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1. 22. 19:44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일요일 한가한 시간에

 

일요일 한가한 시간이다. 직장인들이라면 좀 더 보람 있게 보내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교외로 차를 몰고 나가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리 고자 할지 모른다. 또 피곤에 절은 심신을 잠으로 때우고자 할 지 모른다. 또 어떤 이는 등산으로 호연지기를 기르고자 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집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TV시청하며 여유롭게 보낼 것이다.

 

일요일 논현동 위빠사나수행센터로 향했다. 일요일도 개방해 놓으므로 누구나 참석하여 수행할 수 있다. 지난 주 일요일 참석하려 하였으나 글이 길어지는 바람에 놓친 바 있다. 오전에 글을 써 놓고 점심 전에 출발하려 하였으나 글이 길어진다. 중단하고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일요일 수행처로 향한 것은 마음을 잡기 위해서이다. 마음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것 보다 내부로 향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요일 등산하면 건강에도 좋고 호연지기도 길러서 좋으나 마음을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집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TV시청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먼 거리에 있는 곳으로 출발한 것이다.

 

강남이라는 곳은

 

점심은 도착지 부근에서 해결하였다. 간단히 이천원짜리 김밥을 먹었다. 부근에서 식사하려면 팔천원 이상이다. 잘 먹자고 수행처에 가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는 식으로 하였다. 배가 터지도록 잘 먹고 난 다음 좌선에 임하면 몹시 불편하다. 먹은 듯 안 먹은 듯 허기만 약간 달래는 정도가 적당하다.

 

수행처 가는 길에 보는 강남의 풍경은 지방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면 도로에서 보는 자동차는 외제차 일색이다.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산 자동차가 거의 반이다.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은 국산차 반 외제차 반이다.

 

소위 강남부자들을 볼 때 마다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그들은 정신적으로 풍족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대체로 물질적으로 풍족하면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행복하면 수행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천상에서 삶은 즐거움 뿐이라 한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수행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너무 잘살고 너무 부자이고 너무 행복하면 수행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써도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이 때문에 힘들게 애써 가며 수행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재벌가에서 출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많이 배운 사람들의 출가는 종종 볼 수 있다.

 

수행은 혼자 하는 것 보다

 

수행처에 도착하니 늘 그렇듯이 ‘관리자님이 있다. 나중에 물어 보니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강북하고도 끝에서 산다고 하였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와서 문을 열고 네 시에 끝나면 문을 닫고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주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갈 때 마다 반갑게 맞아 준다.

 

수행처에는 모두 네 사람이다. 그 중에 한분은 육십가량 되어 보이는데 키가 껀정하게 큰 분으로서 삭발하였다. 경행과 좌선하는 폼을 보니 포스가 느껴진다.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수행에 임하는 모습에 흐트러짐이 없다.

 

그 분은 수행이 다 끝나고 옥불부처님 앞에 삼배 하였다. 그러고 보니 몇 차례 방문에서 예불하지 못하였다. 이런 점을 그 분이 일깨워 주었다. 이렇게 수행처에서는 반드시 배울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수행은 혼자 하는 것 보다 함께 모여서 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을 것이다.

 

놓아 버렸을 때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한시간 동안 좌선이다. 늘 그렇듯이 점심식사후 좌선시간은 효과가 별로 없다. 오랜만에 앉아서 그런지 자세도 잡히지 않고 망상만 일어난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려 하니 잘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좌선에 임하기 전에 내려 놓아야 한다라는 말을 명심하였다.

 

수행은 잘 하려 하면 오히려 더 안된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전현수박사는 강연에서 선정수행에 대하여 놓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잘하려는 마음을 놓아 버렸을 때 오히려 수행이 더 잘됨을 말한다.

 

첫 번째 타임은 기대를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으려고 했다. 몹시 피곤해서 인지 졸리고 망상만 일어 났다. 늘 그렇듯이 첫 번째 타임은 만족스럽지 않다. 그냥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2시부터 3시까지 한시간 동안 경행이다. 경행시간이 길기 때문에 도중에 커피와 차을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조용한 실내에서 누구 하나 말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할 일만 할 뿐 남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호흡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3시부터 4시까지 두 번째 좌선시간을 가졌다. 경행을 하고 시간이 경과 되어서인지 첫 번째 타임과 기분이 달랐다. 어쩐지 잘 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방석을 세 겹으로 쌓고 앉았다. 눈에서부터 엉덩이까지 닿는 부위의 느낌을 확인하고 곧바로 호흡보기를 하였다.

 

어떤 이가 말하는 호흡보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떠 올렸다. 특히 전현수박사의 강연에서 호흡보기 하는 방법을 떠 올렸다. 전현수박사에 따르면 긴호흡, 짧은 호흡, 전체보기, 미세한 호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체보기라 하였다. 이는 호흡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을 말한다.

 

호흡을 지켜 보았다. 긴호흡, 짧은 호흡이 있지만 구별이 가지 않기 때문에 그저 알아차리려 노력하였다. 특히 호흡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시도는 약간효과가 있었다. 확실히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듣거나 지도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구가 켜진 듯이

 

두 번째 좌선에서 크게 기대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다만 전구가 딸깍 하며 켜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호흡을 지켜 보다가 짧은 순간 전면이 환해지는 듯한 느낌을 말한다. 이런 밝음은 선정에 진입하기 위한 니밋따는 아닐 것이다. 호흡을 죽 지켜 보았을 때 니밋따가 생겨난다고 하는데, 이는 대상이 바뀌는 것이라 하였다.

