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태양의 후예 부처님, 아리안일까 몽골리안일까?

담마다사 이병욱 2016. 4. 17. 14:47

 

태양의 후예 부처님, 아리안일까 몽골리안일까?

 

 

한중합작 태양의 후예

 

태양의 후예, 몇 일전 끝난 드라마제목이다. 방송과 인터넷등 세간에 화제가 되었지만 보지는 않았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걸리긴 하였지만 관심사가 아니었고 드마마보다는 다큐채널을 즐겨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끝나자 방송과 인터넷에서는 대대적으로 방송효과를 보도 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태양의 후예 종영방송의 경우 38.8%의 시청률이라 했다. 무엇이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기사를 보니 한중합작으로 제작된 것이다. 16부작으로 5년전부터 기획된 것으로 160억원 투입 되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블록버스터급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대한 인터넷 사전을 찾아 보았다. 찾아 보니 낯선 땅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사랑과 성공을 꿈꾸는 젊은 군인과 의사들을 통해 삶의 가치를 담아낼 블록버스터급 휴먼 멜로 드라마라 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방영된 태양의 후예에 대한 기록은 엄청나다. 우리나라 뿐만 중국대륙을 흔들었다. 태국 등 동남아시아, 그리고 32개국에 콘텐츠가 수출될 예정이라 한다. 또 다시 한류가 맹위를 떨치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눈길을 끈 것은 드라마의 제목 태양의 후예이다. 왜 하필이면 태양의 후예일까? 이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뚜렷한 설명은 보지 않는다. 검색해 보니 드라마가 시작 되기 전에 주인공역 송중기와 송혜교의 이야기가 나온다. 드라마 제목 태양의 후예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끼리도 이야기를 해봤는데 결론이 안나더라. 우리가 자체적으로 내린 결론은 '작가님 두 분만 알고 계실 거다.”라 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대한 제목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낯선 땅 극한의 환경에서 사랑과 성공을 꿈꾸는 젊은 군인과 의사들을 통해 삶의 가치를 담아 낸 작품 정도로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담당 PD는 태양의 후예에 대하여 태양이 다른 사람에게 빛을 가져다 주듯이 주인공들이 희생정신을 발휘해 주변사람들에게 온기를 준다는 의미를 담았다.”라고 했다.

 

태양의 후예, 부처님

 

불교에도 태양의 후예가 있다. 빠알리니까야를 접한 자들은 태양의 후예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숫따니빠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이 있다.

 

 

Ādiccā   nāma gottena

sākiyā nāma jātiyā,

Tamhā kulā pabbajitomhi rāja

na kāme abhipatthaya.

 

[세존]

씨족은 ‘아딧짜’라고 하고,

종족은 ‘싸끼야’라 합니다.

그런 가문에서 감각적 욕망을 구하지 않고,

왕이여, 나는 출가한 것입니다.” (stn 423)

 

 

이 게송은 숫따니빠따 출가의 경(Sn3.1)’에 실려 있다. 마가다국왕 빔비사라가 부처님에게 태생을 말해 달라고 했을 때 부처님은 왕이여, 저쪽 히말라야 중턱에 한 국가가 있습니다. 꼬쌀라국의 주민으로 재력과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stn422) 라 했다. 꼬살라의 주민이라 한 것은 부처님당시 싸끼야국이 꼬살라의 속국이었음을 말한다.

 

부처님은 가문을 소개 할 때 씨족은 아딧짜(adiccā)라 하고 종족은 싸끼야(sākiyā)라 했다. 여기서 씨족이라 한 것은 gotta를 말한다. Gotta‘clan; ancestry’의 뜻으로 씨족 또는 조상을 뜻한다. 종족은 jātiyā의 번역어로서 ‘a kind of ascetics with matted hair’의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은 넓은 의미에서 아딧짜씨족이고, 좁은 의미로 싸끼야종족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따나띠아 보호주에서

 

씨족이름 아딧짜(adiccā)는 어떤 뜻일까? 빠알리사전을 찾아 보니 ‘the sun’으로 되어 있다. 태양이라는 말이다. 태양족을 뜻하는 아딧짜라는 말은 초기경전 도처에 등장한다. PCED194에서는 ‘S.I,15, 47; II,284; III,156; V,44, 101; A.I,242; V,22, 263, 266 sq.; It.85; Sn.550, 569, 1097 (“ādicco vuccati suriyo” Nd2 125); DhA.IV,143; Sdhp.14, 17, 40.’에 실려 있다고 소개한다.

