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금강경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의 근거는?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1. 9. 11:54

 

금강경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의 근거는?

 

 

소의경전(所依經典) 금강경

 

한국불교 종단에서는 대부분 금강경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고 있다. 소의경전이란 신행을 비롯하여 교의적으로 의존 또는 의거하는 근본경전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불자들은 입문교육을 마치면 경전공부로서 대부분 금강경을 택한다.

 

 

 

Diamod sutra

 

 

스님들의 법문을 들어 보면 대부분 금강경을 언급하고 있다. 금강경 사경이라든지 금강경 독송회 금강경을 신행과 수행의 방편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불자라면 누구나 금강경을 한번쯤 접하고 신행하고 있다.

 

금강경은 내용이 심오하고 난해 하다. 특히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누군가 해설해 주지 않으면 뜻을 정확히 없다. 그래서 많은 해설서가 나오고 많은 강좌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금강경은 한자로 5,249 지나지 않는 얄팍한 책이다. 그렇다면 금강경은 부처님 원음일까?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난 원인은?

 

대승경전 금강경에 대하여 비불설이라 한다.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것이 아니라 후대 대승논사들이 편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승불교성립과 크게 관계가 있다.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난 것은 기원 전후의 일이다. 인도불교사에 따르면 대승불교는 힌두이즘의 성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우리야 왕조시대에 불교 지배종교이었다. 불교는 막강한 권력을 왕족과 교역을 하는 자산가들의 지지를 배경으로 급속하게 발전한 것이다. 사이 바라문들은 수구적 입장만 지켰다. 그렇다고 세력이 미약해진 것이 아니다. 지방 농촌사회는 여전히 바라문 세력이었고 중앙의 문회권 역시 바라문이었다.

 

불교가 진보적이었다면 바라문은 보수적이었다. 그런데 마우리야 왕조이후 불교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약해지자 상대적으로 바라문세력이 점차 강해졌다. 이제까지 불교의 기세에 눌려 숨죽여 지내던 바라문교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바라문교는 도중에 힌두이즘으로 환골탈태 하였다는 사실이다. 바라문교를 뿌리로 하여 민속신앙이 혼입 되어 오늘날 있는 독특한 힌두이즘이 성립 것이다. 마우리야 왕조 붕괴시기인 기원전 2세기 이후의 일이다.

 

대승불교는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 대부분 부파불교에 대응하여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경서원의 인도불교사에 따르면 힌두이즘 형성에 대응하여, 혹은 자극을 받아 불교 내에서도 B.C 2세기 무렵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물론 출가자를 중심으로 부파불교가 점차 전문화되어 가는 것에 반발하여 재가신자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운동으로 대승불교운동이 불교 내에서 흥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학자들에 따르면 힌두이즘의 성립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보살사상을 구현하기 하여

 

금강경은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이다. 그렇다면 금강경은 무슨 목적으로 언제 어떯게 성립되었을까?

 

금강경의 성립은 대승불교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은 기존 부파불교와 차별화로 나타난다. 이를 대승보살운동이라 있다. 이는 출가자만의 불교가 아니라 출가하지 못한 대중들도 구원 받을 있음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힌두이즘의 바크티(bhakti) 비슷한 형태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대승불교가 힌두이즘에 자극받았고 또한 영향도 받았음을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하나의 인간상을 세웠다. 이것이 자비행을 실천하는 이상적 인간상, 보살(bodhisattva) 말한다. 이처럼 자비에 바탕을 보시 등의 덕목을 육바라밀이라 하는데 이는 보살의 실천덕목이 된다.

 

대승불교에서 새로운 인간상은 보살이다. 독자적인 보살사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찬술된 것이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같은 대승경전이다. 그런데 대승주의자들은 스스로 대승(mahayana)이라 하였다. 그리고 종전의 불교를 소승(hinayana이라 하여 폄하 하였다. 이런 전통은 요즘 시대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어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원시불교라 하고 테라와다불교를 소승이라 부른다.

 

천이백오십인에 대하여

 

대승보살사상이 구현된 경전이 금강경이다. 이는 반야부 경전에 속하는데 성립시기는 B.C. 1세기에서 A.D. 1세기로 본다. 기원전후에 성립 것이다. 그래서일까 초기경전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에 금강경과 빠알리니까야를 비교해 보았다.

