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지난 일인데
고객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는데
메일을 받았다. 업무용 메일이다.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메일은 미디어다음에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메일을 사용한다. 그러나 업무용 메일은 홈페이지 주소와 같은 전용메일을 사용한다. 고객으로 받은 메일이다.
메일을 보내 온 L님과 거래한지 꽤 오래 되었다. 아마 칠 팔 년 된 것 같다. 그러나 L님은 신용불량자이다. 사업을 하다 망해서 자신의 이름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연락이 끊어진 지 삼 사 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메일이 날아 온 것이다.
L님은 메일에서 “결제 금액이 얼마인지요? 지금 결제해 드리겠습니다.”라 하였다. 이 문구를 접하자 착잡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반갑기도 했다. 그다지 큰 금액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결재해 준다니 감동한 것이다.
이미 다 지난 일인데
L님은 몇 년 만에 불쑥 메일을 보내 왔다. 이어지는 글을 보면 “그럴려고 한건 아닌데 결제를 못해 드려 죄송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몸도 아프고... 사업도 접게 되고..... 신불자도 되고.... 하여간 그간 제 사정이... 말이 아니여서 연락을 못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주변 정리를 다시하고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결제 금액과 결제 계좌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사연을 보내 왔다.
L님은 한때 잘 나가던 벤처회사의 연구소장이었다. 비록 직원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하며 일을 몰두하였다. 그러나 모든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홀로 사업을 하게 되었다. 과거 인연이 있어서 도와 주었다. 처음에는 결재가 잘 되었다. 그러나 이후 한 일에 대해서는 결재가 자주 늦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 뚝 끊어졌다.
L님의 메일을 받고 비록 오래 되었지만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이전의 계산서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몇 년 전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연도별 계산서를 찾으려 하였으나 결국 찾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오래 전의 일이고 이미 다 지난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는 L님을 생각해서라도 계산서를 찾아 보아야 했다.그러나 찾기가 귀찮기도 하고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 그래서 “이미 지난 일 입니다. 다시 시작 하면 되죠.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신다 하니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라는 답신을 발송하였다.
세금계산서 변천사
이전의 세금계산서를 모두 모아 두었다. 2007년부터 작성하였으니 햇수로 10년 된 것이다. 계산서를 작성할 때는 반드시 거래명세표와 함께 작성한다. 계산서는 국세청신고용이고 명세표는 거래업체용이다. 이렇게 반드시 두 장을 작성해야만 거래가 성립된다. 물론 세금계산서를 작성할 때는 부가세 10%가 붙는다.
개인사업자의 경우 6개월에 한번씩 부가세 신고를 해야 한다. 하루라도 어기면 벌금을 내야 한다. 한달을 어기면 벌금 액수는 더 커진다. 세금을 제 때에 내지 않거나 체납하면 견딜 수 없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부가세 신고철만 되면 신경이 곤두선다.
지난 10년 동안 계산서에도 변동이 있었다. 처음에는 수기로 작성하였다. 문방구에서 세금계산서 양식을 구입하여 거래내역을 기입한 후 인감도장을 찍었다. 이때 상호와 사업자등록증 번호도 모두 수기 하였다. 이런 작업이 불편하여 고무판을 만들었다. 사업자정보가 들어간 고무판을 청색스템프에 찍어 기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계산서 작성하는 것이 일하는 것 못지 않게 큰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계산서의 진화는 계속되었다. 2008년이 되자 계산서 양식이 인쇄된 계산서전용용지가 등장하였다. 관련 업체에서 소개 받았는데 명칭은 ‘거래돌이’이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먼저 거래돌이 양식을 다량구매한다. 계산서는 사이트에 접속하여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작성한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작성하여 프린트 하면 된다. 이때 역시 인감도장을 찍어야 한다. 이전에 수기로 하던 것과 비교하여 진일보하긴 하였지만 여전히 시간을 요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계산서전용용지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2010년부터 전산화가 이루어졌기때문이다. 국세청 사이트에 접속하여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전자신고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사 놓은 수 백장의 계선서용지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면지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2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지금은 전자시대이다. 2010년 들어서자 마자 의무적으로 시행되어 이제는 오로지 전자신고만 인정되고 있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불편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을 발휘하여 엄청나게 효율이 향상되었다. 수기로 작성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거의 10배 이상 시간이 단축 된 것이다. 무엇 보다 6개월에 한번 있는 부가세신고에 대한 부담을 덜어 준 것이다. 모든 것이 전산화 되어 있어서 클릭 몇 번만 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사기꾼이 되고 싶어서 사기꾼이 되나?”