 

아딧짜는 태양을 뜻한다. 그런데 태양과 유사한 말이 수리야(Suriya)이다. 빠알리사전에서는 아딧짜와 수리야의 관계에 대하여 “Another name for Suriya, the Sun (D.iii.196)”라고 설명해 놓았다. 아딧짜는 수리야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동의어이다. 태양의 후예와 관련된 말이 ‘D.iii.196’에 실려있다고 했다.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Te cāpi buddha disvāna

buddha ādiccabandhuna
Dūrato'va namassanti

mahanta vītasārada

 

[벳싸바나]

그들 또한 깨달은 님을 뵙고

태양의 후예인 부처님,

광대한님, 두려움 없는 님께

멀리서 귀의합니다. (D32.4)

 

 

디가니까야 아따나띠아의 경(D32)’실려 있는 게송이다. 사대왕천 중의 하나인 북방의 벳사바나대왕이 아따나띠아 보호주를 읊은 것이다. 주석에 따르면 아딧짜는 단지 아디따신의 아들이고 또한 단지 언어적으로 태양신과 동의어이다.”(Smv.963) 라 했다. 이는 붓다고사가 “the name as meaning Aditi’s son (Aditiyā putto).”라고 설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에 대하여 태양의 아들, 태양신의 아들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여래십호가 있지만

 

아딧짜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이를 태양의 후예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나까무라 하지메는 しては〈太陽(すえ)〉とかいい라 했다. 이를 중역한 법정스님은 성은 <태양의 후예>라하고라고 번역했다. 타닛사로빅쿠는 Solar by clan”라고 영역했다.

 

태양의 후예는 부처님을 일컫는 말이다.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의 아딧짜는 부처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여래십호라 하여 부처님을 호칭하는 말이 있지만 태양의 후예라 하여 극히 존경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처님도 스스로 태양의 후예라 했다. 상윳따니까야에 이런 게송이 있다.

 

 

Pheapiṇḍūpama rūpa

vedanā bubbuupamā
Maricikupam
ā saññā

sakhārā kadalūpamā,
M
āyūpamañca viññāa

dīpitādiccabandhunā.

 

[세존]

물질은 포말과 같고

느낌은 물거품과 같네.

지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 (S22.95)

 

 

상윳따니까야 포말 비유의 경(S22.95)’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오온에 대하여 실체가 없음을 포말, 물거품, 아지랑이, 파초, 환술로 비유했다. 이런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에 대하여 태양의 후예(ādiccabandhu)’라 했다.

 

태양신의 후예

 

태양의 후예를 뜻하는 아딧짜반두(ādiccabandhu)는 부처님의 별칭이다. 상윳따니까야 방기사의 품을 보면 감성적인 수행승 방기사는 다음과 같이 부처님을 찬탄했다.

 

 

sakkhīhi me suta eta

buddhassādiccabandhuno,
Nibb
āagamana magga

tattha me nirato mano.

 

[방기사]

태양신의 후예인 부처님에게서

그 자신의 입을 통해 나는 들었네.

열반으로 이르는 길을

내 마음은 그곳에 머물러 즐겁네.”(S8.1)

 

 

전재성님은 태양신의 후예인 부처님이라 번역했다. 이 말은 ‘buddhassādiccabandhuno’의 번역어이다. ādiccabandhu태양신의 후예라 한 것이다. 이는 붓다고사가 ‘aditiyā putto’라고 주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aditiyā ‘Mother of the sun’의 뜻으로 태양의 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각묵스님은 태양의 후예라 번역했다. 빅쿠보디는 Kinsman of the Sun”이라 하여 태양의 종족이라 했다.

