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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길을 걷는 나그네가 되지 말라

담마다사 이병욱 2016. 2. 19. 17:17

 

윤회의 길을 걷는 나그네가 되지 말라

 

 

 

축제가 열리면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다. 전국각지에서 화려한 퍼레이드와 먹거리를 특징으로 하는 축제가 철마다 열린다. 특히 지역의 경우 특산물과 관련된 축제가 볼만하다.

 

전세계적으로 브라질 삼바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등축제라 볼 수 있다. 두 축제는 공통적으로 참여자와 참관자가 일체가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분위기가 고조 되면 함께 어우러지는데 그 순간 만큼은 즐거움이 압도하여 괴로움을 잠시 잊게 된다.

 

이 보다 더 나쁠 수 없다

 

초기경전에서도 축제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상윳따니까야 숲의 품밧지족 사람의 경(S9.9)’이 있다. 우거진 숲에서 밧지족 수행승이 살고 있었는데 마침 베살리시에서 열리는 축제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떠들썩 했으면 숲에까지 들렸을까? 그 중에 거문고나 동자와 같은 악기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구슬펐던 것 같다. 이에 밧지족 수행승은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Ekakā maya araññe viharāma

apaviddhava vanasmi dāruka,

Etādisikāya rattiyā

ko su nāma amhehi pāpiyoti.

 

[수행승]

숲속에 버려진 나무 조각처럼

홀로 우리는 숲에서 사니

이와 같은 밤에 우리보다

비참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Vajjiputtasutta-밧지족 사람의 경, 상윳따니까야 S9.9, 전재성님역)

 

 

수행승은 처량했었던 것 같다. 마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 같다. 한편에서 떠들썩 하게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그 소리에 자극 받아 괴로워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수행승은 우리보다 비참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ko su nāma amhehi pāpiyoti)”라 하였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초불연에서는 우리보다 더 불쌍한 자 누가 있을까?” 라 하였다. 비참한 자와 불쌍한 자의 차이이다. 이는 pāpiyo가 비교급으로서 ‘Worse; wicked’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는 뜻이다. 빅쿠보디는 Who is there worse off than us?”라 하였다. 이 보다 더 나쁠 수 없다는 뜻이다.

 

두 가지의 삶의 방식이 있는데

 

밧지족 수행승과 관련하여 법구경에 인연담이 실려 있다. 법구경 302번 게송이 그것이다. 먼저 법구경 302번 게송은 다음과 같다.

 

 

Duppabbajja durabhirama, ~

durāvāsā gharā dukhā,
Dukkhosam
ānasavāso, ~

dukkhānupatitaddhagū,
Tasm
ā na caddhagū siyā ~

dukkhānupatito siyā.

 

출가는 어렵고 거기서 기뻐하기도 어렵다.

세상의 삶은 어렵고 재가의 삶은 고통스럽다.

걸맞지 않은 자와 사는 것도 고통스럽다.

나그네에게는 고통이 따른다.

그러므로 나그네가 되지 말고

고통에는 빠지지 말아야 하리. (Dhp302, 전재성님역)

 

 

두 가지의 삶의 방식이 있다. 출가와 재가를 말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출가에 대하여 어려운 것이라 하였다. 또 기뻐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특히 출가의 삶에 대하여 왜 어렵다(uppabbajjati)’ 하였을까? 주석에 따르면 크거나 작거나 재산을 버리기 어렵고 모임이나 친지를 버리고 승원에 들어가 거기에 헌신하는 것이 어렵다.”(DhpA.III.462) 라 하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바다에 물 채우기

 

그런데 재가의 삶은 어렵기도 하며 또한 고통스러운 것이라 하였다. 이런 재가의 삶에 대하여 재가의 삶은 번잡하고 티끌 쌓이는 장소입니다.”(stn406) 라 하였다. 반면에 출가의 삶에 대하여 그러나 출가는 자유로운 공간과 같습니다.” (stn406) 라 하였다.

 

주석에서는 재가의 고통스런 삶에 대하여가정에서 생활하려면 왕과 관리들과의 관계에서 의무를 다 해야 하고, 하인들에게는 적절하게 다스리고, 수행자나 성직자들을 잘 대접해야 한다.” (DhpA.III.462)  라 하였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육방예경을 떠올리게 한다.

