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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이 천 명 이상 온다고 해도, 변재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 방기사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2. 7. 12:07

 

여인들이 천 명 이상 온다고 해도, 변재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 방기사

 

 

 

변재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

 

상윳따니까야 1권을 보면 주로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는 상윳따니까야에서 1권에 대하여 ‘Sagāthavaggo’라 한다. 여기서 Sagātha라는 말은 有偈, ある의 뜻이다. ‘시로 구성된 품이라는 뜻이다. 연기법이 실려 있는 상윳따는 2권으로서 ‘Nidānavaggo’라 하고, 오온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 상윳따는 3권으로서 ‘Khandhakavaggo’라 한다. 4권은 ‘Saāyatanavaggo’라 하여 여섯 가지 감역에 대하여 다루고 있고, 마지막으로 5권은 ‘Mahāvaggo’라 주로 37보리분법과 관련된 수행의 품이라 볼 수 있다.

 

게송으로 구성된 상윳따니까야 1권은 법구경이나 숫따니빠따 못지 않게 감명적이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짤막한 게송으로 압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마치 2권의 연기법, 3권의 오온, 4권의 여섯 감역, 5권 길의 가르침을 접하기 위한 예비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그런 Sagāthavaggo방기사의 품이 있다.

 

방기사의 품은 주제별로 구분하였을 때 여덟 번째에 해당된다. 그래서 ‘Vagīsa Thera Sayutta(S8)’이라 한다. 해제에 따르면 수행승 방기사는 변재의 제일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에서 부처님의 뛰어난 제자 80인 가운데 하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왕기사에게 변재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paibhānavantāna)” (A1:196~1:275) 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이런 칭호는 그가 즉흥시를 잘 짓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꽃단장한 여인들이 나타나자

 

경을 보면 왕기사는 매우 섬세하고 감성적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을 시로서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명상수행 도중에 마주치는 시련과 유혹에 대한 것이다.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왕기사에게 어느 날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vagīso navo hoti acirapabbajito ohiyyako vihārapālo.

 

Atha kho sambahulā itthiyo samalakaritvā yena aggāavako ārāmo tenupasakamisu, vihārapekkhikāyo. Atha kho āyasmato vagīsassa tā itthiyo disvā anabhirati uppajjati, rāgo citta anuddhaseti.

 

 

그런데 그 때 존자 방시싸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수행승으로서 승원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그 때 많은 여인들이 잘 차려 입고 승원을 보기 위해 승원이 있는 곳으로 찾아 왔다. 바로 그 여인들을 보고 나서 존자 방기싸에게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 욕정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Nikkhantasutta-출가의 경, 상윳따니까야 S8.1,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방기사는 출가한지 얼마 안되는 새내기 수행승이라 하였다. 이를 빠알리어로 ‘acirapabbajita’라 하였다. 그런데 승원을 지키고 있는 왕기사 앞에 일단의 여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승원을 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인들은 잘 차려 입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잘 차려 입었다라는 말은 ‘samalakaritvā’로서 ‘having decorated; having adorned’의 뜻이다.

 

잘 치장하고 꽃단장한 여인들이 나타나자 젊은 새내기 수행승은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좋지 않은 생각, 즉 욕정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방기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감각적 욕망이란?

 

방기사는 미적인 것을 추구하고 시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다. 꽃단장을 한 여인들을 보았을 때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감각적 욕망이다.

 

감각적 욕망이라 무엇일까?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때만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고 그것을 감각적 욕망이라 할까? 일반인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출가수행자에게 있어서 감각적 욕망은 더 넓게 확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쳐다 보았다고 하자. 그 때 하늘이 맑고 청명하였다면 , 하늘이 맑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쳐다 본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엄밀한 의미로 본다면 시각을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 해당된다.

 

또 하나 감각적 욕망에 대한 것이 있다. 어떤 출가수행승이 있었다. 그 수행승은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을 한 뒤에 연못으로 들어가서 붉은 연꽃의 향기를 맡곤 했다. 이에 그 우거진 숲에 살고 있던 하늘사람이 그 수행승을 가엾게 여겨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질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S9.14) 라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하늘사람은 수행승을 향기도둑이라 한 것이다. 도둑질은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수행승은 연꽃이 아름다워 가까이 갖고 향내를 맡기 위하여 코를 대었다. 이는 시각과 후각으로 즐기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똑 같은 행위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잘못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향기도둑이라는 극단적인 말을 사용한 것이다.

