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번역비교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16. 3. 14. 14:33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의외로 잠을 잘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 잠이 오지 않아 꼬박 밤을 새웠다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왜 잠을 못 이룰까?

 

부처님 뵈로 갈 때

 

상윳따니까야에 잠과 관련된 경이 있다. 부처님당시 부호 아나타삔디까는 잠을 못 이루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때 세존께서 라자가하 시에 있는 씨따 숲에 계셨다.

 

그런데 그 때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어떤 용무로 라자가하 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참으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곧 세존을 뵈러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지금은 세존을 뵈러 가기에 알맞은 때가 아니다. 나는 내일 알맞은 때에 세존을 뵈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존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중에 새벽인줄 알고 세 번이나 잠이 깼다.

 

(쑤닷따의 경, 상윳따니까야 S10.8, 전재성님역)

 

 

경을 보면 아나타삔디까가 잠을 못 이룬 이유를 알 수 있다.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만나러 뵈러 간다는 마음이 들어 너무 기뻤기 때문이다.

 

아나타삔디까가 잠 못 이룬 이유

 

너무 기뻐도 잠을 이루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초불연 각주에 따르면 아나타삔디까가 잠못 이룬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각주 하였다.

 

 

그는 밤의 초경이 지날 무렵 잠에서 깨어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하지 강한 청정한 믿음이 생겼고 희열의 빛이 생겨 모든 어둠이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천 개의 등불을 켠 것과 같았고 태양이 떠 오른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이미 새벽이 되어 해가 뜬 줄 알고 승원으로 떠날 채비를 한 것이다. 밖에 나와서 달을 보고는 단지 초경이 지났음을 알았다. 2경과 3경에도 마찬가지였다.(SA.i.313)

 

(초불연 상윳따1 892번 각주, 각묵스님)

 

 

아나타삔디까가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감함에 따른 희열 때문이라 했다. 전재성님의 각주는 보이지 않는다. 빅쿠보디는 cdb에서 Spk: After the first watch of the night had passed he woke up thinking of the Buddha, full of confidence and joy so intense that light became manifest and drove away the darkness. Hence he thought it was already dawn and set out for the monastery, realizing his error only when he went outside. The same thing happened at the end of the middle watch.”(cdb 585번 각주, 빅쿠보디) 라고 각주 하였다.

 

나는 세상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너무 기뻐도 잠이 오지 않는다. 너무 슬퍼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근심과 걱정이 있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따르면 부처님의 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알라바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잘 주무셨습니까?”

 

[세존]

왕자여, 나는 잘 잤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알라바까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35,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잠을 잘 자는 사람가운데 하나라 했다. 부처님은 겨울철 북풍에 서리가 내리는 노지에서도 잠을 잔다고 했다. 이는 알라바까가 세존이시여, 겨울밤은 춥습니다. 더구나 서리가 내리는 주간입니다. 소의 발굽으로 다져진 바닥은 딱딱하고, 나뭇잎으로 만든 잠자리는 너무 앝고, 나뭇가지에 잎사귀는 아주 드물고, 황새가사는 아주 얇고 북풍은 차갑습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최상의 잠자리 조건

 

부처님은 풍찬노숙을 해도 잠을 잘 잔다고 했다. 부유한 자들은 어떤 조건일까? 부처님은 왕자의 질문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세존]

왕자여, 나는 잘 잤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왕자여, 내가 그대에게 질문하건데 마음에 들면 대답하기 바랍니다.

 

왕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상에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안팍으로 잘 장식되고 바람이 없고 빗장이 잘 꿰어지고 창문이 잘 잠기어진 저택이 있고, 그곳에 흑모의 담요가 깔리고 백모의 담요가 깔리고, 꽃 무늬의 양모가 깔리고, 까달리 사슴의 털로 된 최상의 모포가 깔리고 그 위에 덮게가 씌어지고 양쪽에 붉은 베게가 놓여있는 침대가 있는데, 거기서 호마유의 등불을 밝히고 네 명의 부인들이 성심껏 시중을 든다고 합시다. 왕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잠을 잘 자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겠습니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알라바까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35, 전재성님역)

 

 

왕족이나 부유한 장자는 최상의 삶의 질을 향유하고 있다. 최상의 천으로 장식된 안락하고 푹신한 침대에다 더구나 시중을 드는 여인까지 있다면 이것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과연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이에 알라바까왕자는 잠을 잘 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도 잠을 잘 자는 사람중의 하나라고 했다.

 

잠 못 이루는 자들

 

잠을 잘 잘 수 있는 조건이 되면 잠을 잘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잠자리가 화려하고 풍족하여도 잠을 못 이룰 수 있다. 이번에는 부처님이 이렇게 질문을 한다.

 

 

[세존]

왕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탐욕으로 인한 고뇌가 생겨나면, 그 탐욕으로 인한 고뇌로 불타면서 괴롭게 잠을 자지 않겠습니까?”

