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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아 가는 것 같아” 영화 트루먼쇼를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6. 2. 14. 13:21

 

 

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아 가는 것 같아영화 트루먼쇼를 보고

 

 

영화 트루먼쇼(The Truman Show, 1998)’를 보았다. EBS에서 제공하는 세계명화프로를 통해서이다. 이전에 본 적이 있었지만 다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또 볼 때 마다 느낌이 다르다. 세월과 함께 보는 맛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 보았을 때 흘려 보냈을 대사가 커다란 의미로 다가 오기도 한다. 그런 대사 중에 하나가 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아 가는 것 같아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 가는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마치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 어떤 생각이 들까?

 

하나의 예를 들어 본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앞서 가는 사람이 뒤돌아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더구나 이런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되었을 때 소름과 함께 두려운 마음이 들지 모른다. 마치 이 세상이 내가 의도한 대로 돌아가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정신병 초기단계라 하였다. 오래 전 정신과전문의가 쓴 책에서 읽은 바 있다.

 

원담스님의 글을 읽었는데

 

영화 투루먼쇼와 관련하여 글을 하나 보았다. 원담스님이 쓴 글이다. 영화줄거리를 소개하면서 불교적 관점으로 영화를 해석하였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트루먼쇼가 진행되는 세트장 씨헤이븐(Seahaven)

 

트루먼 버뱅크(Truman Burbank: 짐 캐리 분)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은 그렇다. 그는 메릴(Meryl Burbank/Hannah Gill: 로라 린니 분)이란 여인과 결혼했고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며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익사하는 것을 보고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남자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익사한 것으로 알았던 아버지를 길에서 만났는데,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아버지가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활이 뭔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하루 24시간 생방송 되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그의 탄생부터 30살이 가까운 지금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TV를 통해 보고 있다. 그는 만인의 스타지만 정작 본인은 짐작도 못하고 있다. 그의 주변 인물은 모두 배우이고 사는 곳 또한 스튜디오이지만 그는 실비아Sylvia를 만날 때까지 전혀 알지 못한다. 대학 때 이상형의 여인 실비아와 만난 트루먼은 그 여인으로부터 모든게 트루먼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란 얘기를 듣는데, 그 여인이 피지Fiji섬으로 간다는 얘길 듣고 늦게나마 그 여인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내와 함께 떠나려는 시도를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면서 가족, 친구 조차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혼자서 고향을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한다.

 

이 영화를 본 불교수행자라면 세상이란 현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으로서의 '나의 관점'을 중심으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내가 사라지면 세상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게되겠죠.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겠죠. '의식과 지각이 있는 삼척 단구의 이 몸에 세계가 있고, 세계의 소멸이 있으며, 세계의 소멸로 이르는 길이 있다.'

 

어떻게 끝이 날까?

 

트루먼 쇼Truman Show라는 제목부터 매혹적입니다. 트루먼쇼-참 자아, 진아(true-man)가 벌이는는 쇼(show)를 보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우리 모두는 내가 벌려놓은 세계의 주인공인듯이 살아간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며, 매일 경험하는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믿는다. 이 얼마나 견고하고도 믿음직한 사실인가? 그런데 이런 삶이 쇼라니영화에서 보여주듯이 프로듀서와 제작자들은 세계라는 셋팅을 완벽하게 해놓는다. 주인공은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제 자유의지대로 산다고 믿는다.

 

이것이 완벽한 쇼가 아닌가? 누가 벌이는 쇼인가쇼의 시청자인 전 세계 사람들과 제작자들이다. 그들이 짐캐리(영화 주인공)를 구경하며 간섭하는-갖고 노는 진아, 참 자아인 셈이다. 자신이 깨어있는 정신으로 살지 못하는 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세계가 정신 없는 놈을 갖고 노는 것이다. 이런 삶이란 남의 구경꺼리이며, 남에게 굴림을 당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자유의지가 있을 것이며, 인격의 존엄성이 있을 것인가? 그들이 과연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순간부터 형성되는 자아(에고)  노병사하며 굴러간다. 무명 속에서 나날이 똑 같은 날을 되풀이 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강박적 반복' 내지 '기계적 반응'일 뿐이다. 이런 쇼가 벌어지는 공간이 씨헤이븐(Seahaven)이라는 곳이다. 영화속의 그 장소에 무명속에 갇혀 사는 당신이 살고 있다.

 

의미 있는 줄거리는 그 이후 펼쳐진다

 

트루먼은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 의문은 하나의 원인 때문이 아니며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된다. 아버지가 자신 앞에 나타났을 때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갖게된 물공포증이라는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사실은 잘못된 기억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주인공이 진실로 사랑하는 여인인 <실비아Sylvia>가 해준 말도 나중에 의문을 증폭시킨다.