 

 

 

 

 

 

잔상을 떠 올리는 행위도

 

감각적 욕망이라는 것이 단지 잘 치장한 여인들을 보고서 욕정이 생겨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늘을 응시하거나 꽃 향기를 맡는 행위 역시 감각적 욕망의 범주에 들어간다. 더구나 행위가 반복 되었을 때 이는 집착으로 이어진다. 이런 집착은 결국 수행을 방해하고 급기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감각적 욕망은 반드시 눈, , , , 몸이라는 다섯 가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상에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이 있고 정신은 여섯 번째라 알려져 있으니”(S1.30) 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정신이란 마노(mano)를 말한다. 여기서 마노는 정신의 대상이나 정신형상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서 그 잔상을 떠 올리는 행위도 감각적 욕망에 해당된다.

 

쐐기의 비유가 있는데

 

방기사는 여인들을 본 후에 욕망이 일어나 괴로워 하였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자 방기사는 내게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 욕정이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참으로 나에게 해롭다. 참으로 나에게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나에게 나쁜 것이 닥친 것이다.” (S8.1) 라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생각한 것은 방기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새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방기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없애고 좋은 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방기사는 내가 스스로 자신을 위해 나의 좋지 않은 생각을 없애고 좋은 생각을 일으키면 어떨까?”라고 생각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쐐기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마치 숙련된 미쟁이나 그의 도제가 작은 쐐기로 커다란 쐐기를 쳐서 뽑아 버리는 것처럼,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은 어떤 인상에 관해 그 인상에 정신적 활동을 일으켜 자신 안에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일어나면, 그는 그 인상과는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가 그 인상과는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키면,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들이 버려지고 사라진다. 그것들이 버려지면 안으로 마음이 확립되고 가라앉고 통일되고 집중된다. (M20,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쐐기의 비유를 들었다. 그래서 “작은 쐐기로 커다란 쐐기를 쳐서 뽑아 버리는 것처럼(sukhumāya āiyā oārika āi abhinīhaneyya)”라 하였다. 마치 독을 독으로써 제독하는 것과 같다. 이는 동종요법을 말한다.

 

여인들이 천 명 이상 온다고 해도

 

방기사는 악하고 불건전 생각이 마음을 괴롭혔을 때 착하고 건전한 생각을 일으켜 추방하고자 하였다. 이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쐐기의 비유로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1.

Nikkhanta vata ma

santa agārasmānagāriya,
Vitakk
ā upadhāvanti

pagabbhā kahato ime.

 

[방기싸]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내가 출가한 뒤에

어둠에서 오는 이러한 생각들이

완강하게 나를 엄습하고 있네.

 

 

2.

Uggaputtā mahissāsā

sikkhitā dahadhammino,
Samant
ā parikireyyu

sahassa apalāyina.

 

훌륭한 사수인 귀공자들로서

잘 숙련된 강한 활을 가진 자들로

겁이 없는 사람 천 명이

나를 모든 방향에서 에워싼다 하더라도

 

 

3.

Sacepi ettato bhiyyo

āgamissanti itthiyo,
Neva ma
byādhayissanti

dhamme samhi patiṭṭhita.

또한 만약 그 이상의 여인들이 오더라도

나를 괴롭게 하지 못할 것이니

나는 가르침에 확고하게 서 있네.

 

 

4.

sakkhīhi me suta eta

buddhassādiccabandhuno,
Nibb
āagamana magga

tattha me nirato mano.

 

태양신의 후예인 부처님에게서

그 자신의 입을 통해 나는 들었네.

열반으로 이끄는 길을.

내 마음은 그곳에 머물러 즐겁네.

 

 

5.

Evañce ma viharanta

pāpima upagacchasi,
Tath
ā maccu karissāmi

na me maggampi dakkhisīti.

 

이처럼 살고 있는 나에게,

악마여, 그대가 오더라도

그 때 그대가 나의 길을

악마여, 알지 못할 것이다.

