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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이고 습관적 행위를 하였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16. 4. 5. 12:45

 

 

반복적이고 습관적 행위를 하였을 때

 

 

행운목꽃이 피었다

 

행운목꽃이 피었다. 매년 피다시피 하는 행운목꽃은 작년에 피지 않았다. 그러나 2주전 꽃대가 나오는 것을 확인 하며 또다시 행운목꽃을 기대 했다.

 

행운목은 2007년 말 사온 것이다. 햇수로 10년 되었다. 사온 지 만 3년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이후 매년 피었고, 어느 해는 두 번 피기도 했다.

 

행운목은 두 개로 가지가 나 있다. 처음에는 두 가지에서 모두 피었으나 이후 번갈아 가며 피었다. 마치 경쟁하듯이 한 해는 이 가지에서 피고, 또 한 해는 저 가지에서 핀다. 이번에 핀 행운목은 봉우리가 15개이다.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한봉우리에 대략 사오십개 가량 대롱이 있다. 늦은 오후가 되면 대롱이 벌어지며5엽의 꽃이 나온다. 일종의 야행성으로서 밤이 되면 활짝 만개 하고 아침이 되면 닫는다. 나팔꽃과는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행운목꽃을 보기 힘들다. 열대성식물로서 특별화게 관리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겨울에 난방이 되어야 하고 일주일 단위로 물을 주어야 한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목대가 두꺼워야 한다. 목대가 두꺼우면 성장속도도 빠르고 꽃이 필 확률이 높다.

 

강렬한 향내

 

행운목꽃은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다. 밤에만 피고 낮에는 닫아 버리기 때문에 보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늦은 오후가 되어 꽃잎이 펼쳐지면 강렬한 향기를 발산한다.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행운목꽃 향기는 후각을 강력하게 자극하여 불쾌한 느낌을 줄 정도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들은 꽃대가 나오면 잘라 버린다고 한다.

 

사무실에 행운목꽃이 만발해 있다. 그에 따라 특유의 강렬한 냄새를 발산하고 있다. 냄새가 독해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 놓을 정도이다냄새 나기 때문에 냄새 맡아지는 것이다.

 

향기도둑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냄새 나는 것과 냄새 맡는 것은 다르다. 보는 것과 냄새 맡은 것은 적극적 의지의 작용에 따른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 있을 때 일부로 가까이 가서 감상하는 것은 의도가 개입된 것이다. 알 듯 모를 듯 향내가 났을 때 코를 가까이 대는 것 역시 의도가 개입된 것이다.

 

의도가 개입 되었을 때 을 짓는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나는 의도가 행위라고 말한다. 의도하고 나서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행위한다.” (A6.63) 라는 가르침으로도 알 수 있다. 의도적인 업과 관련하여 이런 가르침이 있다.

 

 

한 때 한 수행승이 꼬쌀라 국의 한 우거진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그 수행승은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을 한 뒤에 연못으로 들어가서 붉은 연꽃의 향기를 맡곤 했다. 마침 그 우거진 숲에 살고 있던 하늘사람이 그 수행승을 가엾게 여겨 그의 이익을 위해서 수행승을 일깨우고자 그 수행승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그 수행승에게 시로 말했다.

 

[하늘사람]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질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

 

[수행승]

“나는 연꽃을 취하지도 않았고

꺽지도 않았고 떨어져서 향기만 맡았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대는 나를 향기 도둑이라고 하는가?

 

연 줄기를 잡아 뽑고,

연꽃을 꺽고,

그와 같이 거친 행위를 하는 자에게는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하늘사람]

“어떤 사람이 거칠고 흉폭하고,

하녀의 옷처럼 심하게 더럽혀졌다면,

나는 그에게 말할 것이 없지만,

지금은 그대에게 말하는 것이네.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

 

(Gandhatthenasutta-향기 도둑의 경, 상윳따니까야 S9:14,전재성님역)

 

 

연꽃은 매혹적이다. 더구나 향기까지 난다면 금상첨화이다. 그러나 야외에서 향기를 맡기란 쉽지 않다. 수시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가장 향기롭다는 라일락꽃의 향기도 바람을 거슬러 갈 수 없다. 향기를 마음껏 맡으려면 가까이 가야 한다. 가까이 가서 코를 대야만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이런 행위를 한 수행승에게 하늘사람은 향기도둑이라 했다.

 

반복적이고 습관적 행위

 

수행승이 아름다운 연꽃을 보았을 때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을것이다. 이는 의도적 행위이다. 달리 표현하면 욕망이 개입한 것이다. 왜 욕망으로 보는가?