 

호흡을 관찰한다는 것은 호흡을 대상으로 하여 지켜 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빛이 출현하였다는 것은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대상이 호흡에서 빛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계는 아니다.

 

호흡을 지켜 본지 몇 분 되지 않아 밝음이 보였다. 마치 전구가 켜진 것 같다. 그러나 전구가 켜질 듯 꺼질 듯 하는 것이다. 켜졌을 때는 확실이 전구가 대상이 되었다. 전구가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잡념과 망상으로부터 해방이라 본다.

 

 

 

electric bulb

 

 

 

생각에도 무게가 있다

 

호흡만 관찰하였을 때는 망상이 치고 들어 온다. 그러나 아는 마음은 남아 있다. 아는 마음이 모두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마음은 호흡관찰을 할 뿐만 아니라 망상이 치고 들어 오는 것 까지 알 수 있다.

 

호흡에 집중하며 관찰함에도 망상이 들어 온다. 그런데 망상이 매우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는 것이다. 왜 피곤하게 만들까? 이는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눈을 뜨고 있을 때 망상은 피곤하지 않다. 오감이 활동하여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망상 보다 힘이 더 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으면 의문만 열려 있으므로 의문을 통해서 들어 오는 망상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생각에도 무게가 있을까? 좌선 중에 치고 오는 망상을 보면 확실히 무게를 느낀다. 망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데 이는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망상을 하여 사념의 구조물을 만드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생각도 무게를 가지는 것으로 본다.

 

마음의 피로를 줄이려면

 

일상에서는 생각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수행을 많이 한 사람들은 일상에서도 생각의 무게를 느낀다고 하였다. 전현수박사는 강연에서 새소리를 예로 들었다.

 

새소리가 났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새 소리가 좋다라고 말하거나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욕망이라 하였다. 좋고 싫음이 개입 된 것이다. 새소리가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욕망이 개입 되어 불선업을 짓게 되는 요인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수행자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단지 새 소리네하며 그치는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피곤하지 않다고 하였다.

 

대상에 대하여 단지 알아차리면 마음의 피로를 줄일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불선업도 짓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일상에서 욕망과 분노는 무게가 있어서 사람을 피로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불선업까지 짓게 만드는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생각에도 무게가 있다. 이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망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호흡으로 돌아 오면 마음이 가벼워 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마음의 전구가 켜지면 망상은 더 이상 발 붙일 데가 없다. 그런데 마음의 전구가 켜지면 힘이 나는 듯 하다는 것이다.

 

망상이 일어났을 때는 가슴을 짓 누르듯이 답답하다. 그러너 갑자기 전면이 훤해지면 청량감을 느끼고 가벼워 진다. 이런 밝음은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라 본다. 재벌이 제 아무리 감각적 쾌락을 마음 껏 누려도 마음의 전구로 인한 밝아진 마음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행으로 얻는 이득 두 가지

 

수행을 왜 할까? 그것은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 본다. 앉아서 다리를 꼬고 불편하게 몇 십분 앉아 있는 일이 힘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것은 분명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수행의 가장 큰 이득은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것이다. 오염된 물이 가라 앉는 것과 같다. 그것은 온갖 생각과 망념으로부터 해방이다.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망념이 약화 된다. 더구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그 환함으로 인하여 망념은 접근도 못한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마음이 깨끗해질 수밖에 없다.

 

수행을 하면 또 하나의 이득이 있다. 그것은 공덕을 쌓는 것이다. 한시간 동안 마음이 청정해졌다면 한시간 동안 공덕을 쌓는 것이다. 이는 선행을 하여 순간적으로 공덕 쌓는 것과 비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수행으로 얻는 이득은 마음을 닦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업공덕이다. 깨끗해진 마음은 선한 행위이므로 선업공덕을 쌓게 된다. 마치  누이 좋고 매부 좋듯이 수행을 하면 번뇌로부터 해방되어서 마음이 가볍고 깨끗해서 좋고 무엇보다 선업공덕을 쌓아서 좋은 것이다.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유년기에 시골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도회지로 이사 가게 되었다. 이사간 첫날 밤에 전구가 환하게 켜졌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는 시골에서 삶과 매우 비교 되었다.

 

그때 당시 시골에서는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아 등잔불로 생활하였다. 등잔불은 등잔 주변만 밝을 뿐 조금만 벗어나도 어슴프레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듯이 전반적으로 어두침침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도회지에서 첫날 밤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방안은 전구로 인하여 구석구석 비치지 않은 곳이 없이 환하였다.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듯 하였다.

 

등잔불과 전구불빛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등잔불은 등 주변부만 비추지만 전구는 온 방안을 환하게 만든다. 더구나 어두운 밤에 방안에 들어 가서 전구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일시에 밝아진다. 좌선 중에 일어나는 환함도 전구와 같은 것이다.

 

방안의 전구는 자신의 의지로 켤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전구는 자신이 켜고 싶다고 해서 켜지는 것이 아니다. 호흡관찰을 하다 보면 저절로 켜지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전구는 선정에 이르기 위한 니밋따는 아니다. 누구나 눈을 감고 있으면 볼 수 있는 일시적 환함이다.

 

잠시 동안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일시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마음에 무게를 느끼고 하고 마음을 피곤하게 만드는 번뇌망상이 끼여 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번뇌망상이 빛에 압도되어 발 붙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일시에 켜진 전구에 어둠이 끼여 들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2015-11-2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