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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를 지키는 자를 천신이 보호한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 29. 17:32

 

계를 지키는 자를 천신이 보호한다

 

 

 

인연 없는 중생

 

인연 없는 중생은 구제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 있지만 물까지 먹일 수는 없다.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알려 주어도 약효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의 성향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늘사람은 숲속의 수행승에게 이렇게 충고 하였다.

 

 

Giriduggacara ceta

appapañña acetasa,
Ak
āle ovada bhikkhu

mando'va paibhāti ma.

 

[하늘사람]

산의 덤불길을 걷는

지혜가 없고 무자비한 사냥꾼을

때가 아닌 때에 가르치고자 하니

그 수행승은 생각하건데 참으로 어리석네.”

 

(Kassapagottasutta-깟싸빠곳따의 경, 상윳따니까야 S9.3, 전재성님역)

 

 

하늘사람은 왜 어리석다고 하였을까? 이는 무자비한 사냥꾼때 아닌 때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사냥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사냥꾼에게는 아직 가르침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살생을 하며 살아 가는 사냥꾼에게 가르침은 요원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냥꾼을 가엾게 여겨 가르침을 주고자 하였을 때 먹혀 들어갈까? 마치 길거리나 전철에서 예수천국불신지옥을 부르짖는 전도사의 말과 다름 없을 것이다.

 

사냥꾼의 이미지는?

 

초기경전에서 사냥꾼은 어떤 이미지일까? 모든 니까야에서 공통적으로 매우 천한 직업이라 묘사 되어 있다. 그것도 불가촉천민과 같은 계열로 보고 있다. 이는 존자들이여, 짠달라 가문, 사냥꾼 가문, 죽세공 가문, 차수리공 가문, 도로청소부 가문에서 태어난 당신들도” (M93)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사냥꾼은 악마 빠삐만과 같은 의미로도 불리워진다. 부처님은 이득과 환대와 명성의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수행승들이여, 여기서 사냥꾼은 악마 빠삐만을 의미한다.” (S17.3) 라 하였다.

 

사냥꾼은 살생을 업으로 살아 가는 자들이다. 사냥을 하지 않으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런데 사냥꾼과 수행승은 그다지 관계가 좋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극과 극을 달리기 때문이다. 사냥꾼은 살생을 업으로 살아가지만 수행승은 초목하나라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에서일까 사냥꾼은 수행승 보기를 매우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법구경 125번 게송에 실려 있는 인연담 사냥꾼 꼬까(Koka)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로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DhpA.III.31-33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숲에 계실 때,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냥꾼 꼬까(Koka)는 손에 활을 들고 자신을 따르는 사냥개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한 수행승을 만났다. 수행승을 만나자 ‘재수없는 놈을 만났다. 오늘은 공쳤구나!’라고 생각하며 길을 갔다.

 

장로는 마을로 탁발을 하고 아침을 먹고 승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사냥꾼은 장로를 보고 ‘오늘 아침에 만난 재수없는 놈이구나. 숲에 갔다가 공쳤다. 내 앞에 불쑥 나타났으니 내 개들의 밥이나 되라.’라고 생각하고 사냥개들을 장로에게 들이댔다. 그러자 장로는 ‘재가신도여, 제발 이러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사냥꾼은 ‘아침 일찍 당신을 만났는데, 그 때문에 숲에 갔다가 공쳤다. 내 앞에 불쑥 나타났으니 네 개들의 밥이나 되라.’고 말하며 사냥개들을 풀어 놓았다. 그러자 장로는 허겁지겁 나무위로 기어 올랐다.

 

사냥개들이 그 나무를 둘러쌌다. 그리고 사냥꾼은 활을 쏘아 장로의 발바닥을 맞추었다. 장로는 ‘제발 이러지 마시오.’라고 빌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사냥꾼은 계속 활을 쏘아대서 장로의 양쪽 발바닥에 불이 날 지경이었고, 몸에서 가사가 떨어지는 것 조차 몰랐다.

