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현장스님이 인왕반야경을 설할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 16. 23:57

 

 

현장스님이 인왕반야경을 설할 때

 

 

 

인왕반야경이 있는데

 

미디어붓다 사무실을 방문하였을 때 하나의 책을 발견하였다. ‘인왕반야경이라는 경전이다. 이름도 매우 생소한 경전이다. 그러나 이 경전에 대하여 알고 있다. 다만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인왕반야경은 어떤 경전일까?

 

인왕반야경을 열어 보았다. 호국경전이라 한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대승경전은 도서관에서 조차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김진태거사와 석진오스님이 우리말로 번역했다고 한다. 그런 인왕반야경은 401년 진나라 시절 구마라집이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석진오 스님이 언급하였듯이 위경인지 알 수 없다. 산스크리트 원본에 대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왕반야경에 대하여 어용경전이라는 오해도 있다고 하였다. 이는 신라시대에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국왕과 문무백관들과 100명의 고승들이 팔관회, 백고좌법회를 열여 호국인왕경을 설하였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왕반야경은 법화경과 금광명경과 함께 예로부터 호국삼부경이라 한다. 이처럼 위경과 어용의 의심을 받고 있는 인왕반야경이 어느 거사의 원력으로 책으로 출간 되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고창고성에서

 

인왕반야경이에 대하여 안 것은 실크로드여행기를 작성할 때인 2013년이다. 투르판에 있는 고창성을 보고서 현장스님의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인왕경을 알게 되었다. 현장스님이 고창국에서 머물 때 국광과 대신들과 승려들에게 인왕반야경을 설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창고성에 가면 그때 당시 현장스님이 설한 설법당이 남아 있다. 이에 대하여 고창고성에서 탑돌이를 하고, 투루판 고창고성은 불교성지(2013-06-02)’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손에, 대당서역기와 현장대사(玄奘大師)(2013-06-2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의형제를 맺은 왕과 스님

 

인왕반야경의 내용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다만 현장스님이 머나먼 타국에서 국왕과 대신들과 승려들 앞에서 경을 설한 이야기가 매우 아름답게 전해져 와서 기억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일까? 이에 대하여 첸원중의 현장서유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현장스님의 서쪽 여행에 동의한 이상, 국문태는 형님 된 도리로서 그를 위해 의복을 짓는 등, 여러 가지 준비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쪽으로 향한 여행길은 가는 길 내내 아주 힘들고 험난합니다. 따라서 만일 충분한 지원이 없다면 그 위험한 여행이란 상상하지 못할 정도 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현장스님은 국문태가 자신을 위해 여장을 준비 하는 한달 동안, 그의 초청을 받아들여 코초국에서 인왕반야경을 강론 했습니다.

 

(첸원중의 현장서유기 154P)

 

 

 

 

 

 

고초국은 고창국을 말한다. 중국인이 세운 실크로드 국가를 말한다. 오늘날 투르판 동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그런데 고창국왕 국문태와 현장스님은 의형제를 맺는다. 국문태가 형이 되고 현장스님이 동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의형제를 맺게 됨에 따라 현장스님은 국문태로부터 서역으로 여행 할 수 있도록 물적, 인적 자원을 지원받게 된다. 약 한달간 준비 기간에 현장스님은 인왕반야경을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왕반야경을 설한 이유

 

첸원중의 현장서유기에 따르면 인왕반야경을 설한 이유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한족사람들이 믿는 불교의 전통에서 보편적으로 인왕반야경이 재난이나 어려움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라 하였다. 내용은 부처님이 16명의 국왕에게 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핵심적인 가르침은 무릇 임금이나 모든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불보살과 같이 받들어 모시는 대자대비의 마음을 행하라.”이다

 

자신의 등을 딛고 자리에 올라앉게

 

첸원중의 서유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 현장스님이 인왕반야경을 설할 때 경전의 내용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다.

 

 

기록에 따르면 현장스님이 매번 강론을 시작하기 전에, 국문태는 몸소 향불을 피운 향로를 손에 받들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 했다고 합니다. 경전을 강의하기 위해서 현장스님은 반드시 이른바 승좌를 해야 합니다. ‘승좌란 강단 높은 자리에 올라 가부좌로 앉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국문태는 공손히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엎드려 현장스님이 자신의 등을 딛고 자리에 올라앉게 했습니다. 원문에는 이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강론할 때가 되면, 그 때마다 국왕은 몸소 향로를 잡고 스스로 영접하여 법좌에 오르도록 인도하였는데, 국왕은 또 자세를 낮추고 무릎 꿇은 채 디딤판이 되어 법사로 하여금 딛고 오르게 하였다. 날마다 이렇게 하였다.”