 

 

1) 금강경

 

如是我聞 一時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사 
비구들 천이백오십 인과 더불어 함께 하셨다. (법회인유분)

 

 

2)숫따니빠따

 

Eva me suta eka samaya bhagavā aguttarāpesu cārika caramāno mahatā bhikkhusaghena saddhi aḍḍhateasehi bhikkhusatehi yena āpaa nāma aguttarāpāna nigamo tadavasari,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세존께서는 천이백오십 명의 수행승들과 함께 앙굿따라빠 지방에서 유행하시다가 아빠나라고 하는 앙굿따라빠 지방의 마을에 도착하셨다. (셀라의 , 숫따니빠따 Sn3.7)

 

 

금강경의 시작을 알리는 법회인유분을 보면 천이백오십인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천이백오십인일까? 그런데 천이백오십이라는 숫자는 한국불교 예불문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예불문을 보면 천이백제대아라한(千二百諸大阿羅漢)이라 하였다. 아라한이 1200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아라한이 천이백명이라면 아라한이 아닌 자까지 합한다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천이백명에 오십명을 더한 천이백오십명이라는 숫자가 초기경전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고층이라 일컬어 지는 숫따니빠따 셀라의 에도 천이백오십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금강경에서의 천이백오십명과 같다

 

깟사빠 삼형제 제자 천명

 

빠알리니까야에서 천이백오십명이라는 말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셀라의 경에서 보는 천이백오십이라는 숫자는 어떤 근거로 나왔을까? 이에 대하여 율장을 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있다.

 

부처님이 성도한 교화에 나섰다. 율장대품에 따르면 교화한지 일년이 되지 않았을 이렇게 해서 예순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 (Vin.I.19) 되어 있다. 부처님을 포함하여 아라한이 61 것이다.

 

교단으로서 모습을 갖추어 가자 부처님은 전도선언을 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안락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길을 떠나라고 하였다. 둘이서 같지 것을 당부 하였는데 이는 사람이라도 교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본다. 길을 떠난 사람들이 모두 아라한이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교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도 교화하러 길을 떠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도 역시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우루벨라 지역의 쎄나니가마 마을로 가겠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우르벨라에서 깟싸빠 삼형제를 교화 하였다. 수가 무려 천명에 달했다. 이는 맏형인 우르벨라 깟싸빠가 오백명의 결발행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둘째 나디 깟싸빠는 삼백명, 셋째 가야 깟싸빠는 이백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 삼형제를 신통의 힘으로 굴복 시켰다. 그리고 유명한 불의 설법을 하였다. 부처님의 번째 설법으로 알려져 있는 연소의 법문은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일체가 불타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수행승들이여, 시각도 불타고 있고 형상도 불타고 있고 시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Vin.I.34)

 

 

부처님은 세상이 불타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신이 불타고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불탄다는 것을 무엇을 말할까? 이어지는 문구로 있다.

 

부처님은 불타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불타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다.”라고 하였다. 탐진치 삼독의 불을 말한다. 탐진치 삼독이 불의 연료가 됨을 말한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계속 불이 타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세생생 윤회 하게 것이다. 이렇게 탐진치 삼독으로 감각능력이 불타게 되었을 괴로움을 야기 하게 것이다. 그래서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붙타고 있다.” 하였다.

 

깟싸빠삼형제와 삼형제를 추종하는 천명의 무리들은 부처님의 불의 설법을 들었다. 경에 따르면 천명의 수행승들의 마음은 집착 없이 번뇌에서 해탈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산자야의 제자 이백오십명

 

천이백오십인 중에서 천명은 우르벨라 깟싸빠의 천명의 무리이다. 나머지 이백오십인은 누구일까 

 

율장대품에 따르면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이야기 소개 되어 있다. 사람은 원래 육사외도 중의 하나인 산자야 벨랏띠뿟따의 제자들이었다. 산자야는 회의론을 주장하였는데 뱀장어를 잡듯이 혼란스런 이론이라 하였다. 이는 형이상학적 문제인 사구분별(있다, 없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관해 어떠한 궁극적 판단을 내리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사리뿟따는 어느 앗사지 존자의 경행 모습을 보고 감화 되었다. 그래서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청결하고 피부색은 맑고 깨끗합니다. 그대는 누구에 의지하여 출가했고, 그대의 스승은 누구이고, 누구의 가르침을 좋아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그러자 산자야를 따르던 이백오십명의 제자들도 함께 따랐다.

 

율장에서 언급된 천이백오십명

 

부처님의 교단은 천명 이상이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혐책하고 분개하였다고 한다. 그랬을까? 그것은 훌륭한 가문들의 아들들이 부처님 교단에 출가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분개 하였다.

