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오늘도 생각에 놀아나지 않기 위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 11. 11:02

 

 

오늘도 생각에 놀아나지 않기 위하여

 

 

 

 

 

 

 

새벽녁 잠자리는 달콤하다. 일어나야 하는데 잘 허용되지 않는다. 비몽사몽간은 아니지만 일어나는 생각은 뚜렸하다. 마치 정화된 물에 파란이 일어 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생각에 이끌려 가지는 않는다. 알아차림이 뚜렷한 것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떠 오르지만 주로 건전한 생각들이다. 놓치기 싫어 스마트폰을 들어 메모해 둔다.

 

새벽의 정신상태는 일종의 사띠(sati)가 확립된 상태라 볼 수 있다. 몸과 느낌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뚜렸하게 관찰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좋을 듯 하다. 그래서 늘 사띠를 유지하라고 했나 보다. 잠들기 전에도, 잠자고 나서도 사띠를 유지하고 심지어 대소변을 볼 때도 사띠를 유지하라고 했다. 이렇게 하루종일 사띠가 유지 된다면, 또 매일 사띠가 유지 된다면, 아니 평생 사띠가 유지 된다면 깨달은자가 될 것이다.

 

사띠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평안한 상태가 되어야 잘 유지 될 수 있다. 너무 즐겁거나 너무 괴로우면 사띠가 흩어지기 쉽다. 그래서 오로지 즐거움만 있는 천상에서 사띠가 유지 되기 힘들고, 오로지 괴로움만 지속되는 지옥에서 사띠가 역시 유지되기 힘들다고 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반씩 있는,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인간만이 사띠계발에 유리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최적의 장소는 인간계라 본다.

 

사띠는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 계발 된다고 하였다. 반드시 앉아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걸어 다닐 때도 일을 할 때도 심지어 대소변을 볼 때도 알아차리라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술을 마실 때도 알아차리면서 마셔야 할 것이다. 대화할 때도 알아 차려야 한다.

 

만일 알아차림이 없다면 자신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치매 환자처럼 이전 행위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축생과 다름 없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또렸하다면 절대 실수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염주가 있다. 외출 할 때 들고 다니는 가방속에 있다. 처음 살 때는 손에 늘 쥐고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불교박람회에서 산 것으로 한손에 들어와 감촉이 좋다. 갑자기 염주를 떠 올리게 된 것은 사띠에 도움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염주를 굴리다 보면 잡생각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도인들은 한손에 염주를 들고 다녔나 보다.

 

염주를 들고 다닐 수 없다. 불교인들만 사는 곳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다종교인들과 함께 사는 공간에서 불익을 당할 수 있다. 특히 고객이 타종교인일 경우 불리하다. 일감을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가급적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염주처럼 확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다. 염주처럼 생긴 반지이다. 그래서일까 염주를 대신 할 수 있는 반지가 등장했나 보다. 반지를 염주처럼 돌리면 되는 것이다. 염주처럼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타종교인에게 부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라 본다.

 

생각은 늘 일어나는 것이다. 사띠를 계발하지 않으면 생각에 놀아나기 쉽다. 생각에 한참 끄달려 다니다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다. 생각에 놀아난 것이다. 행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술이나 도박을 하고 난 다음 알아 차렸을 때는 이미 늦다. 즐거운 느낌에 놀아난 것이다. 늦게 알아차렸을 때는 알아차림이 아니다. 놀아난 것이다.

 

말을 하였을 때 알아차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마구 지꺼릴 것이다. 수다 떨고 잡담 하는 것을 말한다. 생각나는 대로, 땡기는 대로 지껄이다 보면 이미 늦다. 말에 놀아난 것이다. 이런 알아차림을 알아차림이라 하지 않는다. 놀아난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언제 알아차려야 하는가? 접촉이 일어났을 때 알아차려야 한다.

 

알아차림은 접촉에서부터 시작 된다. 겨울철 찬바람울 맞고 걸어 갈 때 잔뜩 움추린다. 이때 아이 추워, 아이 추워라든가, “에, 추워 죽겠네라고 말하거나 생각한다면 알아차림이 없는 것이다. 추위에 놀아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대로 들은 대로 해야 한다. 염처경 신념처에 있듯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차가우면 차가움을 아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화대(火大)’를 아는 것이다. 차거움과 뜨거움은 불의 요소이기 때문에 얼굴이 차갑다고 느껴지면 , 이것이 불의 요소이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걸을 때 발바닥의 감촉이 딱딱하다면 지대(地大)’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지대는 부드럽거나 딱딱한 땅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걸을 때 앞으로 나아가거나 멈추어 섰을 때 풍대(風大)’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움직이거나 정지하는 것은 바람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대(水大)’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결합시키는 작용을 물의 요소, 수대라 하는데 신념처가 아닌 정신에서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다.

 

매일 길을 걸어 일터로 향한다. 이때 춥다고 잔뜩 움추리며 종종 걸음을 걷는다면 하수이다. 바람이 불 때도 비가 올 때도 알아차리면서 걸어야 한다. 차가움과 비와 바람을 대상으로 사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찬바람을 찬바람이라 알아 차리는 것을 넘어 불의 요소로 알아 차렸을 때 우리 몸을 정확하게 본 것이다. 추워도 내가 추운 것이 아니라 오온으로 이루어진 색온이 추운 것이다. 물질의 다발이 불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느끼는 것이 수온이다.

 

접촉에 따라 느낌과 생각과 행위가 일어난다. 이를 수온, 상온, 행온이라 한다. 이런 수온, 상온, 행온을 아는 마음을 또 아는 마음이 식온이다. 추운 겨울날 비바람을 맞고 걸어 갈 때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온이 걸어 가는 것이다.

 

아침이 되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하고 평안하다. 이런 기분이 하루 종일 유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학의천을 걸으며 사대를 알아 차릴 것이다. 아무리 겨울 바람이 추워도 내가 추운 것이 아니라 오온이 추운 것이다. 비바람이 얼굴을 때려도 지수화풍 사대의 작용이다. 먹을 때도 심지어 대소변을 볼 때도 사대의 작용이다. 그런 사실을 늘 알아차리라고 하였다.

 

접촉이 일어 났을 때 알아차리는 것이다. 생각에 놀아 났을 때 알아차리면 늦다. 몸으로 말로 놀아 났을 때 알아차리면 이미 늦은 것이다. 놀아나기 전에 느낌을 알아 차리는 것이다. 잠잘 때까지 그리고 잠에서 깨어서도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 늘 깨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이다. 오늘도 생각에 놀아나지 않기 위하여!

 

 

2016-01-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