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험한 세상 등불이 되어, 2016년 해미읍성연등축제를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6. 5. 1. 11:38

 

험한 세상 등불이 되어, 2016년 해미읍성연등축제를 보고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있다. 불행하고 가난한 여인의 등을 말한다. 어느 날 여인은 부처님이 마을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처님을 위하여 밤길을 훤하게 밝힐 등을 달고자 하였으나 너무 가난하여 달 수 없었다. 그러나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마침내 등을 달 수 있었다. 이를 본 부처님은 불행하고 가난한 여인의 작은 등불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난다고 했다. 한역 현우경 빈녀난타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작은 도시 서산에서

 

지방의 작은 도시 서산에서 연등축제가 열렸다.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두 번째 연등축제이다. 서산시에서는 교황방문도시라 하여 로고까지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더구나 해미읍성은 천주교의 성지나 다름 없다. 2014년 교황이 방한하였을 때 이곳 해미읍성에서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청년들의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처럼 천주교의 성지나 다름 없는 서산에서 지역불자들이 뭉쳤다. 올해로 두 번째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해미읍성에서 연등축제가 열린 것이다.

 

 

 

 

 

 

 

 

해미읍성연등축제는 작은 지역축제이다. 서울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연등축제처럼 크고 화려한 축제가 아니다. 지역의 여러 개 사찰과 암자들이 연합해서 지역불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서산시를 천주교성지화 하고 더 나아가 서산시를 성시화 하려는 것에 쐐기를 박고자 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해미읍성

 

4 30일 토요일 해미읍성연등축제에 참가하기 위하여 차를 몰았다. 늘 그렇듯이 평택부근에서 극심한 정체를 보았다. 130키로 가량 걸리는 거리가 평소 보다 배나 걸렸다. 도착해서 보니 주차할 곳이 없다. 안내판을 보니 해미읍성 뒷편 해미초등학교에 임시주차장이 마련 되어 있었다. 그곳 마저 꽉 차 있었다.

 

해미읍성 동문으로 입장했다. 주차요금도 무료이고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대로 드나 들 수 있다. 성문 안으로 들어 가니 연등축제임을 알리는 연등이 성벽위에 길게 늘어 있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싱그럽다.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얼굴에 닺는 감촉이 보드랍다. 초록의 잔디와 노랑들꽃이 어우러진 해미읍성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호야나무 뒤로 불교의 축제가

 

해미읍성은 신록을 맞이 하여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천주교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수령300년의 회화나무는 아직도 새순이 돋지 않은 늦깍이이다. 나무에는 지금도 철사줄 자국을 볼 수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해미읍성의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나무를 호야나무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교황은 되고 달라이라마는 방한 하면 안될까? 천주교성지 해미읍성에서(2014-03-31)”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150년전 비극의 호야나무 바로 옆에서 서산불교 최대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2014년 교황방한 이후 올해 두 번째로 맞이하는 해미읍성연등축제가 오후 3시 부터 9시까지 열리는 것이다.

 

 

 

 

 

 

 

 

행사장을 둘러보니

 

행사가 시작 되기 전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서산사암연합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행사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천장사주지 허정스님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눈은 충혈 되었고 약간은 지친 모습이다. 이날 행사를 위하여 여러 날 준비하였고 이전 날에는 천장사신도들과 함께 연등을 손보고 장엄등을 옮기는 등의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행사장 양옆으로는 여러 개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부수는 네일아트, 팝콘이다. 특히 군인 오빠들의 팝콘 튀기기부수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긴 줄이 서 있다. 지역 공군 장병들이 팝콘기계를 이용하여 뻥튀기를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사의 명상체험부스

 

여러 개의 부스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명상체험부스이다. 외국스님들이 명상체험을 할 수 있게 지도해 주는 것이다.

 

 

 

 

 

 

 

 

외국스님들은 어디서 왔을까? 세종시에 있는 무상사에서 왔다. 숭산스님의 전법제자들이 살고 있는 외국인스님 전용 도량을 말한다. 이날 참선지도는 우크라이나출신 원봉스님이 해 주었다. 짧은 한국어로 앉는 방법, 손모양, 그리고 호흡법을 알려 주었다. 특히 호흡법과 관련하여 단전에 집중하라고 했다. 숨을 들이 마실 때와 내 쉴 때 비율을 1:2로 하라고 했다. 눈은 전면 바닥 한 곳을 응시하라고 했다.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참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참선하는 방법만은 알 수 있었다. 특히 단전호흡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위빠사나에서 말하는 빠리무캉사띵(Parimukha sati)’, 즉 전면에서 대상을 관찰하는 것과 비교된다. 대상에 집중하는 사마타와 대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의 차이일 것이다.