 

(Nikkhantasutta-출가의 경, 상윳따니까야 S8.1, 전재성님역)

 

 

방기사는 좋지 않은 생각에 대하여 천명의 궁수와 천명의 여인으로 비유하였다. 그래서 천명이 궁수가 모든 방향에서 에워싼다 하더라도 또 그 이상의 여인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물리칠 자신이 있음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Srp.I.269에 따르면, ‘천 명의 궁수가 모든 방향에서 활을 쏘더라도, 잘 훈련된 사람은 화살을 맞기 전에 봉으로써 모든 화살을 쳐서 발 아래에 떨어뜨린다. 한 궁수가 한 번에 한 화살보다 더 많이 쏠 수 없지만, 여인들은 형상과 다른 감각적 대상을 통해서 한 번에 다섯 가지 화살을 쏠 수 있다. 이러한 여인들이 천 명이상 온다고 해도, 그녀들은 나를 동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1682번 각주, 전재성님)

 

 

주석을 보면 잘 훈련된 사람은 화살을 맞기 전에 봉으로써 모든 화살을 쳐서 발아래에 떨어뜨린다.”라 하였다. 화살이 날아 왔을 때 칼로 쳐내거나 봉으로 쳐서 맞지 않음을 말한다. 이런 장면을 외국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어떤 화살이 날아와다 맞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천명이 여성이 온다고 해도 유혹되지 않음을 말한다. 그런데 천명의 여성은 사실상 5천명의 여성과 같다고 하였다. 눈과 귀 등 오감으로 날라 오는 화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디스님 455~456 488번 주해를 참조할 것

 

두 번째 게송을 보면 ‘Uggaputtā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세도 있는 귀족의 아들이라 하였다. 하지만 전재성님은 욱가계급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이 욱가(ugga)라는 계급이 있는데, 왕족의 아버지와 노예의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된 계급을 의미하기도 한다.”(1680번 각주) 라고 설명해 놓았다. 초불연에서는 힘센 장정이라 하였다. 빅쿠보디는 ‘mighty youths’라 하여 힘센 청년들이라 하였다.

 

초불연에서는 ‘Uggaputtā와 관련하여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그대신  본 게송에 대한 논의는 보디스님 455~456 488번 주해를 참조할 것” (741번 각주)라 하였다. 빅쿠보디의 설명은 어떤 것일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Spk explains uggaputtii in pada a as the powerful and royal sons of aristocrats (ugga tiinarrz puttii mahesakkhii riijaiiiiabhiltii). CPO, s.v. ugga, says they are members of the ugga caste, a mixed caste sprung from a k?atriya father and a sudra mother. Members of this caste, it seems, served as police, guards, and professional soldiers.

 

Spk glosses dalhadhammino as "those of firm bows bearing a teacher's bow of the maximum size" (dalhadhanuno uttamapama1J. aJ?l acariyadhanu1J1 dharayamana); see n. 181 above, II, n. 365, and EV I, n. to 1210. With Spk, I take apalayina1J1 as a metrically shortened genitive plural used in apposition to sahassa1J1, not as an accusative singular.

 

Spk paraphrases pada d: te samanta sarehi parikireyyu1J1; "they might surround (me) with arrows on all sides." Although Spk-pt glosses parikireyyuJ?l with vijjheyyu1J1, "they might shoot," the use of the expression samanta parikiri1J1su at Ja VI 592,11-15 dearly shows that parikireyyu1J1 does not imply shooting. (The wrong spelling parikara1J1su in Ee of Ja should be corrected to parikiriJ?lsu as in Be: Ja II 372, vv. 2431-35.) The commentary Ga VI 589,5) glosses the word with parivarayiJ?lsu, "to accompany (as members of a retinue)."

 

(CDB 488번 각주, 빅쿠보디)

 

 

빅쿠보디의 CDB는 인터넷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PDF를 올려 놓은 것이므로 스크랩하였을 때 특수 문자가 깨져서 나온다.

 

빅쿠보디는 욱가계급(ugga caste)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는 게송에서 Even if mighty youths, great archers, Trained men, masters of the bow라는 말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빅쿠보디는 “ugga, says they are members of the ugga caste, a mixed caste sprung from a ksatriya father and a sudra mother.”라 하였다. 크샤트리아 아버지와 수드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자들을 욱가계급이라 하는 것이다. 욱가계급은 경찰이나 경비대 또는 특수부대원으로 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성찰해야 하는가?

 

감성적이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새내기 수행승 왕기사는 시로써 자신의 결의를 다짐하였다. 이렇게 다짐한 것은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고 새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에서 핵심은 그가 그 인상과는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키면,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들이 버려지고 사라진다.”라는 말이다. 이는 작은 쐐기를 이용하여 큰 쐐기를 뽑아 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들이 일어나면 그 사유들 속에서 위험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는가? 다음과 같이 성찰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유는 악하고 불건전하다.

이러한 사유는 비난받을 만하다.

이러한 사유는 고통을 유발한다.” (M20)

 

 

 

2015-12-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