 

모든 것은 트루먼을 위해 존재하는 세트이며 그는 단지 배우에 불과하다는 말. 그녀가 가슴에 달고 있던 뱃지에 써 있던 문구 - How's it going to end? - 도 부지불식간 뇌리에 남아있지요. '태어난듯 보이는' 생명은 반드시 죽기에 우리가 늘 가슴에 품고 있는 질문이다. 동시에 How's it going to end? (어떻게 끝이 날까?) 는 전세계 시청자들이 갖는 의문이지만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대입해보면 "내 삶이 어떻게 끝날까?"가 된다.

 

 영화 속 트루먼쇼의 제작비와 매출액은 작은 국가의 GNP와 맞먹으며 세계인구의 1/3 정도 - TV가 있는 모든 곳 - 가 시청하는 절대적인 인기를 끄는 프로이다. 거대한 세트장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지요. 트루먼쇼에 등장하는 모든 소품과 생활 패턴이 PPL(간접광고)이라는 것은 눈만 뜨면 광고에 노출되며 소비와 생산을 하는 우리의 실제 삶과 닮아 있다.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은 삶에 의문을 품게 한다 

 

Good morning, Good afternoon, and Good evening! 트루먼이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갖게 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의미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모든 인간이 묶여서 굴러가는 생로병사의 굴레이자 감옥이며 부조리한 질곡을 인식하고 탈출하려 하는 주인공을 카필라성을 넘어 출가하려는 싯다르타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주어진 삶의 한계를 넘어서려 하지 말고 그냥 행복한 인간(쇼나 보여주면서)으로

전세계의 스타로 남기를 바라는 아내(이것도 가짜인데)의 회유를 뿌리치고

Seahaven(씨헤이븐, 영화속의 섬)에서 탈출을 감행하여 폭풍의 바다를 건너는 장면은 출가하여 고행을 하며 용맹정진하는 싯다르타와 오버랩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최후의 무명, 이것이 진실을 가리고 있는 마지막 벽이며 아주 얇은 장막이 아닐까요? 이것은 곧 씨헤이븐Seahaven으로 볼 수 있으며, 차원의 벽이며, 완벽한 환상 - 마야maya이다.

 

그렇다면 에드 해리스가 맡은 역할인 PD(크리스토프)는 무엇일까요 그는 트루먼이 허상의 틈을 발견하고 그곳을 탈출하려고 할 때 마다 회유와 협박을 한다. 회유와 협박에 동원하는 레퍼토리는 육체에 속한 것이다. 즉 아무 문제가 없는 행복한 삶(죽음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명예(인기), 두려움 등등이다.

 

PD(크리스토프)는 우리의 에고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이다. 우리 각자가 허상을 알아차리고 진실의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을 에고가 제일 두려워한다.  존재의 진실로 깨어나는 것을 에고는 두려워한다.

 

세트장 조명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영화에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트루먼이 존재에 의문을 품게 하는데 일조한다. 허상의 틈이겠지만 우리 세계에 비유하자면 신비, 기적과 같은 것이다. 구도의 길에 들어서는 많은 분들이 이러한 현상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에서는 난데없이 공중(하늘)에 매달아 놓은 조명시설이 고장으로 인해 세트장으로 떨어진다. UFO라고 할 수 있겠다. 3차원의 우리세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지구를 방문하는 우주인에 비유해본다.

 

영화에는 인디고 차일드Indigo Child(또는 크리스탈 차일드Crystal Child, 초월적인 경지를 내다보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비상한 아이들, 지금 세계에 몇 십명정도 있다고 말을 한다)도 등장하는데 어떤 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저 아저씨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 사람이야." 요즘에는 고차원의 혹은 열린 의식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태어난다고 하지요. 그런 아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인디고 차일드Indigo Child이다.

 

트루먼이 꿈에도 그리는 사랑 실비아Sylvia는 트루먼이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실한 사랑은 육체, 에고를 넘어서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트루먼이 실비아와의 추억을 반추하며 명료한 의식에 한걸음 다가선 다음 날, 출근하는 자동차의 라디오가 주파수 혼선을 일으킵니다. 이 장면이 클라이막스인데요. 트루먼의 일거수 일투족이 '트루먼 자신에게도 생방송' 된다.

 

구도의 길에서 의식이 명료해지며 새로운 차원이 감지되는 때가 있다. 어떤 영적인 메시지는 우리의 뇌를 안테나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인데, 이 때는 이 세계가 거대한 그림, 혹은 정보와 개념의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이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 천상천하유아독존 - 말이 실감나지요.