 

가사가 바닥으로 떨어져 사냥꾼 꼬까의 몸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덥쳤다. 개들은 장로가 나무에서 떨어진 줄 알고 자신의 주인을 물어서 뼈만 남기고 삼켜버렸다. 이 광경을 보고 장로는 나무 위에서 마른 가지를 꺽어 개에게 던졌다. 그제야 사냥개들은 자신들이 주인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숲으로 도망갔다.

 

장로는 자신의 가사가 떨어져 사냥꾼이 죽게 된 것에 죄책감을 느껴 부처님을 찾아 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장로에게 ‘수행승이여, 그대는 죄가 없다. 수행자의 삶을 잘 영위하고 있다. 그는 죄없는 자를 공격하여 파멸을 자초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냥꾼의 전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의사였는데, 일거리를 찾다가 발견하지 못하자 문 앞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뱀을 놓아 상처를 입으면 내가 치료해주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무의 구멍에 머리를 내민 뱀을 보고 아이들에게 ‘쌀리까(Salika)새를 보라, 잡아라!’라고 거짓말을 했다. 한 아이가 손을 집어넣어 뱀의 목을 붙잡아 구멍에서 꺼냈다. 손에 뱀이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뱀을 던졌는데 의사의 머리에 떨어졌다. 뱀은 의사의 어깨를 물었고, 의사는 그 때문에 죽었다(Jat.367).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장로에게 시로써 ‘죄악이 없고 청정하여 허물이 없는 님에게 해를 끼치면, 티끌이 바람 앞에 던져진 것처럼, 악의 과보가 어리석은 그에게 돌아간다.’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그 수행승은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

 

(법구경 125번 게송 인연담, 전재성님역)

 

 

사냥꾼 꼬까는 숲속의 빅쿠를 혐오 하였다. 사냥을 나가는 길에 만났기 때문이다. 마치 이른 아침에 일을 나가는데 여자를 보면 재수없다라고 여기는 미신 같은 것이다. 살생을 업으로 살아 가는 사냥꾼이 풀한포기조차 해치지 않는 빅쿠를 보았을 때 사냥을 잘 할 수 없을 것이라 본 것이다. 그래서 재수없는 놈으로 본 것이다.

 

타고날 때부터 지혜가 결여 된 자

 

숲은 빅쿠와 사냥꾼의 공동의 삶의 터전이다. 서로 업이 극과 극으로 다르다 보니 대하는 태도 역시 극과 극이다. 빅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가엾은 것이고, 사냥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재수없는 것이다. 그런데 125번 인연담에서는 사냥꾼이 빅쿠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깟싸빠곳따의 경(S9.3)’에서는 빅쿠가 사냥꾼을 가르치려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어지는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Suāti na vijānāti

āloketi na passati,
Dhammasmi
bhaññamānasmi

attha bālo na bujjhati.

 

[하늘사람]

그는 듣지만 깨닫지 못하고

쳐다보지만 알아보지 못하니

가르침을 설해도

어리석은 자는 그 뜻을 모르네.”

 

(Kassapagottasutta-깟싸빠곳따의 경, 상윳따니까야 S9.3, 전재성님역)

 

 

사냥꾼은 무자비할 뿐만 아니라 지혜가 없다. 사냥을 업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살생업만 증대시키고 있다. 결국 악처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려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냥꾼은 말을 해주어도 그 의미를 모를 뿐만 아니라 흘려 버리는 것이다. 진리를 손에 쥐어 주어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기 때문에 그 뜻을 모른다. (attha bālo na bujjhati)’라 하였다.

 

타고날 때부터 지혜가 결여 된 자가 있다.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아비담마 강연에서 “원인이 두 개가 되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육근이 골고루 갖추어집니다. 그 대신 지혜가 부족합니다. 이 생에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봅니다. 재생연결식에서 원인이 세 개가 되야 삼매도 들 수 있고, 선정에도 들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죽기 전에 원인 세 개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생에서 수행을 좀 했다는 이야기입니다.(일묵스님ㅣ봉녕사 아비담마 8) 라고 하였다.