 

(알라바까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35, 전재성님역)

 

 

마음속에 탐욕으로 가득하다면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고뇌가 생겨나기 때문이라 했다. 재산을 지켜 내기 위하여 담을 높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경비를 세웠을 때 두 다리 뻗고 잠을 자기 힘들 것이다.

 

집안에 보물이 있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가장 먼저 누군가 훔쳐 갈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안 보이는 곳에 꼭꼭 숨겨 둘 것이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면 매번 확인 할 것이다. 더 깊숙히 숨기기 위하여 땅에 묻어 둔다거나 벽에 비밀 금고를 만들어 놓을지 모른다. 그리고 담을 높게 치고 철조망을 치고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을 것이다.

 

집안에 보물이 있을 때 잠을 잘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잠을 잘 이룬다. 그래서 숲속에 사는 수행자는 하루 한끼만 먹고 살아도 얼굴빛이 맑고 깨끗한 것이라 했다.

 

마음속에 탐욕이 가득하면 잠 못 이룰 것이다. 마음 속에 성냄이 가득해도 잠을 못 이룬다. 누군가 내 돈을 떼 먹고 달아 났을 때 그 사람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깨는 것이다.

 

마음이 청정한 수행자는 잠을 잔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 성냄이 여래에게는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잘려진 종려나무처럼 되어,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왕자여, 나는 잘 습니다.”(A3.35) 라 하셨다. 마음의 오염원이 소멸된 성자는 어떤 조건에서도 잠을 잘 잘 수 있음을 말한다.

 

부처님의 전지(全知)

 

아나타삔디까는 부처님을 만나 뵈는 기대감으로 세 번이나 깼다. 날이 밝아 부처님을 찾아 뵈었을 때 부처님은 쑤닷타여, 어서 오시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 아나타삔디까는 감격했다. 왜 감격했을까? 이에 대하여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Srp.I.315에 따르면, 쑤닷따는 아나타삔디까의 성이다. 그는 부처님께 찾아 갈 때 생각했다. ‘누구든지 나의 이름이 아나타삔디까인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집안 이름은 모른다. 만약 그가 부처님이라면 다른 이름을 알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이름을 불러서 자신의 전지(全知)를 증명했다.

 

(1995번 각주, 전재성님)

 

 

부처님의 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처님은 전능하지는 않지만 전지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주석과 관련하여 빅쿠보디는Spk: While he was approaching, Anftthapindika wondered how he could determine for himself whether or not the Teacher was a genuine Buddha. He then resolved that if the Teacher was a Buddha he would address him by his given name, Sudatta, known only to himself.”(cdb 587번 각주) 라고 설명하였다.

 

잠을 잘 자는 부처님

 

아나타삔디까는 부처님이 자신의 성을 불러주자 감격했다. 그리고 부처님에게  스승이시여, 세존께서는 편히 주무셨습니까?”(S10.8) 라고 첫 마디 하였다. 마치 오늘날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묻는 것 같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하였다.

 

 

Sabbadā ve sukha seti

brāhmao parinibbuto,
Yo na limpati k
āmesu

sītibhuto nirūpadhi.

 

[세존]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 성자는

언제나 참으로 편히 잠자네.

감각적 쾌락에 더럽혀지지 않은 님은

청량해서 번뇌가 없다네.

 

 

Sabbā āsattiyo chetvā

vineyya hadaye dara,
Upasanto sukha
seti

santi pappuyya cetasoti.

 

모든 집착을 자르고

마음의 근심을 제거하고

마음의 적멸을 얻어서

고요한 님은 안락하게 잠자네.”

 

(쑤닷따의 경, 상윳따니까야 S10.8(A3.35),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잠을 잘 잤다고 했다. 잠을 자는 요인으로 번뇌의 소멸을 들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욕망을 소멸하였을 때 잠을 잘 수 있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집착(āsatti)’근심(dara)’이 없을 때이다.

 

번역을 비교해 보면

 

번역을 비교해 보았다. 두 개의 빠알리 게송에 대하여 초불연의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오염원이 가라앉은 진정한 바라문

감각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청량하고 재생의 근거 놓아 버린 자

그런 그는 아주 편히 자노라.

 

모든 갈애를 잠재우고

마음의 근심을 잠재우고

마음을 고요함으로 향하게 한 뒤

그는 평온하게 잘 자노라.”

 

(수닷따 경, 상윳따니까야 S10.8, 각묵스님역)

 

 

첫 번째 게송 첫 번째 구절은 “Sabbadā ve sukha seti brāhmao parinibbuto”이다. 여기서 brāhmao라는 말이 나온다. 각묵스님은 진정한 바라문이 했고, 전재성님은 성자라 했다.