 

외국인스님도량 무상사

 

외국인스님도량 무상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이미 작년 부처님오신날 바로 전에 단체로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Only don’t  know & only doing it, 푸른 납자들의 무상사(2015-05-2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글에서 주로 대봉스님에 대하여 언급했다. 그런데 도중에 대봉스님이 온 것이다.

 

대봉스님은 미국인으로 무상사조실로 있다. 숭산스님의 전법제자 중의 한사람으로서 인가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수 많은 외국인스님들과 외국인재가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또 한국인 재가불자들도 지도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무상사에서 수행한 바 있는 K법우님을 통해서 들은 바 있다. 이에 대하여 전세계인 찾는 무상사, 관음스쿨(Kwan Um School of Zen) 위력은?(2015-09-11)”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대봉스님을 보니 반가웠다. 비록 여러 명이서 차담을 하였지만 안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체했다. 영어가 짧아 우리말로 이야기 했지만 한국에 오래살아서일까 다 알아 들었다. 대봉스님과 인연있는 사람들은 삼배를 올리기도 했다.

 

 

 

 

 

 

 

 

문화예술경연

 

연등축제는 어둠이 내릴 무렵 오후 6시부터 열렸다. 식전 행사로서 문화예술경연이 열렸다. 주로 청소년 경연이다. 지역의 청소년들이 풍물놀이, 합창, 악기연주 등으로 겨루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초청가수를 불러서 유행가를 부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연등축제는 청소년공연과 전통예술공연을 특징으로 한다. 유명 또는 무명가수를 초청하여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다른 것이다. 청소년팀이 출연하면 가족도 함께 온다. 가수의 공연이 끝나면 썰물처럼 관객이 빠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연화사 경민양의 연꽃 피어 오르리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무어니무어니 해도 판소리인 것 같다. 해미읍성 부근에 있는 연화사 경민양이다. 현재 중학교에서 국악을 공부하고 있는 경민양은 특별출연하여 마음껏 기량을 뽐내었다. 그 중에 하나가 연꽃 피어오르리이다.

 

 

 

 

 

 

 

 

연꽃 피어 오르리

 

청아한 한줄기의 연꽃 송이 피어 오르니
만다라화 향내음이 시방 세계 두루하네.
그 향기 맡는 이는 마음마다 연꽃 피어
사바의 속진 번뇌 모두 다 사라지고
이루는 곳곳마다 연화장 세계로세
아 연꽃이여 청아하고 아름다워라.
내 마음 연꽃 같이 영원히 피어나리.

중생의 무명번뇌 무시겁 내려오면
한없이 쌓이어서 본래 청청 잊었다네.
연꽃에 피어남은 천진모습 일깨워서
깨끗도 더러움도 가까이 아니하고
자신의 본래마음 그대로 지켜주네.
아 연꽃이여 청아하고 아름다워라
내 마음 연꽃 같이 영원히 피어나리.

 

 

한복을 곱게 입은 경민양의 찬불가는 관객들을 매료하였다. 드넓은 초원의 광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매료 되어 모두 집중하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목소리가 탁 트여서 명창으로 대성할 기미가 엿보인다. 아마 몇 년 더 성장하면 한국을 대표 하는 국인인이 탄생할지 모르겠다.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은?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 한역탄생게를 보면 천상천하유아독족(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라 되어 있다. 이는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빠알리어 탄생게는 이와 다르다. 디가니까야에 따르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님이다.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 (aggo'hamasmi lokassa, jeṭṭho'hasmi lokassa, seṭṭho'hamasmi lokassa, ayam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D14)라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천상천하유아독존, 한문탄생게와 빠알리탄생게 어떻게 다른가(2013-05-10)”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북방대승불교와 남방테라와다불교와 다르다. 대승불교에서는 중생구제의 목적이 크지만, 테라와다에서는 개인해탈의 의미가 더 강조 되어 있다. 이런 차이는 자귀의법귀의(自歸依法歸依)’ 구문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귀의법귀의(自歸依法歸依) 대하여

 