 

전생에 지혜가 결여된 채로 임종을 맞이 하였을 때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때 역시 지혜가 결여된 채로 태어남을 말한다. 반면에 전생에 지혜를 닦아 임종을 맞이 하였을 때 새로 태어나면 역시 지혜를 가지고 태어남을 말한다. 마치 졸업을 앞둔 입시생이 대학에 합격한 것과 같다.

 

극과 극은 통하지 않는다

 

졸업 전에 대학입시에 합격 하였다면 고교졸업과 동시에 대학생이 된 것과 같다. 그러나 고교시절 허송세월한 학생이 졸업하였다면 대학에 들어 갈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생에서 수행을 하여 지혜를 증득한 자는 재생연결식과 함께 지혜 있는 자로 태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냥꾼은 전쟁에서 전혀 지혜수행을 하지 않은 것이다. 선천적으로 지혜 없이 어리석게 태어난 사냥꾼은 살생을 업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하늘사람은 빅쿠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sacepi dasa pajjote

dhārayissasi kassapa,
Neva dakkhiti r
ūpāni

cakkhu hi'ssa na vijjatīti.

 

[하늘사람]

! 깟싸빠여, 그대가 열 손가락에

횃불을 들더라도

그 모습을 보지 못하니

그에게는 눈이 없기 때문이네.”

 

(Kassapagottasutta-깟싸빠곳따의 경, 상윳따니까야 S9.3, 전재성님역)

 

 

쇠귀에 경읽기라는 말이 있다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사냥꾼이 그런 케이스이다. 오히려 재수없다라는 말과 함께 해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혜가 결여된 어리석은 자에게 아무리 가르침을 알려 주어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도 접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살생으로 먹고 사는 것을 포기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였을 때 이를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사냥꾼은 생업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열 손가락에 횃불을 들더라도(sacepi dasa pajjote dhārayissasi)”라 하였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주석에 따르면 사냥꾼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열 손가락에 신통의 힘으로 열개의 광명을 놓더라도라는 뜻이다.”(Srp.I.290) 라 하였다. 극과 극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사슴사냥꾼이었다는데

 

사냥꾼과 수행승은 극과 극이다. 특히 살생과 관련하여 극과 극이다. 이렇게 극과 극이다 보니 사냥꾼과 수행승의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사냥꾼의 입장에서는 때로 적대적이다. 이런 사냥꾼이 숲속에서 홀로 사는 수행자와 마주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초불연 각주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사냥꾼은 사슴사냥꾼이었다고 한다. 사냥꾼은 붉은 사슴을 쫓다가 장로가 참선하고 있는 에 들어 왔다. 장로는 사냥꾼에게 불살생에 관한 법을 설하였다. 그는 눈으로는 장로를 쳐다보고 귀로는 듣는 것처럼 하였지만 마음으로는 계속 사슴을 쫓아 가고 있었다. 그래서 천신이 와서 아래 게송을 읊은 것이다.(SA.i.289-290)

 

(초불연 상윳따1 814번 각주, 각묵스님)

 

 

이 각주와 관련하여 빅쿠보디의 CDB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Spk glosses cheta with migaluddaka, a deer-hunter. He had one out that morning to hunt and was pursuing a deer hen he carne upon the elder meditating in the woods. he elder set about teaching him the Dhamma, but though he hunter looked with his eyes and listened with his ears is mind still ran in pursuit of the deer.