 

이렇게 트루먼이 점차 확고하게 눈을 떠가기 시작하자 현상계(Seahaven 세트장)가 요동치며 균열을 일으키고 미쳐간다. 실제로는 진아(트루먼, 브라만, 아트만)의 실상 - 진실이 드러나려고 하는 것이죠.

 

한 밤 중에 태양을 띄우고, 모든 사람이 좀비Zombie처럼 트루먼을 찾아 어슬렁 거린다. 좀비라고 표현한 것은 진실에 눈을 감은 에고는 생각에 빠진 귀신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고행의 바다를 항해하는 트루먼을 추적하기 위해 보름달이 써치라이트가 되기도  한다.

 

에고의 속성. 갑자기 코코아 광고를 한다

 

영화를 보면서 진실한 인간관계에 대해 잠깐 생각해본다. 7살 때부터의 죽마고우인 말론Malone은 가장 필요할 때 '인간적인 정'이 진실보다 소중하다고 에고의 정점인 프로듀서(크리스토프)를 대신해 거짓 진술을 한다.

 

또한 트루먼의 아내는  위기의 순간에도 전세계 시청자들(모든 에고의 총집합)을 의식해서 코코아를 광고하지요. 아이를 갖고자 하는 욕망이 무시되자 차선책으로 돈을 선택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육체의 행복, 즉 돈은 사랑이자 삶의 목적으로 잘못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트루먼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닿고자 했던 여인 실비아와 같은 진실한 관계가 아니라면 '인간적인 행복'에 매여서 '가장 가까운 사람'과 있을 때도 깨어있으라는 메시지이다.

 

실제로 구도의 길에서 만난 도반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수행의 목적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인 걸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물질적 풍요와 행복은 카르마대로 펼쳐지는 것일 뿐인데 그런 것을 욕망하고 증장시키는 일은 해탈과 아무 상관이 없다. 도의 완성은 돈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돈으로 도를 차지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유의 순간

 

트루먼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재회에서 오는 감격과 환희, 자식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데서 오는 삶의 행복, 물에 대한 공포와 천재지변과 같이 몰아치는 폭풍의 바다를 건너 진실의 벽 앞에 선다.

 

그때 하느님인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고 할까요? 모든 부와 명예, 행복을 보장해 줄테니 그냥 마야maya의 세계에 머물러 달라고 합니다. 진실의 세계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며 "트루만, 너는 내가 만든 진실"이라는 말과 함께요. 네가 지금 사는 이대로가 진실이라며 회유를 하는 것이지요. 최고의 기도는 '진리대로 될지어다'라는 것처럼 트루먼은 최후의 유혹을 물리친다.  

 

잠시 고뇌하던 트루먼은 전 세계 시청자들(모든 에고이자 상위 자아)에게 말한다. "(트루먼쇼라는 TV프로를 더 이상) 못 볼지 모르니까 미리 작별인사 드리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앤 굿 나잇!"  모든 환상을 깨치고 대자유가 되는 순간이다. 그는 문을 열고 진실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 주인공이 셋트장을 탈출하자 일부 남성 시청자들은 그를 응원하고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흥미가 없어져 버려 '다른 채널은 뭐해?'하면서 채널을 돌리는 것이다. 미디어에 철저히 길들여져 살면서 그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틀대로 생각하는 인형 같지 않은가? 우리가 깨어난 정신으로 살지 못하면 셋팅된 무대안에서 인형처럼 움직였던 트루만이나 어리석음을 조장하는 미디어에 중독된 시청자와 같은 꼴이리라.

 

(원담스님, 영화 트루먼쇼와 '깨어난다' 의미, 2015-09-21)

 

 

 

 

 

편의상 문단을 나누고 소제목을 굵은 글씨로 처리 하였다. 스님에 따르면 영화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투루먼(Truman)이라는 말이 진짜 사람을 의미하는 ‘True-man’과 같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아무것도 모른 채 짜여진 각본속에 살아가지만 결국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됨을 암시하는 말이다.

 

영화속 주인공은 가면 갈수록, 살면 살수록 모든 것이 이상해 보였다. 마치 이 세상이 잘 짜여진 각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처럼, 심지어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세상이 돌아 가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모두 필연이라 하듯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나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마치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삶이 마치 영화속 주인공이나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이는 영화 대사에서 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아 가는 것 같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정신적으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 대사를 보면 미치겠다라는 말이 몇 차례 나온다.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에 따르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 간다고 생각하였을 때 정신분열증초기단계라 하였다.