자귀의법귀의 대하여 북방대승불교에서는 자등명법등명이라 한다. 그러나 남방테라와다에서는 자주법주(自洲法洲)라 하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라는 말로 표현된다. 대체 등과 섬은 어떻게 다른가? 또 어떤 연유로 달리 사용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그리고 윤회의 바다와 ‘섬’(2010-12-03)”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등과 섬은 다른 것이다. 이는 빠알리 디빠(dīpā)를 어떻게 번역하였느냐에 따라 등과 섬으로 갈린다. 빠알리어 디빠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빠알리어사전에 따르면 ‘1. a lamp; 2. an island; 3. help; support.’라 되어 있다. 1의 뜻이 등이고, 2의 뜻이 섬이다. 그러나 마성스님의 글에 따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팔리경전에서 발견되는 ‘attadīpa dhammadīpa’를 현재의 번역가들은 물론 과거의 중국 역경승들도 각자 달리 번역하였다. 이러한 다른 번역의 원인은 팔리어 dīpa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이 단어는 등불(lamp)과 섬(island)의 두 가지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붓다께서는 등불과 섬 중에서 어느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남북전의 원문과 여러 번역본들을 비교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붓다는 여기서 섬의 의미로 사용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경전적 증거[經證]가 바로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과 주석서에서 ‘dīpa’는 피난처(tāna), 동굴(lea), 운명(gati), 목적지(parāyaa), 의지처(sara-a) 등과 같은 동의어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확실한 증거는 ‘attadīpa dhammadīpa’를 다루고 있는 팔리본에 대응하는 범본과 서장본은 물론 간다라 언어로 씌어진 법구경에서도 등불(dvīpa)이 아닌 섬(dīpa)으로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 붓다께서 처음 ‘attadīpa dhammadīpa’의 정형구를 설할 때에는 등불이 아닌 섬의 의미로 사용했음이 거의 확실해졌다. 따라서 ‘attadīpa dhammadīpa’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 아닌 ‘자주(自洲) 법주(法洲)’임이 밝혀진 것이다.

 

<自燈明 法燈明 번역에 대한 고찰, 이수창(摩聖), 팔리문헌연구소 소장>

 

 

대승불교에서 디빠에 대하여 등으로 번역한 것은 산스크리트어 드위빠(dvīpa)’를 번역하였기 때문이라 했다. 한역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아가마(아함경)을 번역하였기 때문에 등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드위빠를 등으로 번역한 것이다.

 

최근 빠알리니까야를 보면 모두 섬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빠알리어 디빠가 문맥상 섬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Attadīpāna bhikkhave, viharata attasaraāna anaññasaraāna dhammadīpāna dhammasaraāna anaññasaraāna, yoniyeva upaparikkhitabbā)”(S22.43)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자귀의법귀의에서 디빠를 으로 번역한 것은 어떤 이유일까? 빠알리어 앗따디빠(Attadīpā, 자신을 섬으로)’에 대하여 주석을 보면 이 용어는 한역에서는 자신을 등불로 하는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신을 섬으로 하는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윤회의 바다에서 난파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보다 타당하다.”(성전협 상윳따3 122번 각주) 라고 되어 있다.

 

세상에서 믿을 것은 오로지 자기자신과 부처님말씀 뿐이다. 그 외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설령 스님이라도 스님을 의지처, 귀의처, 피난처로 삼으면 안 된다. 왜 그런가?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분명하게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anaññasaraāna)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삼보이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거룩한 승가를 의지처, 귀의처, 피난처로 삼아야 한다. 이외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섬으로 하여 부처님가르침을 섬으로 하여 거센 윤회의 바다를 건너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등불이 되고자

 

연등축제는 연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런 연등은 세상을 밝히는 의미로 사용된다. 불자들이 가족의 평안과 건강과 학업과 사업을 위하여 연등을 달지만 본래 목적은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있다. 세상의 등불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온갖 것들로 오염된 세상에서 부처님의 가르침만한 것이 없다. 누구든지 가르침을 접하면 청정해진다. 가르침과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이를 한역으로 법등명자등명이라 한다.

 

불자들은 자신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불을 밝힌다. 이것이 연등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더 발전하여 오늘날 한국에서 보는 연등축제가 된 것이다.

 

 

 

 

 

 

 

 

 

 

 

 

 

 

십자가천지의 세상에서

 

현재 한국은 기독교가 득세하는 세상이다. 도시 어느 곳을 보아도 십자가천지이다. 이곳 해미읍성에서도 뾰족뽀족 솟아 있는 첨탑이 이곳 저곳에 널려 있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스님들과 불자들이 연등을 들었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점점 밤이 어둠이 깊어져 갔다. 저녁 노을까지 사라졌을 때 해미읍성은 깜깜 해졌다. 그러나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장엄등과 연등의 빛은 더욱 더 빛났다.

 

 

 

 

 

 

 

 

 

 

 

 

 

 

험한 세상의 등불이 되어

 

해미읍성을 반바퀴 도는 것으로 연등축제가 끝났다. 작은 도시 서산에서 작은 연등축제가 내년을 기약하며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한번 켜 놓은 마음의 연등은 계속 빛을 낼 것이다. 험한 세상의 등불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2016-05-01

진흙속의연꽃