 

(CDB 538번 각주, 빅쿠보디)

 

 

초불연 각주에 따르면 사냥꾼은 사슴사냥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붉은 사슴이라 한다. 그렇다면 주석에서는 왜 사슴사냥한 것이라 하였을까? 이는 사슴이라는 동물이 부처님의 32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맛지마니까야 브라흐마유의 경(M91)’에 따르면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에 대하여 존자 고따마는 사슴과 같은 장딴지를 갖고 있습니다.” (M91) 라 되어 있다. 왜 사슴의 장딴지라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디가니까야 위대한 사람의 특징의 경(D30)’에서의 게송에 따르면 착하고 건전한 업을 짓고 행복한 결과물로 단아하고 아름다운 장딴지를 얻었다. 감기며 잘 성장하여 순서대로 올라간 위로 향한 몸털로 그 섬세한 피부가 덮였다.” (D30) 라 되어 있다. 사슴의 장딴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다.

 

 

 

Red deer

 

 

장딴지는 무릎 아래 종아리 뒤쪽의 살이 불룩한 부분을 말한다. 그런데 사슴을 보면 장딴지 살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장딴지 이미지는 매우 마른 모습이 상상이 된다. 살이 쪄서 뒤뚱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매우 말라서 매우 날씬하고 날렵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32상 중의 하나라 하였다.

 

사냥꾼에게 이런 법문을

 

초기경전에 따르면 사냥꾼은 불가촉천민에 속한다. 앙굿따라니까야 여섯 계층의 경(A6.57)’에 따르면 흑색류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흑색류에 대하여 비천한 가문, 짠달라 가문, 사냥꾼 가문, 죽세공 가문, 수레공 가문, 청소부 가문, 가난하여 음식 구하기 어렵고 근근히 연명하는 가문에 태어난다.” (A6.57)라 하였다. 더구나 추악하고, 혐오스럽고, 기형이거나 질병이 많거나 에꾸눈이거나 불구이거나 절름발이거나 반신불수라 하였다. 사냥꾼도 이랬을 것이다. 이런 사냥꾼에게 어떤 법문을 해 주었을까? 이에 대하여 주석이나 각주에서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런 법문을 해 주었을 것이라 상상한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비록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을지라도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중지하고 선행을 하면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반드시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어둠에서 빛으로 갑니다. (S3.21) 라 하였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살생을 업으로 삼는 사냥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계급이 평등하다고 하였다. 이는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십시오.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에서도 지혜로운 성자, 고귀하고 부끄러움으로 자제하는 자가 있게 됩니다.” (stn462) 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불은 땔나무에서 생겨난다. 어떤 땔나무에서도 불꽃은 생겨난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만약에 짠달라 가문, 사냥꾼 가문, 죽세공 가문, 마차 수리공 가문, 도로 청소부 가문에서 태어난 자들이 개 먹이통, 돼지 먹이통, 세탁통, 에란다 나무의 찬목을 가지고 불을 지펴 불을 밝힌다면 바로 그 불꽃만이 화염이 없고 광채가 없고 광명이 없어서 그 불꽃으로 불을 만들 수 없는가?” (M93) 라고 의문한데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 당시 사냥꾼은 매우 미천한 자로서 접촉 자체를 꺼려 하였다. 그럼에도 빅쿠는 사냥꾼에게 법문을 해 주었다. 그러나 하늘사람은 소용 없는 일이라 하였다. 그런 사냥꾼에게 설령 그대가 열 손가락에 횃불을 들더라도라 하여 신통을 보여 주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 횃불‘pajjota’로서  ‘a lamp; a light; lustre’의 뜻이다. 모든 땔감에서 불이 나듯이 브라만의 고급가구에서 붙는 불이나 불가촉천민이 사용하였던 나무 도구에서 붙는 불이나 화염과 광채외 광명에 있어서 차이가 없을 것이다. 빅쿠가 아마 이런 식의 법문을 사냥꾼에게 해 주지 않았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vs 절박감이 생겼다

 