 

영화 투루먼쇼를 보면 불교적 세계관을 떠 올리게 하는 문구가 여럿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아 가는 것 같아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정신분열증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아니다. 원담스님에 따르면 이 영화를 본 불교수행자라면 세상이란 현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으로서의 '나의 관점'을 중심으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내가 사라지면 세상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라 했다. 이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이제까지 살았던 세상이 허상임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세상은 꿈속의 집일까?

 

어떤 이는 이 세상을 꿈속과 같다고 묘사한다. 또 이 세상은 허망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근거로 금강경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게송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을 든. 이는 모든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이슬과 같고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여길지니라라는 뜻이다. 형성된 모든 것에 대하여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로 묘사 하였다. 한마디로 꿈속의 세상, 꿈속의 집과 같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정말 꿈과 같은 세상일까? 어떤 이들은 꿈과 같은 세상에서 꿈을 깨면 깨닫는 것이라 한다. 이는 깨달음이라는 말이 (), (), 깨어남, 깨뜨림, 꿰뚫음 등으로 설명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 깨어남을 꿈 깨는 것으로 본 것인다.  

 

만일 이 세상을 꿈속과 같은 삶으로 본다면 어떤 짓을 해도 문제 되지 않을 지 모른다. 도둑질을 해도 칼로 죽여도 꿈만 깨면 없었던 것으로 될 것이다. 꿈속에서는 어떤 짓도 서슴없이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끝에 도달하려면

 

부처님은 이 세상을 꿈속으로 비유하지 않았다. 초기경전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비슷한 게송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Pheapiṇḍūpama rūpa

vedanā bubbuupamā
Maricikupam
ā saññā

sakhārā kadalūpamā,
M
āyūpamañca viññāa

dīpitādiccabandhunā.

 

물질은 포말과 같고

느낌은 물거품과 같네.

지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 (S22.95)

 

 

부처님은 이 몸과 마음, 즉 오온에 대하여 실체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몸(rūpa)에 대하여 포말이라 하였고, 정신에 대하여 각각 물거품, 아지랑이, 파초, 환술로 비유하였다. 이런 비유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일체유위법과 다른 것이다.

 

이 세상을 꿈속의 세상, 꿈속의 집이라 한다면 빨리 꿈을 깨야 할 것이다. 꿈을깬다는 것은 꿈꾸는 나(I)’꿈속의 나(i)’가 다름이 아닌 것을 아는 것과 같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꿈을 깨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부처님은 이 몸과 마음을 관찰하라고 하였다. 오온에서 세계를 보라는 것이다. 잘 관찰하면 세계의 끝에 도달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Na kho panāha āvuso, appatvā lokassa anta dukkhassa antakiriya vadāmi. Api cāha āvuso imasmiññeva byāmamatte kaleb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āpemi. Lokasamudayañca lokanirodhañca lokanirodhagāminiñca paipadanti.

 

[세존]

그러나 벗이여, 세계의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괴로움의 끝에 도달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합니다. 벗이여, 지각하고 사유하는 육척단신의 몸 안에 세계의 발생과 세계의 소멸과 세계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 있음을 나는 가르칩니다. (S2.26)

 

 

부처님이 말씀 하신 세상은 오온에서 느끼고 지각하고 인식하는 세계이다. 그렇다고 몸마저 인식한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만일 몸마저 인식된 것이라 본다면 이 세상은 꿈속의 세상과 다름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진 이몸과 느낌, 지각, 형성, 의식으로 이루어진 이 오온에서 세계를 본 것이다.

 

세계의 끝은 이 작은 몸에서 도달 할 수 있다. 그 세계는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일어 나지 않는 그 세계”(S2.63) 라 하였다. 그 세계의 끝은 걸어서는 알 수 없고 볼 수 없고 도달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다만 청정한 삶을 성취하며 고요함에 이르는 자가 도달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문 밖을 향하여

 

투루먼쇼에서 주인공은 세계의 끝에 이르렀다. 배를 타고 바다의 끝에 다다르자 놀랍게도 벽이었다. 자신이 여겼던 세계의 한계를 본 것이다. 벽에 다다르자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벽에는 하나의 문이 있다. 문 밖으로 나가면 미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진실된 세상이다. 세트장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진짜 세상인 것이다. 이에 주인공은 갈등한다.

 

안락을 추구한다면 세트장에서 살아 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이상 머물지 않는다. 미지의 진짜 세상을 향하여 작은 문을 열고 나간다. 그와 함께 30년간 지속되었던 세계최고의 인기드라마도 끝이 난다.

 

 

2016-02-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