못하다.

Being inferior to others, one thinks, I am worse.

 

 

 아홉 가지 자만심 중에 찬나는 어디에 해당될까? 아마 첫 번째 항 나는 탁월한 자보다 못하다.(Being superior to others, one thinks, I am worse.)”라는 문구가 해당될 것이다. 찬나는 두 상수제자에게 항상 열등감을 느꼈지만 부처님과 한날 한시에 성을 나갔다는 그 사실 만으로 두 상수제자를 우습게 본 것이다. 이것이 열등한 자의 자만이다.

 

왕따 당한 찬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부처님의 탁월한 상수제자이었다. 그럼에도 찬나는 굳이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부처님 앞에서만 고개를 숙일 뿐 나가서는 다시 비난하고 다녔다. 이는 열등한 자의 자만이다.

 

찬나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자 따돌림 당했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에 부처님은 마지막 유훈에서 찬나에 대하여 특별하게 언급하였다. 아난다에게 “아난다여, 수행승 찬나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수행승들은 그에게 이야기하거나 충고하거나 가르침을 주어서는 안된다.(D16)”라고 말씀 하셨다. 이는 하느님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느님의 처벌이라 번역된 것은 빠알리어 brahmadaṇḍa를 번역한 것이다.

 

브라흐마단다(brahmadaṇḍa)는 영어로 ‘punishment by stopping all conversation and communication with one’라고 설명되어 있다. 아무도 그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자어로는 범벌(梵罰)이라 한다. 또 다른 한자어로 묵빈대처라 할 것이다. 요즘말로 하면 왕따가 된다.

 

안하무인격의 찬나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왕따를 당하였다. 그럼에도 찬나에게 따듯하게 대해 준 이가 아난다존자이었다. 상윳따니까야 찬나의 경에 따르면 아난다는 말썽꾸러기 찬나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 준다. 그래서 찬나로 하여금 깨달음의 경지로 유도한다. 인연담에서는 해야 할 의무를 충실히 하여 네 가지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라고 하였다. 아라한이 된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씻어 주듯이

 

부처님은 최상의 사람과 사귀라.(bhajetha purisuttame)’ 고 하였다. ‘최상의 사람(purisuttame: the highest of men)’은 어떤 사람일까? 부처님의 두 상수 제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와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였을 때 닮아 간다. 그래서 공동체 생활이 필요하다.

 

공동체생활을 하면 최상의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함께 살다 보면 점점 그 사람을 닮아 가게 된다. 결국 그 사람처럼 된다. 마치 감자를 한 바구니에 넣고 씻으면 서로가 서로를 씻어 주듯이 수행공동체생활을 하면 함께 향상된다. 그 중에서도 최상의 사람이 있다면 모두 그를 따라 가게 되어 있다.

 

 

2015-09-2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