 

꽃이 피었을 때 꽃이 피었네라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꽃이 예쁘네라 한다면 즐거운 느낌이 따른 탐욕이 일어난 것이다. 더구나 예쁜 꽃이 탐이 나서 가까이 다가갔다면 이번에는 행위를 한 것이다. 한송이 연꽃을 보고서 느낌()과 생각()과 행위()가 일어난 것이다

 

탁발나간 수행승은 매번 연못을 지날 때마다 연꽃에 마음이 머물렀다. 더구나 코를 대고 향내까지 맡았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의 번역을 보면 붉은 연꽃의 향기를 맡곤 했다.”라 되어 있다. 향기를 맡곤한 것이다. 반복적이고 습관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초불연 번역을 보면 걸식에서 돌아와서 연못으로 들어가서 연꽃의 냄새를 맡았다.” (S9.14) 라 되어 있다. 마치 한번만 냄새 맡은 것으로 되어 있는 듯한 번역이다빅쿠보디는 after his meal that bhikkhu used to descend into a pond and sniff a red lotus.”라고 번역했다. 빅쿠보디는 ‘used to’용법을 사용하여 하곤 했다라 번역했다. 냄새 맡는 행위가 습관적이고 반복적임을 알 수 있다.

 

자주 보면 갈애가 일어나고 집착이

 

수행승은 연꽃을 보자 단 한번 냄새 맡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매번 탁발에 나갈 때 마다 동일한 장소에 가서 냄새를 맡았다. 이런 모습을 숲속의 신이 지켜 보고 있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반복되다 보니 가엽게 여겨 충고를 해 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gandhattheno)라 한 것이다.

 

수행승은 졸지에 향기도둑으로 몰렸다. 아마 수행승은 억울했을 것이다. 연꽃을 꺽지도 않았고 가져 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향기만 맡았을 뿐인데 향기도둑이라니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숲속의 신, 하늘사람은 왜 수행승의 반복적이고 습관적 행위를 문제 삼은 것일까? 주석에 따르면 수행승이 향기가 마음에 든다면, 다음 날도 다시 꽃냄새를 맡게 되고, 그러한 마음이 자라 탐욕이 되고 갈애가 된다. 향기에 대한 갈애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갈애는 해탈에 장애가 된다.”(Srp.I.297-298) 라고 설명되어 있다.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이 도둑질이다. 꽃이 피었는데 향내가 난다고 하여 냄새를 취하는 것도 도둑질에 해당된다. 그러나 한번 또는 두 번 향기를 취했다고 향기도둑으로 몬다면 너무 가혹한 처사이다. 그런데 경에 따르면 한두번이 아니다. 매번 취한 것으로 되어 있다. 습관적인 것이다. 탁발에서 돌아 올 때 마다 그 자리에 가서 냄새를 맡곤 한 것이다.

 

습관이 되면 끊기 어렵다. 호기심에 피워 본 담배를 자주 접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 한번 습관 들여 놓으면 여간해서 끊기 힘들다. 중독되면 더욱더 끊기 힘들다. 무엇이든지 반복적 행위를 되풀이 하면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된다.

 

모든 습관은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등 다섯 가지 감각능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보는 것을 즐기고, 듣는 것을 즐기고, 냄새 맡는 것을 즐긴다매혹적인 대상이 있으면 한번 쳐다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쳐다 보게 된다. 자주 쳐다 보면 갈애가 일어나고 집착이 된다. 결국 업으로서 태어남을 유발하고 만다. 냄새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볼 때는 보여질 뿐

 

수행승은 매번 연꽃향기를 취했다. 이는 의도적 행위이다. 의도적 행위는 업이 된다. 업은 미래의 태어남을 유발하고 만다. 의도적 행위는 해탈과 열반은 요원하게 만든다. 이런 점을 숲속의 신, 하늘사람이 수행자를 가엽게 여겨 알려 주었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향기도둑이라 했다.

 

청정한 수행자에게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바히야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볼때는 보여질 뿐이며  들을 때는 들려질 뿐이며 감각할 때는 감각될 뿐이며 인식할 때는 인식될 뿐이다.바히야여,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바히야여, 볼때는 보여질 뿐이며 들을 때는 들려질 뿐이며 감각할 때는 감각될 뿐이며 인식할 때는 인식될 뿐이므로 바히야여, 그대는 그것과 함께 있지 않다. 바히야여, 그대가 그것과 함께 있지 않으므로 바히야여, 그대는 그 속에 없다. 바히야여, 그대가 그 속에 없으므로 그대는 이 세상에도 저 세상에도 그 양자의 중간세상에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괴로움의 종식이다. (Ud1.10)

 

 

볼 때는 보여질 뿐이라 했다. 의도를 가지고 보았을 때는 업이 되지만 단지 보이네라며 의도를 내지 않는다면 업이 되지 않는다. 꽃이 피었을 때 꽃이 피었네하면 그뿐이다. 향내가 나면 냄새가 나네라고 하면 그뿐이다

 

 

 

 

 

2016-04-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