 

아딧짜반두(ādiccabandhu)

 

태양의 후예, 태양의 아들을 뜻하는 아딧짜반두(ādiccabandhu)라는 말은 초기경전 ‘D.iii.197; Sn.v.1128; Thag. 26, 158, 417’ 등에서 볼 수 있다.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아딧짜반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Ādiccabandhu

:1. ādiccabandhu.-An often-used epithet of the Buddha (E.g., D.iii.197; Sn.v.1128; Thag. 26, 158, 417, etc.). The Vimanavatthu Commentary (p.116) says that ādicca (the Sun) belonged to the Gotamagotta, as did also the Buddha, hence his epithet ādiccabandhu; other explanations are given in the same context: the Buddha is born in the same ariyā jāti and is the descendant of the Sun (tam paticca tassa ariyāya jātiya jātattā), or the Sun is the Buddha’s kinsman because the Sun is the Buddha’s orasaputta (breast-born son) inasmuch as the Sun is the Buddha’s disciple. It is in this sense that in the Samyutta Nikāya (S.i.57) the Buddha speaks of the sun as ”mama pajā,” which Buddhaghosa (SA.i.86) explains as meaning disciple and spiritual son.

 

ādicca is described as tapatam mukham (chief of heat-producing things). MA.ii.783.

(Ādiccabandhu, 빠알리사전 PCED194)

 

 

설명을 보면 부처님의 태생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것은 “the Buddha is born in the same ariyā jāti and is the descendant of the Sun”라는 내용이다. 부처님은 아리야족출신으로서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이는 Vimanavatthu 주석 “tam paticca tassa ariyāya jātiya jātattā라는 말에 따른다.

 

부처님은 아리안일까 몽골리안일까?

 

부처님은 아리안일까 몽골리안일까? 어떤 이는 아리야계통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황인계통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2010고따마붓다는 아리안일까 몽고계통일까, 인도인들의 평균얼굴을 보면서(2010-02-0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2010년 당시 올린 글은 허정스님의 인도유학시절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작성하였다. 인도인들의 얼굴이 대체적으로 까무잡잡한 것을 보고 부처님도 그런 피부색을 가졌을 것이라 유추한 것이다.

 

 

 

 

사진: (2001-02-02, 허정스님)

 

 

 

최근 범일스님의 유뷰트동영상 강연을 보았다. 스님에 따르면 부처님은 틀림 없이 몽골-티벳계통의 황인종이라 했다. 부처님은 백인종일까 황인종일까? 2010년 당시 마성스님의 글 붓다의 가계를 근거로 하여 아리안설과 몽골리안설을 요약하였다.

 

 

부처님 몽골리안설

 

첫째, 사캬족은 티벳계통의 몽고족 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도사학자 스미스(Vincent A. Smith)의 주장이다. 그는 사캬족에 근접하여 살았던 릿차비(Licchavi)족이 티베트의 장례 풍습과 사법절차가 행해졌던 점을 증거로 들었다.

 

둘째, 사캬족이 <리그 베다> 이래의 영웅으로 일종족(日種族)의 선조인 이크슈바쿠(Iksuvaku)왕의 후예인데, 이들은 모두 아리안 계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마야부인은 콜리야족 출신인데, 오스트로-아시아계의 문다어를 사용 하는 코르인과 관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설은 일본인 불교학자 이와모토 유타카(岩本裕)에 의하여 제기 되었다.

 

셋째, 초기경의 <락카나 숫따(Lakkhana Sutta, 三十二相經)>에 묘사된 내용에 근거 한다. , “그들의(석가족)의 안색은 청동 빛과 같았으며, 그들의 피부는 우아하고 부드럽고, 그들의 눈과 머리칼은 흑색이었다”라는 신체적인 특성과 석가 왕국이 설립되었던 네팔을 포함하여 오늘날에도 히말라야 산맥 기슭을 따라서 분포된 민족의 대부분은 몽고계 인종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캬족들은 틀림없이 몽고계 인종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태국의 잠농 통프라스트(Chamnong Tongprasert)가 주장 하였다.

 

 

 

 

 

 

부처님 아리안설

 

첫째, 사캬족은 크샤트리야(Kshatriyas)라는 것이다. 크샤트리야는 아리안의 계급으로 사캬족이 그 안에 위치하고 있는 이상 그들이 아리안임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둘째, 사캬족의 사람들 그리고 석존이 아리안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사캬족의 사회는 부계사회로서 모계제 사회가 아니라는 점도 사캬족이 아리안계 인물이라고 결론짓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한국의 불자들은 심정적으로 부처님이 몽골리안이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일까몽골리안 모습을 한 부처님상을 조계사 앞에 가면 팔기도 한다.

 

범일스님도 불교와 현대과학강연에서 황인종이라 했다. 이는 부처님이 사문출신이기 때문이다. 브라만과 대척점에 있었던 사문들은 출가제도, 유행생활과 탁발제도, 해탈과 열반추구, 요가와 고행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특징은 브라만들에게서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은 히말라야 인근 토착원주민 출신이라 했다.