 

디가니까야 ‘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D31)’에 따르면 하인과 관련하여  능력에 맞게 일을 안배하고 ② 음식과 임금을 지불하고 ③ 병이 들면 보살펴주고 ④ 아주 맛있는 것은 함께 나누고 ⑤ 적당한 때에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라 되어 있다. 육방예경과 관련하여 안온하게 두려움 없이, 육방예경과 사무량심(2016-02-13)’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주석에 따르면 재가의 삶이 어렵고 고통스런 것에 대하여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거나 커다란 바다에 물을 채우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될까?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재가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 보지만 늘 제자리 걸음이다. 돈버는 선수가 되어 밤낮으로 일을 하지만 들어온 돈은 온데 간데 없다. 마치 돈이 발이 달린 듯 조금만 방심하면 모두 사라져서 남는 것이 없다. 이를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 할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역시 늘 제자리 걸음이다. 이 세상에 갖가지 직업이 있지만 자신을 향상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직업을 가져서 평생 일을 하지만 업만 쌓여 갈 뿐이다. 마치 바닷물에 물을 붓는 것처럼 항상 그 모양이다.

 

 

The Cracked Pot

 

 

윤회의 길을 걷는 나그네처럼

 

재가에서 살기가 어렵고 향상을 기대할 수 없어서 출가를 한다. 출가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은 윤회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출가자에게 나그네에게는 고통이 따른다. (Dukkhosamānasavāso)” (Dhp302) 라 하였다. 주석에 따르면 존재의 윤회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나그네라 한다.”라 하였다.

 

여기서 ‘Dukkha+samāna+savāsa’의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서 samāna‘equal; same; similar’의 뜻이다. savāsa‘1. co-residence; 2. intimacy; 3. sexual intercourse’의 뜻이다.  따라서 ‘Dukkha+samāna+savāsa’의 뜻은 고통이 늘 함께 일어난다라는 말이 된다.

 

거해스님은 생사윤회는 끝없는 둑카의 연속이라 번역하였다. 나까무라 하지메는 “(修行僧めて)くと、しみにう。라 하였다. 이를 중역한 법정스님은 무엇을 찾아 나서도 괴로움을 만난다라 하였다.

 

인생길은 나그네길과 같다고 하였다. 재가로 살아 가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아 출가 하여도 역시 어려움이 따른다. 잘못 하면 인생의 나그네, 윤회의 나그네가 되기 쉽다. 그래서 그러므로 나그네가 되지 말고 (Tasmā na caddhagū siyā)” (Dhp302) 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윤회의 길을 걷는 나그네가 되지 말라는 뜻이라 하였다.

 

법구경 인연담을 보면

 

인생길을 걸어 가는 나그네가 목적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윤회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 길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의 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통에는 빠지지 말아야 하리.” (Dhp302) 라 하였다.

 

고통이 없는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인연담이 밧지국 출신의 수행승과 관련된 이야기(Vajjiputtakavatthu)’이다. 앞서 언급된 밧지족 수행승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인연담 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수행승은 밧지국의 왕자이었는데, 그가 지배할 차례가 왔지만 왕국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행승이 되었다. 깟띠까월(Kattika:음력7)의 보름달에 베쌀리 시는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와 한 나라가 되어 시 전체가 깃발과 기로 장식되고 축제가 시작 되었다.

 

그는 축제에서 밤을 지새워 드럼을 치고 악기를 연주하고 현악을 뜯는 소음을 들어야 했다. 베쌀리 시의 칠천 칠백 일곱 왕자들이 같은 수의 젊은 왕자들과 장군들이 모두 성장하고 축제의 화살로 장식하고 축제에 참가하려고 거리를 행진할 때, 그는 60완척 길이의 큰 걸음으로 걸으면서 하늘가운데 걸린 달을 바라보고 걷다가 승원 끝의 한 자리에서 멈추어 축제의 옷들도 장식품들도 없이 숲속에 버려진 통나무 같은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서 나보다 열악한 자가 어디 있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숲속의 거주자의 공덕을 지녔지만, 이 경우에는 불만에 압도되어 이렇게 말한 것이다.