L님의 계산서를 결국 찾지 못하였다. 아니 굳이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결재가 6개월 밀리면 포기한다. 일반적으로 ‘익월결재’라 하여 계산서를 발행한 후 다음달 결재 해 주는 것이 관행화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업체의 경우 이를 어기는 경우가 있다. 결재할 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두 달, 세 달 밀린다. 세 달 이상 밀리면 가능성이 없다. 그럴 경우 깨끗이 포기하고 만다.
처음에는 밀린 돈을 다 받아 내려 하였다. 그러나 결재할 능력이 없었을 때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말에 “사기꾼이 되고 싶어서 사기꾼이 되나?”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공학박사타이틀을 가지고 있더라도 제때에 결재 하지 못하면 사기꾼소리 듣는 것이다.
수 많은 업체와 거래를 한다. 일을 맡기면 계산서를 발행한다. 그러나 제 때에 결재하지 못하는 업체도 매우 많다. 큰 금액이 아님에도 결재하지 못할 정도이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에 틀림 없다. 그럴 경우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마음의 부담을 덜어 버리기 때문이다.
불선업(不善業)을 짓지 않기 위하여
결재할 능력이 없음에도 이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불편하다.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이는 결재하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렇게 쌍방이 불편하다면 이는 ‘업(業)’을 짓는 것이 된다. 쌍방간에 업을 짓는 것이다.
모든 거래는 결재로서 완결된다. 지금까지 십년 동안 수 많은 업체와 거래 하였다. 그에 따라 수 많은 계산서를 발행하였다. 그렇다고 모두 다 기억할 수 없다. 왜 그럴까? 결재가 이루어지는 순간 깨끗이 잊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재가 이루어지지 않아 ‘미결’로 남아 있을 때 늘 마음에 남게 된다. 그래서 끝까지 기억하게 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돈을 빌려 주었는데 이를 갚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럴 경우 돈을 빌려 준 사람은 늘 “내 돈 언제 받나?”라며 살아 갈 것이다. 액수가 크다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
법우님 중에 한분은 사람에게 투자하였다. 지난 2000년대 ‘벤처광풍’이 불 때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투자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맡겼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자취를 감춘 것이다. 생명과도 같은 돈을 떼인 것이다. 그래서 그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를 다스리기 위하여 불교교양대학에 입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계산서를 발행하면 결재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결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미결상태로 세 달, 여섯 달, 일년이 가면 늘 마음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바로 이런 것이 업이 된다.
계산서를 발행하여 결재가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깨끗하다. 서로 마음의 찌꺼기가 남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결재가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더구나 미결상태일 때 마음의 부담으로 남는다. 빌린 사람은 잊어 버릴 수 있지만 단돈 만원이라도 빌려준 사람은 끝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돈에 대한 집착이다.
미결상태일 때 업을 짓는다. 갚지 않은 자 뿐만 아니라 받을 사람도 업을 짓는다. 내 돈 떼어 먹고 달아난 자를 생각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면 불선업(不善業)을 짓는 것이다. 그래서 미결상태가 오래 갈 경우 깨끗이 포기하고 만다.
마음의 부담을 털어 버리고
오랜 만에 L님이 메일을 보내 왔다. 몇 년 만에 보내 온 메일에서 밀린 돈을 갚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늦게나마 갚겟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이렇게 메일을 보내고 갚겠다고 한 것으로 충분하다. 마음의 부담을 털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을 새롭게 시작하면 도와 주겠다고 했다.
2016-03-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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