 

이것은 비상할 정도로 숭고한 예절로서, 동녘 땅에서는 결코 볼 수 없지만, 인도에는 이런 예절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코초국도 서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첸원중의 현장서유기 154-155P)

 

 

 

고창고성, 현장스님이 인왕반야경을 설한 장소, 중국 신장성 투르판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서로 의형제를 맺었는데 국왕형님이 동생스님에게  스스로 등 디딤돌이 되어 준 것이다. 현장스님이 법상에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이 되어 준 것이다. 더구나 강론이 열릴 때 마다 이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왕이 발판이 되어 주었을 때 신하들과 승려들의 현장스님에 대한 존경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어떻게 전승되어 왔을까?

 

한국에서 스님들이 법상에 오를 때 누군가 등디딤판이 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그런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서역에 위치한 고창국은 인도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떻게 전승되어 온 것일까?

 

책에 따르면 현장스님이 지었다는 대당서역기에는 없는 이야기라 한다. 다만 현장스님이 제자들에게 들려 준 이야기를 제자들이 이를 기억하고 있다가 기록에 남긴 것이라 하였다. 만일 제자들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고창국왕 국문태라는 이름도 몰랐을 것이고,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도 전승되지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왕이 등디딤판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전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메다존자 이야기

 

초기경전에서 등디딤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자따까에 실려 있는 수메다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등받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의 전생에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부처님이 마을에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수메다 존자가 부처님의 행렬을 보았다. 그런데 더러운 물웅덩이가 길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이에 수메다존자는 몸과 의복을 아끼지 않고 웅덩이에 배를 깔아 부처님이 등을 밟고 건너 가게 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건이 현재 티벳에서의 전체투지의 원형이라 한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등받이가 된다는 것은 신심의 발로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존경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행위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에서 스님이 법상에 오를 때 등디딤판이 되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그런 전통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초기경전에서 등받이가 되었다는 말을 보지 못하였다. 그 대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감화를 받아서 귀의하는 장면이 있다. 정형구로 표현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을 갖춘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정형구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문구가 정형화 되어 있어서 최고의 신심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다.

 

영웅이시여, 두 발을 뻗으십시오

 

그런데 숫따니빠따를 보면 신심에서 우러나온 매우 아름다운 표현이 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외도 유행자 사비야는 이렇게 부처님을 찬탄한다.

 

 

[사비야]

 “사변적 논쟁에 의존하고 일반적인 명칭에 의존하고,

개념적 지각에 의존하는 수행자들의

예순세 가지 이설을 제압하고,

광대한 지혜를 갖춘 님께서는 거센 물결을 건넜습니다.

 

당신은 괴로움의 종국에 도달한 님,

피안에 이른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입니다.

당신은 번뇌를 부순 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찬란히 빛나고, 생각이 깊고,

풍요로운 지혜를 지닌 괴로움을 종식시키시는 님이시여,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의심이 있는 것을 아시고,

저를 의혹에서 건져주셨으니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성자시여, 해탈의 길을 성취한 님이시여,

황무지가 없는 태양의 후예시여, 당신은 온화하십니다.

 

제가 예전에 품었던 의문을

눈을 갖춘 님께서 제게 밝혀주셨습니다.

당신은 올바로 깨달은 성자이십니다.

당신에게는 장애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번뇌는 부수어지고,

위대한 영웅이신 당신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두 신들 나라다와 빱바따 뿐만 아니라

모든 신들이 함께 기뻐합니다.

 

인간 가운데 준마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사람 가운데 위없는 님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신들을 포함한 온 세상에서 당신에게 견줄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은 깨달은 님입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를 정복한 성자이십니다.

당신은 잠재적인 경향들을 끊고,

스스로 피안으로 건너셨고,

또 사람들을 건너 주십니다.

 

당신은 집착을 넘어섰고,

모든 번뇌를 부수었습니다.

당신은 집착 없는 사자입니다.

두려움과 공포를 버리신 분입니다.

 

마치 아름다운 흰 연꽃이 물에 오염되지 않듯이,

당신은 공덕과 죄악, 둘 다에 물들지 않습니다.

영웅이시여, 두 발을 뻗으십시오.

사비야는 스승께 예배드립니다.(Sn3.6, 전재성님역)

 

 

외도 사비야는 부처님에게 이것 저것 질문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그러자 사비야는 모든 의혹이 해소 되었다고 했다. 더구나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라 하였다. 바른 견해를 가지게 해 준 것에 대하여 목숨을 건져 준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영웅이시여, 두 발을 뻗으십시오. 사비야는 스승께 예배드립니다.”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사비야는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린 것으로 묘사 되어 있다. 등디딤판이 되었다는 이야기 못지 않게 감동을 준다.

 

 

 

2016-01-1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