숲속에서 홀로 사는 빅쿠는 사냥꾼을 설득할 수 없었다. 사냥꾼은 빅쿠의 법문을 듣긴 들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냥을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하늘사람이 알려 주었다. 이에 빅쿠 깟사빠곳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더 이상 사냥꾼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윳따니까야 숲상윳따를 보면 하늘사람이 숲속에 사는 수행자를 보호하고 바른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자신의 영역에 사는 수행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충고를 주고 있는데 이 부분과 관련하여 전재성님은 그러자 존자 깟싸빠곳따는 그 하늘사람에게 깨우침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빠알리 원문 “Atha kho āyasmā kassapagotto tāya devatāya savejito savegamāpādīti.를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정신이 번쩍들었다라는 말이 ‘savegamāpādīti이다. savega‘anxiety; agitation; religious emotion’의 뜻이므로 종교적 동요가 일아났다라는 뜻이 된다. 하늘사람의 충고에 영향을 받아 생각을 바로 잡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초불연에서는 그러자 깟사빠곳따 존자는 천신의 자극을 받아 절박감이 생겼다.”라 하였다.

 

차이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절박감이 생겼다이다. 빅쿠보디는 어떻게 번역하였을까? 찾아 보니 Then the Venerable Kassapagotta, stirred up by that devata, acquired a sense of urgency.”라 되어 있다. 여기서 ‘acquired a sense of urgency’라는 말은 급박한 마음이 일어났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절박한 마음이라기 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라는 말이 더 와 닿는다.

 

 

천신은 왜 수행승의 일에 관여할까?

 

숲속에 사는 신은 왜 홀로 사는 수행승의 일에 관여 하는 것일까? 내버려 두어도 될 일을 굳이 개입하여 알려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김성철교수의 중론강좌에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관련 부분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무표색, 겉에 드러나지 않는 색법도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스님들 계체에요. 계체. 계 받을 때 다짐하죠? 그게 물질이래요. 물질. 그런데 눈에 안보여요. 색법이에요. 무표색. 스님들이 받은 계체는 율의 무표색입니다. 율의. 계율에 합당한. 또 반대로 거꾸로 악행을 하기로 다짐한 사람이 있어요.

 

스님들이 수계하실 때에 계를 받을 때 , 이건 하지 말아야겠다.’다짐하시죠? 그 다음에 잊어 버려요. 그런데도 경계가 딱 닥치면 벗어 나와요. ? 내 마음에 물질로 딱 저장해 놓았기 때문에. 이게 무표색이에요.

 

그런데 거꾸로 조직폭력배 같은 경우에는 선서할 때 누굴 죽이겠다.’라고 선서하죠? 사냥꾼 같은 경우에 이런 경우에도 무표색이 적용되요. 당장에 사람을 안죽여도 우리 조직을 위태롭게 한 사람을 내가 죽이겠다.’고 두목한테  선서 했을 경우에는 마음속에 불율의 무표색이 각인이 되요.

 

사냥꾼도 내가 농사짓고 먹고 살았는데 참기 힘드니까 이제 앞으로 내가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아야 겠다.’고 다짐을 하죠. 그러면 불율의, 윤리에 어긋나는 계행에 어긋나는 그런 무표색이 마음에 속에 딱 생기는거죠. 이게 색법이에요. 그러니까 사냥꾼이 일주일 내내 다녀도 한마리도 못잡았어요. 그래도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에요.

 

스님들 천신들이 보호한다는 이야기 하죠? 천공 받기도 하고 그게 스님들의 계체를 보고서 천신들이 보호한다 그래요.’

 

(김성철교수, 해인사 2003중론김성철 17, 48:13)

 

 

김성철교수는 2003년 해인사 중론강연에서 계체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계체란 한자어로 戒體(계체)’라 볼 수 있다. 계의 몸 또는 계로 만들어진 몸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계체도 물질이라 하였다. 그렇다고 사대로 이루어진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비달마 구사론에서 무표색이라 한다. 이는 테라와다 아비담다에서 추상적인 물질과 같다.

 

몸의 암시(kāya viññatti)에 대하여

 

아비담마에 따르면 크게 구체적인 물질과 추상적인 물질로 나눌 수 있다. 추상적인 물질 중에 암시(viññatti rūpa)’에 대한 것이 있다. 이는 몸의 암시마음의 암시두 가지가 있다.