 

 

수행자 고따마가 아들을 빼앗았다. 수행자 고따마가 남편을 빼앗았다. 수행자 고따마가 혈통을 끊어 놓았다. 오늘 그는 천명의 결발행자를 출가시켰고, 이백오십명의 유행자를 출가시켰다. 마가다국의 이름있는 가문의 아들들이 수행자 고따마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한다.” (Vin.I.43)

 

 

대목을 보면 초기 출가자의 질적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있다. 배운 양가집 자제들이 앞다투어 출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을 빼앗아가고 남편을 빼앗아 간다고 혐책하고 분개 하였던 것이다. 이에 부처님은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대품에 따르면 수행승들이여, 잡음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것이다. 일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라고 예견하였다. 그리고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위대한 영웅인 여래는

바른 진리로써 이끈다.

진리로써 이끄는 현자를

누가 질시할 있는가?” (Vin.I.43)

 

 

사람들은 출가한 아들과 남편들이 비법으로 이끌리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는데 걸렸다. 그래서 잡음은 칠일간만 지속되고, 칠일이 지나자 사라졌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율장에서도 천이백오십명이 언급되어 있다.

 

“aḍḍhateasehi bhikkhusatehi(천이백오십명의 수행승)

 

율장대품에 따르면 부처님이 우르벨라 삼형제와 산자야의 제자들을 교화하자 천이백오십명이 부처님 교단에 넘어 오게 되었다. 이것이 율장에서 최초로 언급된 천이백오십인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경장인 셀라의 경에서 세존께서는 천이백오십 명의 수행승들과 함께라고 번역되어 있다.

 

셀라의 경에서 천이백오십이라는 말은 빠알리어 aḍḍhateasehi 해당된다. 사전에 따르면 Aḍḍhatelasa  ‘aḍḍhateasa (aḍḍha+telasa十三) 十二点五라고 설명되어 있다. Aḍḍhatelasa ‘Aḍḍha+telasa’ 복합어이다. 여기서 Aḍḍha a half 의미이고, telasa Thirteen 뜻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구에서 bhikkhusatehi 하였다. 이는 백명의 수행승을 말한다. 이는 satehi sata 뜻으로 숫자 ()’ 뜻한다. 그래서 빠알리어 “aḍḍhateasehi bhikkhusatehi”라는 말은 천이백오십명의 수행승 된다. MDB에서는 “with twelve hundred and fifty bhikkhus” 하였다.

 

천이백오십명이 식사에 초대 되었는데

 

경전에서 천이백오십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좀처럼 보기 힘들다. 숫따니빠따 셀라의 (Sn3.7) 맛지마니까야 셀라의 (M92)에서 있다. 그렇다면 1250명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초창기 부처님 교단의 숫자가 많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보여진다.

 

경에 따르면 군중들이 싸끼야의 아들로서 싸끼야 족에서 출가한 수행자 고따마가 이백 오십명의 수행승들과 함께…”라고 것에서 있다.  그때 당시 천명 이상 되는 교단이 드믈었음을 말한다. 그것도 단기간에 천명의 수행자를 거느렸다면 뉴스이었음에 틀림 없다. 더구나 셀라의 경을 보면 명성이 높았던 셀라의 제자들이 삼백명에 불과한 것과 대조 된다.

 

천이백오십명에 대한 이야기는 셀라의 경에서 자주 나온다. 이는 바라문 께니야가 식사에 초대한 것을 보면 있다. 무려 천명이 넘는 인원을 초대하였을 잔치 분위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식사 준비하는 것을 바라문 셀라는 존자 께니야가 누구를 장가보내는 것입니까? 혹은 시집노내는 것입니까? 아니면 제사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식사 준비를 하는 께니야는 제게는 축제가 있습니다.”라며 부처님의 천이백오십명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리지널 버전은 초기경전에

 

조계종 등 한국불교 종단의 소의경전이 금강경이다. 금강경 첫 머리에 나오는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사  비구들 천이백오십 인과 더불어 함께 하셨다.라는 구절은 빠알리니까야를 근거로 한 것이다. 정확하게 숫따니빠따 셀라의 경을 근거로 한 것이다.

 

금강경에 실려 있는 문구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는 셀라의 경에 실려 있는 bhikkhusaghena saddhi aḍḍhateasehi bhikkhusatehi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비구들 천이백오십 인과 더불어 함께(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라는 말이 천이백오십 명의 수행승들과 함께(bhikkhusaghena saddhi aḍḍhateasehi bhikkhusatehi)”(Sn3.7)라는 말과 정확하게 일치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천이백오십이라는 숫자의 오리지널 버전은 초기경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015-11-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