 

아리안이 아닐 가능성

 

부처님이 토착원주민 출신일까? 부처님이 아리안족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부처님이 비아리안일 것이라는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캬족이 크샤트리야라고 하지만 새로운 부족이 아리안 문화권에 흡수되어 갈 때, 무력과 정치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크샤트리야로 자칭함으로써 아리안화되어 가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으므로, 크샤트리야라고 해서 아리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둘째, 사캬족이 아리안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증거로 아리안이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인종집단과 어계(語系)를 같이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현재의 문화인류학이나 언어학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어계와 인종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 인도유럽어를 사용 하고 있다고 해서 다 인도아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처님이 아라안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아리안이라 볼 수 없음을 말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였을 때 백인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하여 마성스님은 사캬족이 아리안이라는 설의 근거도 박약하고, 그렇다고 비아리안이라고 단정 할 수 도 없다. 현재 까지 밝혀진 연구성과에 따르면 샤카족은 아리안적요소와 비아리안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라 했다. 그럼에도 마성스님은 ‘아리안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태양의 후예 찬탄게송

 

허정스님의 블로그에서 한장의 사진을 보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졌다.그렇다고 몽골리안은 아니다. 인도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부처님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허정스님은 저는 부처님의 얼굴이 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리얀 계통이었다면 말이죠. 인도에는 그래도 카스트 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카스트가 다른 사람들과는 결혼이 허락되지 않으니 나름 대로의 혈통이 지켜져오고 있다고 봅니다.”라며 댓글을 달았다. 사진속의 인도인은 인도 남부 뿌네지방 사람들이라 했다.

 

TV나 영화속에서 부처님의 모습은 까무잡잡한 전형적인 인도사람의 얼굴이다. 그렇다고 백인이나 황인의 모습은 아니다. 인도인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마 부처님도 오늘날 보통 인도인의 얼굴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부처님의 또다른 별칭은 태양의 후예이다. 초기경전에서 볼 수 있는 태양의 후예diccabandhu) 찬탄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Aṭṭhānata sagaikāratassa
Ya
phassaye sāmayika vimutti,
Ādiccabandhassa vaco nisamma
Eko care khaggavisā
akappo.

 

[세존]

사교적 모임에 탐닉하는 자는

일시적인 해탈에도 이를 수 없으니,

태양의 후예가 한 말씀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stn54)

 

 

2.

Te tositā cakkhumatā

buddhenādiccabandhunā,
Brahmacariyamacari
su

vara paññassa santike.

[세존]

그들은 태양의 후예,

눈을 갖춘 님에게 만족하였고,

뛰어난 지혜를 가진 님 곁에서

청정한 삶을 살았다. (stn1128)

 

 

3.

Savaro ca pahāañca

bhāvanā anurakkhaā,
Ete padhānā cattāro

desitādiccabandhunā,
Yehi bhikkhu idhātāpī

khaya dukkhassa pāpue

 

[세존]

제어와 버림

그리고 수행과 수호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니

세상에 수행승은 이로써

괴로움의 부숨을 성취하리.(A4.14)

 

 

4.

Micchājīvena jīvanti

eke samaabrāhmaā,
Ete upakkilesā vuttā

buddhenādiccabandhunā.

 

[세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삿된 생계로 삶을 영위하니.

태양의 후예인 깨달은 님은

이것들을 오염이라 하네. (A4.50)

 

 

5.

Sabbe bhagavato puttā

palāpettha na vijjati,
Ta
hāsallassa hantāra

vande ādiccabandhunanti.

 

[방기사]

모두가 세존의 아들이며

거기에 쭉정이는 없네.

나는 태양의 후예로서

갈애의 화살을 부수어버린 님에게 예배를 드리네.(S8.7)

 

 

6.

Ya me kakhitamaññāsi
Vicikicchā ma
tārayī namo te
Muni monapathesu pattipatta
Akhilaādiccabandhu soratosi.

 

[사비야]

당신은 저에게 의심이 있는 것을 아시고,

저를 의혹에서 건져주셨으니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성자시여, 해탈의 길을 성취한 님이시여,

황무지가 없는 태양의 후예시여, 당신은 온화하십니다.(stn540)

 

 

2016-04-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