 

몸의 암시(kāya viññatti)’에 대하여 마음에 의해 생긴 바람의 요소가 앞으로 나아가는 등의 행동을 생기게 한다.”(아비담마길라잡이 2 543P) 라고 정의 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마음 속으로 의도하는 것을 넌지시알리는 것이라 하였다. 몸의 움직임을 통하여 의도하는 것을 알리는 것을 말한다.

 

몸이 앞으로 나아 가게 하는 것도 의도에 따른 것이다. 이는 몸의 암시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 몸의 암시는 마음으로부터 생긴 물질을 움직인다.”고 하였다. 마음으로부터도 물질이 생겨날 수 있을까? 아비담마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질이라는 것이 반드시 밥을 먹어야만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명상중에 볼 수 있는 을 들 수 있다. 호흡관찰을 하다가 어느 순간 니밋따가 형성 되었을 때 이를 마음이 만들어낸 물질이라 한다.

 

아비담마에서 몸의 암시를 물질로 보고 있다. 드러나 보이지 않는 추상적 물질을 말한다. 그런데 북방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무표색이라 하였다. 그런데 계체에 대하여 무표색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계의 몸이 실제하는 몸은 아니지만 계로 이루어진 몸은 추상적 물질과 같다는 것이다.

 

계를 지키는 자를 천신이 보호한다

 

수행승들은 비구계를 받는다. 그런데 계를 받는 순간 계체가 된다는 것이다. 계를 받고 사는 빅쿠가 계행에 어긋난 일을 하였을 때 , 이건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하는 것이 계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를 율의 무표색이라 하였다. 계를 지키는 것은 몸의 암시라 볼 수 있다. 이런 계체를 받은 수행승들을 천신들이 보호 해 준다고 하였다.

 

조직폭력배는 조직에 충성을 맹세한다. 그러나 악행을 맹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조폭이 누군가 지목하여 저 사람을 죽여 버려야 겠다.”라고 마음 먹었을 때 설령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악행을 저지른 것과 다름 없다. 이를 불율의 무표색이라 하였다. 조직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몸의 암시라 볼 수 있다. 이런 조폭들을 천신이 보호해 줄 리 없을 것이다.

 

여기 사냥꾼이 있다. 살생을 업으로 살아 가는 사냥꾼에게 빅쿠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 주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오계를 지키기로 맹세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삶을 포기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냥감을 찾아 숲속을 헤매일 것이다. 이런 사냥꾼에게는 이미 불율의 무표색이 형성되어 있다. 마음으로 만들어진 추상적 물질인 몸의 암시로 살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눈만 뜨면 밤낮으로 살생업을 저지를 수 밖에 없다.

 

천신들이 수행자를 보호한다고 한다. 이는 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추상적 물질로이루어진 계체, 계의 몸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상윳따니까야 숲의 모음에서는 하늘사람들이 수행승을 보호 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잘못하였을 때는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는 향기도둑의 경(S9.14)’에서 잘 나타난다.

 

머리털 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네

 

어느 수행승이 연꽃 향기를 매번 맡았을 때 하늘사람이 그대는 향기도둑이네.”(S9.14)라 하였다. 왜 이런 말을 하였을까?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의 허물은 일반인들의 허물보다 더 크다고 하였다. 이를 머리털 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네.” (S9.14) 라 하였다.

 

수행자에게 비록 사소한 행위일지라도 자꾸 반복되다 보면 더 큰 죄악을 저지를 수 있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티끌처럼 작은 허물도 구름처럼 크다고 하였다. 이는 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계를 받은 자의 허물은 아무리 작아 보여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구름처럼 크다고 하였다. 이렇게 천신들이 허물을 지적한 것은 열반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계를 지키는 자를 천신이 보호한다고 하였다.

 

 

2016-01-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