 

 빠알리 사전을 보면 brāhmaa‘a man of the Brahman caste’의 뜻이다. 바라문 계급의 사람을 뜻한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재해석한 바라문은 아라한과 동급이다. 그래서 법구경 바라문품을 보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른다.”라 하였다.

 

두 개의 빠알리 게송에 대하여 빅쿠보디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Always indeed he sleeps well,

The brahrmin who is fully quenched,

Who does not cling to sensual pleasures,

Cool at heart, without acquisitions.

 

“Having cut off all attachments,

Having removed care from the heart,

The peaceful one sleeps well,

Having attained peace of mind.”

 

(S10.8, 빅쿠보디역)

 

 

빅쿠보디는 brāhmaa에 대하여 brahrmin’이라 번역했다. 브라흐민은 브라흐마나의 영어식 표현이다. 또 빅쿠보디는 빠알리어 parinibbuto’에 대하여 fully quenched’라 했다. 번역하면 완전히 불이 꺼진이라는 뜻이다. 완전한 열반을 뜻한다.

 

 parinibbuto’에 대하여 빠알리사전을 찾아 보면 ‘Extinguished, extinct; having attained nirvāa or the annihilation of being–of an arhat, dead’의 뜻이다. 비슷한 말이 ‘Parinibbāna’이다. 일반적으로 완전한 열반이라 한다.

 

빠알리어 ‘brāhmao parinibbuto’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 성자라 했다. 각묵스님은 모든 오염원이 가라앉은 진정한 바라문이라 했다. 빅쿠보디는 The brahrmin who is fully quenched’라 했다.

 

자애의 마음을 닦으면

 

아나타삔디까는 초면의 부처님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이 잠을 잘 주무셨습니까?’라는 말이다. 이에 부처님은 게송으로 잠을 잘 잤다고 했다. 똑 같은 게송이 실려 있는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나는 세상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A3.35) 라 했다.

 

부처님은 잠을 잘자는 이유에 대하여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게송에서는 부처님 자신을 포함하여 번뇌를 소멸한 성자를 지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사람들이 잠을 잘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잠 못 이룬다어떻게 해야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부처님은 자애의 마음을 닦으라고 했다. 자애의 마음을 닦으면 열 한 가지 공덕이 기대된다고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잠을 잘 자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열 한가지 자애의 공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편안히 잠자고, 행복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에게 아낌을 받고, 귀신들에게조차 사랑을 받고, 신들이 보호해 주고, 불이든 독약이든 거의 해를 입지 않고, 빠르게 삼매에 들고, 안색이 맑고, 당황함이 없이 임종에 들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A11.15)

 

 

Sleeping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있다. 어떤 조건, 어떤 환경에서도 누우면 5분 이내에 코를 골며 잠을 자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부분 잠을 잘 못 잔다. 도시의 불빛이나 소음 등 외부 환경적 요인이나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근심 등으로 잠 들기가 쉽지 않다.

 

잠을 잘 자면 깨달은 자

 

잠을 잘 자는 사람이 또 있다. 아마 그는 깨달은 사람일 것이다. 깨달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잠을 잔다고 한다.

 

달라이라마가 일본에 왔을 때 한국에서 온 순례단 중의 한사람이 당돌하게 존자님은 깨달았습니까?”라고 물어 보았다고 한다. 이에 존자는 빙긋 웃으면서 저는 잠을 잘 잡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잠을 잘 자신 분이었다. 이는 아나타삔디까가 초면에 스승이시여, 세존께서는 편히 주무셨습니까?”(S10.8)라고 물어 보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 성자는 언제나 참으로 편히 잠자네.” (S10.8)라 하였다. 깨달은 자는 잠을 잠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아나타삔디까가 누군가 당신은 잠을 잘 잡니까?”라고 물어 보았을 때 당신은 깨달은 사람입니까?”라는 말과 같지 않을까?

 

부처님은 북풍이 부는 추운 겨울날 노지에서 황색가사 하나만 입고도 잠을 잘 자신 분이다. 잠을 잘 자는 이유는 근심과 걱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번뇌가 소멸된 성자에게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과 같은 오염원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하루 한끼만 먹어도 얼굴이 맑고 깨끗한 것이다.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잠을 잘 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은 번뇌가 다한 깨달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잠을 잘 자는 범부들도 있다. 눕기만 하면 수 분 이내에 코를 고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하여 깨달은 자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일 뿐이다.

 

범부들이 잠을 잘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자애의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사띠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띠하는가? 잠들기 전에 누워서 배에 사띠하는 것이다. 가장 강한 대상인 배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배에 사띠를 하면 잠을 쉽게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역시 알아차림을 유지하라고 했다. 이렇게 연습을 하게 되면 임종에 이르렀을 때 완전한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수행처에서 들은 말이다. 물론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잠이 들 때나 잠에서 깰 때나 늘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말이다.

 

 

2016-03-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