 

(법구경 302번 인연담, 밧지국 출신의 수행승과 관련된 이야기(Vajjiputtakavatthu), 전재성님역)

 

 

인연담을 보면 상윳따니까야 숲의 경에 실려 있는 내용과 같다. 나머지 후반부 역시 경의 내용과 같다. 이렇게 본다면 수행승이 축제를 본 것은 매우 손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보축제(bālānakkhatta)에서 욕설참기

 

축제는 떠들썩 한 것이 특징이다. 그것이 지나쳤을 때 광란이 될 것이다. 법구경 인연담에 광란의 축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름 하여 바보-축제(bālānakkhatta)’라 한다.

 

법구경 26번과 27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을 보면 바보-축제와 관련된 이야기(bālānakkhattavatthu)’가 있다.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한때 싸밧티 시에는 바보-축제(bālānakkhatta)라는 기간이 있었다. 이 축제에서는 사람들이 재나 쇠똥을 몸에 바르고 온갖 욕지거리를 해대며 일주일간 지낸다. 이때에는 사람들이 친구나 친지나 수행자를 만나도 인사하지 않고 다짜고짜로 욕지거리를 퍼부어댄다. 이 욕지거리를 참아내지 못하는 자들은 주최 측에 반이나 사분지 일의 까하빠나를 지불해야 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승원안에서만 지냈다. 재가신도들은 이 기간 동안에 승원에 음식을 보냈고 기간이 지나자 부처님 제자들을 찾아 뵈었다. 재가신도들이 이 기간 동안 아주 불쾌하게 지냈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은 자의 행실을 행하지만, 현명한 자는 핵심적인 재보로서 방일 하지 않음을 수호하여 불사(不死)의 대열반을 성취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시로써 ‘지혜가 없는 자, 어리석은 사람은 방일에 사로잡히지만, 지혜로운 님은 최상의 재보처럼, 방일하지 않음을 수호한다. 방일에 사로잡히지 말고, 감각적 욕망의 쾌락을 가까이 하지 말라. 방일하지 않고 선정에 드는 님은 광대한 지복을 얻는다.’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든 경지 등을 성취했다.

 

(법구경 26번과 27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 바보-축제와 관련된 이야기(bālānakkhattavatthu), 전재성님역)

 

 

부처님 당시 고대인도에서 ‘바보축제(bālānakkhatta)’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주일간 사람들은 몸에 쇠똥을 바르고 욕지거리를 해대는 등 광란의 도가니에 빠지는 듯한 축제이다. 특히 상하고하를 막론하고 욕설부터 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욕지거리를 참아 내지 못하면 벌금까지 물었다고 한다.

 

바보축제와 유사한 것이 있다. 스페인 ‘토마토 축제(Tomatina)’와 인도 ‘홀리(Holi)축제’,  태국‘송크란(Songkran)축제’가 그것들이다. 특히 홀리축제의 경우 현란한 가루를 준비해 서로 얼굴에 묻혀주며, 아예 물총에 물감 섞은 물을 장전해 무차별 사격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인연담에 표현 되어 있듯이 ‘욕설참기’와 유사해 보인다.

 

소욕(appiccha)과 지족(santuṭṭha)의 삶을 위하여

 

밧지족 수행승은 초라함을 느꼈다. 재가자들의 떠들썩한 축제와 자신을 비교해 보았을 때 초라하다 못해 비참함을 느꼈을 것이다. 화려하게 성장한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을 때 이보다 나쁠 수 없다라는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숲속의 신이 알았다. 이에 숲속의 신은 수행승을 일깨워 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읊었다.

 

 

Ekako tva araññe viharasi

apaviddhava vanasmi dāruka,

Tassa te bahukā pihayanti

nerayikā viya saggagāminanti.

 

[하늘사람]

숲속에 버려진 나무조각처럼

홀로 당신은 숲속에 살지만,

많은 사람이 오히려 당신을 부러워하네.

지옥의 뭇삶이 하늘사람을 부러워하듯.”

 

(Vajjiputtasutta-밧지족 사람의 경, 상윳따니까야 S9.9, 전재성님역)

 

 

이 게송은 법구경 인연담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그런데 게송에서 많은 사람이 오히려 당신을 부러워하네. (Tassa te bahukā pihayanti)라 하였다. 무엇을 부러워 하는 것일까? 초불연 각주에 따르면 분소의를 입고, 탁발음식만 수용하고, 차례대로 탁발을 하고, 바라는 것이 적고, 만족하는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는 다름 아닌 소욕(appiccha)과 지족(santuṭṭha)을 말한다.

 

 

2016-02-1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